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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청와대가 소득주도 성장론에 올인하는 이유 

“실패한 정책으로 돌아가 또 실패할 것인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소득주도 성장은 과거 진보 정부와도 구별되는 현 정부의 핵심 가치…획일적 인식과 태도가 확증편향을 키우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 사진:청와대
"혁신이론에 ‘J커브 현상’이라는 게 있어 우리 콘셉트와도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8월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J노믹스’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경제 운용에 있어 혁신 정책을 도입하면 초기에는 성과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도 그 혁신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면 변곡점을 거치며 높은 성과를 내는데 그걸 바로 ‘J커브 현상’이라고 부른다고 했었다. 김 보좌관은 “시간 경과와 함께 실적이 반등하는 모습이 마치 알파벳 ‘J’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게 ‘J커브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김 보좌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경제팀은 출범 당시부터 경제지표 하락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고, 그 같은 성과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문재인 정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성장주의 정책은 수명을 다했으므로 소득주도 성장론을 통해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공언해 놓은 터였다. 이와 관련해 김 보좌관은 다음과 같은 확신을 피력했다.

“개의치 말자. 혁신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경제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정부가 한 방향으로 정책을 밀고 나가면 시장에 예측 가능성이 생기고 경제 주체들도 적응할 때가 온다. 그러면 성과도 올라갈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살펴보면 1년 전 말한 김 보좌관의 장담이 결코 허언(虛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민생에 직결되는 주요 경제지표가 정부의 정책 의지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여권은 전혀 흔들림이 없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추구한다. 이른바 일관성에 충실한 것이다.

예컨대 올 8월 취업자 수가 1년 새 3000명 증가하는 데 멈췄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월 1만 명 감소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여 ‘고용참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15~29세 청년층 실업률도 10.0%로 1999년 8월 10.7%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취업자 수 감소나 청년실업률 상승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해석됐다. 도·소매, 숙박·음식점, 사업시설관리업에서 일자리가 30만 개 이상 증발한 게 단적인 예라고 언론에서는 쏘아붙였다.

한 달 만에 뒤바뀐 소득주도 성장 기류


▎9월 6일 소득주도성장특위 현판식에서 홍장표 특위위원장(왼쪽 셋째), 김동연 경제부총리(오른쪽 셋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 둘째) 등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9월 12일 “경제 체질이 바뀌면서 수반되는 통증”이라고 풀이했다. 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정부는 국민들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 국민들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고용지표 악화를 경제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며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서 선회할 의향이 없다는 시그널로 해석됐다.

김 대변인의 반응은 예정된 수순과도 같다. 최근 들어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하나같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 사수 의지를 밝히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8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해 “우리 정부의 3대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반드시 함께 추진돼야 하는 종합세트”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자신 있게,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독려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은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정책 당국에 힘을 실어줬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소득주도 성장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자리 감소와 양극화 심화는 소득주도 성장 탓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청와대와 보폭을 맞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월 4일 정기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소득주도 성장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는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려면 우리 현실에 맞는 독창적인 복지·노동 모델과 혁신성장 모델을 창출해내야만 한다”면서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이뤄진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모델은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게 할 것”이라고 소득주도 성장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한때 청와대와 불협화음을 빚던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9월 14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 경제가 전체적으로 건실하고 다만 민생에서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있다는 점에서 송구스럽지만 경제가 최저임금이나 소득주도 성장으로 폭망했다는 건 정말 옳지 않은 얘기”라고 가세했다. 이처럼 객관적 경제지표 하락과 사회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당·정·청이 J노믹스, 소득주도 성장의 한길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좌초하는 게 아니냐는 외부의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권은 ‘원팀’을 이뤄 공동전선을 구축한 상태다.

