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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향] 지지율 고공비행 ‘정의당 현상’ 어디까지 갈까 

‘계급정당’ 알 깨고 대중정당의 길 모색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노회찬 비극’ 이후 호감도 급등, 특권 내려놓기 반향…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총력, 스웨덴式 정치 연구

▎정의당은 노회찬 의원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15%를 넘나드는 정당지지율을 나타냈다. 국회 의석수 5석의 미니정당을 향한 지지는 역설적으로 정치 불신을 종식하고 싶은 국민적 열망이 담겨 있다. 사진은 7월 26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고(故) 노회찬 의원 추모제에 입장하지 못한 추모객들이 운집한 장면이다. / 사진:연합뉴스
정치는 수(數)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통찰이다. 세(勢)를 확장 못 한 정치는 뜻이 고결해도 구호에 불과하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정치평론가 샤츠슈나이더는 이렇게 말했다. “군소정당과 유력정당은 당의 크기 차이가 아니라 종류가 다른 것이다. 군소정당은 정당이라기보다 압력단체에 가깝다.”

이 얘기를 들려준 심상정 의원은 “더 이상 정의당은 비주류가 숙명인 정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적 숫자는 정의당의 희망과 현실의 간극이 줄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2018년 6월 마지막 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지지율은 10%를 돌파(10.1%)했다. 7월 들어서도 10.4%→11.6%→10.4%를 찍더니, 넷째 주에는 12.5%까지 상승했다. 같은 달 23일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시점과 맞물린다. 9월 14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정의당은 두 자릿수 지지율(10.8%)을 지켰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정의당은 8월 10일 최고 1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9월 7일 시점까지도 정의당은 112석의 자유한국당과 동률(12%)을 찍었다. 5석의 정의당은 현실 정치에서 치명적이라 할 ‘수의 열세’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2012년 10월 창당된 정의당의 당원은 7월까지 약 3만5000명이었다. 노 의원의 비극을 계기로 9000명이 넘게 늘어났다. 한글과컴퓨터 창업자이자 배우 김희애의 남편으로 유명한 이찬진 포티스 대표도 이때 정의당원이 됐다. 정의당이 품는 계급에 속하지 않는 이들도 지지를 보내는 상징적 사례다.

‘정의당 현상’을 정작 내부에선 어떻게 해석할까. 또 소수 정당을 향한 전례를 찾기 힘든 지지율은 지속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어떤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할까. 그런 물음을 담고 정의당 김종대·이정미·윤소하·심상정 의원을 8월 28일부터 9월 4일까지 차례로 만나 봤다.

지지율 상승… 내부자들의 평가

김종대 의원은 “지지율 5%의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확장성을 어떻게 얻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상황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지방선거 후 민주당 견제심리 작동 ▷정의당의 특권 내려놓기를 향한 성원 ▷노회찬 의원의 서거, 이 세 가지가 상승 재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심상정 의원이 (지난 대선을 통해) 정치 경계선 밖에 있던 청년층을 흡입했다면 (노 의원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40~50대 과거 민주화운동 체험을 가진 세대에게 호소력을 불러왔다”고 김 의원은 봤다. 그 시너지 효과가 나왔다는 얘기다.

더 음미할 대목은 질적(質的)인 측면이다. 정의당 내부에선 “(새로 편입된) 지지율의 60%가 민주당에서, 40%가 바른미래당과 무당파 쪽에서 왔다”고 분석했다. 이는 곧 중도층 일부가 움직였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이정미 대표는 “정의당이 창당 6년차로 가고 있다. 그 사이 다른 정당들은 부침이 많았다. 이합집산 속에서 일관성을 찾아보기 힘들고 불신이 쌓였다. (이와 달리) 정의당은 신뢰의 포인트를 쌓았다”고 말했다. 김종대 의원도 “보수, 진보를 떠나 일관성과 신뢰성의 문제다. 이 세상에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정당이 있다면 정체성과 지향성이 달라도 지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라고 풀이했다.

진보진영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심상정 의원은 “국민들의 정치 변화 열망이 반영됐다. 정의당 같은 정당이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작용했다”고 봤다. 이 대표는 “(중도층에게도) 합리성이 어필됐다는 증거다. 의견은 달라도 토론해볼 만한 세력으로 정의당을 본다는 얘기다. 예전 진보정당은 폐쇄적이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런 편견이 많이 깨졌다. 이런 수준의 진보정당은 키워줘도 된다고 중도층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원내대표인 윤소하 의원은 “촛불 시민혁명 이후 사회적·정치적 전환기에 정의당을 책임 있는 정치세력으로 봐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안정당’은 정의당 의원들의 연쇄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용어 중 하나였다. 역사적 맥락에서 심 의원은 “이제 양당 체제에 근거한 ‘87년 체제’를 종식하고 새 정치체제를 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2020년 예정된 총선에서 정의당이 자유한국당을 밀어내고 제1야당이 되겠다는 포부까지 드러냈다.

