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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명장(名將) 김인식·신치용이 말하는 위기의 리더십 

“역경 버티는 힘 만드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 

진행·정리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신뢰에서 출발해 선수의 자발성을 이끌어낼 때 조직은 더 단단해져…승자독식의 경쟁에서 소외되는 선수들 챙겨 주는 스포츠 정책 절실

▎‘국민감독’으로 존경받는 김인식 전 야구국가대표팀 감독(왼쪽)과 ‘배구의 신(神)’ 신치용 삼성화재 고문이 월간중앙 특별대담을 위해 만났다. 이들의 리더십 통찰은 스포츠 영역을 초월한 보편적 조직경영 철학이기도 하다. 이기는 팀을 위한 그들의 방법론은 다른 듯해도 본질은 닮았다. / 사진:전민규
'바위 위에 3년(石の上にも三年)’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세상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해낸 사람은 알아줘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그릿(Grit)]도 비슷한 개념이다. ‘그릿’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힘을 일컫는다.

우리는 이런 축적의 힘을 보유한 사람을 두고, ‘고수(高手)’라 추앙한다. 고수는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속성을 갖는다. 야구 국가대표팀 김인식(71) 전 감독과 삼성화재 배구단 신치용(63) 고문은 이 시대의 고수다. 그들의 방식은 자신의 분야를 초월한 조직 경영의 보편적 에센스를 제공한다. 리더십은 어떻게 확보되는 것이며, 이기는 조직의 특성은 무엇일지, 영속적으로 효율적인 조직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에 관한 나름의 열쇠를 그들이라면 지녔을 터다. 그리고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한, 두 명장의 조직론은 유의미할 것이다.

배문고를 졸업한 김 전 감독은 1965년 한일은행에서 실업야구 선수로 출발했다. 67년에는 국가대표도 됐다. 이후 72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이듬해 배문고 감독(1973~77년)으로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상문고(1978~80년)와 동국대1982~85년) 감독을 거쳐 86년부터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코치로 영입됐다. 90년 창단팀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이 됐고, 두산(1995~2003년)과 한화(2004~09년)를 거쳤다.

95년과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다. 단기전에 강한 김 감독의 ‘타짜 기질’은 국제경기에서 더욱 빛났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비롯해 2006년 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의 위업을 쌓았다.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은 김 감독 지도자 인생의 화룡정점이었다.

경남 거제 출생으로 부산 아미초 5학년 때 배구에 입문한 신치용 고문은 성지공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세터로서 실업배구팀 한국전력(1980~83년)에 입단했지만 선수로서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화재가 창단 감독으로 당시 한국전력 무명 코치였던 신 고문을 낙점한 순간, 한국배구의 역사가 바뀌었다. 2015시즌 감독에서 물러날 때까지 신 고문은 실업리그에서 9회 우승을 해냈다. 이때 범접할 수 없는 77연승 기록을 달성했다.

프로배구가 된 뒤에도 신 고문은 V리그 원년 우승과 7시즌 연속 우승을 포함해 총 8차례 정상을 정복했다. 한국 남자배구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본선 진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지휘했다.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은 최초의 체육인이다. 감독에서 물러난 후, 제일기획 부사장 겸 배구단 단장이라는 체육인으로선 이례적 대우를 받았다. 2017년 12월 단장직에서 물러나 배구단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월간중앙은 폭염이 한창이던 8월7일, 본사에서 두 리더의 대담을 마련했다. 한국야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이뤘던 김 전 감독과 해가 지지 않는 삼성화재 시대를 열었던 신 고문의 공적 만남은 최초였다. 그럼에도 두 명장 간의 대화는 어색하지 않게 이어졌다.

조직의 명운 쥔 감독이라는 자리


▎사위 박철우의 삼성화재 입단식 장면. 공사구분이 엄격했던 신 고문은 감독으로서 누구보다 혹독하게 박철우를 다그쳤다.
두 분을 뵈면 직업이 감독 같습니다.

