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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전직 경제 관료들이 말하는 ‘J노믹스의 진로와 제언’ 

“구호만 난무할 뿐··· 실체가 안 잡힌다”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최저임금 등 보여주기식 행정 아닌 국민 공감하는 정책 만들어야…정부, 정책 균형감각 회복 못하면 국정운영 어려워질까 걱정돼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기업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호프미팅’을 가졌다. / 사진:연합뉴스
"제가 일할 때 경질론이 많이 나왔는데 관료들과의 불화설과 재벌들이 이정우 때문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어요. 이 말이 노무현 대통령의 귀에도 여러 번 전해져서 관료 문제로 저와 몇 차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대통령의 진심을 모르겠지만 그래도 관료보다 학자들에게 정책을 맡기는 게 더 멀리 보고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신뢰만큼은 있었어요. 좀 더 학자들을 믿고 힘을 실어주고 오래갔더라면 꽤 많은 실적을 올렸을 것이라고 봐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경제전문가들의 토론집인 [비정상경제회담](옥당, 2016년 3월 펴냄)에서 이렇게 밝혔다. 참여정부의 주체들이 정권 출범과 함께 기울인 탈(脫)관료주의 노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다.

참여정부에서 금융감독위 부위원장을 지낸 이동걸 현 산업은행 회장은 같은 책에서 참여정부와 관료사회의 관계를 사뭇 다른 뉘앙스로 전했다.

“6개월, 늦어도 1년 만에 노무현 정부도 관료들이 장악했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갔다’ ‘나는 공무원이 무섭다’는 말씀을 하셨죠. 공무원이 무서우니까 공무원을 쓰는 거예요.” 이미 관료사회가 국정의 주도권을 접수했었다는 말로 들린다.

얼마 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도 부경대 교수 출신인 홍장표 경제수석을 내보내고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 윤종원 경제수석을 발탁했다. 한국은 여전히 관료사회의 강력한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푸념이 여권 내에서도 나온다.

최근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꺾이고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국내로 밀려들면서 한국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은행이 7월 펴낸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올 경제성장률은 2.9%, 내년에는 2.8%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 국내 경제 투자는 둔화되지만 수출이 양호한 증가세를 이어나가고 소비도 개선 흐름을 보여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한다는 게 한국은행의 진단이다. 또 취업자 수는 2018년 18만 명 내외, 2019년 24만 명 내외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 취업자 수는 일부 업종의 업황 부진과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증가 폭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내년엔 일부 제조업종이 구조조정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서비스업 고용도 회복되면서 증가세가 확대된다는 게 한국은행의 시각이다.

국내 자본의 한국 탈출과 외국자본의 외면 심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한국 경제 정책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에 해당한다. / 사진:연합뉴스
한 달 앞서 제출된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는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은 전반적으로 안정된 모습이지만 가계부채의 증가세가 여전히 높은 점은 잠재적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 압력,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해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더욱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7월 사회디자인연구소(소장 김대호)가 내놓은 ‘문재인 정부 1년 경제정책 평가 및 제언’은 ‘J노믹스’로 대표되는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분야별로 나열했다. 먼저 기업의 분위기가 영 말이 아니다. “1970~90년대 넘치는 자신감으로 거침없이 세계로, 신산업으로 뻗어나가던 재벌, 대기업들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그 진취적 기상이 확 꺾였다. 외환위기 전 30년간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낡은 위험 분산시스템은 와해됐지만 새로운 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지금 대기업들은 과잉 부채에서 과소 부채로 됐다. 거대한 경제력을 운용하는 재벌 상속 오너(재벌 3, 4세)의 전횡, 무능, 보수성도 심각하다. 일찍이 예견된 사태지만 당과 정부와 기업이 혼연일체가 된 중국의 추격은 너무나 빠르고, 우리의 대응은 너무나 굼뜨고 손발도 맞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상대적 저성장과 수출·제조업·대기업 중심의 나 홀로 성장, 고용 없는 성장 등이 큰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수출·제조업·대기업 자체가 흔들린다는 진단이다.

