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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터] 북·미 관계 정상화와 시진핑의 역할론 

보이지 않는 손에서 보이는 손으로 급부상 

예영준 중앙일보·JTBC 베이징 총국장
미국 자극 피하고 북한 달래며 한반도 ‘이해관계 당사자’로 막후 조정 역할…북·미 대화 진행될수록 중국이 설계한 ‘쌍궤병행’ ‘쌍중단’ 의도 현실화될 듯

▎그동안 북핵 문제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던 중국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북한을 달래는 양온전략을 구사하며 한반도 상황을 자신들의 계획대로 유도하고 있다.
8월 하순에서 9월 초 사이 국내외의 상당수 언론이 오보를 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의 9·9절, 즉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을 맞아 방북할 것이라고 보도했던 게 모조리 빗나간 것이다. 그런 예측에는 나름 근거가 없진 않았다. 우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 주석을 정식으로 초청했고, 시 주석이 이를 수락했다는 점이다. 3월 하순 김 위원장의 1차 방중 때 이뤄진 북·중 정상회담 직후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는 시진핑 동지가 편리한 시기에 조선을 공식 방문할 것을 초청했으며 초청은 쾌히 수락되었다”고 보도했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그 이후로도 두 차례 더 중국을 방문한 사실을 고려하면 시 주석이 답방에 나설 수 있는 조건과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봐도 그다지 이상할 게 없었다. 문제는 그 ‘편리한 시기’가 언제냐는 점인데, 북한의 입장에선 올해 7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르기로 한 9·9절이야말로 최선의 시기였다. 북한은 실제로 9·9절에 시 주석의 방북을 희망한다는 초청 의사를 중국에 전했다.

하지만 필자의 취재 결과로는 애당초 시 주석의 9·9절 방북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내막을 잘 아는 베이징 외교가의 소식통은 “시 주석이 평양에 가더라도 9·9절만큼은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유를 댔다. “북한은 70주년 9·9절을 맞아 대대적으로 열병식을 거행한다고 예고했다. 예년 같으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나오고 반미 구호가 등장하는 자리다. 김정은 위원장이 단상에서 인민군을 사열하는 바로 옆에 시 주석이 나란히 서서 인민군을 향해 손을 흔든다고 생각해 보라. 그 장면이 전 세계에 TV로 중계될 텐데 그게 중국에 무슨 도움을 줄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지 않겠나.”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공언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비핵화 행동은커녕 아직 로드맵조차 없는 상태에서 여전히 미국과의 밀고 당기기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조야에서는 김정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쉼 없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이 열병식 사열대에 김정은과 나란히 선다면 “중국은 누가 뭐래도 북한 편”이라고 공개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중국이 끼어들면서 북한의 태도가 이상해졌다”고 의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이 북한을 두둔하며 비핵화를 방해한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미국의 중국 압박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치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중국에 결코 바람직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설령 그런 변수가 없다 해도 시진핑이 9·9절에 맞춰 방북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최고위급 중국 지도자의 9·9절 방북은 북·중 관계가 혈맹이라 불리던 때에도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 당시 부총리와 1988년의 양상쿤 당시 국가주석 등 두 번밖에 없었다. 김정은의 세 차례 방중으로 북·중 관계가 해빙됐다고는 해도 체통을 중시하는 ‘시 황제’가 직접 축하 사절로 갈 가능성은 처음부터 높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시진핑의 9·9절 방문은 실현되지 않았다. 시 주석은 대신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임위원장 겸 정치국 상무위원을 특사로 파견했다. 이것이 아주 절묘한 선택이었다. 시 주석은 앞서 2015년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을 특사로 파견하고 친서를 전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열을 두 단계 높이면서 신임이 두터운 측근인 리 위원장을 파견했다. 서열 2위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제외하면 시 주석이 보낼 수 있는 최고위 특사를 보낸 것이다. 3년 전보다 더 격이 높은 특사가 왔으니 김정은으로서는 전혀 서운할 게 없었다.

