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9)] 도(道): 인간이 걸어야 할 길 

만물의 이치 따르며 자연과 조화 이뤄야 

하영삼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사람들에게 길은 소통·교류·융합·발전의 상징으로 여겨져… 도가에서는 무위자연, 유가에서는 널리 사랑하는 것이 ‘도’

▎중국 삼국시대 유비와 제갈량이 넘나들었던 험준한 관문인 쓰촨성 검문각. 여기에서 당 수도가 있던 장안으로 이어지는 길이 ‘촉도’다. 절벽에 구멍을 내 나무를 박은 뒤 그 위에 길을 낸 잔도(棧道)가 곳곳에 남아 있다.
1. “촉(蜀)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 촉도난(蜀道難)


▎성도(成都)의 금사(金沙) 유적박물관 전경과 황금가면(왼쪽 사진). 광한(廣漢)의 삼성퇴(三星堆) 박물관의 청동가면. / 사진:하영삼
“아아, 험하고도 높아라, 촉으로 가는 길이여!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렵구나!(噫籲嚱, 危乎高哉, 蜀道之難, 難於上青天!) 당나라 때의 대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촉도난(蜀道難)’의 시작 구절이다.

이 시가 읊고자 했던 상징은 여러 가지라 하지만 ‘촉(蜀)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을 비유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촉(蜀)은 지금의 쓰촨(四川)성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서부에 위치한 쓰촨성은 동서남북이 모두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천혜의 요소처럼 된 커다란 분지다. 이 때문에 중원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문명을 만들어 왔다. 아직까지 그 실상과 비밀이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잘 알려진 삼성퇴(三星堆) 문명이나 최근 성도(成都)에서 발견된 금사(金沙)유적 문명 등은 언뜻 보기만 해도 그간의 중국 문화와는 다른, 매우 낯설고 이질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영원한 고립은 없는 법, 사람들은 그 험난한 산맥도 넘으며 협곡을 따라 길을 만들었다. 중원에서 함곡관(函谷關)을 지나야 이르는 섬서성, 그곳의 수도 서안(西安)에서 사천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촉도(蜀道)’라 불렀는데 이백의 표현처럼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험한 곳’으로 이름났다.

험준한 산맥과 수백m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 사람 하나 겨우 지날 너비의 잔도(棧道)로 이어진 길, 그것에 이제는 기찻길이 났고, 15시간이나 걸리던 기찻길도 지금은 고속철로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됐다. 이렇듯 길은 또 다른 길을 만들었고, 옛날의 길은 아련한 흔적으로 기억으로만 남았다.

중국의 본토 중원과 사천 지역을 연결하는 길이 ‘촉도’였다면 사천성에는 그 옛날, 저 멀리 지구의 서쪽 끝에 자리한 문명 중심지 로마까지 연결되는 ‘실크로드’도 있었다. 소위 ‘서남 실크로드’가 그것인데 광한(廣漢)에서 남쪽으로 성도를 지나 운남성의 곤명(昆明)과 대리(大理)·미얀마·인도·아라비아를 거쳐 로마로 이어지는 중국 최초의 무역로였다. 한나라 때 본격적으로 개척된, 서안에서 천산산맥을 넘어 파미르 고원을 거치고 중앙아시아를 지나 로마까지 이어지는 ‘서북 실크로드’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덜 알려진 길이다.

여하튼 기원전 시기부터 인간은 동서 문명의 중심, 중국과 로마 사이를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 걷고 또 걸으며 6000~7000㎞에 이르는 그 길고 험난한 길을 이어 왔다. 이처럼 인간의 상상을 넘을 정도로, 아무리 험하고 멀리 떨어져도 인간이 만들지 못하는 길은 없었고 가지 못하는 곳도 없었다. ‘길’은 소통의 상징이다. 가지 못하는 곳을 가게 만들고,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서로 다른 문명을 서로 연결해 줬다. ‘길’은 교류와 융합과 발전의 상징이다.


