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밀보고] 북한판 ‘흑묘백묘’, 김정은의 ‘친서(親書) 정치’ 

‘말의 성찬’ 넘어 행동할 때가 왔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 전문기자
대남·대미 관계 교착될 때 친서·특사로 최고위급과 직접 담판…김정은이 친필 서명한 약속 이행 여부가 체제의 운명 좌우할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親書) 정치’가 주목받고 있다. 남북 정상 간 소통과 대화는 물론 북·미 및 북·중 간 최고위급 채널을 통한 교감에 자신의 친필 서명 서한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서를 활용한 김정은식 대남·대미 외교술은 전략적인 타이밍을 절묘하게 선택해 직설화법식의 전격적인 제안을 던지는 방식을 구사한다. 친서와 특사를 배합하는 외교전술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례 없는 북·미 정상 간 의기투합도 이끌어냈다. 김정은의 친서 정치 특징과 그 이면에 깔린 북한의 대남·대미 외교 전략의 딜레마를 짚어본다.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오전 회담장인 카펠라 호텔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위해 만나고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지난 2월 10일 오전 청와대 접견실. 미황색 전통문양의 가구와 카펫으로 꾸며진 이곳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핵심 참모진과 VIP급 방문객이 마주 앉았다. 환담이 이어지던 중 문 대통령 앞에 자리한 20대 여성이 자세를 고쳐 다소 경직된 태도를 취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특사입니다”라는 그 여성의 언급에 좌중에는 살짝 긴장감이 흘렀다. 검은색 정장 차림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은 김여정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34) 국무위원장의 다섯 살 아래 여동생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북측 참가단(단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일원으로 남한을 방문한 김여정이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특사’로 신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때맞춰 북측 수행원이 미리 준비해 온 서류 가방을 열었다. 청와대 도착 때부터 바닥에도 내려놓지 못하고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은회색 트렁크였다. 그 속에는 감색 케이스에 담긴 문건이 들어 있었다. 김여정의 앞에 올려진 문건의 겉 표지에는 금박으로 된 북한 국무위원장의 상징마크와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란 글씨가 드러났다. 김여정은 이 문서를 들고 일어서 문 대통령에게 두 손으로 전달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뜻”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정중한 자세로 두 손을 내밀어 이를 받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였다.

김여정의 친서 전달은 그녀의 56시간 남한 체류의 하이라이트로 평가됐다. 서울과 평창을 오가며 겨울올림픽 개막식과 서울에서의 북측 예술단 공연 일정 등을 소화했지만 청와대 방문과 친서 전달이 사실상 그녀의 방남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김정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빠른 시일 안에 평양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다.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김정은이 직접 서명한 정상회담 제의 서한인데다 메신저로 여동생이자 최측근 실세로 간주되는 김여정을 통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1월 초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김정은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 삼아 남북 정상회담이란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김정은의 친서외교는 9월 초 북·미 간의 ‘비핵화 줄다리’가 팽팽하던 상황에서도 약효를 발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9월 7일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으로 이동하던 중 기자들에게 “김정은이 보낸 친서가 지금 오는 중이며 긍정적인 내용일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김정은 친서는 그 전달 과정이 생중계되다시피 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좀체 진전을 보지 못하던 양측 관계가 꼬인 상황에서 김정은의 직접적인 메시지가 워싱턴에 보내졌다는 점에서다. 북한은 8월 하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명의로 보낸 대미 서한에서 “비핵화 협상이 위기에 다시 처했고, 무산될 수도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트럼프가 하루 만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평양 방문을 전격 취소하면서 싱가포르 센토사 북·미 공동성명 이행과 북·미 관계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평창 겨울올림픽의 하이라이트 ‘김정은의 특사’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0일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는 모습. 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온 김여정이 접견 내내 손에 들고 있던 파란색 파일 앞에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국무위원장’이라고 쓰여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친서를 통해 던진 건 ‘2차 북·미 정상회담’ 카드였다. 메가톤급 제안에 백악관은 즉각 반응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9월 10일 브리핑에서 “매우 따뜻하고 긍정적인 편지”라며 “대화와 진전을 지속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화답했다. 대북 강경 입장으로 바뀌는 듯하던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도 급선회했다. 샌더스 대변인이 김정은 친서를 공개하기 몇 시간 전만해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김정은이 6·12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비핵화 이행이 충분치 않다”며 북한의 합의 이행과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필요성을 강조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볼턴은 “전적으로 가상적인 것”이란 수준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샌더스 대변인은 “우리는 이에(2차 정상회담) 열려 있으며 이미 조율 중에 있다”고 개최 가능성에 힘을 싣는 발언을 했다.

