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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9)] 노년의 삶을 바꾸는 행복한 성(性) 

섹스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자존감 높이고 암 발생 낮추는 성생활 “70 평생 처음 성교육 받고 삶의 의미 달라져”

▎경기도는 2010년부터 70대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성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아파트 경로당에서 성 교육 강좌를 듣고 기념 촬영을 한 노인들.
노인의 성이 수면 위로 부각된 계기는 2002년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개봉하면서부터다. 2005년 전도연, 황정민 주연의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를 만든 박진표 감독의 독립영화로 노년의 성을 사실적이며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담뱃가게를 하며 외롭게 사는 한 남성 노인이 공원에서 한 여성 노인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둘만의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동거를 시작한다. 70세가 넘은 이 커플은 청춘 남녀처럼 뜨거운 잠자리를 갖는다.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의지하며 노년의 사랑도 젊은이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된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두 노인이 실존 커플이라는 점과 실제 정사 장면을 그대로 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세상에 빛을 발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노인’과 ‘성’은 양립할 수 없는 주제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노인의 성’에 대한 주제는 더 많이 다뤄지고 더 깊게 연구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이라는 문제가 노년기 삶의 질을 180도 바꿀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성건강연구소 상담21의 유외숙 소장은 “대다수 사람들은 일을 통해 자기만족을 경험한다”며 “은퇴 이후 60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소외, 고립, 외로움, 죽음, 질병과 같은 실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한다.

유 소장은 실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성’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욕구는 60대라고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괜찮은 남자와 여자로 남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그것의 일정 부분을 충족시켜 주는 주제가 성이라는 것이다. 유 소장은 “따스함, 자기 존재감, 이완, 재미 등을 담고 있는 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7년 섹스리스 부부가 35%를 넘었고, 일본 가족계획협회 조사에 따르면 일본은 47%가 넘는다. 노년이 되기도 전에 성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중·장년에 섹스를 하지 않다 노년이 돼 관계가 좋아질 리도 만무하다. 유 소장은 “섹스는 하고 싶은 기대가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 기대는 과거의 좋았던 경험이 결정하며 60대라고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이 의무, 책임, 모멸감. 실망감, 분노 등이었던 사람은 기대를 접고 관계 맺기를 회피한다.

유 소장은 기대를 접는 또 다른 이유로 “사람들은 섹스가 현실이라는 개념을 배운 적이 없다. 어떤 이는 과도한 환상을 갖고 있고, 다른 이는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럴 경우 비난과 실망, 불만, 좌절이 가득 찰 수밖에 없다. 이는 모든 연령대가 갖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유 소장은 부부 간 혹은 파트너와의 좋은 경험이 없을 때 기대를 올려 주고 좋은 관계로 회복되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성 상담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성이 자신의 인생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전환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친밀감과 따스함이 존재하는 노년은 삶의 질이 현격하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유 소장이 노인들과의 상담에서 주로 듣는 얘기가 “내가 그동안 고통받고 당하고 산 세월이 있는데 이제 와서 파트너를 왜 안아 줘야 하나”라고 한다. 그간의 부부 생활이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며 다수의 부부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럴수록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이 유 소장의 의견이다. “접었던 기대의 원인을 찾아 현실적인 기대를 가능하게 만들고 결핍된 욕구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상담밖에 없다.”