▎표1
2. ‘길’과 도(道)의 차이

‘길’을 표현하는 한자는 여럿 있다. 포괄적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로 ‘길’의 대표 글자이면서 철학적 의미를 띠는 도(道)를 비롯해 로(路)도 있고, 도(途)도 있으며, 행(行)도 있고, 가(街)도 있고, 항(巷=衖)도 있다.

도(道)는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사람(首)이 가야(辵=辶) 할 길’을 뜻하고, 로(路)는 사람의 발(足·족)이 이르는(各, 각) 곳이라는 의미를 담았고, 도(途)는 가다가(辵·착)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막사(舍, 사)가 설치된 길을 뜻하는데 달리 도(塗)나 도(涂)로 쓰기도 한다.

행(行)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를 뜻했는데 지금은 ‘가다’는 동사적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시경]에서 말한 미행(微行)과 주행(周行)은 각각 ‘작은 길(小路)’과 ‘주나라 사람들이 만든 길’을 뜻했다. 또 가(街)는 흙으로 만든 해시계(圭, 규)가 설치됐던 사거리(行)를 의미하며, 항(巷)은 사람(巳)들이 함께(共) 걸어 다니고 공유할 수 있는 ‘거리’나 ‘골목’을 말한다.

항(巷)은 원래 '거리 항'으로 써 마을(邑) 사람들이 함께 걸어 다니고 공유하는(共) ‘골목길’을 말했는데 이후 읍(邑)이 사(巳)로 변해 지금의 자형이 됐다. 달리 항(衖)으로도 쓰기도 하고 [설문해자]에서는 항(衖)으로도 쓰기도 하고 [설문해자]에서는 '거리 항'과 공(共)으로 구성된 항으로 쓰기도 했는데, 의미는 모두 같다.

이들 글자 중 도(道)와 로(路)와 도(途)는 마차가 마을 밖으로 난 길을 말하며, 행(行)과 가(街)와 항(巷=衖)은 마을 안의 길을 말한다. 이들 외에도 특정 의미를 구체적으로 구분해 나타내는 글자도 있는데 경(徑)은 ‘지름길’을, 경(逕)은 ‘좁은 길’을, 철(畷)은 ‘밭두둑 길’을, 등(墱)은 ‘비탈길’을 말한다. 마차가 실용화되고 나서는 궤(軌)라는 글자도 나왔는데, ‘수레바퀴 길’을 말한다.

이 많은 글자 중, 도(道)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도(道)가 ‘길’의 대표 글자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의 의미를 넘어서 동물이나 자동차 등이 지나다니는 ‘길’의 보편 명사이자 나아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요,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道理)이자 진리이기 때문이다.

도(道)는 고문자에서부터 글자 그대로 수(首)와 착(辵)으로 구성됐는데 수(首)는 ‘머리’를 뜻하고, 착(辵)은 ‘감’을 뜻한다. 착(辵)은 척(彳: 조금 걷다)과 지(止: 발)가 결합된 형태인데 척(彳)은 사거리를 거린 행(行)의 줄임형이다. 그래서 착(辵)이 들어가면 모두 ‘가다’는 뜻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수(首)는 무엇을 그렸을까? 오늘날 214부수의 하나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한자이지만 이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외로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 최초의 어원사전으로 서기 100년에 완성된 [설문해자]에서는 진(秦)나라 때의 소전체에 근거해 윗부분은 머리칼을 아랫부분은 얼굴을 그려 사람의 ‘머리’라고 했다.

상나라 때의 문자인 갑골문에서도 표2(1) 등과 같이 써 비슷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갑골문의 수(首)는 사람의 머리라기보다는 오히려 동물의 머리를 닮았다. 특히 주나라 때의 금문을 보면 더 그렇다. 즉 표2(2), (3) 등은 위가 머리칼이라기보다는 뿔이고, 아랫부분은 눈이나 머리를 그렸다. 그래서 [한자왕국]의 저자 세실리아 링퀴비스트는 [설문해자]의 해설과는 달리 수(首)가 ‘사슴의 머리’를 그렸다고 주장했다. 상당히 일리 있는 설명이다.