북·미 모두 만족시킨 ‘시 황제’의 묘수(妙手)


▎시진핑 주석은 집권 초기부터 김정은 정권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냉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측의 골은 지난 3월 김정은이 중국을 전격 방문하면서 일거에 해소됐다.
이뿐만 아니다. 9·9절보다 사흘 앞선 9월 6일 베이징에 있는 주중 북한 대사관이 이를 기념하는 리셉션을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는 서열 4위인 왕양(汪洋)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 중국 측 주빈으로 참석했다. 주 중 북한 대사관이 생긴 이래 대사관을 찾은 최고위급 인사였다. 이튿날에는 ‘시진핑의 오른팔’로 불리는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이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와 중·조우호협회가 공동 주관한 9·9절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시 주석 본인은 리잔수를 통해 전달한 친서 이외에 별도로 축전을 보냈다. 주 중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중국 지도부가 북한 행사에 이런 규모로 나선 것은 혈맹이던 김일성 시대를 제외하고는 없었다”고 말한 대로 중국은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했다.

중국의 배려에 북한은 파격적인 환대로 특사를 맞이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열병식 현장에서 리잔수 위원장의 손을 잡고 들어 올리는 제스처를 여러 차례 취했다. 이튿날에는 리잔수 위원장을 위해 마련된 특별 공연과 성대한 연회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했다.

이처럼 화기애애한 북·중 관계는 불과 1년여 전의 험악했던 분위기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해 5월 14일 시진핑은 29개국 정상급 인사를 포함해 130개국 1500명의 고위급 인사를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그가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포럼을 개최했다. 중국이 최대한의 공을 들여 준비한 개막식 날 아침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뉴스 속보가 떴다. 잔칫집에 찬물을 끼얹는 북한의 행태에 중국은 분통을 터뜨렸다. “트럼프가 북한을 공격해도 중국은 못 본 척할 것”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북한은 북한대로 우방이라고 믿었던 중국이 유엔 제재에 동참해 자신들의 숨통을 죄어 오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그 무렵 북한 관영매체는 북·중 관계 70년 사상 유례없는 ‘말폭탄’으로 중국을 맹비난했다.

무엇이 1년 만에 북·중 관계를 이렇게 극적으로 반전시켰을까. 그 반전 속에 깃든 시진핑 주석의 속셈과 전략은 무엇일까. 이제 포석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수싸움이 전개되려는 참인 한반도 체스판에서 시진핑은 과연 어떤 수를 둘 것인가. 이는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집중으로 노선 수정을 선언하고 대화 공세에 나선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중국이 취한 행동들을 복기해 보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5년 묵었던 북·중 갈등, 1년 만에 극적 반전