유 소장은 노년은 물론 중년 부부에게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욕구를 가진 주체자이며 나를 위해 옆에 있는 것이 아니다”고 충고한다. 사람은 각자의 욕구를 위해 살아가고 욕구가 채워져야 만족을 느끼고 그 만족이 지속돼야 행복한 것이다. 유 소장은 “만족을 지속하려고 나의 욕구를 위해 상대방의 욕구를 좌절시켜선 안 되고 나의 욕구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다만 서로의 욕구가 다를 때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문제를 풀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유 소장은 “섹스의 범주는 넓다. 친밀감을 경험하고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접촉은 모두 성관계로 볼 수 있다”며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성 문제에 어려움을 겪으면 도움을 청해 풀 수 있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성에는 정년이 없다. 팔십도 구십도 상관없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죽어도 좋아]의 포스터. 당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보다 높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 영화는‘노인의 성’을 수면 위로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나이가 들면 남성은 성기능 저하와 여성은 폐경을 지나 성욕 감퇴를 경험한다. 하지만 신체의 변화는 의학적인 도움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부산대 의대 김원회 명예교수는 “남자의 경우 발기가 늦게 일어나거나 약하며 사정의 강도가 떨어지고 다시 발기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강하고 직접적인 자극이 있어야 발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은 질 벽이 얇아지고, 질이 짧아지며, 질 건조증이 온다”면서도 “이는 현대의학을 통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남성의 경우 비아그라와 같은 약물치료를, 여성은 호르몬 치료나 윤활제, 비(非)스테로이드계 진통제 등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노년의 성생활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남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고 쾌감을 주는 도파민, 친밀감을 주는 옥시토신과 같은 물질은 면역력을 증강시킨다. 특히 옥시토신은 암 발생 빈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심장병과 뇌졸중의 빈도를 감소시킨다고 증명됐다”며 “남성은 성교의 빈도가 높으면 오래 살고, 여성은 성을 즐길 경우 장수에 이르는 빈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많은 사람이 성에 대한 무지 때문에 외롭고 불행한 노후를 보낸다. 알수록 행복해지는 게 성”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그저 피스톤 운동이 전부인 줄 알고 살던 젊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의 성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적으로 더 행복하다는 얘기”라며 “성을 통해 얻는 즐거움, 만족, 행복 등은 나이가 들수록 의미 있고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바꾸었으면 한다. 성에는 정년이 없다. 팔십도 구십도 상관없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은 의사에게 먼저 자기의 성 문제를 꺼내는 경우가 2%밖에 안 되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우는 40%에 달한다. 문제가 있다면 의사나 상담사와 상의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밝혔다시피 노인의 성은 상담과 치료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으며 삶의 질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주제다. 이 같은 인식하에 지자체들도 2010년대 들어 ‘노인의 성’과 관련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도다. 경기도는 2013년부터 도내 노년층의 바람직한 성문화 정립 및 인식 개선을 위해 노인 성(性)인식 개선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경기북부 10개 시·군을 시작으로 이뤄졌던 사업은 2017년 관련 조례가 제정되면서 올해부터는 31개 시·군으로 확대 시행 중이다.

지자체 운영 성 교육·상담 프로그램 활발


▎경기도 남양주노인복지관에서 한 노인이 성 상담을 받는 모습. / 사진:신곡노인종합복지관
경기도 노인성인식개선사업거점센터 배승룡 센터장(신곡 노인종합복지관장 겸 경기도복지관협회장)은 “노인 성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오래된 금기나 부정적 시각으로 인해 개인 문제로만 치부돼 온 것이 사실”이라며 “경기도는 노인들의 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음지가 아닌 양지로 끌어내어 함께 이야기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상담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건강한 성생활 및 부부관계, 건전한 이성관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보다 활기차고 행복한 노년생활 향유와 성범죄 예방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 자체 평가다.

배 센터장은 “음지에 있는 성 문제를 숨기지 않고 과감하게 털어놓는 창구를 마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성 욕구, 부부관계, 성병, 재혼, 독거노인 문제 등이 해소되고 이에 대한 개인 의식과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끼고 있다”며 “노인들의 성 교육과 상담은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기도는 현재 경로당, 노인대학 등 노인들이 원하는 곳에 무료로 성 전문 강사를 파견해 교육을 진행하고, 성 전문 상담사를 통해 일대일 상담을 하는 등 찾아가는 맞춤형 교육과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2013년부터 양성한 상담사 수가 현재 100여 명에 달한다. 특히 올해는 노인성인식개선사업거점센터를 개소해 기존 노인 전문 성교육사, 성 상담사 대상 보수교육 강화, 신규자 발굴·육성, 상담사례 공유와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을 위한 자조모임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또 31개 시·군 수행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경기도와 의정부시는 오는 10월 ‘2018년 노인성문화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노인성문화축제는 성(性)인식 개선사업 홍보의 일환으로 성 상담창구, 체험부스 운영과 축하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노인들이 쉽고 재미있게 성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현장에서 교육과 상담을 받고 있는 노인들의 반응이 좋다. 72세 구지성(가명)씨는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구씨는 “어릴 때는 물론 나이가 먹어서도 성과 관련된 교육은 받지 못했다”며 “복지관에서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것은 알았는데 쑥스럽고 주변 사람들 눈치도 보였다. 그러다 복지관 직원들의 권유로 성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성 교육 받기 전과 후의 인생이 달라져”