▎상형문자 진
수(首)가 사슴의 머리를 그렸다면, 도(道)는 사슴이 달리며 만들어낸 ‘길’을 뜻한다. 원시 수렵 시절 사슴들이 황토 평원에서 떼지어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며 만들어낸 ‘길’을 상상해 보라. 바로 그 ‘길’이 ‘길’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사슴이 여럿 떼지어 달리면 ‘멀리 달려가다’는 뜻의 추(麤)가 되고, 사슴이 무리 지어 달리며 일으키는 ‘먼지바람’이 진(塵)이다. 진(塵)은 원래 추(麤)와 토(土)의 결합으로 이뤄진 진(우측 이미지 참조.)으로 사슴이 떼지어(麤) 달리면서 일으키는 흙(土) ‘먼지’를 형상화했다.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진(尘)으로 변해 ‘작은 흙먼지’ 임을 형상했다. 여하튼 사슴이 달려 만들어낸 길이 사람이 다니는 길이 됐고, 또 마차와 수레가 다니는 큰 길이 됐으며, 그 길을 따라 자동차와 기차가 다니는 큰 길이 만들어졌다.

[시경]에 등장하는 ‘주도(周道)’는 군대의 이동이나 물자의 수송을 위해 만든 주(周)나라 때의 국도(國道)로 바닥에는 널따란 돌을 깔았고, 수레가 비켜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직선으로 된 화살처럼 곧바른 길이었다. 이후 도(道)는 우리도 이를 오늘날까지 원용하고 있는 것처럼 행정단위로도 쓰이게 됐는데, 이전의 주(州)에 상당하는 개념으로 당나라 때 만들어졌다. 이러한 길을 따라 자동차 길이 만들어지고, 기찻길이 건설돼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나 도(道)를 구성하는 핵심 글자 수(首)가 형상했다고 하는 ‘사슴’은 중국에서 특히 다양한 문화적 상징을 가진다.


▎표2
3. 수(首)와 ‘사슴’의 상징


▎신강(新疆)에서 발견된 당나라 때의 여와복희도(伏羲女媧圖). 둘이 교차해 하나됐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중국의 고대 신화를 모아 놓은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책에서도 중국의 제도나 생활 의식을 집대성한 [예기(禮記)]와 [의례(儀禮)]에서도 ‘사슴’은 자주 등장한다. 이를 반영하듯 상나라 때의 청동기 문양에서도 사슴은 자주 보이며, 록(鹿)으로 구성된 글자들에도 이런 흔적이 남아 있다.

예컨대 [산해경·남산경(南山經)]에는 신비한 동물로 ‘녹촉(鹿蜀)’이 등장하는데 “말의 모습에 호랑이 무늬를 가졌으며, 머리를 희고 꼬리는 붉으며, 사람이 노래하는 듯한 울음소리를 가진 사슴으로 그 가죽을 몸에 지니면 자손이 번성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의례·사관례(士冠禮)]에 보면 관례에 오는 손님께 여피(儷皮)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정현(鄭玄)의 주석을 빌리면 여피(儷皮)는 사슴 가죽 두 장(兩鹿皮)을 말한다. [의례·사혼례(士昏禮)]에도 납징(納徵) 때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게 여피(儷皮)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의례·빙례(聘禮)]에서는 사신이 상대국을 방문했을 때 상대국에게 여피(儷皮)를 선물한다고 했다. 여기서 볼 수 있듯 ‘사슴 가죽’은 성인 되는 의식, 결혼을 하는 의식, 외교 의식에서 모두 상징적 존재로 등장한다. 우리말에도 남아 있는 항려(伉儷)는 ‘남편과 아내로 이뤄진 짝’ 즉 부부(夫婦)를 뜻하는 데 ‘사슴 가죽으로 이룬 짝’이라는 의미가 담긴 단어이다.

