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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리포트] 11월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의 세계경영 포석 

동맹국 모질게 손봐서 적대국 누른다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미국의 대테러 전쟁 도운 터키 경제 흔들어 중·러·북에 공포심 유발…세계무역기구는 물론 유엔 탈퇴로 자국 이익 일방적 관철하려 들 수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거 냉전 시절의 어법을 되살려 자신을 방어하는 정치인으로 미국인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Whataboutism’.

최근 미국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관용어다. 30여 년 전에 탄생된 신조어로 간단히 풀이하자면 ‘너는 또 어떻고?’란 의미로 통용된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1990년 대에 등장한 유행어로, 상대를 비난할 때 첫마디로 사용되는 ‘What about~(그건 또 어때)’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중세 이래 사용된 라틴어 ‘투 퀘퀴(Tu quoque: 너도 마찬가지잖아)’의 현대판이라 볼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자주 부딪히는 ‘Whataboutism’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A_1주일 내로 빌려준 돈을 갚겠다고 약속했는데 벌써 2주가 흘렀다. 어떻게 된 거지?

B_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 정도 갖고 그래. 너도 옛날에 은행 원금 한 달 이상 연체한 적 있잖아!

어린애 말싸움처럼 보이는 유치한 대화다.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어지러운 일상사의 한 부분에 불과 한데 어떻게 해서 20세기말 옥스퍼드 사전 신조어에 끼일 수 있었을까?

일당독재 공산국가 소련 덕분이다. 1970년대 냉전 당시 미국이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십중팔구 ‘What about~’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래 너도 흑인들을 무차별 짓밟았잖아(And you are lynching Negroes)”라는 말은 당시 미국인 모두가 기억하는, 소련 정부의 반복된 메시지 중 하나다. 인권단체나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거론하면 “너희들은 흑인을 노예로 삼고 죽이고 짓밟았으면서 누가 누구한테 설교를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 소련 측의 공식 반응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폭정이나 잘못에 대한 시정은커녕 언급 자체가 없다.

소련의 ‘Whataboutism’에 대해 이유 있는 항변이라 믿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의외로 세상에는 ‘물귀신 작전’을 신봉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성적·상식적 판단이라면 옳지 않다. 과거의 얘기와 현재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궤변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흑인 인권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100년도 넘은 과거에 일어난 일인 데다 현재 벌어지는 국가적 차원의 조직적인 탄압과 전혀 무관하다. 정치가나 공직자가 인종차별 발언을 할 경우 한순간에 날아간다.

2018년 가을의 때아닌 ‘Whataboutism’


▎2012년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인권운동가들이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소련은 다르다. 국가가 직접 나서 개인적·집단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 자유와 인권을 탄압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정이다. ‘너도 마찬가지잖아’라는 말은 궤변인 것은 물론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자신이 행하는 현재 진행형으로서의 잘못을 숨기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흥미롭게도 소련의 ‘Whataboutism’은 이념 형제국 중국으로 넘어간다. “너희들은 인디언을 마구 죽이고 마음대로 짓밟았잖아!(And you are lynching Indians)” 미국이 티베트 탄압, 인권 문제를 거론할 때 등장하는 중국식 앵무새 반응인 ‘Whataboutism’의 핵심이다.

소련도 사라진 21세기 미국 미디어에서 왜 또다시 ‘Whataboutism’이 화제가 되고 있을까? 소련에서 배운 프로파간다 궤변이 미국 정치가들에게 답습됐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정치 무대에 ‘Whataboutism’을 끌어들인 대표적인 정치가다.

기자_러시아 스캔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트럼프_소설 쓰지 말라. 힐러리 클린턴의 전자우편으로 인해 국가 정보가 통째로 외국에 넘어간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민주당 지지자_트럼프의 여성비하나 섹스 스캔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트럼프_웃기는 소리하지 말라. 클린턴의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 잊었느냐? 나는 적어도 백악관 안에서 인턴은 안 건드린다.