▎경기도 신곡노인종합복지관에서 ‘건강한 성, 행복한 노후’라는 주제의 성 교육을 받고 있는 노인들. / 사진:신곡노인종합복지관
구씨는 무엇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아 좋다고 한다. 그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제대로 아는 계기가 됐고 나이가 먹었어도 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부끄럽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며 “노화에 따른 신체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왜 그런지 이해가 되고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도 알게 되는 등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김진국(가명·74)씨는 “복지관을 이용하는 할머니들의 심리를 알게 됐고 다가가는 방법, 말을 건네는 태도도 배우면서 좀 더 자신감 있게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김 씨는 또한 “함께 교육 받은 할머니들도 할아버지들의 심리를 알게 되니까 만나기가 덜 부담스럽다. 서로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니까 이성 관계를 풀어가는 것도 수월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구씨는 노인들도 젊은이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이를 먹었어도 남자라 성 욕구는 여전히 있고 남자들끼리 술자리를 가지면 성에 대해 얘기한다”며 “교육을 함께 들은 할아버지들과 비아그라를 구입하는 곳을 물어보기도 하고 서로 정보도 공유한다. 무엇보다 성에 대해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자체가 편하다”고 밝혔다.

구씨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 교육과 상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주변에는 성매매를 하고 병 걸려 오는 사람도 있다”며 “나이를 먹었어도 노인들도 남자다. 이 때문에 교육을 통해 건강하게 성을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한다. 교육을 받기 전과 후의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현장에서 노인들을 만나고 있는 상담사들 얘기도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에서 노인 성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이남희 상담사는 “노인 성인식 개선사업을 처음 진행했던 5년 전보다 상담 횟수가 상당히 늘어났다”며 “초기에는 주저하고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지만 요즘에는 성에 대해 얘기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다. 남녀 상관없이 속 시원하고 죄책감 없이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상담의 형태도 과거에는 부부간의 관계에 대한 상담이 많았다면 지금은 부부 성생활, 성기능 관련 부분 등 구체적으로 고민을 얘기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이 상담사는 “노인들은 성에 대해 스스로 굉장히 보수적이며 부끄러워하고 수치심을 갖고 있다. 이성교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도 많다”며 “이런 경우 지금까지 살아온 60~70년을 돌아볼 때 누구를 위해 살았고 앞으로의 삶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말씀드린다. 자신의 삶에 대해 당당하도록 자존감을 높여드리는 동시에 행복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이성교제도 가능하다고 말씀드리면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상담사는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사례를 얘기했다.

“오랫동안 병수발을 해온 아내가 돌아가시자 우울증에 빠진 어르신이 있었어요. 삶의 의미를 잃고 연탄불을 피워 자살 시도까지 하셨죠. 어르신을 걱정하던 주변에서 복지관에 다녀보라고 권유를 했고 여러 상담을 진행하면서 성 인식 개선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셨어요. 당시 그 어르신은 자신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자책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셨죠. 그래서 수차례 상담을 진행하면서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이 먼저라고 말씀드렸더니 점차 용기를 얻으시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러다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다른 프로그램에서 만난 여성에게 먼저 고백을 하시더군요. 그 여성 역시 배우자를 사별한 상태였는데 돌아가신 남편이 젊을 때부터 폭력적이고 고압적이어서 남자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어르신께서 매너 있게 다가가 따뜻하게 대해주니까 마음을 여신 겁니다. 그 여성 주변에서는 어르신의 조건을 보고 반대했지만 진실되게 다가오는 마음만 보고 만나신 거죠. 두 분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서로 아껴주는 모습을 보니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노인들 스스로도 성에 대한 고착화된 생각 바꿔야