김정은의 2차 정상회담 제안 친서가 먹힌 건 북한의 대미 외교라인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기류를 잘 읽어낸 데다 꼼꼼한 사전 정지작업을 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스캔들과 내홍으로 인해 지지율이나 향후 11월 중간선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관계개선과 정상회담은 놓칠 수 없는 카드다. 대북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압박을 지속하고 있지만 북·미 대화의 판을 깨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을 김정은이 내렸을 것이란 얘기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라는 징검다리와 안전판을 절묘하게 활용해 대미 메시지를 띄우는 김정은식 대미 접근 전술이 트럼프에 먹혔다는 관측도 있다. 대미 친서를 보내기 이틀 전인 9월 5일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을 평양으로 불러들였다. 김 위원장은 이를 통해 북핵 이슈와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거듭 밝히는 방식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과 기류를 탐색했다. 정 실장이 서울 귀환 후 기자회견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해 남북 간에는 물론 미국과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는 의시를 표명했다”고 밝힌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고지도자가 미국에 대해 직접 입장을 표명하기에 적지 않은 부담이 따른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특사의 입을 차용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북한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정의용 실장 일행의 특사 방문은 당일치기로 이뤄진 데다 김정은이 오찬·만찬 등의 일정을 진행하지 않고 면담만 하는 데 그쳤다. 3월의 환대와는 달랐다. 이 때문에 대미 메시지 전달을 위한 방편으로 우리 특사단을 활용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남북 가리지 않고 특사 외교로 정국 돌파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 북측으로 잠시 넘어갔다가 다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미 관계에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거나 미국의 대북 압박이 한계치를 넘을 경우 문재인 대통령과 남한 정부를 활용하는 패턴은 북·미 정상회담을 보름 정도 남겨둔 지난 5월 말에도 연출됐다. 북한 고위 외교 당국자들이 미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트럼프가 같은 달 24일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다는 편지를 공개하면서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갔다.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에서 트럼프는 “최근의 성명에서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토대로 볼 때 이 시점에서 오랫동안 계획했던 회담을 갖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겨냥해 “지도부에 조·미 회담의 재 고려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힌 담화를 내자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회담 전격 취소’라는 초강수를 꺼내 든 것이다.

북한은 트럼프 서한이 나온 지 8시간30분 만에 발 김정은의 메시지빠른 수습에 들어갔다. 김계관 외무성 1부상은 담화를 통해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며 북·미 대화를 재개할 용의를 강조했다. ‘위임에 따라’ 발표한다는 대목으로 볼 때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북한이 꼬리를 내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평양으로부터 매우 따뜻하고 생산적 성명을 받았다는 좋은 뉴스가 있다”며 누그러졌다.

김정은이 또 다른 대미 설득 채널로 선택한 건 문재인 대통령이다. 김계관 담화에 워싱턴이 어느 정도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자신의 목소리를 백악관에 전달해 줄 신뢰할 만한 인물로 문 대통령을 꼽은 것이다. 김정은은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첫 대면을 하고 4·27 정상회담 선언을 내놓은 지 한 달만인 5월 26일 문 대통령을 판문점 북측 통일각으로 초청했다. 간단한 의전행사에 이어 실무회담 형식으로 진행된 회담에서 김정은이 무게를 실은 건 북한의 입장을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해 달라는 대목이었다. 문 대통령의 중재에 트럼프는 정상회담 개최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다음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6월 12일 싱가포르를 검토하고 있다. 그것은 변하지 않았고 매우 잘 진행되는 중”이라며 북·미 정상회담 재추진을 공식화했다. 김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북·미 정상회담 전격 취소 의사를 밝힌 지 3일 만에 입장을 급선회한 것이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첫 친서를 보내는 파격행보에 나선 건 6월 1일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통해서다. 무산될 위기에 처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회생으로 돌아서자 친서 공세로 굳히기 작전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일반적인 문서를 담은 것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의 흰색 대형 서류봉투에 친서를 넣어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7월 초 방북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통해서도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친서 내용을 전격 공개해 그 배경에 눈길이 쏠리기도 했다.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김정은 서한은 수신인을 ‘미합중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 각하’라고 표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24일 전 싱가포르에서 있은 각하와의 뜻 깊은 첫 상봉과 우리가 함께 서명한 공동성명은 참으로 의의 깊은 여정의 시작으로 되었다”라고 강조했다. “조·미 관계개선의 획기적인 진전이 우리들의 다음 번 상봉을 앞당겨 주리라고 확신한다”며 2차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폼페이오 방북이 성과가 없었다는 비판이 높아지자 트럼프가 공손한 태도로 추가 정상회담까지 요청한 김정은의 친서를 공개하는 선택을 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이뤄진 미군 유해 송환 때인 7월 27일에도 유해와 함께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냈다.