국제정치학자_북한 비핵화에 대해 아무런 결과도 없이 김정은과 사진만 찍는 쇼이벤트로 끝났는데?

트럼프_무슨 소리냐? 버락 오바마를 봐라. 북핵을 어정쩡하게 대하면서 돈으로 채우다가 지금 이 상태까지 온 것 아니냐? 나는 돈도 전혀 안 줄 뿐 아니라 대륙간탄도탄미사일(ICBM) 실험도 막았다.

2018년 가을의 ‘Whataboutism’은 미국 정치 무대만이 아닌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사실 ‘Whataboutism’은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트럼프 등장과 함께 ‘Whataboutism’이 폭증하고 있기는 하지만 트럼프 혼자만이 원인 제공자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모바일 시대의 나르시시즘이 ‘Whataboutism’ 재탄생 배경 중 하나일 듯하다. 세상 아니 우주의 주인공인 이상, 그 어떤 비난이나 비판에도 맞설 논리나 정당성으로서의 ‘Whataboutism’이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던지는 명분이자 핑계가 ‘Whataboutism’이다. 미국 대통령도 ‘Whataboutism’에 질주하는 판인데, 다른 나라라고 해서 마다할 이유는 없다. 냉전을 훌쩍 지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21세기지만 미국을 상대로 한 ‘Whataboutism’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과거 소련이 미국에 대해 ‘Whataboutism’을 남발했던 것처럼 미국의 언행 하나하나에 ‘Whataboutism’이 따라붙는다. 소련 모스크바 크레믈린 발 ‘Whataboutism’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치인은 물론 국민들조차도 미국에 대한 ‘Whataboutism’을 연발한다.

미국_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테러 행위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이슬람권역_우리를 비난하기에 앞서 관타나모 이슬람 용의자에게 행한 잔인한 고문에 대한 진상부터 밝히고 사과해라.

미국_미국 상품에 대해 적용되는 중국 측의 불공정한 관세를 당장 낮춰라.

중국_관세 운운하기에 앞서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부터 멈춰야 한다.

한국발 ‘Whataboutism’은 자기 합리화 도구?


▎‘프라하의 봄’을 무력으로 제압한 소련의 탱크. 당시 미국의 비난에 소련은 미국의 흑인 노예 시절을 들이대며 반박하곤 했다.
미국을 상대로 한 ‘Whataboutism’은 한국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 속담의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심정으로 미국을 대한다. 미국의 반대나 지적에 맞서 ‘자기들은 더하면서’라고 정면대응하는 식이다. 정치가, 나아가 국민 모두에 침투된 한국적 ‘Whataboutism’의 가장 큰 근거는 반(反)트럼프 정서다. 한국 내에서 터져 나오는 자생적 반트럼프 정서도 있지만 대부분 미국에서 불어오는 반트럼프 정서를 ‘Whataboutism’에 적당히 접목시켜 한국의 입장을 정당화시켜 나가는 식이다.

미국이 남북 철도 개통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는 의견을 제시할 경우, 트럼프가 얼마나 허풍쟁이에다 거짓말쟁이인지에 대한 미국발 뉴스가 그 즉시 이어진다. 트럼프가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발표하면 곧바로 인상에 따른 우려와 미국인의 비난이 워싱턴발 뉴스로 등장한다. 트럼프나 미국이 뭔가를 하려고 하는 순간 미국 내 반트럼프 분위기를 통해 재를 뿌리는 식이다. ‘Whataboutism’의 기본적 효용이 그러하듯, 뭐 묻은 개를 비난하면서 자신에게 묻은 뭐는 무시하는 식이다.

