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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의 선물의 文化史(20) 마지막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 선물 

받는 이는 물론, 주는 이까지 흐뭇하게 해주는 마력… 즐거운 마음으로 주고받아야 조화로운 사회 유지돼 

김풍기 강원대 사범대학 교수

▎선물은 받는 이는 물론, 주는 이의 마음까지도 흐뭇하게 한다. 단, 사심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주고받아야 우리 사회가 조화로운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다.
누구 집에 초대를 받아서 방문할 때 여러 고민 중의 하나가 선물로 무엇을 들고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집단마다 그 나름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똑같은 물건이라도 어떤 곳에서는 좋은 선물이지만 어떤 곳에서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꽃을 선물로 가져가야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음식을 가져가야 한다.

우리나라 시골에서는 198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잔치를 치르거나 제사를 지낼 때 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뭔가를 들고 가야만 했다. 그래서 집안이나 마을에 행사가 있으면 어른들은 행사 당일 직전에 열리는 장날 자신이 생각하는 선물을 준비하곤 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선물(膳物)’은 늘 설렘을 동반한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즐거운 설렘으로 약간은 들뜨게 한다. 선물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선물로 인해 받는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흐뭇하게 부풀었을 것이고, 받는 사람은 선물을 뜯으면서 어떤 것이 들어있을지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렐 것이다.

이래저래 선물은 우리의 일상에서 삶의 활력을 주는 여러 요인 중의 하나가 됐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주는 선물도 있지만, 아무 계기 없이 ‘그냥’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전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계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선물을 주는 행위 자체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만큼 선물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큰 재미를 준다.

선물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증여된다. 물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선물로 주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그조차도 한 개인에게 증여하는 형식을 가진다. 선물을 증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친밀감과 호의를 그 물건에 담아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을 받는 개인이 존재해야 한다.

‘선물’이라는 단어의 활용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소비하는 모든 물건들은 기본적으로 선물에 속한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내가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이들은 선물의 성격을 가지기 마련이다. 물론 내 힘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세상에서 그런 물건이 얼마나 되겠는가.

경제적 차원 넘어 사회적 상징으로


▎여고 3년생들이 졸업앨범용 사진촬영에 앞서 선생님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심지어 물건을 만드는 공정이 완벽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 물건들을 자본으로 구입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과연 선물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주 미묘하면서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자본으로 누군가의 노력을 사들이고, 그것을 통해서 내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면 대부분의 물건은 재화라 할 수 있다. 그것도 대가가 필요하지 않은 자유재가 아니라 대가를 필요로 하는 경제재의 영역에 속하고, 경제재에 속하는 재화를 선물로 보는 것은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선물의 범주를 확정하고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화폐경제가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 이전에는 문제가 조금 다르다. 많은 경우 일상생활에서 소용되는 물건은 물물교환에 의해 이뤄지거나 직접적인 제작으로 공급됐고, 이러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증여의 형태가 아니면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물을 통해 경제적 삶을 구성해 나가는 것은 여러 사례를 통해서 논의할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선물이 오가는 정황을 가장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기록은 일기다. 자신의 일상을 자세히 써놓은 일기는 어떤 물건이 누구에게서 어떤 연유로 왔는지 자세한 정보들이 들어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방대한 일기를 남긴 사람들의 선물 증여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근대 이전 지식인들에게 선물이 어떻게 경제적 역할을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민(四民)을 가지고 조선시대를 말하곤 한다. 그중에서 선비 계층은 직접적인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평생 공부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제적인 것은 주로 유산을 받거나 벼슬을 통해서 해결한다.

양반 집안에서 과거시험에 급제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것은 가문 전체에 위험을 끼치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집안이나 과거시험을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물론 정치 세계의 어지러움 때문에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평생 학문 연찬과 후학 양성에 종사하는 사람도 생기기는 했다. 그렇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한 집안의 경제를 해결하기란 무망(無望)한 일이다.

그러나 벼슬에 나아가서 녹봉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집안을 꾸려나가기에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고을살이를 하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관료들의 공식적인 수입은 녹봉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매월 지급받는 녹(祿), 매 계절 초에 지급받는 봉(俸)을 기본으로 해 지방 관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급되는 토지에서 나오는 름(廩)이 일부 포함돼 관료의 경제를 구성했다. ‘름’은 관청의 지출에 충당하는 것이었지만 해당 관청의 관료들이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문을 중심으로 많은 구성원이 있었기 때문에 녹봉만으로 가문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일상생활을 경영하면서 뜻하지 않게 용처가 생기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녹봉이 모든 부문을 메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럴 때 그 틈새를 메워주는 것이 바로 선물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기를 보면 그들의 생활 속에 선물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오갔는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쌀·조·수수 등과 같은 곡식은 물론이려니와 생선·조개·새우젓, 온갖 문구류·옷감·의복·바느질 도구, 술·음식·서책·시문(詩文)·종이·짚신·마구(馬具)·가축·꿩·참기름 등 우리 생활에서 소용되는 물건 중에 선물로 사용되지 않은 품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선물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증여됐다. 잔치를 벌이는 집에 갈 때는 잔치 음식을 중심으로 선물이 구성됐고, 친척집을 방문할 때는 거기에 맞는 품목이 선택됐다.