김인식_프로에서 감독만 17년, 코치를 4년 했으니 21년 정도 했습니다. 총 45년은 했겠네요.

신치용_배구 겨울리그가 생긴 것이 1983년입니다. 코치 12년, 감독 20년, 단장 3년을 했습니다.

김인식_(감독을 오래하려면) 기본적으로 선수가 좋아야 하겠죠. 다만 감독 역량도 있어야 합니다. 감독은 전체 관리자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조직의 성패가 걸린) 포인트에서 결정을 내려줘야 합니다.

신치용_며칠 전 선배와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승리에 감독 지분은 얼마나 될까?”라고 묻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선수가 아무리 좋아도 감독이 감독답지 않다면 그 팀은 유지될 수 없다”고요. 저는 5(감독) 대 5(선수) 정도로 봅니다. 리더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고, 어떤 팀 문화를 만드느냐에 따라 선수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도, 전혀 역할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선수가 형편없는데 우승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구성원으로 비범한 성적을 내려면 감독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김인식_많은 우승을 한 감독은 그냥 된 것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저 팀은 누가 맡아도 저만큼 해’라고 말하지만 끝(고비)에 가서 우승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리더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법입니다. 또 하위 팀을 상위권까지 올려놓으면 빛이 안 날지 몰라도 뛰어난 감독일 수 있어요. (우승을 못해서) 눈에 띄지 않아도 뛰어난 리더가 있어요.

리더십은 결국 구성원의 동의를 끌어내는 작업일 텐데 어떻게 가능합니까?

김인식_잘 모르겠어요.(웃음) 감독은 눈으로 예리하게 ‘저 선수가 앞으로 몇 개월 후 어느 정도 올라갈 선수’라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머리로 결정을 내리고, 뜨거운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가슴이 두 개여야 해요. 한편으로는 포근하게 감싸 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수를 향한 인내가 필요해요. 때론 ‘믿는 척’을, 또 때론 진심으로 믿을 때도 있어야 해요. 그러면 선수는 ‘감독님이 이 정도로 나를 믿어주는데…’하면서 자발성을 가져요. 그렇게 신뢰가 쌓일 때 선수의 발전은 빨라집니다.

신치용_선수와 감독은 가까워도 멀어도 안 됩니다. 감독이 끌고 간다고 해서 그렇게 끌려가지도, 민다고 해서 밀리는 것도 아니에요. 선수가 스스로 느끼게 하려면 감독이 보여주는 게 좋습니다. 코트에 먼저 나가 미리 챙기고, 선수가 출근하기 전에 나와서 사무실에 불을 켜고 있는 모습을 선수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참고, 믿고, 도와주고, 챙겨보는 일들의 반복이에요. 결국 감독이 제일 책임져야 할 일은 선수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팀(조직)은 실적을 내야 행복해집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선수들 자존심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와 반대로 선수한테 편견을 가지거나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를 차별하는 것 등은 해서는 안됩니다. 감독이 기본과 원칙을 지켜야 선수들이 신뢰를 보냅니다. 선수가 감독을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특히 요즘 선수들일수록 “이거 해”라고 지시하면 속으로 “너나 잘 해라”하기 마련이에요. 선수를 공정하게 형평에 맞게 대하는 것은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보면, 오히려 배구를 잘한 선수들보다 못했던 선수들이 고마워합니다. 자신을 홀대하지 않았던 마음을 아는 것이죠.

인화 리더십 vs 카리스마 리더십


▎신 고문은 삼성화재 감독 시절 걸출한 스타 선수들을 ‘원팀’의 깃발 아래 장악했다. 현재 프로배구 남자부 7팀 감독 중 5명이 그의 제자다.
두 분 모두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습니다.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어떻게 다루셨나요?