정부의 경제 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1년 경제정책 평가 및 제언’은 “문재인 정부가 거칠게 밀어붙이는 제반 경제, 고용, 노동 정책은 빼어난 인재들로 하여금 창업과 민간기업 취업을 기피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능력 있는 기업은 국내 투자와 고용을 꺼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국내 자본의 한국 탈출과 외국 자본의 한국 외면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게 사회디자인연구소의 분석이다. “빼어난 인재들의 한국 탈출(해외 유출)과 민간기업 외면, 그리고 공공부문과 규제산업 쏠림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정부 출범 이후 고공행진을 하던 국정지지율도 점차 하강 추세로 접어든다.

한국갤럽이 8월 10일 발표한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은 58%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부정 평가는 31%였다. 갤럽 조사에서 직무수행 부정 평가자들은 그 사유로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40%), ‘최저임금 인상’(10%), ‘대북 관계/친북 성향’(8%), ‘과거사 들춤/보복 정치’(6%), ‘세금 인상’(4%) 순으로 꼽았다. 경제에 대한 불만이 중간층의 이반을 가져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컨설팅 기관인 입소스코리아가 펴낸 ‘8월 정국 흐름 및 전망(7월 30일자)’ 자료는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소득주도 성장, 이른바 ‘포용적 성장’ 어젠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화된 탓으로 돌렸다. 입소스코리아는 “7월 내내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던 최저임금 인상이 겹치면서 대내적 어젠다인 ‘포용적 성장, 일자리 창출’의 동력이 급격히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나아가 최저임금에 대한 국민여론의 향배가 향후 정국 운영의 변수가 될 수 있음에 주목했다. 예컨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개인적으로도 ‘불리’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국민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적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입소스코리아는 국민들이 이처럼 모순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경제’ 문제로 봄과 동시에 ‘인권’ 문제로도 인식하는 까닭이라고 짚었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국민여론이 경제로 기울지, 인권으로 기울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경제정책은 가치중립적으로 추진돼야


▎8월 초 서울의 한 호텔에서 정부 경제 정책 관련 조찬간담회를 한 박형수 전 통계청장,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송언석 국회의원(왼쪽부터). / 사진:전민규
이 같은 현실 진단은 전직 경제 관료들에게도 오롯이 피부로 와 닿는다. 좀처럼 현안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이들도 최근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8월 초순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열린 전직 경제 관료와 교수, 국회의원 등이 참여하는 조찬간담회가 열렸다. 기획재정부 2차관, 예산실장을 역임한 송언석 국회의원의 국회 입성을 축하하는 지인들의 모임이었다. 송 의원은 6월 13일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던 경북 김천 보궐선거에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심상찮은 표밭 동향에도 무난한 승리를 점치던 일반의 예상과 달리 이튿날 새벽까지 무소속 후보와 1위 자리를 엎치락뒤치락하다 천신만고 끝에 승리했다. 493표 차이의 신승이었다. 거의 초주검 상태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송 의원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이날 모임에는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박형수 전 통계청장,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함께했다.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노동시간 단축 등 정부 주요 경제·사회 정책에 대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공개석상에 잘 나서지 않던 전직 관료들도 이날은 속 깊이 담아둔 말을 꺼냈다.

송언석 의원_최근 정부가 경제 관련 수석 두 사람(홍장표 경제수석, 반장식 일자리수석)을 바꿨다. 정부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는 반증 아니겠나.

박형수 전 통계청장_소득주도 성장도 성장을 하는 여러 방안의 하나일 수 있으나 이것만 챙기다가 경제 전반에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을 하더라도 뒤에서 챙길 것은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니냐. 원래 정부가 했어야 될 통상적인 관리가 안 된 것이 아닐까?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_아무리 애를 써도 2년 내 최저임금 30% 상승을 감당할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주 빠르게 발전하는 국가들 말고는. 정부가 무리하고 있다. 서민을 위한 인간 중심의 따뜻한 경제를 표방하고 있는데 영세 자영업자들이 못 살겠다고 나선 것은 우리 경제구조가 그동안 굉장히 많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약자’의 구조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고 과거 진보를 이끌었던 세력은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됐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_소득주도 성장에 여러 논란이 일지만 결국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과연 가능한가 회의가 든다. 언제까지 임금을 올리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성장이라는 것이 국가 주도로 이끌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장이라는 것은 모든 경제 주체의 역량이 총집합해 그것이 앞으로 나갈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_정책은 현실성이 중요하며 가치중립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념에서 떨어진 방식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론엔 다 장단점이 있기에 언제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박형수_국가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인 것 같다. 시장 중심으로 쭉 해왔는데, 갑자기 국가가 한다고 하면 국민들의 눈높이가 더 높아질 것 아닌가. 증상은 완화할 수 있으나 근본적 문제 해결은 어렵다.