왜 ‘사슴 가죽’이 이런 중요한 의식의 선물로, 특히 ‘결혼’과 혼수의 상징이 됐을까? 그것은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당나라 때 공영달(孔穎達)이 풀이한 [예기정의(禮記正義)]를 보면, “복희씨 때부터 장가를 들 때는 사슴 가죽을 예물로 삼는다(伏犧制嫁娶, 以儷皮爲禮)”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이는 최근 인류학적 도움을 받고서야 해석이 이뤄지게 됐다.

허진웅(許進雄, 1941~)의 [중국고대사회]에 의하면 대만의 소수민족인 고산족에게는 최근까지도 결혼식에 중간에 구멍이 뚫린 사슴 가죽을 선물하는 습관이 보존됐다고 하며, 이는 중국의 인류 탄생의 신화에서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인류 탄생 신화의 주인공인 여와(女媧)와 복희(伏羲)는 그 옛날 대홍수 시절, 그들 둘만이 커다란 바가지를 배 삼아 이 세상에서 살아남았다. 후손을 만들어야 했지만 그들의 관계가 오누이였던지라, 쉽게 성교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사슴가죽의 중간에 구멍을 내어 그것을 사이에 두고 성교해 중국의 후손이 이어지게 됐다. 그 후로 ‘사슴가죽’이 교접의 상징으로, 다시 결혼 선물의 대표가 됐으며, 자손의 번성은 물론 상대를 존중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흔적이 [산해경] [의례] [예기]는 물론 대만 소수민족의 결혼 풍습에 반영돼 고스란히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이러한 흔적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부부를 뜻하는 항려(伉儷)라는 단어도 그렇지만, 우리가 자주 쓰는 경(慶)자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경(慶)이 왜 경하(慶賀: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하다)라는 뜻을 가질까? 글자를 자세히 살피면 경(慶)에도 ‘사슴’을 뜻하는 록(鹿)자가 들었다.


▎이미지1
경(慶)은 금문에서 우측 이미지1과 같이 써 사슴을 뜻하는 록(鹿)과 ‘무늬’를 뜻하는 문(文)이나 ‘마음’을 뜻하는 심(心)으로 구성돼 ‘아름다운 무늬(文) 든 사슴(鹿) 가죽’을 말했다. 이후 사슴(鹿)이 머리와 몸통부분(록)과 뒷다리(夂, 치)로 분리되고 문(文) 대신 심(心: 심장, 핵심, 마음)이 선택돼 지금의 자형이 됐다.

이는 여와와 복희의 인류창조 신화와 그로부터 만들어진 결혼의 상징으로서의 아름다운 무늬가 든 ‘사슴 가죽’의 전통을 반영했고, 결혼이나 축하 사절단의 선물로서의 ‘사슴 가죽’으로부터 경사(慶事)는 물론 경하(慶賀)하다, 慶祝(경축)하다 등 뜻이 만들어졌다. 이후 무늬를 뜻하는 문(文)보다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 선택됐던 것은 그런 축하가 마음(心)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슴은 생명과 관련된 제의적 상징이 많이 들어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사슴은 새 생명을 잉태함은 물론 ‘죽음을 삶으로 되살리고, 사람들의 생명력을 충만하게 하며, 심지어 불로장생도 가능하게 하는’ 동물이라 믿었다. 이 때문에 옛날 전쟁에서는 전쟁의 승리를 점쳐주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약재로 쓰이는 사슴의 뿔은 매년 봄이면 새로 자라나는 특징 때문에 생명의 주기적 ‘순환’의 상징이었다. 다른 여러 문명에서도 사슴이 ‘신성과 부’의 상징이며, ‘생명의 나무’로 묘사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4. ‘길’에서 도리(道理)로, 진리(眞理)로: 도(道)의 진화

이렇게 해서 도(道)는 어원적으로 사슴이 달려가며 낸 ‘길’에서 사슴의 머리(首)가 상징하는 새 생명의 탄생과 그것이 갖는 순환과 생명의 운행(辵, 착)이라는 의미로 확장하며 철학적인 의미를 더해 갔다. 특히 금문에서 도(道)는 수(首)와 행(行: 가다)과 지(止: 발)로 구성돼 사슴의 이동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했지만, 이후 행(行)과 지(止)가 합쳐져 착(辵)으로 줄어 지금의 도(道)가 됐다.