▎북한 9·9절 기념행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의 특사로 참석한 리잔수 전인대 상임위원장 겸 정치국 상무위원의 손을 들어 올려 우애를 과시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집권기는 공교롭게도 김정은의 집권기와 거의 일치한다. 2012년에 최고 권좌에 오른 시 주석은 철저하게 북한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시 주석 집권 3개월 만인 2013년 2월 북한이 사전통보 없는 3차 핵실험으로 시 주석의 체면을 깎아 내린 것과, 그해 12월 중국 내부와도 인맥이 두텁고 북·중 협력의 가교 역할을 했던 장성택을 처형한 것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시 주석의 북한 냉대가 잘 드러난 게 2014년 7월의 한국 방문이다. 중국 지도자가 ‘사회주의 형제국가’인 북한을 제쳐두고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이때가 유일무이한 사례다. 북한은 북한대로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이는 시진핑 집권 1기 내내 북·중 관계를 얼어붙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시진핑 주석 본인의 분석이자 판단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중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런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랬던 상황을 일거에 뒤집은 것이 지난 3월 김정은의 전격적인 베이징 방문이다. 그 직전까지 한국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한 용어가 ‘차이나 패싱’이란 단어다. 북한이 믿을 수 없는 중국을 제쳐놓고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미국과 직접 담판에 나섬으로써 한반도 정세에 일대 변환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중국은 구경꾼처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의미다. 중국 언론에서도 이에 해당하는 ‘볜위안화(邊緣化)’, 즉 주변화란 용어가 전문가의 입을 빌려 빈번히 등장했다. 차오신(曺辛) 중-아시아발전교류협회 이사는 “북한은 제2의 베트남이 될지 모른다. 북한이 중국보다 미국을 더 가까이하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발판으로 북한을 이용할 수 있다.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북한은 지금의 베트남보다 더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 당 간부 교육기관인 중앙당교의 한반도 전문가 장롄구이(張璉) 교수는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방관자의 위치가 되고 말았다”며 북한과의 거리 두기가 결국 지렛대 상실이란 결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의 전 부편집장 덩위원(鄧聿文)은 “북한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 특히 핵 문제에 손을 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문가들의 진단이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정은은 3월 말 1차 방중에 이어 5월 초순 다시 중국을 찾았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란 대사를 앞두고 시진핑 주석과 긴밀히 ‘작전 회의’를 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세 번째로 중국을 찾은 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일주일 만이었다. 싱가포르 회담 결과의 공유와 평가를 위해 짧은 터울에 다시 베이징을 찾은 것임이 누가 봐도 명백해 보였다. 중국 외교부는 김정은의 방중이 북한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일이었는데도 북한은 반론하거나 언짢아하지 않았다. 차이나 패싱이 아니라 중국이 막후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시 주석이 에어차이나 항공 소속인 자신의 전용기를 싱가포르로 향하는 김정은에게 빌려준 사실이 이 모든 과정을 상징해 줬다.

‘차이나 패싱’ 연막 치고 북한에 ‘막후 조율’

싱가포르 회담 무렵부터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중요 이슈로 부각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보여준 태도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모여 한국전쟁이 종결됐다는 정치적 선언을 하자는 이 아이디어는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 명기됐다. 선언문에는 중국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놨으나 실제 추진 과정에서는 남·북·미 3자에 의한 종전선언을 우선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차하면 싱가포르까지 달려가 북·미 정상회담에 합류해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막판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1953년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중국은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다할 것”이란 입장으로 일관하면서 종전선언 자체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찬반을 표명하지 않았다. 중국이 빠진 3자 종전선언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인지, 모호한 입장 표명을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한국의 외교 당국자는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것은 묵인한다는 이야기이니 우리 계획대로 추진하면 된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속셈은 그게 아니었다. 중국이 자신을 포함하는 남·북·미·중 4자에 의한 종전선언을 미국에 제안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장예쑤이(張業遂) 전인대외사위원회 주임이 8월 16일 중국을 방문한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간사단에 밝힌 내용이다. 장 주임은 지난 3월까지 외교부 상무부부장(제1차관 격)을 지낸 고위 외교관 출신이어서 외교 현안에 밝다. 그는 외통위 간사단에 “한국과 중국은 종전선언에 적극성을 띠는데 북한은 반반이고 미국은 소극적”이라면서 “종전선언의 성사 여부는 미국에 달렸다”고도 말했다. 중국이 북한보다 더 종전선언에 적극적이란 발언은 그때까지 국내에 알려진 것과는 상반된 얘기였다.

장 주임의 발언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한반도 정세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어떤 합의나 결정도 중국이 빠진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중국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설령 그것이 국제법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에 지나지 않는 종전선언이라고 해도 중국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 핵 문제의 핵심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며 자국을 포함한 이웃 나라들을 유관국가로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표현은 중국에게는 굉장히 편리한 역할 규정이다. 국제사회는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 핵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는 논리로 종종 중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대북제재의 강화를 촉구하며 북한과 교역을 하는 중국 기업에 대해서도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를 발동하겠다고 압박하는 것도 마찬가지 발상에서다. 중국이 북한과의 무역을 전면 통제하고 국경을 봉쇄하면 북한이 손을 들고 나오리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은 그런 압박을 받을 때마다 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내세운 게 앞서 말한 핵심 당사자와 유관국가의 역할분담론이다.