김인식_특별한 것은 없어요. 늘 애국심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경기 앞두고 애국가를 들으면, 느낌이 너무나 달라요. 뭔가 매우 찡한 게 있어요. 특히 일본과 경기할 때 그래요. 일본 기자들이 나중에 물어보는 게 그거에요. ‘한일전 앞두고 선수들한테 뭐라고 하느냐’고. 그런데 딱히 얘기하는 게 없어요. 굳이 말 안 해도 선수들도 감독이 느끼듯 그렇게 통하는 거예요.

신치용_흔히 저를 두고, 카리스마적 리더라고 하는데 별로 동의 안 해요. 선수들이 감독을 어려워한다고 해서 카리스마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감독이 감독답게 하면 선수들이 자연히 어려워할 것이고, 그것이 카리스마를 만드는 것입니다. 김 감독님처럼 푸근하게 선수들을 품어도 얼마든지 카리스마가 있는 겁니다. 그 반대로 인상 쓴다고 해서 생기지 않아요. 선수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 첫째입니다. 선수들이 무얼 해야 하는지 경험을 통해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이렇게 하면, 이런 선수가 되더라’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선수는 힘들면 안 하려고 합니다. 그걸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에요.

요즘은 선수를 지도하는 트렌드가 달라졌다고 느껴집니다.

신치용_요즘 선수들이 예전 선수들보다 못하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후배 감독에게 “지금 선수들이 예전만큼 훈련하나?”하고 물으니 “안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시키면 선수들이 다 도망간다는 거예요. 여기엔 감독 책임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보다 신체적 조건이 좋은 외국과 경쟁해 이길 수가 없어요. 선수들이 연봉 높게 받을 생각만하지 훈련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선수들을 이끌어주고 대안을 찾는 것이 감독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김인식_야구는 1년에 144게임을 하죠. 인원도 많고, 투수·타자가 갈라져요. 팀워크가 안 맞으면 못해요. 인원이 많아서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코칭스태프가 뭉치지 않으면 어려워요.

신치용_맞습니다. 예전에 삼성 야구단 선배가 저한테 ‘우리팀 성적이 안 좋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요. 그래서 “선수 잡으려 하지 말고 코치를 잡으시라”고 말해줬어요. 지금도 스태프(관리직)가 강한 팀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인식_동의합니다. 코치진이 뭉쳐 있으면 선수들도 어떻게 딴 마음을 먹을 수가 없어요. 코치가 흐트러지면 선수들도 흐트러집니다.

신치용_희생정신, 동료애 이런 것들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혼자 행복해지려고 하면 팀은 안 됩니다. 리더는 결과를 만들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한테 아무리 잘 해줘도 결과를 못 만들면 힘들어져요. ‘행복=성적’,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선수한테는 기본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사람을 대하는 기본도 포함됩니다.

승부의 무서움 감내하는 ‘절대고독’ 자리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지닌 기품을 담고 있다. 흑백으로 처리한 신 고문의 표정은 인자해 보여도 가볍지 않다. / 사진:전민규
두 분 다 수없이 이겼고, 또 그만큼 많이 졌습니다. 패배(실적 부진)를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김인식_감독은 많이 이겨도 봐야 하고 많이 져도 봐야 합니다. 너무 많이 지면 안 되겠지만….(웃음) 승리보다 패배에서 더 많이 느낄 수도 있는 것이에요. 개인적으로 제일 많이 느꼈던 시절이 해태에서 매번 이기다가 쌍방울에서 많이 졌을 때에요. 7·8·9회 막판 고비를 못 버텨내고 번번이 지는 거예요. 그게 약팀과 강팀의 차이겠죠. 그렇게 패하고, 밤에 숙소 들어가면 유니폼 입은 채로 앉아서 자꾸 복기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새벽 4~5시가 돼요. 사람들한테 티 안 냈을 뿐, 패배는 잘 털어지지 않아요. 패배는 리더에게 서러운 것이에요.