4차례 친서로 트럼프의 직접 결단 유도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9월 5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판문점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9월 6일 건네진 것으로 알려진 편지를 포함해 김정은이 올해 들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만 4차례에 이른다.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 급격한 관계 진전을 감안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6월 김영철의 방미와 폼페이오 장관의 3차례 방북 등 최고지도자의 의중이 실린 북·미 양측의 특사 교류도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그 만큼 김정은의 대미 접근에 힘과 속도가 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영철-폼페이오 라인이나 김계관 1부상이나 최선희 부상 등 외무성 대미통을 가동한 대미협상이 진척을 보지 못하거나 막힐 때마다 김정은은 친서 정치를 펼치곤 하는 양상이다. 트럼프의 성향이나 통치패턴을 볼 때 실무선에서의 문제를 최고지도자가 단칼에 해결하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이 효과적이란 점을 김정은과 북한 대미외교 베테랑들이 간파했다는 얘기다.

사실 김일성·김정일 집권 시기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친서 정치를 펼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긴박한 외교현안이 생기거나 수해나 재난으로 긴급원조가 필요할 경우 대표단을 구성해 우방국이나 공산권 국가를 방문해 친서와 함께 대북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 가끔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비공개리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소련과 동구권 붕괴 이후 해당 국가의 비밀문건의 봉인이 해제되면서 뒤늦게 드러난 것이 대부분이다.

북한과 미국 간의 정상급 친서 교류나 특사 교환은 극히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상황으로 전개됐다. 그 내용도 짧고 의례적인데다 대부분 비공개에 그쳐 구체적인 내용은 베일에 싸였다. 주로 미국 측이 북한에 먼저 관계개선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였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992년 4월 김일성 북한 주석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의 관계개선과 정상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낸 건 북·미 최고지도자 간 서신 교환의 초보적 사례로 거론된다. 당시 메신저 역할을 한 건 김일성과 가까운 사이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였다. 김일성도 양측 간의 관계개선을 희망한다는 답신을 보낸 것으로 송낙원 당시 북한 외교부 미·일 담당 국장이 평양 체류 외신에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고, 부시 행정부 일부 관리들은 친서 휴대 사실 자체를 부인할 정도로 보안에 부쳐졌다.

김일성은 1994년 6월에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 북한의 핵 개발 의혹으로 불거진 대북 군사 타격 위기상황과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중재자로 나선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통해서다. 하지만 한 달 후 김일성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함으로써 실질적인 진전은 보지 못했다. 김일성과 김영삼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 합의하는 상황 속에서 김일성의 급사는 남북관계도 원점으로 돌렸다.

김일성 사망으로 모멘텀을 잃는 듯하던 북·미 관계는 비교적 빨리 전기를 마련했다. 1994년 10월 양측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타결하면서다.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에서 열린 협상에서 양측은 정치·경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북핵 폐기를 조건으로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는 빅딜에 합의했다. 이 합의 서명식에 앞서 클린턴 대통령은 대북 경수로 공급과 함께 핵 동결로 인한 전력 손실에 따른 대체에너지(중유) 공급을 담보하는 친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냈다. 이 편지에서 클린턴은