사슴은 뿔이 더욱 상징적인데(그래서 ‘아름답다’는 뜻의 려(麗)도 사슴의 뿔을 그렸다), 수사슴의 뿔은 매년 한 차례 벗고 매년 새 것이 자라난다. 대자연이 새로운 생명을 시작할 무렵이면 황량한 대지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듯 매년 사슴의 머리에서는 새 뿔이 돋아난다. 사람들은 여기서 생명의 순환을 봤고, 대자연의 이치를 봤으며, 이것이 어길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자 섭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로부터 도(道)는 철학적 의미까지 더해가게 돼 그러한 자연의 순환적 운행을 뜻하게 됐고, 그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생각했던 천지만물의 이치이자 사물의 보편적 규칙이자 진리였으며, 바로 도(道)였다. 아마도 이때쯤 해서 도(道)를 구성하는 수(首)도 ‘사람의 머리’로 바뀌었을 것이고, 의미 중심도 ‘사람’으로 옮겨가게 됐을 것이다.

그리하여 도(道)는 ‘사람’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자 따르고 지켜야 할 ‘도(道)’가 됐다. 여기에서 파생된 導(이끌 도)는 도(道)에 손을 뜻하는 촌(寸)이 더해진 글자로, 그러한 길(道)을 가도록 사람들을 잡아 이끄는(寸) 모습을 형상화했다. 사람들이 다른 길을 가지 않도록, 도를 지키도록 이끈다는 의미를 담게 됐다.

5. 도가와 유가의 도(道)


▎1. 당나라 때의 시인이자 대유학자 한유(韓愈, 768~824). / 2. 유가에서는 널리 사랑하는 것을 도라 했다.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의 초상.
도(道)라고 하면 제일 먼저 [노자]가 떠오를 것이다. 제1장 첫 구절부터 “도를 도라고 설명할 수 있으면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는 엄청난 선언부터 [노자] 전체가 도(道)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는 그의 선언에도 [노자]는 도(道)가 무엇인지를 열심히 설명한 책이다. 역설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이 때문에 [노자]를 달리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부른다. 그에게 도(道)나 덕(德)은 다른 개념이 아닌 하나였다. 그는 도(道)가 덕(德)이고 덕(德)이 도(道)이다. 형이상학적인 추상적 개념이 도(道)라면 형이하학적인 구체적 개념을 덕(德)이라 봤다.

노자의 도(道)가 무엇인지, 그의 말대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말은 매우 적절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위(無爲)와 자연(自然)은 사실 같은 말이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하게 내버려두다’는 뜻이고, 무위(無爲)의 위(爲: 하다, 시키다)는 위(僞: 억지로 하다)와 같아 ‘억지로 어떻게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위(爲)는 원래 로서 손(爪, 조)으로 코끼리(象, 상)를 부려 일을 시키는 모습을 그렸기에 원래부터 ‘억지로 시키다’는 뜻이 든 글자다. 이후 인(人)은 더한 위(僞)를 만들었는데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억지’이자 ‘거짓’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중국인들의 인식이 돋보이는 글자다.

