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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레이더] 새 경기부양 열쇠 ‘생활 SOC’ 효과 날까 

‘보편적 복지 해법은 SOC사업에 있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적폐’로 몰렸던 건설·SOC 투자, ‘생활밀착형’ 카드로 예산확대 결정…공공부문 투자 확대 ‘구원투수’ 삼아 한계 부딪힌 경기부양책 보완해야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사회간접자본시설(SOC) 예산을 대폭 늘렸다. SOC 예산에는 ‘생활밀착형’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4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을 방문해 ‘대한민국 국민생활 SOC 현장방문’ 행사에서 생활SOC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노동자의 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 부의 재분배를 통한 노동소득 증가가 소비를 촉진하고, 이는 기업의 생산과 투자를 증가시키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인건비가 상승하자 고용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업률 통계를 통해 뚜렷하게 나타난다. 2017년 말 실업률은 3.3%에서 올해 8월 4%로 올랐다. 경기 침체로 소비 위축과 생산 증가가 불확실해지면서 경제성장률은 2%대로 하락할 전망이다. 경제성장과 고용 확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새로운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과거부터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 대안으로 꼽혀온 게 건설 분야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건설과 사회간접자본시설(SOC) 분야는 개선해야 할 적폐(積弊) 중 하나로 치부돼 온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매년 SOC 예산이 삭감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최근 의미심장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역밀착형 생활 SOC’라는 신조어의 등장이다.

지역밀착형 생활 SOC란 용어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고속도로나 철도 등 전통적 인프라와 달리 도서관이나 체육시설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설, 또는 산업단지 등과 같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SOC쯤으로 정의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지역밀착형 생활 SOC 분야에 지난해의 두 배 가까운 9조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지방자치단체 예산까지 포함하면 약 12조원이 생활밀착형 SOC라는 명목으로 투자될 전망이다.

건설은 적폐라더니 ‘생활 SOC’ 카드 제시


정부가 이렇게 갑자기 ‘생활 SOC’를 들고 나온 배경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취업률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통계 지표상의 고용 촉진을 위해선 SOC 투자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즉 SOC는 부정적이지만 경기 부양을 위해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딜레마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꺼낸 카드가 ‘생활 SOC’란 것이다. 더 나아가 건설을 억제하면서도 ‘공공’을 명분으로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을 펴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SOC 투자를 외면해 온 정부가 결국 SOC 투자 확대로 정책의 뱃머리를 돌린 것일까? 불행하게도 통계를 보면 그렇다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 2018년도 정부의 SOC 예산은 19조원으로 전년도보다 20% 가까이 축소된 바 있다. 2019년에는 감소 폭이 줄었으나 SOC 예산은 18조5000억원으로 여전히 감소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2016~2020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SOC 투자 예산은 연평균 6%씩 감축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그렇다고 해도 (생활밀착형이란 전제를 두긴 했지만) SOC를 내년도 주요 추진 정책으로 내건 정부의 태도 변화는 향후 공공부문의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감에 불을 지피는 게 사실이다.

공공건설투자는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우리나라는 복지 분야가 취약해 당장 꼭 필요하지 않은 SOC 예산을 복지 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존재한다. 물론 서구에 비해 복지 분야 재정이 아직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OECD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은 평균 20%에 달한다. 미국이 15.9%, 일본 20.6% 수준인 반면 한국은 7.5%에 불과하다.

비단 복지 예산만 적은 게 아니다. SOC 상황도 복지 이상으로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도로 길이는 2.1㎞인데 이는 미국 20.8㎞, 일본 9.4㎞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OECD 30개국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차량 1000대당 도로 길이도 5.9㎞로 일본(15.8㎞)과 비교할 때 매우 낮다. 그동안 과도한 SOC 투자로 이미 수요가 충족됐다는 지적과 달리 통계 지표로는 아직도 잠재적인 SOC 수요가 높은 게 사실이다.