신치용_저는 코치 시절엔 한 번도 우승을 못해 봤어요. 지고, 이기는 것에 이골이 났죠. 복기를 하지 않는 지도자는 미래가 없어요. (팀이 안 좋을 때) 버티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아마도 감독 때 제일 많이 썼던 말이 “지금부터 버텨야 돼”일 거예요. 그 버티는 힘을 어떻게 만드는가는 혹독한 훈련과 팀워크에서 나옵니다. 그 저력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몫이에요. 버티는 힘이 없어서 마지막에 지고 나면 정말 허무합니다. 이겼다 싶은데도 한 번 말리면 휙 가버리는 것이 승부입니다.

그러나 그룹과 팬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전문경영인 CEO처럼 감독도 단기실적이 나지 않으면 금방 잘립니다.

김인식_우리나라 스포츠, 사회 전체가 마찬가진데, 기다려 주는 문화가 부족해요.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진 사람이 단장 등 프런트 고위직을 맡아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지금 야구계는 현장 출신 단장이 많아지고 있는데 좋게 보여요. 다만 아직 부족해요. 이론만 가지고 해선 곤란합니다. 사장·단장을 맡으면 10년 이상 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보 같은 사람이라도 오래 맡겨 두면 ‘우리 팀이 어떻게 해야 하는구나’ 알게 마련이에요. 그런데 지금 스포츠단 사장이 몇 년을 할 수 있나요? 대개 3~4년이면 바뀝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러다 잘 모르는 채로 어쩌다 우승이라도 하면 본인이 잘해서 된 줄 알아요.

신치용_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무서운 겁니다. 아는 사람은 쉽게 말 못합니다. 구단 측이 현장을 쉽게 보는 것이 있어요. 현장 리더가 경험이 많아도 생각해 주지 않을 때가 있어요. 차라리 그룹에서 ‘1등 하라’고 막 쪼아댄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요즘엔 (관심이 시들해져) 그렇지 않은 것 같거든요.(웃음) 삼성 배구단 창단에 관여한 그룹 고위층 분께서 ‘배구가 이겨야 (이건희 회장 주재 회의 분위기가 훈훈해져서) 주말이 즐겁다’고 하셨을 때가 있었어요. 관심 가진 분들이 많을 때가 행복한 것이에요. 그런 만큼 패배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지지 않으려고 더 치열하게 준비했어요. 김 감독님이 프런트 얘기를 해주셨는데 단장도 단장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장이 된 뒤, (감독을 해본지라) 아무리 현장을 알아도 현장 리더십에 부담을 줄까 싶어 함부로 말을 못했습니다.

김 감독님은 나이 들어 팀에서 방출된 선수를 품어서 성공시킨 사례가 많습니다.

김인식_그 당시 내가 맡은 팀들의 전력이 괜찮았다면 아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팀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 보니, 데려와서 쓰면 ‘이 정도는 해 줄 것이다’란 생각을 했어요.

인재의 육성과 조직의 순환


▎고단한 승부의 세계에서 끝내 살아남은 명장의 표정엔 아직도 활기가 감돈다. 흑백으로 처리한 김 전 감독의 표정은 초연함마저 묻어난다. / 사진:전민규
리더의 덕목은 인재 발굴과 육성입니다. ‘되겠다’ 싶은 유망한 선수가 나타나면 느낌이 옵니까? 김 감독님은 특히 한화 사령탑을 맡았을 때, 류현진(LA 다저스)의 잠재력을 발굴했는데요.

김인식_결국 선수가 잘하는 선수이니까 되는 것입니다. 다만 많은 경기를 치르며 선수들과 오랜 생활을 하다 보니 이 선수는 ‘되겠다’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경험’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소질 있는 선수라도 중요한 포인트는 자꾸 얘기해줘야 됩니다. 필요하다면 채찍질도 해야 하고요.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안 되니까….

신 단장님은 외국인 선수 뽑을 때 거듭해서 흙 속의 진주를 캐냈습니다.