스튜어드십 코드, 기업 투자 의욕 저하 고려해야


▎지난해 7월 의원총회에서 소득주도 성장 등 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 기조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윤희숙_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명(明, 긍정의 의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집단은 그럴 수 있게 내버려둬야 한다. ‘암(暗, 부정의 의미)’으로 계속 떨어지는 집단을 정부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이 명과 암 그룹들을 정하는 데 공감대가 필요한 것 같다.

윤종룡_시장이 중심이 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하는 사람들의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 정부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냐 하는 인식을 갖게 했다. 정부가 명확하게 포지션을 잡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는 것을 명확히 정해 알려줘야 한다.

유일호_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얼마나, 어느 정도 빠르기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느냐가 포인트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듣고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벌써 집권 2년차도 지나고 있다. 시간이 없다고 보여주기식으로 할 게 아니라 국민이 공감하는 정책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전직 관료들은 정부가 개념이나 구호보다 손에 잡히는 실체를 보여주는 활동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주문을 주로 내 놓았다.

유일호 전 부총리는 “앞으로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고 쓸 것”이라며 “어떤어떤 성장이라는 표현보다는 ‘우리는 이런이런 것을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잘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컨대 “(기대하는) 좋은 목표만 달성하는 정책이란 건 없다. 좋은 쪽을 극대화하고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주문이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성장론에 어떤 명칭을 달아 국가가 주도해 나가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성장이란 게 시장에서 그 여건이 갖춰졌을 때 가능한 일인데 정부에서는 소득주도 성장, 포용적 성장, 혁신성장 같은 구호와 개념이 난무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집권 2년차의 정부는 국민적 요구를 의식해 많은 변화를 추구할 수는 있다”면서도 “경제는 시장이 주도하는 것이므로 정부는 시장에서 파생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하는 게 맞다”고 역설했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즉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임종룡 전 위원장은 제도의 근본적인 취지에는 공감했다. 그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 기관투자자들이 갖고 있는 권한을 대리인으로서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문제는 제도가 아닌 앞으로의 운영이라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임 전 위원장은 “제한적 경영 참여라는 것을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운영이 될 것이냐 하는 걱정이 있다”면서 “운영을 잘해 나가기 위해 많은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이 또한 시장에 의해 정해진다는 원칙이 관철돼야 한다. 현재 기업들의 경영, 투자 의욕이 많이 떨어져 있음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이 제도는 어디까지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대주주에 대한 시장(기관투자자)의 견제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미·중 무역전쟁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박형수 전 통계청장은 미국의 아메리카퍼스트 정책이 더 노골화되면 미국의 요구에 따라 생산라인을 미국으로 이전해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여건은 점점 더 기업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 “미국이 고집을 부리면 국내 기업도 외통수로 몰릴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최선을 다해 일한다고 하지만 결과물이 신통치 않다는 일침이다.

미·중 무역전쟁 최대 피해자 될 수도


▎올 상반기 체감실업률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5년 이래 최고치인 11.8%를 기록했다.
임종룡 전 위원장은 우리가 안이하게 생각하는 위험 중의 하나가 미·중 무역전쟁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책 [거래의 기술]에 너무 현혹된 나머지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 중간 지점에서 적당한 타협을 꾀하리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현실을 경계했다. “외국의 애널리스트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간단한 상황이 아니더라. 많은 이가 무역전쟁이 절대 중간타협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1인자와 2인자의 싸움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이길 때까지 가는 전쟁이지 한때의 다툼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싸움의 최대 피해자는 2인자가 아니다. 그 뒤에 있는 한국 같은 3인자, 4인자가 더 큰 피해는 본다. 미·중 무역전쟁에 무엇을 해야 하면 어떤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할지 서둘러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우리가 어느 쪽에 서야 할지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어느 한쪽에도 줄을 서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도 미리 상정하고 검토돼야 한다. 이처럼 큰 의제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어떤 논의가 있는지 궁금하다.”