한국발 ‘Whataboutism’은 아직까지는 효과를 발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가 아닌 미치광이 개인 트럼프로 보는 시각이 한국발 ‘Whataboutism’의 튼튼한 토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문·방송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반트럼프 기사를 배경으로 한국인 대부분이 ‘Whataboutism’의 근거와 명분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Whataboutism’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와 맹점에서 알 수 있듯이 ‘뭐 묻은 개’라고 비난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묻은 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연일 보도되는 반트럼프 정서의 근본은 40%대에 달하는 트럼프 지지자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한, 일방적 목소리에 그친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리버럴 미디어가 지배하는 도심부 내 친민주당의 생각이 마치 미국 전체의 생각인 듯 한국 내 무차별 수입된다.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확립해 나가는 나라다. 당연하지만 ‘미국=완벽한 민주주의 국가’ 자체는 아니다. 어디든 문제가 있기 마련하다.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해도 미국이 갖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과제일 뿐이다. 폭압 강권이 아니라 모두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공산독재국가 중국에 비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 같은 자체 정화 과정에서 반트럼프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한국발 ‘Whataboutism’은 전체가 아닌 듣고 싶고 보고 싶은 뉴스에만 근거한 책임회피, 자기 합리화의 도구일지 모른다. 트럼프와 미국의 전부가 옳다는 것이 아니다. Whataboutism’을 내세울 경우 보다 정확하고 상식적이며 일상적인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세계에서 펼쳐지는 ‘Whataboutism’은 미국을 기존의 행동 패턴과 다른 나라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등장하는, 예측불가, 내로남불, 일방통행, 동맹 무시, 경제 우선 스타일의 미국 외교다. 변화의 원인을 트럼프 개인 캐릭터로 돌리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필자는 다르게 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해도 현재 벌어지는 변형된 미국 외교를 실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가 나타나서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해 트럼프가 등장한 것이다. 그 결과 현재와 같은 다른 얼굴의 미국이 나타난 것이다. 트럼프 하나만 사라지면 미국이 버락 오바마 시대로 돌아갈 것이라 믿을 수도 있지만 착각일 뿐이다. 엄청난 기술적 진보와 진화 덕분이기도 하지만 세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한순간에 변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 같은 시대적 변화를 남보다 빨리 이해한 뒤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다.

전쟁, 권위 그것도 아니면 돈으로 제압하는 미국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WTO 통상장관회의. 미국 정부 일각에서는 WTO 탈퇴론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을 뭐 묻은 개로 보는 ‘Whataboutism’은 미국의 ‘말발’을 서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상품에 이어 인권·자유와 같은 미국발 가치관도 잊혀지고 무시된다. 10대 자식이 부모의 약점을 찾아내 훈계에 나선 아버지를 공격하는 식이다. 존 웨인 카우보이 스타일의 원래 미국이라면 전쟁이나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미국의 외교 전반이 수정된다. 전쟁은 최후에 벌일 최소한 규모의 마지막 선택으로 변한다. 전쟁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오바마가 선호한 대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햄버거를 함께 나누면서 행하는 대화다. 보기도 좋고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만 해결점이 안 보인다. 언제 해결될지 모를 북한의 핵 개발은 그 같은 대화 노선의 결과다. 전쟁은 안 되고 대화는 해결 카드가 될 수 없다. 트럼프는 그 같은 상황에 맞선 새로운 카드를 하나 만들어낸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돈에 관련된 제재다. 중국제 상품에 대한 폭탄 관세, 국가 전체를 상대로 한 경제 제재, 기존에 이뤄지던 경제적 지원이나 협력 중단 같은 것이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식 ‘권위 세우기’의 새로운 카드들이다.

권위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거슬리는 상대를 무기력하게 만들 경우 모든 나라가 미국의 말 한마디에 신경을 몰아세우게 된다. 트럼프 이전의 미국은 그 같은 권위 세우기를 조용히 그리고 비밀리에 처리했다. 한국의 북한 접근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백악관이나 국무성 발표가 아닌 막후에서 조용히 전달하는 식으로 행해졌다.