김정일에 대해 ‘최고지도자(supreme leader)’와 ‘각하(His Excellency)’라고 호칭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수령에 대해 최고지도자로 격식을 갖춰 공식 호칭한 게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또 김일성 사망 석 달 만에 이 같은 편지를 보냄으로써 김정일 후계체제를 미국이 인정한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클린턴은 1996년 5월 평양을 방문한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을 통해서도 김정일에게 친서를 보내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와 대북 경제제재 완화, 수교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친서에 인색했던 북한이 적극적인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월 12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조미(북미) 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진전이 다음번 상봉을 앞당겨주리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 대통령들의 대북 친서를 통한 구애는 조지 W. 부시 집권 시기에도 있었다. 2007년 12월 초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북한이 연말까지 모든 핵프로그램을 완전히 공개할 경우 북·미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평양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당시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통해 전달된 친서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김정일에 대해 ‘폭군’이란 비판을 가한 상황에서 나와 주목받았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부시와 김정일 사이에 존재해 온 냉전(cold war)을 뛰어넘는 거대한 도약(a huge leap)”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북한의 비핵화 추진을 전제로 한 북·미 양자관계의 비전을 제시했다. 북핵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러 평양을 방문한 스티븐 보 스워스 당시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통해서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나 북한의 반응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측의 일방적인 친서 전달만 있었던 건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2년 1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북·미 관계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친서를 보냈지만 사실상 무시당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느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김정일은 이 편지에서 “만일 미국이 우리 주권을 인정하고 침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한다면 새로운 세기의 요구에 발맞춰 핵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미국이 대담한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평양 방문 중에 친서 전달을 요청 받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와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 국제 대학원 교수가 2005년 6월 [워싱턴포스트]에 공동 기고하면서 드러났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미국 대통령 등에게 보낸 친서 성격의 메시지가 공개되지 않은 채 역사의 비밀창고에 적잖이 묻혀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최고지도자 친필은 ‘절대적 권위’로 간주된다. 김일성·김정일 시기 필체를 연구해 ‘절세의 위인’으로 찬양하는 우상화 작업이 벌어질 정도다. 수령의 친필 서한이나 감사장을 받는 건 곧바로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보장받고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는 보증수표가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7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 부문에서 우승한 정성옥에게 “우리 조선의 훌륭한 딸입니다. 1999년 9월 10일 김정일”이란 편지를 보냈다. 우승 직후 소감에서 “장군님 얼굴만 떠올리며 달렸다”고 말한 데 따른 보상이었다. 한 탈북 인사는 “정성옥에게 고급 아파트와 자가용이 제공되는 등 환대가 이뤄졌다”며 “하지만 정성옥이 점차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는 과도한 직위 요구를 내세우자 당이 체육 지도인으로 일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A4용지 보다 큰 친서 봉투를 전달하자 이를 패러디한 사진이 쏟아졌다.
3대 세습에 의해 북한의 절대권력을 거머쥔 김정은 위원장은 친서 외교를 구사하면서 서울과 워싱턴을 공략하고 있다. 상대측 최고지도자가 유혹을 느낄 수준의 말과 제안을 내놓으면서 마치 남북관계와 한반도 및 주변 정세를 쥐락펴락하는 듯한 행태를 보인다. 무엇보다 여론의 반발이나 분산 없이 최고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한 대응이 가능하고, 타이밍을 언제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서방 지도자와 차이가 난다. 실무진 간 대화나 협상이 꼬인 상황에서 김정은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친서는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말의 성찬이 끝난 뒤 김정은의 선택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8월 4일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포토세션이 끝난 뒤 성 김 필리핀주재 미국대사로부터 전달 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이 담긴 서류봉투를 확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말의 성찬만으론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얻거나, 이를 토대로 한 관계 진전을 이룰 수 없다. 냉혹한 국제 외교무대에선 더욱 그렇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첫 친서에서 정상회담 제의와 함께 남북 관계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4·27 정상회담은 그 뜻을 구체화해 담은 남북 간 서면 약속인 셈이다. 특히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의 핵 폐기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전향적인 행동조치가 기대됐다.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문안에도 거듭 등장한 때문이다. 합의문에 서명하고도 이런 저런 조건을 걸어 실행을 지연시킨 뒤 시간 끌기와 보상 챙기기에만 몰두했던 김일성·김정일 시기의 구태에서 벗어날 것이란 관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변화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북핵 폐기로 가는 합의 이행과정에 꼭 필요한 건 북한이 핵 프로그램(시설과 물질, 핵무기)의 내용을 공개하고 이를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폐기라는 최종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로드맵이 이행될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이를 무시한 채 자신들이 공개하고 싶은 시설과 관련 프로그램만 내놓고, 검증 없는 일방적 폐기를 보여주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핵 폐기와 거리가 먼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해체나 동창리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장 해체 등의 이벤트를 보여주면서 한국과 미국 측에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비합리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 앞에는 이제 ‘진실의 순간’을 향해 가는 모래시계가 놓여 있다. 위기탈출이나 국면 전환용 친서 정치는 약발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사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물론 서면 약속이라 할 수 있는 친서까지 제대로 된 이행이 따르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김정은이 자신의 편지 한 통에 트럼프와 백악관이 반응하고, 유력 외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에 우쭐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얘기다. 진정성 없는 말의 성찬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 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images/sph164x220.jpg
201810호 (2018.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