유일호 전 부총리는 “1, 2위 국가 간 무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70년 만에 처음 일어나는 일”이라며 “한국의 경제구조는 대외 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마련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곤혹감을 표했다. 유 전 총리는 아직 두 나라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는 낙관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어떤 식의 타협, 절충이든 한국에는 하나하나 경제적 타격으로 와닿을 것”이라며 “미리 준비태세를 갖춰 손실을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전직 관료들이 이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 정부의 정책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는 건 아직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정책 아이디어가 풍부한 전·현직 관료들도 공개적 입장 표명에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며 손사래를 치곤 한다. 집권 2년차 권력의 힘이 절정을 향해 달리는 정권의 취약점을 대놓고 말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를 주도했거나 정책 수립에 큰 획을 그은 이들 중에는 정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8월 6일 경기도소상공인연합회가 주최한 최저임금 결정안 재논의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위원회 간사를 맡은 데 이어 박근혜 정부에선 노사정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월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과 관련해 ‘균형감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경제든 사회든 국정운영은 균형감각이 중요한데 그게 부족했지 않았나 싶다”며 “이를 보완하지 않으면 앞으로 국정운영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취약계층 가계소득은 줄었다


▎지난 6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 평가와 과제’ 국제 콘퍼런스에서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는 단호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이 근로자 임금 상승을 통한 성장론이라는 점에서 임금주도 성장론을 응용, 확대한 것으로 파악했다. 임금 증가가 새 부가가치 ‘창출’이 아닌 자영업자나 정부 재정 등 다른 소득 일부의 ‘이전(移轉)’을 통한 증가라는 점에 주안점을 뒀다. “‘성장’이란 외피를 쓰고 있지만 속살은 ‘분배’다. 그런데 이렇게 한 이전소득 증대가 우리 경제성장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따져봐야 한다.” 나아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된 근로자 임금과 저임금 근로자 임금을 끌어올렸다는 정부의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임금 인상으로 폐업한 자영업자와 잘린 근로자는 정부가 늘었다고 말하는 근로소득에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이들을 포함한 취약계층의 전체 가계소득은 되레 줄어들었다”고 일축했다.

박병원 전 경총회장도 정통 관료 출신으로 참여정부 재정경제부 제1차관, 이명박 정부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냈다. 지난 7월 언론 기고문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혁신성장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그는 먼저 “소득주도 성장만으로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는 것이 판명됐다”고 평가했다. 또 정부가 혁신성장의 한 축으로 생각하는 청년 창업, 벤처 창업도 소기의 성과를 낼 것인가에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창업 현실을 보면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며 “이미 지독한 공급 과잉, 과당 경쟁에 직면해 있는 음식·소매·운수업 등 영세 자영업 창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근거를 댔다. “정부 지원을 받은 창업자는 일단 일자리를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체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한 기존 사업자 중 일부가 문을 닫는 것은 시간문제다. 게다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창업자의 70~80%가 5년 안에 폐업한다고 한다. 공급 과잉 상태에 있는 자영업종 창업을 정부가 ‘지원’까지 해야 할지 의문인 것이다.”

그는 또 정부가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창업을 염두에 두지만 한국에선 그런 창업이 성공할 수 있는 토대가 너무 취약하다고 우려했다.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 걸림돌로 우리 법 체계의 경직성을 들었다. 그는 “이제 막 시행한 주(週) 52시간 노동만 해도 혁신성장을 이뤄내야 할 신생 기업들에는 엄청난 장애 요인”이라며 기업의 고충을 소개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진작 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노선에 꾸준한 경고음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 3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양산을 시대변화에 어긋나는 정책이라고 질책한 이 전 총리는 이후의 언론 인터뷰에서도 목청을 높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 전 총리는 지난 6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정부는 ‘탈산업화 시대’에서 ‘산업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유감을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대선공약을 지키겠다는 집착이 강한 나머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졌다는 시각이다. 그는 “대통령을 둘러싼 진보 세력의 가치추구적 행태,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과 관련해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이념도 상황에 따라 속도, 조절, 방향을 조절하며 장기적 정책으로 실천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문 대통령이 경제 정책의 기조까지 바꿀지 주목된다”고 언급했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 이동엽 인턴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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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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