국민의 일상을 닮은 정치 지향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지향하는 ‘1인 보좌관 실험’의 본질은 특권 내려놓기다. 김 의원은 “자기 일을 남이 대신해 주면 오만해진다”고 말했다.
미시적으론 정의당의 ‘특권 내려놓기’ 행보가 유권자들의 정서를 움직인 측면도 있다. 일례로 국회의원 특별활동비 폐지에는 노회찬 의원을 포함한 정의당 의원들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김 의원은 “정치 불신이 심화된 시점에 특권 내려놓기가 신선함을 줬다”고 자평했다. 윤 원내 대표는 “진정성의 일상화”라는 말을 했다. 6411번 버스, 국회 청소노동자를 위한 배려는 어느덧 정의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됐다. 6411번 버스는 노회찬 의원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12년 당 대표 수락연설 때였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에서 출발해 강남 개포동 주공2단지까지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때쯤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의 복도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앉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이들은 새벽 5시 반이면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입니다.”

정의당 의원들은 9월 3일 국회의사당 청소노동자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이들이 쉴 공간마저 잃게 됐을 때 “내 사무실이라도 같이 쓰자”고 했던 이가 생전의 노회찬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 7월 ‘1인 보좌관’ 실험을 선언했다. 9명이 보장된 국회의원 보좌관 수를 1명으로 줄이겠다는 소리다. 현실성과 당위성을 놓고 말이 많았다. 심지어 정의당 당직자 중에서도 “당의 생각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김 의원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직원 9명 중 6명을 정리했다. 6급과 8급 하위 직급들이다. 민생 현장에서 경험을 쌓게 하려고 했는데 20대라 아직 배울 나이라 남았다.”

그 타당성 여부가 아니라 왜 김 의원이 이런 발상을 하는지가 핵심인 듯했다. 의원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기 딱 좋을 내부자 고발을 김 의원은 거침없이 토로했다. 결국 본질은 ‘특권 내려놓기’로 귀결된다. 다소 길지만 인용하는 이유다.

“14대 국회에 비해 사람 숫자가 두 배가 됐다. 불필요한 의전이 말도 못하다. 식당에서 식판도 안 드는 의원들이 있다. 커피 한잔 제 손으로 타 먹을까. 전화 연결, 사진 찍어주기, 가방 들어주기, 차 문 열어주기 등 다닐 때 누가 꼭 따라다닌다. (의원이) 스스로 할 틈을 안 준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것이 직업의식의 출발이다. 외국은 의원 서포트 조직이 많다는 반론이 있는데 거짓말이다. 국회 법제예산실에서 예산정책 분석해 주고, 상임위마다 7~8명이 서포트한다. 당에 전문위원도 있다. 국회 전문번역관도 있다. 행정부처 국회담당 직원이 많다. 수단이 즐비한데 의원 대부분이 이용 방법을 모를 뿐이다. 일을 맡기는 의원이 없는데 실적을 올려야 하니, (의뢰받으면) 국회 직원들이 좋아한다. 어쩌다 이용할 때도 보좌관을 시킨다. 한 다리 건너니 일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직업의식의 실종이다. 시의원, 도의원과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거의 같다. 법안 발의 경쟁 속에서 계류 안건이 1만1000건이다. 유사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해도 행정부가 다 답해줘야 된다. 이 중 10%도 통과 안 된다. 자기가 낸 법안을 기억 못하는 의원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으로 국정감사 우수의원을 선정한다 하니 국가적 낭비다. 국회의원이 신분상승 누리러 온 줄 아는 이가 절반 이상 같다. 지역구 예산 따기 말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속한 국방위만 해도 1월에 상임위 잠깐 열고 6개월 이상 회의가 없었다. 국민 볼 면목이 없어야 하는데 ‘회의하자’는 의원이 없다. ‘나중에 정기국회 때 계류안건들 하루에 몇 십 개씩 처리하면 되지, 안 해도 되는 회의 하느냐’는 공모가 된 것이다.”