더구나 정부가 경제성장률 목표를 달성하려면 SOC 투자 확대는 중요한 수단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 지출 1조원당 성장률 증가 효과는 인프라 부문이 0.078%포인트로 공공행정·교육·보건의료 등 다른 분야보다 월등히 높다. 미국 경제자문회의 2016년 보고서는 인프라 투자의 승수효과가 1.54 수준으로 경제 전반의 생산 증대를 추구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진단했다.

외국에서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격적인 인프라 투자가 주요 정책 수단으로 꼽힌다. 일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향후 10년간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공약했다. 또 건설투자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액공제율 82%의 인센티브를 제시하는가 하면, 해외 유보금에 부과되는 세금의 10%를 인프라 투자에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제창한 아베노믹스도 양적완화와 대규모 건설투자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20조 엔을 투자하는 ‘국토강인화계획’을 수립하고 21세기형 인프라 정비사업을 2016년부터 추진해 오고 있다.

현 정부가 인프라 투자에 인색한 이유는 성장의 과실이 일부에게 집중된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건설 주체인 건설사와 개발로 인한 토지 가격 상승으로 지주들의 배만 불린다는 부정적 인식이다. SOC와 건설은 정말 부의 편중을 부채질하는 적폐일 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정서적 거부감일 뿐 각종 지표와 통계, 연구 결과들은 오히려 SOC 투자가 경기 침체기에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소득 창출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는 결론으로 모아진다. ‘SOC야말로 최고의 복지’라는 단언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객관적인 지표들이 증명한다.

건설업의 생산유발계수는 2.225로, 산업 전체 평균(1.891)보다 월등히 높다. 건설업의 고용 및 취업유발계수도 각각 10.2, 13.9(명/10억원)으로 산업 평균을 웃돈다. 이 계수를 적용하면 SOC 투자 1조원당 신규 취업자 수는 1만4000명에 이른다.

SOC 투자 확대와 더불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하도급자와 근로자 보호정책이 가미된다면 적정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기대할 수도 있다. 또 SOC 투자의 약 40%가 건설자재나 설비 분야에 파급되는데, 이는 관급자 재 구매 확대 등으로 적정 가격에 생산 유발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SOC 투자 확대는 사회적 불평등을 축소하는 데도 기여한다. SOC 투자의 분배 효과는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로 확인할 수 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화됨을 의미한다.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인프라 투자를 1% 늘릴 경우 지니계수는 0.6% 낮아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적용해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추정한 결과, 앞으로 5년간 50조원의 인프라 투자가 이뤄질 경우 지니계수는 4.3% 하락해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란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 민간 건설경기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럴 때 정부나 지자체의 공공건설투자가 더욱 필요하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지출한 금액보다 많은 수요가 창출되는데, 이를 경제학에서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라고 한다. 공공투자는 승수효과가 커서 고용 창출이나 경기 조절 수단으로 유용하다. 따라서 민간의 경기 침체기에 공공투자를 확대하면 그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무상복지 포퓰리즘의 대안 ‘워크페어’ 주목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 과거 40년간 건설투자의 순환변동 추이를 보면 공공과 민간 부문의 경기순환 주기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민간에서도 주택과 비주택의 순환변동 주기가 거의 동행하고 있다. 민간 건설경기가 침체할 때 공공건설투자도 동시에 축소되는 문제가 되풀이돼 온 것이다. 이는 공공투자의 경기 조절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못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건설경기가 극심한 과열과 깊은 침체의 냉·온탕을 오가며 건설산업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건설경기 변동을 최소화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민간과 공공의 투자가 서로 역(逆)사이클 형태로 순환 변동주기를 갖는 게 이상적이다. 즉 민간 경기가 침체할 때 정부가 재정투자를 늘려 승수효과를 추구하고, 민간이 활성화됐을 때에는 공공투자를 억제해 경기 과열을 방지하는 방식이다. 민간의 순환 주기에 맞춰 대형 공공 공사의 발주 시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한 일이다.