중국은 대북 압박은 안보리 결의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한계선을 두고 있다. 북한을 과도하게 몰아붙인 결과 핵 포기란 결과가 아닌, 북한 체제 붕괴나 예상치 못한 우발적 사태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제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결코 중국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압박할 때마다 중국이 내세운 논리가 “핵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럴 때는 결코 자신들을 ‘당사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당사자로서 져야 할 책임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3자 종전선언 등 정작 자신이 배제되는 듯한 기미가 보이면 ‘당사자’ 자격을 강조하고 나선다.

올 들어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 역할을 발휘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왔다. 어느 것이 더 중국의 본심에 가까운 말일까. 최근에는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현재의 당사국은 조선(북한)과 한국, 미국이다. 그들은 반드시 계속 (노력)해야 하고, 우리는 그들에 협조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새겨들어야 한다. 중국이 체스판에서 한 발 물러나 적당할 때 훈수나 두겠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 어린 트윗처럼 비핵화의 방해자일까. 더 나아가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원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중국에게 전략적으로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큰 재앙이다. 북한의 핵무장 완성이 동북아의 핵 도미노로 이어지는 것은 중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비핵화에 이르는 방법이나 속도에선 분명히 미국과 이해를 달리한다. 중국은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한 비핵화를 희망한다. 급격한 변화가 예측 불가능한 사태로 이어지는 것을 중국은 극도로 경계한다. 이런 점에서 군사적 공격에 의한 해결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先) 폐기 후(後) 보상이나 리비아식 핵 폐기에도 반대한다. 결국에는 동시적이고 단계적 해법만이 유일한 해법이며 힘들더라도 협상을 통해 서로 주고받을 상응 조치의 순서나 선후 관계를 조절해 절충점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원하는 비핵화 방식은 북한이 원하는 비핵화 방식과 가깝다. 그게 바로 북·중이 지난 6~7년간 이어진 최악의 냉각기를 일거에 극복하고 급속하게 밀착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이다.

모습 드러낸 북·미 바둑판의 ‘진짜 기사(碁士)’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쌍중단’과 ‘쌍궤병행’으로 압축된다. 최근 북한과 조율을 통해 북미관계에 적극 개입하면서 역할과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1차 방중 때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의 면전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일방적 비핵화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미국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1차 방중이 이뤄진 3월 하순은 미국 강경파들이 리비아식 해법을 거의 유일한 해법으로 주장하던 시점이었다. 북·중은 정상회담에서 단계적·동시적 해법에 합의했고 북한은 미국과의 실무 협상에서 한 치도 밀리려고 하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을 만나고 북한이 이상해졌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불만을 터뜨린 건 이런 연유에서다.

중국은 비핵화를 목표의 전부로 여기지 않는다. 중국이 시야에 두는 것은 비핵화 이후, 혹은 비핵화와 동시에 이뤄질 한반도 주변 질서의 변화다. 중국은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 경제적 인센티브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평화체제 수립’이란 용어로 대변되는 한반도 주변, 동북아 안보지형의 근본적인 변화에 중국의 관심이 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협상이 본격화되면 필연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 중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이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를 약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국의 속셈일 것이다. 북·중의 신(新) 밀월은 그런 전략적 그림 아래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올 초부터 지금까지 숨 가쁘게 진행된 과정과 그 중간 결과들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아직 너무 이른 단계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자국이 주장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쌍중단(雙中斷)과 쌍궤병행(雙軌倂行)이란 중국의 해법이 올바른 것이며 유일한 해법임이 입증됐다”고 말한다.

