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기름을 얻는 유료작물(油料作物) 들깨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혈중 콜레스테 줄이고 면역체계 강화… 독특한 향 있어 삼겹살을 싸먹고, 매운탕 비린내 없애는 데도 효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들깨는 가꾸기 수월한 편이고, 잔손질이 거의 가지 않는다.
우리 속담에 “들깨가 참깨 보고 짧다고 한다”란 말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흉은 모르고 남의 허물만 탓함을 이르는 말이다. 또 “참깨·들깨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까”라는 말은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한몫 끼어 하자고 불쑥 나설 때 쓰는 말이다.

들깨는 꿀풀과의 한해살이풀로 자소(紫蘇) 또는 일본자소라 한다. 인도나 중국 중남부 산악지대가 원산지로 여기는데 한국·중국·일본 등지에서 자생한다. 쐐기풀을 닮았고, 박하 비슷한 향이 나기에 들깨박하라고도 하며, 바질(basil) 냄새를 풍긴다.

들깨(wild sesame)는 많은 품종이 있지만 크게 보아 들깨(紫蘇), 소엽(蘇葉), 청소엽(靑蘇葉)으로 나눈다. 자소는 잎 앞면(윗면)은 연두색이고, 뒷면은 자줏빛이 돌며, 소엽은 전초(全草)가 짙은 자줏빛이 돌고, 청소엽은 잎이 초록색이다. 그리고 들깨는 한국·중국·일본·베트남 등지에서 요리 재료로 많이 쓰나 품종과 기후가 달라 맛매(풍미)가 각각 색다르다.

들깨는 말 그대로 인가 근처에 야생으로 잘 자라는 ‘들판에 나는 깨’가 아닌가. 줄기는 60~90㎝에 네모진 것이 곧게 서고, 긴 털이 많이 난다. 잎은 마주 나고, 식물(포기)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十’자 꼴로 잎이 엇갈려 배열한다. 또 잎은 난원형으로 길이 7~12㎝, 너비 5~8㎝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많다.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들깻잎 아랫면(밑)이 불그스레한 건 안토시아닌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도 그 녹물같이 불그름한 것이 철분(Fe) 때문일 것으로 알고, “깻잎에는 철분이 많다”고 믿어왔는데 아마도 사실이 아닌듯하다. 문헌 어디에도 깻잎에 특별히 철분이 많다고 설명한 것을 어느 구석에서도 보지 못했기에 말이다.

들깨는 특유한 냄새와 씁쓰레한 맛이 나는데, 잎사귀뿐만 아니라 기름을 목적으로 재배하는 유료작물(油料作物)이다. 들깨는 가꾸기 수월한 편이고, 잔손질이 거의 가지 않으며, 특별히 따로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된다. 너무 배게 심으면 약하게 웃자라므로 전후좌우 30㎝ 간격으로 좀 성글게 심어야 튼실하고 빵빵하게 자란다.

또 어린 모종을 옮긴 다음에는 강아지풀·바랭이·명아주·쇠비름·참비름 같은 잡초가 기승을 부리지만 어지간히 뿌리내림(착근)해 쑥쑥 자라면 잡초들이 웬만해서는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한다. 식물들끼리도 지지 않으려고 박이 터지도록 골육상쟁(싸움박질)을 한다는 말이다.

들깨는 6월에 씨 뿌려 여름 장마 무렵에 모판에서 뽑아 아주심기(정식, 定植)를 하는데 한 자리에 두세 개를 모아 심는다. 필자처럼 깻잎을 따먹겠다고 심는다면 때 이른 4월말경에 파종해 5월 중순에 모종옮겨심기(이식, 移植)를 해도 된다.