윤 원내대표의 진단도 비슷한 맥락이다. “(의원과 정당은) 정책과 정치적 활동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 여서는 안 된다. ‘이래서 국회의원이 필요하구나’라고 실감하도록 국민의 삶을 여의도로 잇게 만드는 정치여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총력


▎윤소하 원내대표(왼쪽 둘째)와 이정미 대표(가운데) 등 지도부를 필두로 정의당은 향후 선거구제 개편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막스 베버는 ‘신념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를 말했다. 김 의원은 “신념의 윤리는 어렵지 않다. 한국 사회는 오히려 과잉이다. 어려운 것은 책임의 윤리”라고 규정했다. 정의당 의원들은 하나같이 “대중정당”을 내걸었다. 심 의원은 실제로 박수 한 번을 치더니 “지금의 이 박수(지지율)를 표로써 받으려면 국정 능력이 있느냐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지지율이 유의미해지려면 의석수로 연결시키는 것이 필연이다. 정의당도 2020년 총선에 당의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지형에선 정의당이 불리한 구조다. 이를 알기에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이 대표는 “정의당을 위해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의원 300명 중 20, 30대는 두 명뿐이고 법률가가 다수다. 대다수 국민의 일상적 삶과 얼굴을 닮은 국회가 아니다. 청년, 여성,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 얘기 하는 곳 아니야’란 불신이 가중됐다. 정당정치의 정상화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윤 원내대표도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상식이다. 이번 지자체 서울 시의원 선거(정당투표에서 10%의 지지를 얻고도 시의원은 1명 당선)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이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지역구 200명, 비례대표 100명으로 이미 제안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도 의회의 비례성 강화에 관한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교섭단체 원 구성 때 “상임위원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정치개혁특위위원장 자리를 달라”고 할 정도로 선거구제 개편에 애착을 보였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동안 말도 못 꺼내게 하던 자유한국당도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의당의 기대 섞인 인식이다.

정치개혁특위위원장을 맡은 심 의원은 2017년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발의했다. “비례성이 실현되는 수준이 되려면 2(지역구) 대 1(비례)은 돼야 개혁의 의미가 있다.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지 않고 의석 수를 360석으로 늘리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을 무턱대고 백안시하지 말고 의회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의 동의가 관건이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만 된다면 정의당의 인재 영입도 대폭 늘어날 것이란 시각이다. 물론 김종대·추혜선 의원이나 서기호·박원석 전 의원 등 영입 케이스가 있지만 정의당은 기본적으로 내부에서 육성한 인물을 절차에 따라 후보로 올렸다. 이 대표조차도 국회의원이 되는 데 13년이 걸렸다. 그러나 정의당이 20석 이상 얻기만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심 의원은 “그동안 우리 당은 룸이 작았다. 선거제도가 바뀌면 자발적으로 참여가 따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결국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는 ‘포스트 노회찬 시대’에 관한 우려와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심 의원은 “과거처럼 독재에 맞서 싸운 영웅적 커리어를 만들 순 없다. 이제 인물정치, 명사정치가 아니라 비전과 정책 중심의 현대적 정당정치가 정도(正道)”라고 밝혔다.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부제 ‘스웨덴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만나다’)]의 저자인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의당 의원들이 이곳을 찾아 토론하고 지식을 공유한다”고 전했다. 최 교수가 정책자문을 겸한 강의를 한 적도 있다. 최 교수는 그 내용의 일부를 들려줬다. 어찌 보면 스웨덴의 정치 구조는 정의당의 이상향일 수 있다.

정의당의 이상은 스웨덴 사민주의


▎심상정 의원(오른쪽)과 추혜선 의원은 스웨덴을 방문해 사민당의 성공 원인을 학습했다. 심 의원은 범(汎)진보 진영 중 정의당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다. / 사진:연합뉴스
스웨덴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은 SAP라고 칭한다. ‘스웨덴 노동자 당’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노동자 정당이다. 노동자 정당에서 내놓은 정책이 사민주의다. 결국 SAP는 노동자·저소득층·소외계급의 이익을 반영한다. 생활정치를 일상화하고 특권을 배제한다.

SAP의 궤적은 곧 스웨덴 정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의 산업화는 유럽에서 늦은 편에 속한다. 후발주자인 독일보다도 더 늦었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정치 조직화도 지연됐다. 이는 곧 사민주의가 뿌리 내릴 토양이 처음부터 탄탄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늦은 만큼 노동운동과 사민주의가 두 바퀴처럼 동시에 움직였다. 1889년 SAP가 창당됐다. 1898년 중앙노동단체인 노동조합총연맹(LO)이 만들어졌다. 이 두 세력이 결합됐고, 남성 투표권과 여성 투표권이 차례로 보장됐다. 1914년 총선을 통해 SAP는 스웨덴 제1당이 됐다. 그 아성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유럽 전역에 우경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상황에서 스웨덴의 SAP는 사민주의의 보루처럼 여겨지고 있다. 실제 SAP는 100년에 걸쳐 야당연대에 밀린 적은 있었어도 총선에서 단일정당 중 최다 득표를 못한 적이 없다.