무위자연을 주장한 노자,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억지로 하지 말고 자연의 순리대로 그대로 둘 것이며, 그러한 대자연과 우주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고, 그것이 그가 말한 도(道)였을 것이다.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대자연의 상징인 ‘물’과 비교해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공을 다투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자리하기 때문에 도(道)에 가깝다. 자리할 때는 장소를 잘 고르고, 마음을 쓸 때는 넓고, 남과 함께 할 때는 인자하고, 말을 할 때는 믿음이 있고, 바르게 할 때는 잘 다스리고, 일을 할 때는 능숙하게 하고, 움직일 때는 시기를 잘 선택한다. 오직 다투지 아니하기 때문에 걱정거리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유가에서의 도(道)는 조금 달랐다. 당나라 때의 유학자 한유(韓愈, 768~824)는 [원도(原道)]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널리 사랑하는 것(博愛)을 인(仁)이라 하고, 그것을 적실(的實)하게 실현시키는 것을 의(義)라고 한다. 인(仁)과 의(義)의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을 도(道)라고 하며, 자신이 완벽한 수양을 갖추어 외물의 힘에 기대지 않게 하는 것을 덕(德)이라 한다.

한유는 노자가 우주자연의 질서로부터 우주와 사회와 인간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도를 논의했던 것과 달리, 인간 사회의 질서에 관한 이치를 말해 이상적 사회의 구축에 치중했다.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생 인(仁)·의(義)·예(禮)·덕(德)의 구현에 온 힘을 쏟았다. 또 군자가 지켜야 할 ‘4가지 도(四道)’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공(恭: 삼가다), 일에 대해서는 경(敬: 경건하다), 백성에 대해서는 혜(惠: 은혜롭다), 남을 부림에 대해서는 의(義: 정의롭다)를 언급한 바 있다.

6.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道)

도가는 무위자연, 즉 우주자연의 원리를 따라 인간이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 그것을 도(道)라고 했고, 유가는 널리 사랑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도(道)라고 했다. 그렇다면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한국을 사는 우리에게 도(道)는 무엇이고, 또 걸어야 할 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금의 인류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 그것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통제하고 제어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하는 길, 그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요, 그것이 오늘날의 도(道)일 것이다. 인류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기후환경의 변화가 하나다. 올여름 무척이나 뜨거운 날씨처럼 지구 전체가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의 여러 기록을 차례대로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제 기상이변이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 된 시대다. 예외가 반복되면 예외가 일상이 되는 법이다. 예외가 일상이 된 시절에 도(道)를 말하거나 도를 실행하기는 어렵다. 도는 극단적 더위나 극단적 추위 같은 자연이 가져다 주는 어려움 앞에서 모두가 힘드니 우리 다 같이 ‘신음’하고, 다 같이 힘들고, 다 같이 고통을 겪으라는 고통의 평등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 앞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부자를 가난하게 만들어서 중산층을 빈곤층으로 끌러내려 가난과 고통의 평등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노자]의 ‘물’처럼 도(道)는 고통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물의 거센 흐름 속에서도 모든 생물이 그 속에서 움트고 자라나게 하는데 있다. 우리가 찾는 도가 고통의 평등한 분배에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더 있다. 인공지능(AI)의 끝없는 발전이다. 알파고(AlphaGo)를 통해 딥 러닝(Deep Learning)이 기술적으로 해결됐음이 확인됐고, 그 후 불과 2~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인공지능은 인류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발전했던 전체 시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깊은 인공지능’의 출현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렇게 간다면 인류의 운명이 인공지능에게 맡겨질 가능성도 크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머리로 변하기 이전의 사슴머리로 구성된 도(道)의 원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만 혹은 우리 집단에게만 유용한 것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 그것은 도(道)가 아니다. 도(道)가 도(道)가 되려면 인간과 자연에 그리고 인간과 지구에 우리 집단만이 아닌 다른 집단에도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지구의 기후환경을 지키든 인공지능의 지배에 들지 않게 하든, 모든 근원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욕심의 절제가 관건이자 핵심이다. 우주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만물의 이치를 따르며 자연과 화해하고 조화하는 것,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아니 지금 더욱 절실히 우리가 가야 할 길이요 도(道)임에 분명하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고,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images/sph164x220.jpg
201809호 (2018.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