쌍궤병행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을 병행해 나가자는 것을 말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 결부된 큰 원칙이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과 한미의 연합군사훈련을 함께 잠정 중단하자는 얘기다.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던 북한과 미국을 향해 대화의 입구(入口)를 제시한 것이다. 중국이 2016년 이 입장을 내놓았을 때는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호응을 받지 못했다.

도발을 계속하며 대화에 뜻이 없던 북한은 무(無)반응으로 일관했다. 미국은 이 방안을 묵살했다. 국제법상 합법인 방어 목적의 연합훈련과 안보리 결의를 포함한 국제규범에 저촉되는 불법 핵·미사일 실험을 교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랬던 미국이, 그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으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를 받아들이는 발언을 했다. 더구나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도발적’이라거나 ‘전쟁 연습’이란 표현까지 썼다. 북한 위협에 대비한 정당한 방어 훈련이란 입장을 견지했다면 절대 써서는 안 되는 표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 비판이 일자 “연합 훈련 중단은 내가 먼저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후 맥락을 보면 김정은이, 그리고 회담장 밖의 시진핑 주석이 줄곧 제기해 오던 문제임이 명백하다. 아마 회담장에서 김정은은, 그리고 회담 전날 심야까지 이어진 실무 협상에서 북한 대표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집요하게 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미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 동결을 선언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시킨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그러니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달라. 그래야 우리가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아마 이런 식의 논리였을 것이다. 결국 그동안 무시되던 중국식 해법이 북·미 회담을 거치면서 현실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북·미의 통 큰 협상에 중국의 ‘설계’ 먹혀들까

연합훈련이 중단되면 북한은 큰 압박을 벗어나게 된다. 북한이 부담스러워하는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중단되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북한의 합리적 안전 우려’라고 표현해 왔다. 시진핑 주석이 5월 8일 다롄(大連)으로 찾아온 김정은과 회담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로 회담 내용을 설명할 때도 “북한의 정당한 안전 우려를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훈련을 중단해야 진지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중단된다는 것은 북한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부담을 느껴 온 중국도 크게 환영할 일이다.

단계적·동시적 해법의 현실화 역시 마찬가지다. 싱가포르 회담 당일 공개된 공동성명문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 그 어디에도 단계적 해법의 수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회담 이튿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보도에는 명확한 표현이 등장한다. “조미 수뇌분(북·미 정상)들께서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이룩해 나가는 과정에서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하시였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트럼프가 그토록 공언해 온 일괄해법(all in one)을 트럼프 자신이 한 차례의 북·미 회담을 통해 거둬들였다는 결과가 된다. 단계적·동시적 해법은 시진핑과 김정은이 3월과 5월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방식이다. 그러니 싱가포르 회담 뒤 전 세계 언론이 회담장에 앉지도 않은 시진핑 주석을 두고 ‘최대의 승리자’라고 표현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2차 북·미 회담의 개최가 점점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11월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각종 스캔들이 터져 나와 곤혹스러운 트럼프로서는 베팅을 해볼 가치가 있는 소재임에 틀림이 없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정은으로서는 2차 회담 기회를 잘 활용하면 대북제재 완화라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2차 회담이 실현된다면 북한과 중국의 긴밀한 공조와 협력이 재가동될 것이다. 9·9절에 서열 3위의 리잔수를 보내고 김정은이 그를 환대한 것은 이에 대비한 포석이다.

설령 트럼프가 중국 책임론이나 배후론을 더 강도 높게 제기하더라도 북·중의 결속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에는 시진핑 주석이 답방을 겸해 평양을 방문하는 시나리오도 실현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한반도 체스판의 훈수꾼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수를 두는 플레이어임을 과시하려 할 것이다. 이는 지난 3월 김정은의 1차 방중 이후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사실이다. 중국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손으로서의 역할로 옮겨 가고 있다.

- 예영준 중앙일보·JTBC 베이징 총국장 yyjune@joongang.co.kr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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