최 교수는 SAP의 집권 비결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로 노동자·하층민·소외계급 등을 포용했다. 최소 30%를 보장하는 콘크리트 지지 기반인 셈이다.

둘째, ‘기득권’과의 타협이다. 초기의 과격한 노동운동에서 탈피해 법 테두리 안에서의 비폭력을 지향했다. 지금도 스웨덴은 발렌베리 가문 같은 재벌 체제가 인정되고 있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 에릭슨을 비롯해 항공·방위산업체 사브와 스웨덴 2위 규모의 은행까지 소유한 발렌베리 가문은 국내총생산의 약 3분의 1을 책임진다.

셋째, 노동자의 조직화다. 이미 1910~20년대에는 30~40%의 노조 조직화가 돼 있었다. 이것이 1940년대 80%에 진입했다. 노동운동의 정치화가 성숙화된 것이다. 반면 한국은 10%만이 노조화돼 있다. 이 10%의 노조는 강성 이미지가 강하다. 집단이익에 골몰한 ‘귀족노조’란 비판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심 의원도 스웨덴을 다녀왔다. 의원 사무실 서재에 북유럽 정치 관련 서적들이 눈에 띄었다. 심 의원은 “한국은 스웨덴과 영미식 모델의 혼합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인정하나 시장 만능주의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들렸다.

민주노총 딜레마·민주당 딜레마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14년 7월, 문재인 대통령(왼쪽)은 연대를 이뤘던 노회찬 당시 동작을 보궐선거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다. 협력과 긴장 사이에서 집권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은 정의당에 민감한 이슈다. / 사진:연합뉴스
정의당의 꿈과 별개로 일각에서 지적하는 한계론도 견고하다. 지금의 지지율도 고 노 의원 추모 열기가 끝나면 한풀 꺾일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정치학 박사인 전계완 정치평론가의 분석에 따르면 정의당의 확장성을 위협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갈래로 집약된다.

첫째, “정치시장에서 대중이 선택할 조건을 갖추었느냐는 점에서 정의당이 아직까지 노동자계급만 대변하는 계급정당이라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이에 관해 심 의원은 “민주노총 베이스로 창당됐지만 지금 정의당은 보편적 시민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양대 노총 등 노동자 조직과 연대하지만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에서 정의당은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노총과의 관계 설정에 관해 정의당의 한 인사는 “심상정 대표 시절, 노동조합 정당이 아닌 비정규직 정당이란 정체성을 확립했었다. 그때 노동계와 소원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분명한 점은 정의당 절대다수 구성원은 노조를 향한 프레임을 ‘강성·귀족노조’가 아닌 사회안전망 부재 등 시스템의 문제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당의 모 의원은 “민주노총이 정의당에 내는 후원금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계완 평론가는 “인물 면면을 보면 심 의원, 이 대표, 김 의원, 추 의원, 윤 원내대표는 발군의 실력을 갖췄다. 그러나 당의 (구조적·태생적) 한계를 개인기로 돌파하고 있다. 정의당은 계급정당과 대중정당 사이의 양자택일에 놓여 있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후원금, 정치자금 구조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대중정당으로 가긴 어렵다. 시민사회-영세 자영업자-민주노총의 영역에 동등한 권한을 주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가 민주당과 경쟁하는 대안정당이 될 수 있는 관건”이라고 바라봤다.

둘째, 민주당과의 협력과 경쟁 사이의 ‘경계 짓기’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꺾이면 범(汎)진보에 속하는 정의당도 영향을 받는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이 정의당으로 유입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치다. 여의도에선 “민주당·정의당 공동여당”이란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계층적·이념적으로 볼 때 정의당의 잠재 지지자들은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 더 많을 것이다. 이를 두고 전 평론가는 “냉정히 말하면 정치적 공생관계”라고 규정했다. 이런 비판을 깨려면 “정의당이 총선에서 민주당과의 연대나 단일화 없이 지역구에서 당선될 수 있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핵심은 다음 총선(2020년)이다. 노회찬·심상정 의원이 (정의당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데는)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도 지역구를 뚫는 불가능을 이뤄낸 덕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대표는 인천 연수구, 김 의원은 청주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 대표는 “‘진보정치 4.0’이란 1년 기간의 청년아카데미를 마련한다. 청년층의 정치 불신 해소에 머무르지 않고 참여로 이끌겠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업 정치인을 원하는 이가 나오면 당이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 의원은 “지지율은 일기예보와 같다”는 말을 했다. 오늘 맑아도 내일 비가 올 수 있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정의당 현상이 ‘어제 내린 눈’으로 끝날지, 단단하게 굳어질지에 관한 물음에 관한 대답은 그들 안에 있을 것이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의 경구처럼 ‘오직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는 길’이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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