최근 들어 무상복지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면서 ‘워크페어(workfar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work)과 복지(welfare)의 합성어인데, 우리나라에선 근로복지, 노동복지, 생산적 복지 등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이 개념은 영국에서 1970년대 말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도입됐다. 복지제도를 남용해 개인의 노동 의욕을 상실하거나 무상복지에 의존하는 경향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워크페어를 실현하기 위해 당시 영국 정부는 생활비나 의료비 지원 등의 복지 수급자에게 일정한 취로(就勞)를 의무화했다. 노동에 대한 대가로 복지비용을 지출해 실업자의 정신적 자립을 유도하고 동시에 취로 경험을 통해 기술·기능을 익히도록 하는 게 정책 목표였다.

워크페어가 주목 받는 이유는 포퓰리즘성 무상복지가 정부 의존도를 심화시켜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편성한 2019년도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은 162조원으로 전체 예산의 35%에 달한다. 이 가운데 기초연금 예산은 올해보다 26% 증가해 11조5000억원 규모다.

워크페어 적용을 위해선 SOC 분야의 투자가 제격이다. SOC 투자의 복지 혜택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돌아간다. 서민의 고용 창출과 더불어 일용직 근로자에게 새로운 기술과 기능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때문에 사회안전망 기능도 한다.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로 건설에 투자하면 교통 정체에 따른 국민의 경비 부담을 낮춰줄 수 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 정체를 비용으로 환산해 보자.

경부선의 1일 이용자는 10만 명 수준, 천안~수원 구간은 일평균 30분 정도 지체된다. 공회전에 따른 연료비로 환산하면 연간 약 600억원, 30년간 약 2조원의 연료비가 꽉 막힌 도로에서 허공에 뿌려지는 셈이다. 또 지·정체에 따른 시간 낭비를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30년간 약 5조원의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는 셈이다. 만약 제2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다면 7조원의 비용이 들더라도 이는 30년간 차량 지·정체로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을 아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SOC 투자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SOC 투자를 철도나 도로 등 대규모 국책사업만 연상하는 건 착각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대비하려면 하천 복원과 방재, 공원, 가로 정비, 건물 보수 등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SOC 투자도 매우 중요하다.

서민 복지 향상을 추구한다면 도심 외곽의 주거환경 개선도 중요한 정책 과제다. 노후 주택이 밀집된 상태에선 생활편의시설 부족과 방범·방재 취약 등 생활환경에 위협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1가구 1차량이 보편화되면서 주차장 확보가 어려운 단독·다가구주택 밀집지역에 초등학교 운동장 지하를 활용하거나 주거밀집지역 내 공터를 매입해 주차 공간을 만드는 것이나 노후 불량주택 개선을 위한 주거환경개선자금 확충 등도 모두 SOC의 범주에 속한다.

생활형 복지를 추구한다면 구(舊)도심 재생도 시급한 정책 과제다. 신도시 개발이 확대되면서 구도심의 슬럼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낙후된 구도심을 개조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노후 주택 개·보수, 주민지원센터·근린공원·역세권 활성화, 가로 정비, 혐오시설 이전, 도심 하천 복원 등 다양한 사업이 거론될 수 있다.

생활형 복지 향상 위해 구(舊)도심 재생사업 시급


▎차량들로 꽉 막힌 주말의 서울춘천고속도로. 계획 당시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수익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됐지만 개통 이후 하루 2만 대가 넘는 교통 수요를 달성했다. / 사진:연합뉴스
지역 특성에 맞게 전통문화 관광지구 개발이나 특화거리 조성, 역사문화시설 복원, 친환경 마을 조성 등 콘텐트를 담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이나 영국 등 선진국의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를 가보면 생활환경이 잘 정비돼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이가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나 농촌의 생활환경은 어떤가. 도로가 제대로 닦여 있지 않거나 각종 편의시설 부족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돼 있다.