누구에게 증여되는 선물인가에 따라 선택되는 품목도 달랐다. 친척이라도 얼마나 촌수가 가까운지, 지인이라도 나보다 어른인지 아닌지가 고려됐고, 하인들에게도 거기에 걸맞은 선물이 증여되곤 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조극선(趙克善, 1595~1658)은 일기를 쓰면서 누구에게 증여받은 선물인가에 따라 글자를 다르게 써서 구분을 하기도 했다. 윗사람에게 받은 것은 ‘사(賜)’와 ‘급(給)’으로 기록하고,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받은 것은 ‘궤(饋)’ ‘유(遺)’ ‘이(貽)’ ‘치(致)’로, 아랫사람이 준 것은 ‘헌(獻)’ ‘진(進)’ ‘납(納)’으로 표기했다. 물건이나 증여 상황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신분이나 처지에 따라 다른 글자를 썼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선물의 증여가 계층과 신분을 넘어서 일상적인 일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받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기본 도리


▎백화점 진열대에서 과일 선물을 고르고 있는 소비자들.
선물을 받았으면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다. 호혜성(互惠性)이란 선물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호혜성이 없으면 상품이 되지만 호혜성이 동반하는 순간 그것은 선물이 된다. 호혜성이란 내가 받은 선물과 똑같은 물건으로 갚는다는 뜻이 아니다. 자본의 크기로 보면 차이가 나는 물건이라도 그 안에 담긴 정성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선물에서 강조되는 호혜성의 원리를 구성한다.

이별의 자리에서 떠나가는 사람이 금반지를 이별 선물로 줬을 때 남아 있는 사람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선물로 주는 경우에도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정성이 등가적이라고 생각한다면 호혜적 선물이 된다. 말하자면 호혜성이란 선물이 교환되는 순간 생성되는 당사자 간의 심리적 혹은 상징적 차원의 의미가 동시에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증여론]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0)다. 모스는 북아메리카 북서해안의 원주민들의 증여 문화를 연구하면서 포틀래치(potlatch)에 주목했다. 포틀래치는 개인의 일생에서 중요한 날, 예컨대 결혼·장례·성년식 등과 같은 날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음식과 선물을 나눠주는 것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런 자리에서 선물을 받은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과 선물을 나눠줘야 한다. 심지어 받은 것보다 더 많은 선물을 주는 것이 자랑스러운 행위로 인식된다. 선물 증여 행위가 사회 전반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유대감과 정체성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모스는 구성원들이 세 가지 의무를 가진다고 봤다. 주는 의무, 받는 의무 그리고 답례 의무가 그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의무가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집에 찾아오는 걸인들에게 최선을 다해 대접을 하곤 하셨다.

가난한 살림에 먹을 것이 부족했지만 남은 음식을 모아서 그들을 접대했다. 식구들이 먹어야 할 음식을 왜 걸인들에게 모두 주느냐고 툴툴거리기라도 하면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우리가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처지로 살아가지만 언젠가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이렇게 도와 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세월이 오래 흘러서야 할머니의 그 말씀을 이해하게 됐지만, 한동안 어린 내 생각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전승되는 선물의 전통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었으리라. 크게 보면 이런 행위 역시 포틀래치(potlatch)의 구조로 설명이 가능하다.

근대 이전 우리 선조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선물 품목과 상황을 살펴보면 포틀래치가 단순히 어느 지역의 인디언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품성의 발현이다. 물건을 독점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가.

선물이란 이름의 뇌물도… ‘김영란법’의 등장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여성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고 있다.
선물을 통해서 조선 지식인들은 부족한 일상을 채웠으며, 어려운 처지의 주변 사람들과 물건을 나눴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특히 조선의 선물 문화를 ‘선물경제(膳物經濟)’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그만큼 조선 사회에서 선물의 증여는 경제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근대 이전과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되면서 우리 시대에 선물은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것이 됐다. 오죽하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돼 선물의 범위와 규모를 정하기까지 하겠는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뇌물이 오갔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이다.

당장 이 법안 때문에 우리 사회의 청렴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뜻하지 않은 폐해도 속출했다. 그러나 청렴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높아졌고, 선물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뇌물 역시 구성원들의 눈초리를 이전보다 더 강하게 받게 됐다. 선물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뇌물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이로 인해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 우리 사회 역시 더욱 청렴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겐가 자신의 마음을 담아 물건을 증여하는 선물은 완전히 없어져야 할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구성원들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면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면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함께 구성원 개인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고마움이 전제돼 있다.

신뢰와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선물의 크기와 화폐 가치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의 무게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선물을 준 사람에게 답례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그 답례가 증여한 사람만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겐가 받은 기쁨은 전혀 다른 사람에게 향하면서 사회적 파급력을 강하게 가진다.

물건이 건강한 순환을 할 때 우리 사회의 경제 역시 건강하다. 건강한 순환에 기여하는 물건이야말로 선물의 본질이다. 근대 이전의 선물에 대한 기록을 읽노라면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선물로 꾸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선물이 다양한 계기로 증여되고 순환됐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일상 역시 엄청난 선물로 구성돼 있고 꾸려져 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수많은 선물이 우리를 거쳐서 흘러간다. 그러나 자본의 힘이 거대하면 할수록 선물의 영역 중에 넓은 부분이 점점 상품의 영역으로 포획돼 가고 있다. 그것은 동시에 선물을 통해 구성원들 사이에 형성됐던 인정과 유대감이 옅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구성에 기여하는 선물의 역할은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시키기 어렵다. 실제로 선물을 주고받은 경험이 있어야 선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선물을 줬을 때의 기쁨이 받았을 때의 기쁨보다 더 큰 경우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런 기쁨을 어떻게 객관적 지표와 논리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사심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받아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조화로운 공동체로 유지돼 갈 것이다. 그 안에서의 건강한 순환은 상당 부분 선물의 몫이다.

※ 김풍기 - 강원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책과 노니는 것을 인생 최대의 즐거움으로 삼는 고전문학자. 매년 전국 대학교수들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에 선정되는 등 현실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저서로 [옛 시에 매혹되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삼라만상을 열치다] 등이 있다.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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