신치용_천부적 재능을 가진 선수도 있고 노력형도 있습니다. 재능은 있는데 노력하지 않는 선수도 있고요. 저는 노력도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용병을 아마 가장 싸게 데리고 온 것이 저일 겁니다. 안젤코 선수는 10만 달러에 데려왔어요. ‘일부러 꼴찌 해서 다음 드래프트 때 좋은 신인선수를 데려가려고 저런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안젤코는 정신력이 정말 뛰어난 선수였어요. 그 다음에 가빈은 신체적 조건이 정말 좋았습니다. 처음엔 손에 공도 제대로 못 맞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3개월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빈 다음에 온 레오는 처음에 봤을 땐, 이게 선수인가 싶더라고요. 그런데 배구 이해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몸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젤코나 가빈은 인성이 됐으니 되겠다 싶었습니다. 레오는 쿠바 망명 선수입니다. 망명할 깡다구가 있으니, 뭘 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재능도 있었고. 배구에 관한 감각에서는 지금껏 봤던 선수 중에서 레오가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김인식_두산 감독 시절 타이론 우즈(한국과 일본프로야구 홈런왕)를 데려왔습니다. 우즈의 활약에 나중엔 (저렇게 잘할 줄은 몰라서) 저부터 좀 놀랐어요.(웃음) 2001시즌에 두산이 한화와 플레이오프를 하는데, 송진우(현 한화 투수코치)가 던진 완벽히 바깥쪽으로 컨트롤 된 공을 쳐서 우익수 뒤편으로 밀어서 넘겨 버리더라고요. 볼 반발력이 지금보다 못할 때인데 말입니다. 그 후 일본(주니치)에 가서 하는 것도 봤는데 일본 투수들 공도 넘겨 버리더라고요. 우즈는 사실 결함이 많은 타자였지만 감독이 믿어 준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적응의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감독은 고참(베테랑) 선수와의 관계 설정이 민감한 자리입니다. 팀의 순환을 위해 이 선수들을 은퇴시키는 과정에서 냉혹함도 불사해야 했을 텐데, 여론의 비판을 어떻게 견뎠습니까?

신치용_김세진 선수(현 OK저축은행 감독)가 우리 팀의 원칙을 어긴 적이 있었습니다. 운동장을 뛰라고 했습니다. 1시간 반을 계속 뛰게 뒀습니다. 우리 팀의 에이스 선수가 끝까지 따라 줬어요. 나중에 ‘그때 뛰어 줘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김세진 감독이 저와 지금까지도 잘 지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엔 팀이 9시즌을 연속 우승하다가 두 시즌을 내리 실패했는데,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를 안하고 그냥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2등은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러나 선수 순환을 시키지 않으면 우승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룹에서도 (시끄러워지는데) 좋아할 리 없었죠. 그때 “2등 하려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설득했어요. 팀보다 위대한 선수, 감독, 코치는 없습니다. 오직 팀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삼성화재에 워낙 뛰어난 선배들이 많으니 그 밑에 있는 선수들이 좀 눌려 있더라고요. 그룹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고, 팬들도 우려했지만 그 뒤로 7년을 내리 우승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내가 깃발을 들고 앞에서 가자고 했는데 그 뒤로는 선수들에게 “너희가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지켜만 볼 테니 훈련을 책임지고 해보라고도 했습니다. 긴 시즌에서 전반기가 선수들의 기량이라면, 후반은 팀워크에요. (팀워크가 기능하려면) 감독과 선수 사이의 진정성이 중요합니다.

경제도 마찬가지겠지만 야구든 배구든, 한국 스포츠 역시 국제경쟁력 유지가 화두입니다.

김인식_앞으로 10년이 중요한데 투수가 없어서 문제입니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대표팀 감독을 맡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야구가 인기에 비해서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지난해까지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기술위원회를 뒀는데 지금은 없어요.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가 선수를 뽑아야 합니다. 감독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는데 오히려 감독 부담을 더 늘렸어요. 과거처럼 기술위원회에 감독이 들어가서 서로 조율해서 뽑으면 코칭스태프의 심적 부담이 더 줄었을 텐데…. 예전에 제가 국가대표 감독이었을 때, 성적으론 도저히 뽑힐 수 없는 선수를 대표팀에 뽑았던 적이 있습니다. 경기 막판에 대주자와 대수비로 그 선수가 필요했어요. 소신껏 대표팀 선수를 뽑다 보면 한 두 명 정도는 늘 시비가 붙습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죠.

