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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018 연속기획] 安全 대한민국(6) 부산시 

‘셉테드 제일도시’ 체감 안전에 주민 63%가 만족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2013~2017년 시민 참여형 범죄예방 사업에 28억원 예산 투입…범죄 발생 우려 지역에 맞춤형 사업 시행, 주민 호응과 만족도 높아져

▎8년 전 지독한 악몽을 꿨던 부산 덕포동이 새로운 동네로 탈바꿈했다. 벽화를 감상하며 골목길을 지나가고 있는 마을 주민들. / 사진:송봉근
#1. 2010년 부산에서는 잔혹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엽기사건’이 일어났다. 재개발 지역인 사상구 덕포동에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김길태 사건’이었다. 김길태는 집안에 있던 여중생을 납치,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이어 시신을 물탱크에 유기(遺棄)하는 잔혹한 범죄를 서슴지 않았다.

악몽보다 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지 8년. ‘엽기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곳에 큰 변화가 일었다. 골목길에 밝고 명랑한, 동화 같은 벽화가 그려졌다. 음습하고 칙칙한 분위기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골목길 중간중간에 안전비상벨도 설치됐다. 위험을 느끼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버튼 하나로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비상벨은 눈에 잘 띄고,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첨단 CCTV도 설치했고,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도 조도(照度)가 높은 할로겐등으로 바꿨다.


▎안심 지도를 설치하기 전(왼쪽 사진)과 설치 후 부산 남향동의 주택가. / 사진:부산시
#2. 영도구 청학1동 해돋이마을은 부산 내 대표적인 낙후 지역으로 무허가 주택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 반사경·안전 비상벨 등 생활방범 시스템이 도입됐다. 또 건물 외관 개선을 통해 ‘자연적 감시’가 가능한 마을로 변모했다. 주민들의 체감안전도가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 제1의 항구도시 부산이 셉테드에 앞장서고 있다.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란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돼 영국·호주·일본 등으로 확산된 범죄예방 환경설계다. 범죄가 발붙이지 못할 환경을 미리 조성하자는 것이 셉테드의 핵심이다. 벽화 그리기, 가로등 정비, CCTV 설치 등 일상생활에서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산 행복마을도 셉테드 사업 실시 이후 살인·강도·절도·강간·폭력 등 강력범죄는 67.3% 감소하고, 체감안전도는 5.2% 향상됐다. 이 지역은 2010년 ‘김길태 사건’ 등 강력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컸으나 부산시·경찰·소방서가 손잡고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주민 자원봉사를 활용한 독거노인 지원 등을 통해 상호 유대감을 증대시켰다. 5대 범죄는 42.4% 줄어든 반면 주민 체감안전도는 5.6% 높아졌다.

부산시 관계자는 “경찰·검찰·전문가가 포함된 유관기관 간 협업체계가 마련되고, 자치구·군별 ‘범죄예방 도시 디자인 조례’ 제정 등 제도 정비도 이뤄졌다”며 “사업 대상지 선정, 디자인 설계, 주민 설문조사 등 사업 수행 단계별로 관할 자치구를 참여시킨 만큼 셉테드 사업에 더욱 탄력이 붙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범죄는 사전에 차단하고 감소시킨다


부산시가 셉테드 사업에 팔을 걷고 나서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역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고 감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산시는 ‘안전도시 부산’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총 38개 소에 33억 9000여 만원(부산시 19개 소 28억2000만원, 부산지방경찰청 19개 소 5억7000만원)을 투입, 셉테드 사업을 추진했다.

부산시는 셉테드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2012년 8월 ‘연구·워킹그룹’ 운영을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셉테드 관련 포럼을 개최하는 등 효과적인 범죄예방 환경설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2013년 6월에는 부산시교육청·부산지방검찰청·부산지방경찰청과 함께 ‘안전한 부산 만들기’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으며, 7월에는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10월에는 ‘부산광역시 범죄예방 도시 디자인 조례’(2014년 1월 시행) 제정을 통해 셉테드 사업의 기반을 구축했다.

부산시는 2013년에는 범죄에 취약한 4개 지역을 선정해 대상 지역 내 범죄 유발 환경, 주민들의 주거 환경, 범죄 유형별 불안도 등 지역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에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셉테드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실시할 수 있었다.