얼마 전만 해도 여권 내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여권 내 소득주도 성장론의 입지가 흔들리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이 정책을 놓고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식회의에서 설전(5월)을 벌인 데 이어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삼성전자 평택공장 방문(8월)을 놓고서는 투자를 구걸하는 것 같다는 청와대 반응이 언론에 등장하기도 했다. 김 부총리의 친(親)기업 행보는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과 재벌 개혁의 고삐를 늦추는 게 아니냐는 관측으로 이어졌다. 그즈음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부총리가 대통령이 반대하는데 삼성 부회장을 만날 수 있겠는가”라며 “아마도 대통령이 말은 안 해도 그렇게라도 해서 투자를 받아오라는 의미로 읽히는 행보”라고 월간중앙에 말했다. 나아가 그는 “정부 내에서 소득주도 성장 등에서 집권 초기와 달리 다른 뉘앙스가 있다”면서 “문 대통령의 마음이 약해지거나 돌아서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고 관전평을 하기도 했었다. 당시 경제학자의 눈에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수순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실패한 경제 패러다임 바꿔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운데)는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하며 출산장려금 제공 등 출산 지원 성장 정책을 제시했다.
그 사이 여권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월간중앙은 최근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에게 경제정책 지향점과 관련한 여권 내부의 정서와 기류를 짚어달라고 요청했다. 홍 위원장에게서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정부 J노믹스의 핵심 중 하나가 소득주도 성장이다. 정부가 집권하면서 국민들의 열망인 불평등 문제, 정의롭지 못함 등의 문제를 바로잡으라는 목소리를 담고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탄생한 배경 자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을 어떤 식으로 완화·개선시킬 것인가, 또 이것을 통해 어떻게 성장동력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시대적 소명을 담은 것이다. 그래서 정부·청와대·당은 기본적인 방향에서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고 판단한다.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은 현실의 여건을 반영한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식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권 세력의 속성과 권력의 작동 방식을 잘 아는 이들일수록 소득주도 성장론을 정치적 레토릭이 아닌 문재인 정부의 기본 철학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이승원 시사평론가는 지적했다. 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이른바 ‘낙수효과’로 표현되는, 과거 실패한 경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잠재성장률 하락과 양극화 심화 등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소득을 늘려서 소비를 촉진시키고 그 이윤으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투영됐다는 게 이승원 평론가의 해석이다. 따라서 “속도 조절 혹은 운용 면에서 탄력성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기조 자체를 바꿀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고 그는 내다봤다. 심지어 경제·민생 문제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기조 자체는 유지할 것으로 본다. “확신을 갖고 추진하는 정책이거니와 이 기조를 바꿀 경우 예상 가능한 기존 골수 지지층 이탈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여권에 힘을 실어주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예컨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지난 8월 29일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8월 30일 공개됐다.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정책에 대해 응답자 49.0%는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잘못된 방향’이라는 응답은 32.4%였다. 이에 대해 야당은 “국정운영의 가늠쇠가 되는 몇몇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가 여론 조작에 가깝다”(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고 반박했다. 자유한국당은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에서는 소득주도 성장 효과가 나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반응이 28.3%인 데 반해(부분적) 보완·수정·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은 66.7%로 집계됐다고 맞불을 놓았다.

정책 효과에 대한 여야 간 공방이 가열되면서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도 덩달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소스코리아와 다음소프트가 8월 24~30일 소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도출한 대한민국 ‘정치·사회 부문 이슈’ 톱 20에서 ‘장하성’이라는 키워드는 14위, ‘소득주도’는 19위에 올랐다. 장하성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15위), 대입 수시 가이드(16위), 최순실(17위), 허익범 ‘드루킹 사건’ 특검(18위)보다 상위권에 올랐다. 9월 3일 발행된 입소스코리아의 ‘이슈 리포트’는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고무된 듯 더불어민주당도 수십 년 된 성장주도 전략이 경제의 규모는 키웠지만 국민적 관심사인 양극화 해소에는 효력이 없다는 사실은 오랜 세월을 통해 입증된 것이라고 적극 설파하고 나섰다. 서민층, 저소득층을 끌어안고 성장하는 이른바 ‘포용적 성장’이 시대적 흐름과 부합한다는 데 많은 이가 공감한다고 홍보한다.

“오기를 정책 일관성으로 착각하는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의 결정적 동력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홍보소통위원장은 “기존의 성장 전략은 양극화를 더 심화할 뿐이라는 건 일반의 평가이자 우리의 경험칙”이라고 했다. 고용과 소득 등 주요 경제지표의 하락 추세에 대해서도 “그걸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탓이라고 평가하기엔 시기가 이르지 않느냐”라며 권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정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회 양극화, 부의 편중은 수십 년 된 현상이고 우리가 대안으로 추진 중인 소득주도 성장은 이제 고작 1년 지난 정책이다. 새해 예산 등 정부 재정이 본격 투입된 건 반 년 남짓 흘렀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미 현안 해결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성장주도 전략으로 돌아간들 당면 과제를 해소하지 못한다. 실패한 정책을 고집스럽게 들이미는 건 또 실패하겠다는 얘기 아닌가.”

여권은 소득주도 성장의 주요 요소 중 최저임금 인상만 즉각 시행 단계에 있을 뿐,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회안전망 확충, 공정경제 확립, 생계비 절감은 아직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는 점도 부각시킨다. 이런 조건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는 더디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바꿔 말해 “당장은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더라도 경제 체질을 바꾸는 쪽으로 꾸준히 가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권칠승 위원장)는 게 여권 내 J노믹스 추진론자들의 기본적인 시각이라고 하겠다. 여권은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 국민의 지지 속에서 이 정책을 추진할 여건이 되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게 안 돼서 정당 지지율이 하락하더라도 소득주도 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거듭 다짐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양상이다.

학계에서는 여권의 이런 획일적 인식과 태도가 내부의 건강한 토론을 억제하고 확증편향을 키우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경계한다.

김경수 한국경제학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소득주도 성장이 우리 경제의 성장 모델이 되려면 생산성 향상과 실질임금 증가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문제는 생산성 증가가 정체돼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정책이 이대로 간다면 “정부와 납세자의 부담만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 경제정책 주체에 대해 “시민운동의 여러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수재형 인물들”이라며 “도덕적 우월감도 강하고 그만큼 자신감도 충만하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재계에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며, 당면 과제의 미시적 국면에 매몰되며 자기 진영 논리를 앞세우는 경향을 경계했다. 나아가 그는 “과거의 준거를 무시하고 중립적 인사들의 충고도 묵살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전제하면서 “전쟁터도 아닌 토론의 자리에서도 임전무퇴이고, 언론 보도에서 오기 부림도 정책 일관성으로 착각함이 엿보인다”고 질타했다.