▎경기도 포천노인복지관에서 ‘뻔뻔(FUN FUN)한 시니어의 아름다운 성(性)이야기’ 교육 이후 찍은 기념 사진.
하지만 상담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상담사는 “60년 넘게 고착화된 생각들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남성 노인들은 성이라고 하면 행위 중심의 성을 주로 떠올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여성 노인들은 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남자를 다시 만난다는 것을 귀찮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남녀 구분하지 않고 인식의 변화를 주문하는 편이다. 남성 노인에게는 행위 중심이 아닌 관계 중심의 성을 강조하면서 부인이나 파트너 등 여성을 대하는 말투, 자세와 같은 매너를 강조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여성 노인에게는 성에 대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도록 설득한다.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일이니까. 그러면 남편이나 파트너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스킨십에서 시작해 관계가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상담과 교육 과정에서 보완할 부분도 있다. 이 상담사는 “여든이 넘은 여성 노인들에게 성이 건강한 삶에 도움을 준다는 얘기는 현실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도시와 농촌에 사는 노인, 경제력이 있는 노인과 그렇지 않은 노인 등 유형이 천차만별”이라며 “연령별·지역별 등 맞춤형 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현재 콘텐트가 부족한 실정이다. 경기도와 노인성인식개선사업 거점센터가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노인의 성’에 대한 관심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갈 길은 멀다. 10년 넘게 노인 성 문제를 강의하고 있는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교수(한국노인상담센터장)는 “노인 성 교육을 위한 콘텐트가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교수는 “그동안 사회에서 노년층을 무성의 존재로 판단해 노인과 성을 분리해 왔고 노인의 성을 학습의 대상과 내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교육 현장에서도 꺼렸다”며 “텍스트북이 없는 상황에서 직접 논문과 책을 찾아보며 강의를 준비해 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심도 있는 연구와 사례가 많아져야 전문가 양성은 물론 일선 현장에서도 좋은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노인 성 교육 시스템의 맹점을 개선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2010년대 초반부터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대부분 집단 교육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는 “노년층이 성을 처음 접했던 통로가 남자는 군대, 여자는 빨래터라고 할 정도다. 이렇게 성 인식이 낮은 상황에서 1회성 교육은 효과도 크지 않다. 장기적이고 개별적인 상담이 지속돼야 교육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가 전문가·콘텐트·시스템 구축 나서야”


▎경기도 포천노인복지관에서 ‘성(性)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주제로 성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 사진:신곡노인종합복지관
다양한 연구와 교육을 통해 전문가와 콘텐트를 확보하는 동시에 노인들이 쉽게 성을 접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복지관 내 성 상담 센터가 많이 생겨났지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찾아갈 노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찾아가는 말벗 서비스와 같이 주기적인 방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성 관련 문제는 자주 봐서 익숙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주제다. 방문하는 상담사들을 통해 고민을 얘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이라는 주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선 현장에서 만난 노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성 관련 교육을 받지 않은 동년배들은 성문제를 말하기 꺼리고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이 교수는 “치매 예방 교육 책자를 배부하듯이 건강한 부부생활의 방법부터 시작해 노화에 따른 신체 변화 대처법, 성병 증상 감별법 등 굉장히 쉽고 간단하면서 구체적 내용이 담긴 생활 매뉴얼을 배포해야 한다. 혼자라도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접근성을 높여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비 지원 등 의학적 치료 과정에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 관련 질환이 발생하더라도 비용 문제로 비뇨기과나 산부인과 방문을 꺼리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자가 만난 한 노인은 “젊은 사람들에게 싼 비용도 우리에게는 비싼 비용”이라고 말했다.

교육과 상담, 홍보, 의료 서비스 등이 유기적인 선순환을 이뤄야 노인의 성 문화가 한 단계 올라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동시에 노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진행돼야 한다. 프랑스 저명 심리학자이자 심리치유사인 마리 드 에느젤은 저서 [두 번째 서른 살]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노인들의 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간단히 말해 일종의 학대 행위다.” 이호선 교수는 “언론을 비롯해 우리 사회는 노인의 성을 ‘박카스 아줌마’ ‘죽어도 좋아’와 같이 하나의 이슈로만 다뤘다”며 “고령 인구가 늘어날수록 사회가 노인의 성을 교육의 주제로 접근해 열린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듣자. “파트너와 서로 어루만지고 손 내밀고 포옹하고 귀를 기울이고 속삭이고 얘기를 주고받는 모든 행위가 성”이라며 “노인의 성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중·장년의 성 역시 불행할 확률이 높다. 성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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