▎1. 안심펜스 개선과 함께 주민 쉼터가 조성된 부산 남향동. / 2. 안심계단 도색을 마친 부산 연산동 주택가. / 3. 부산 우동에 설치된 안심벨. 위기에 처한 주민은 누구나 벨을 통해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부산시의 셉테드 사업 대상 지역과 시행방법은 공정하고 엄정한 절차를 거쳐 결정된다. 부산시는 구·군 사업 대상지 공모를 실시한 뒤 대상 지역을 최종 선정한다. 이어 부산시 도시재생센터와 위·수탁 협약을 맺은 뒤 사업을 시행한다. 셉테드 사업의 주요 시설물로는 반사경, 안심벨, 마을 안심 지도, 안심키오스크(kiosk), 공·폐가 가림막, 우편함, CCTV, LED 보안등, 도로 안전라인, 벽화 조성, 순찰차 비상벨, 레이저 방범등, 안심카페 조성 등이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2013년 셉테드 시범사업에 대한 주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민의 63%는 사업에 만족했다”며 “또 58.5%는 사업 시행 이후 두려움이 감소했다고 응답하는 등 셉테드 사업에 대한 주민의 인식은 전반적으로 양호했다”고 밝혔다.

다른 지자체들의 롤모델로 각광


▎같은 듯 다른 부산 신평 2동 골목길 풍경. 위쪽 사진은 방치된 공·폐가이고, 오른쪽 사진은 출입 차단시설 설치 후의 모습이다. / 사진:부산시
부산시는 셉테드 시범사업의 미비점을 보완한 데 이어 주민공동체와 연계함으로써 범죄자의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신감을 얻은 부산시는 주민들에게 범죄로부터 안심감을 심어줄 수 있는 시민참여형 셉테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2014년 이후 실시된 셉테드 사업부터는 설계·시공 과정에 주민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공공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한 것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그런 노력들 덕분에 시민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사업에 접목시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범죄심리학·아동·청소년 전문가, 마을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부산지방경찰청과의 협업을 통해 시 전역 여성 범죄 발생 우려지역에 비상벨을 설치하는 등 ‘지역맞춤형 셉테드 사업’도 시행했다. 그 결과 부산시는 ‘예방행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부산시의 셉테드 사업 추진 주요 성과로는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 국토교통부장관상 수상(2014년 9월) ▷경찰청 주관 협력치안 우수 지자체 선정(2015년 9월) ▷제1회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 우수 지자체 선정(2016년 12월) ▷ 타 지자체(기관)에 부산형 셉테드 사업 전파(경남도청, 울산광역시청, 서울 동작구청 등 다수 자자체 방문 문의)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올해 3월에는 셉테드 행복마을 사업 시행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조사를 위해 부산지방경찰청, 구·군, 부산시도시 재생지원센터와 함께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유지보수가 시급한 지역에 대해서는 우선 순위별로 2018년 추경예산을 확보하는 한편 시설물 대책을 수립하기도 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201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셉테드 시범사업의 성과에 힘입어 범죄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시민이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는 ‘안전 도시 부산’ 조성의 기반을 마련했다”며 “부산지방경찰청과 긴밀한 협업을 통해 지역별 특성에 맞는 셉테드 사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필요 자료 등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업 대상 지역 내 방범시설 등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지역 내 112 신고, 최근 범죄 발생 경향·유형 등 여러 특성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 치안 실현에도 앞장서고 있다”며 “올해도 부산 지역 내 4개소에 4억5000만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설계·설치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셉테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취약계층 ‘슬레이트 지붕개량’도 추진


▎업무 협약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전경욱 부산도시재생지원센터 원장, 모옥희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나눔기획실장, 박종홍 주택도시보증공사 금융사업본부장, 김형찬 부산시 창조도시국장(왼쪽부터). / 사진:부산시
부산시는 행복마을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지붕개량 및 태양광 설치 지원을 위한 ‘2018년 슬레이트 지붕개량 및 태양광 설치 지원 업무 협약(MOU)’을 7월 10일 체결했다. 이 사업 역시 ‘안전도시 부산’ 만들기의 일환이다.

구체적인 협약 내용은 행복마을 등 저소득 사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노후 슬레이트 지붕 철거 및 교체, 행복마을 내 행복센터 대상 태양광 설치 지원 등이다.

업무 협약에 따라 ▷부산시는 대상자 선정 및 집수리를 위한 행정 지원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지붕개량 및 태양광 설치를 위한 재정 지원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예산 집행에 따른 행정 지원 및 결산 보고 등 총괄 지원 ▷도시재생지원센터는 공사 발주 및 민원 사항 관리 등 시공 지원을 담당하게 된다.

올해로 5년째를 맞는 이 사업은 2014년 시범사업으로 11가구에 대한 지붕개량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17가구의 지붕개량 및 16가구의 태양광 설치를 완료했다. 이번 업무 협약에 따라 취약계층 60여 가구에 대한 지붕개량 및 행복센터 10곳에 대한 태양광 설치를 지원할 계획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붕개량을 통해 석면으로 인한 유해물질의 위험으로부터 많은 시민이 도움받을 수 있도록 행정 지원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며 “이러한 사회공헌사업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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