‘장 보러 읍내 간다’는 옛날 생활방식의 틀이 아직도 지방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은 생활환경의 정비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제2의 새마을운동 수준까진 아니어도 농어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생활환경 정비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도시재생사업을 위해선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 혼자 힘으론 부족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과거 안전에 소홀한 나머지 막대한 인명피해를 낸 참사를 우리 사회는 반복해서 경험해 왔다. 안전에 대한 투자야말로 인색하지 말아야 할 분야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도로나 교량 등 대규모 SOC를 유지 관리하기 위한 투자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국가나 지자체의 재정 상태를 고려할 때 SOC 시설 유지 관리와 갱신을 위해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설물 유지·보수에 대한 투자는 미룰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시설의 노후화와 수명 단축이 빨라지면 안전 위험이 비례해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1920~30년대에 대규모 사회기반시설이 구축됐으나 개·보수가 적기에 이뤄지지 못했다. 이는 1980~90년대에 수백여 개의 교량이 무너지는 참사로 이어졌다. 이후 미국은 SOC 시설 개·보수에 연간 250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지만 적기를 놓친 후유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재정이 부족하다면 민간투자를 적극 유인할 필요가 있다. 준공 후 40년이 넘었거나 대규모 구조 보강이 필요한 시설물은 민간투자를 활용해서라도 신속히 개·보수가 진행돼야 한다.

일부에선 SOC 사업에 대한 타당성 평가 결과를 들먹이며 사업성과 시급성이 없는 SOC 사업이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현 시점의 수요만으로 SOC 투자의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SOC 사업의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도구로 예비타당성 평가제도가 있다. 그런데 타당성 분석 과정을 보면 현시점의 수요가 중심이고, 미래의 수요나 사회환경 변화는 간과하는 경향이 높다. 일례로 30년 전부터 대선 단골 공약이었던 춘천~속초 간 동서고속철도 건설사업의 경우 세 차례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SOC 사업은 현재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


▎SOC는 경기 회복을 위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또한 일자리를 창출해 포퓰리즘성 무상복지 논란을 피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지난해 겨울 부산시 초량동의 일일취업안내소에서 구직자들이 새벽부터 나와 번호표 추첨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시점의 수요를 토대로 한 타당성 평가의 부실함을 방증하는 또 다른 사례로 춘천~서울고속도로가 있다. 이는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돼 결국 민자로 건설됐다. 그러나 개통하고 보니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와 반대로 춘천~서울고속도로의 1일 평균 교통 수요는 2만 대에 달한다. 추가 확장 없이는 고속도로로서 기능하지 못할 정도 교통량이 폭주한다. 경춘선 전철의 경우도 복선으로 개통된 이후 철도 이용 수요가 4배 이상 증가했다. 청주국제공항도 그동안 수요 예측이 잘못된 대표적 사례로 회자됐지만 이제는 연간 이용객이 2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단순히 현시점에서 비용편익(B/C) 분석에 의존하기보다 교통 인프라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효과를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SOC 투자는 미래 수요를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적절한 투자 시기를 놓치면 토지보상비 등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제대로 된 사업을 진행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비용편익 분석 결과만 갖고 사업 추진을 결정한다면 지역별로 편중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비용 대비 편익이 낮은 강원이나 호남 등의 상대적 낙후 지역은 더 낙후될 것이다. 경제성도 중요하지만 지역 균형발전의 시각도 무시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OC 투자를 확대하려 하면 어김없이 ‘삽질’이니 ‘토건족’ 등의 비아냥과 비난이 쏟아진다. 막연한 부정적 인식에 기대어 무분별한 비난을 쏟아내기보다 생활환경 개선과 서민 복지, 공공의 이익 재분배라는 측면에서 SOC 투자의 효용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SOC 과잉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현재 SOC 충족률이나 지역 균형발전 등을 고려하면 SOC 투자가 지속돼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거듭 강조하건대 투자를 결정할 때에는 현시점보다 미래 수요를, 가급적 투자 시기는 앞당기는 것이 사회적 낭비를 줄이는 길이다. 나아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포퓰리즘성 무상복지의 대안으로서 근로복지(워크페어) 형태의 SOC 투자 정책에 대해서도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공학박사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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