사실 소득주도 성장은 과거의 두 진보 정부(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정책이다. 보수 정부는 물론 진보 정부와도 구별되는 문재인 정부 특유의 승부처이자 핵심 가치와도 연결된 셈이다. 한마디로 쉽게 양보해서는 안 되는 정권의 정체성이 걸린 경제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는 “소득주도 성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을 심화되는 대한민국 경제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라며 “아직은 제대로 효과를 보기에는 이르다고 대통령이 판단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은 J노믹스의 다른 구성 요소인 혁신성장을 통해 만회 가능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역행군은 자멸 초래할 것”


▎2017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둔 6월 28일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서 민주노총이 최저 시급 1만원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는 나아가 대한민국의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을 돌파하자면 약간의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특유의 우직함이 작용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촛불집회의 힘으로 당선된 문 대통령이 여기서 말머리를 돌린다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지경에 놓이게 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지지층의 생각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선회하는 바람에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내몰린 적이 있다. 현 정부도 지금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더 밀고 나가야 할 상황이라고 보는 것 같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책임자들이 자신의 경제 노선과 철학으로부터 벗어나는 선택을 스스로 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에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목한다. 정권 초기의 관성이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장하성 정책실장이나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 등 J노믹스 핵심 당국자들은 분배를 통해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신념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그걸 부정하면 더 이상 얘기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김 교수는 “내년 상반기에는 경제가 나아진다고들 얘기하는데 그때 가서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하다”며 “하여간 자신들의 신념을 스스로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여권 내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도 “현시점에서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역행군은 자멸을 초래할 악수”라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거둬들이는 순간 “모든 비판을 인정하고 정부가 다 책임지게 된다는 위기의식이 여권 저변에 깔려 있다”고 전했다.


▎7월 10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소상공인연합회 회원들이 ‘최저임금 5인 미만 사업장 차등 적용’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경제 성과가 지지부진하면 여권이 기존 정책을 계속 고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 센터장은 “국정지지율의 하락이 이어지면 국정의 동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진다”면서 “명분에 집착하기보다는 실리적 성과를 내기 위한 각론에서의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고 전망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방향성에는 일정한 국민적 호응도가 있어 보이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국정지지율 하락을 가져오게 된다.”

최근의 소득주도 성장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참여정부 말기의 청와대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2월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라는 글에서 학자와 집권 정치인을 다음과 같이 비교한 적이 있다.

“학자들의 비판이나 논쟁을 보면서 ‘학자들은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 학자는 말하는 사람이고, 집권한 정치인은 실행을 하는 사람이다. 말하는 사람들은 제약이 없다. 스스로 선택한 논리 구조의 제약은 있겠지만 현실을 해석함에 있어서 현실의 중요한 변수를 외면할 수도 있고 자유로이 온갖 가정을 동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천하는 사람은 상황의 제약을 단 하나도 도외시할 수 없다. 마음대로 가정을 동원할 수도 없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정책 주체가 갖는 고충과 애환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자세가 집권 정치인에게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장기적인 전략으로, 또는 의제화·담론화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당장의 가능성이 낮은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盧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2010년 10월 26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장차관 정부혁신토론회. 노 대통령은 재임 시절 국정 현안 관련 공개 토론을 선호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학계와 경제계로부터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 노출된 형국이다.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지난해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 저성장의 원인을 주류가 제공했다”며 이렇게 공언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류의 공격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용기를 갖고 시도할 것이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나 지금이나 주류적 흐름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실행하는 데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언론의 비판 공세에 진력이 난 듯 “신문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분들 간의 논쟁을 보면서 난감함을 느낀다”며 다음과 같이 토로한 적이 있다. “사실에 대한 인식이나 논리 모두 할 말이 있으나, 논점이 너무 많고 어려운 전략 논리와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 일일이 반론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경제지표 하락과 경제 성과 지연을 과거 정부의 실책과 결부하는 데서도 참여정부와 현 정부는 유사성을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국정브리핑 기고문에서 “참여정부 동안에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맞다”면서도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과거 외환위기와 가계부도라는 경제적 위기에서 심화된 것이고 참여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극화의 책임은 과거 정부에도 있다는 발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푸념이 여권에서 나온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용 부진은 지난 정부 10년간 생산인구 감소,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 악화 등 구조적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며 “소득주도 성장 때문에 고용쇼크가 발생했다는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책임을 떠넘겼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당 대표 경선 후보 시절인 8월 19일 최근 고용 악화와 관련해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 성장잠재력이 매우 낮아져서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자라면 재임 당시 국정에 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발언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노 전 대통령은 “진정성을 내세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지 않겠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자신이 논리를 좋아하지만 논리 추구에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었다. “논리에 빠져 현실에 맹목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해 왔다.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상체계의 완결성을 신봉하거나, 현실을 사상과 논리 체계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한다.”(2007년 국정브리핑 기고문)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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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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