보통은 밭둑에 골을 내고 골골이 씨를 뿌리지만 그냥 씨앗을 마구 흩뿌리고 갈퀴로 쓱쓱 긁어 흙덮기(복토)를 해도 된다. 씨를 뿌린 다음에는 짚이나 마른풀로 덮어 물기를 보존해 줘 발아율을 높이고, 새들이 파먹는 것을 막는다. 또 줄기가 5㎝ 넘게 자라면 끝순 지르기를 해줘 새 줄기가 여럿 나오도록 한다. ‘농사는 과학이요 예술’이라 하더니만 여기도 새삼 농사 과학이 숨어있도다!

사실 깻잎 하나 따기도 힘에 부쳐 땀에 절고, 허리·다리를 골병 들게 한다. 안간힘을 다해 잎잎이 따서 하나하나 차곡차곡 포개어 한 아귀가 될라치면 굵은 실이나 강아지풀줄기로 허리를 묶어 가지런히 소쿠리에 담는다. 집사람은 개수대(싱크대)에서 겹쳐 쌓은 깻잎을 풀어 흐르는 수돗물에 싱그러운 잎을 뒤집어 가면서 일일이 정성껏 씻는다. 깻잎 하나도 이렇게 엄청 잔손질이 간다. 세상에 쉬운 게 없다.

등잔불 기름으로 활용, 그을음으로 먹 만들기도

들깨 씨앗으로 짠 들기름은 지질(脂質)이 38~45%로 오메가-3-지방산의 일종인 알파-리놀렌산(alpha-linolenic acid)과 오메가-6 지방산(omega-6 fatty acid)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감마-리놀렌산(gamma-linolenic acid)이 그득 들었다. 잎에는 0.4% 남짓의 페릴알데히드(perillaldehyde)·페릴라케톤(perilla ketone)·리모넨(limonen) 같은 휘발성 기름이 들었으니 이것들이 바로 들깨의 특유한 냄새물질(방향성분)로 색다른 향기를 풍기고, 씹었을 때 개운한 맛을 내게 한다.

들기름에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서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항암 효과, 당뇨병 예방, 시력 향상, 알레르기 질환 예방에 좋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서 생성되는 항 바이러스성 단백질인 인터페론(interferon)을 생성하여 면역계를 항진시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깻잎으로 쌈을 싸먹을뿐더러 깻잎부각·깻잎장아찌·깻잎조림·깻잎김치도 만들어 먹는다. 들깻잎에는 비타민A, C 등이 풍부할뿐더러 무기물질인 칼륨(K)·칼슘(Ca)·마그네슘(Mg)이 듬뿍 들었다. 뭐니뭐니해도 독특한 향이 있어 삼겹살을 싸먹고, 물고기 매운탕에 넣어 비린내를 없앤다. 또 일본들깨(시소, shiso)잎으로 회를 싸먹는데 그 잎은 잔 잎처럼 보이는 큰 톱니(거치, 鋸齒)가 듬성듬성 둘러나고 냄새가 진한 편이다. 서양 사람들이 들깨를 ‘beefsteak plant’라 부르는 것도 그럴듯하다.

들깨가루는 여러 음식이나 국에 넣고, 추어탕이나 보신탕에 넣어 비림이나 누린내를 없애며, 들기름은 나물에 넣는 멋진 양념이다. 옛날에는 들기름을 등잔불 기름으로 썼고, 그을음으로 먹을 만들기도 했으며, 또 페인트, 니스, 인쇄용 잉크, 비누 등의 원료로 쓰고, 두꺼운 백지에 기름을 먹여 기름장판지를 만들었다.

아직도 생각난다. 대를 얇고 가늘게 쪼개어 엇갈리게 짠 대삿자리를 방바닥에 깔았으니 먼지가 푹푹 날기 일쑤였지. 그런데 드디어 매끈매끈한 기름장판을 깔아놓아 뛸 듯 좋아했던 옛날 기억이 말이다. 말 그대로 애옥하게 살아 넌덜머리 났던 오욕(汚辱)의 지난 세월이지만 그래도 마냥 그때 그시절이 그립도다! 늙으면 옛 추억을 먹고 산다 하더니만!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809호 (2018.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