프로는 잘할 때가 즐기는 때인 것


▎한국 프로야구는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제경쟁력을 키운 김 감독에게 진 빚이 작지 않다.
신치용_저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이란 등이 정예대표팀을 내보낸다면,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쉽진 않겠지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준비 잘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선수들한테 동기부여가 돼야 합니다. 지도자도 분명한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다만 배구는 높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체적인 요소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2군제도도 없고, 선수 육성이 어렵습니다. 여자배구도 ‘김연경 이후’를 고민할 때입니다.

김인식_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대학야구입니다. 고교까지는 학업을 병행해서 잘 가다가 대학에 가서 운동을 하느냐 안 하느냐 판가름이 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대학야구 경기가 주말로 한정되다 보니 엇박자가 납니다. 대학선수라면 평일에도 운동을 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갈수록 더 위축이 돼 발전이 없어요. 그러면 프로야구에도 지장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중·고등학생이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좋습니다.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상식은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대학 선수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졸업 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면 큰일이에요. 실력으로 뽑는 프로에서 대학 졸업 선수에게 드래프트 지명 할당을 줘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에요. 대학 가서 운동을 하기로 진로를 결정했다면 그 선수는 전력을 다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신치용_야구는 메이저리그가 있습니다. 축구는 유럽리그가 있습니다. 농구는 NBA가 있습니다. 그러나 배구는 외풍이 있을 만한 리그가 없어요. 지금 한국배구연맹(KOVO)이나 대한배구협회의 스포츠 정책이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잘하는 몇몇 선수 말곤 소외되는 선수가 정말 많아요. (양극화된 상황에서) 프로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커리어가 끝나면 사회 나와 할 것이 없어요. 그런 선수를 보면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립니다. 선수들 결혼한다고 주례 설 일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내심 걱정이에요. 이들이 은퇴 후에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갈 것인가…. 중·고등학교는 또 선수가 없어서 문제고요. 이런 문제들을 배구인으로서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감독은 1995년 OB(두산의 전신)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4년 선수단 집단이탈 파동을 겪으며 꼴찌를 했던 팀을 1년 만에 정상으로 올린 것은 인화 리더십의 힘이었다.
지금 다시 감독을 맡을 기회가 생긴다면 자신 있습니까?

김인식_맡으라고 하면, 지금 하는 지도자들보다 잘할 것 같습니다. 한번 맡으면 10년씩 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지시를 내려야 되는 위치의 사람들이 제대로 안 하고 있으니 조직 전체가 올바르게 판단이 안 서는 거예요. ‘즐기는 야구’라는 말을 곧잘 듣는데 도대체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해야 하는 거예요. 실책 해도 괜찮다고 하는 게 즐기는 게 아니에요. 치열하면 앞서게 되고, 그러면 즐기게 됩니다. 훈련 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그러나 결과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마냥 노는데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신치용_연륜이라는 것은 무시 못 합니다. 나보다 네 살 많은 분(대한항공 박기원 감독)도 감독을 하고 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합니다.

‘그렇게까지 피도 눈물도 없이 이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일부 비판 여론에 흔들리지는 않았습니까?

신치용_프로는 일부러 져줄 수 없습니다. 노력을 안 할 수도 없습니다. (분업배구는) 어떤 전술이 우리 팀에 맞는지 찾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 땀의 가치라는 것이 요즘에 쉽게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팬들이야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길 바라기 때문에 (삼성화재에 패할 때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선수나 지도자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땀의 가치를 모른다면 프로가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하니까’ 프로인 것입니다.

- 대담 김인식(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 신치용(전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삼성화재 고문)
- 진행·정리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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