트럼프는 다르다. 백악관·국무성·국방성만이 아니라 트럼프 자신이 트위터로 직접 전달한다. 좋게 말하면 투명성에 근거한 직접민주주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서론 없이 바로 결론으로 들어가는 파워의 증명 무대이기도 하다. 파워는 영향력을 동반할 때 의미가 있다. ‘Whataboutism’ 시대에 맞서는 미국의 영향력이란 바로 돈이다. 트럼프의 트윗이나 미국 정부의 우려나 경고에 대한 말발이 안 설 경우, 즉시 돈과 관련된 제재에 들어간다. 미국에 대한 입국 금지는 기본이다. 동맹국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다. 아니 동맹국이고 어제의 친구일수록 더더욱 모질게 대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미국은 워싱턴발 제재를 세계 각국에 내던지고 있다.

먼저 9월 9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밝힌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재 방침 뉴스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군의 범죄를 국제 전범으로 처리하려는 ICC의 방침에 맞선 미국의 해법이다. ICC가 미군을 국제 전범자로 몰아갈 경우 ICC에 관련된 모든 것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선전포고다. 2002년 탄생된,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ICC는 미국 영향권 밖의 국제기구다. 123개국이 회원국으로 2015년까지 한국의 송상현 전 서울대 교수가 총장으로 재직했다. 유럽이 주도권을 쥐고 있고, 미국은 회원이 아니다. 볼턴은 미군을 형사소추해 재판정에 세울 경우 ICC에 대한 자금 차단과 관계자에 대한 경제 제재, 미국 입국 금지를 예고했다. 볼턴은 ICC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LO)에 대한 2500만 달러 지원도 중단하겠다고 밝힌다. PLO가 이스라엘을 국제 전범국으로 ICC에 기소했다는 것이 지원 중단의 주된 이유 중 하나다. 미국 자신만이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ICC의 재판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를 분명히 한 것이다.

국가가 개인 상대로 한 징벌적 제재의 효과


▎지난해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에 즈음해 청와대 앞길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내걸렸다. / 사진:연합뉴스
하루 뒤 [뉴욕타임스]를 통해 보도된 중국 정부 요인에 대한 제재 방침도 흥미롭다. 티베트 탄압과 관련해 인권을 무시한 중국 정부 관계자에 대한 입국 금지, 형사적 처벌, 경제 제재가 주된 내용이다. 아직 구체적인 정보는 없지만 가까운 시일 내 티베트 문제에 관련된 중국 정부 요인의 제재 리스트가 발표될 전망이다. 미국이 벌이는 제재는 미국 영향권 밖에 있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미국 영향권 밖의 세계가 과연 얼마나 될까? 신용카드, 비즈니스 거래, 환전과 같은 경제 문제부터 미국 유학이나 방문 심지어 소셜네트워킹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미국의 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실제로 닥치는 손해 그 자체도 크겠지만 미국과 담을 쌓을 경우 생길 정신적·심리적 피해의식이 더 크다.

미국이 벌여온 기존의 제재 방식과 비교해볼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권위 세우기 제재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유엔을 통하지 않는 독자적인 제재란 점이다. 과거 미국은 가능하면 유엔의 권위를 빌려 미국의 의사를 관철하려 했다. 미군 단독이 아닌 유엔군이 투입된 한국전쟁이 그러했듯이 책임을 국제적으로 분산한다는 점에서 유엔 활용론이 대세였다. 그러나 그 같은 흐름은 냉전 종언과 함께 끝난다. 9·11테러 이후인 2002년 11월의 이라크, 최근 행해진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결의안 같은 예외는 있지만, 미국 단독으로 행하는 제재가 최근 나타난 미국 외교의 변화 중 하나다. 미국은 더 이상 유엔을 믿지 않는다. 이미 트럼프가 세계무역기구(WTO) 탈퇴론을 거론하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 유엔 탈퇴론도 가시화될 것이다.


▎8월 11일 이스탄불 ‘전통시장’의 한 환전소에 몰려든 환전 고객들. 전날 외환시장에서 터키 리라화는 미 달러 대비 14% 폭락했다.
둘째는 국가가 아닌 개인 차원의 제재다. 지난 8월 15일 미국 재무부는 대북제재를 위반한 러시아와 중국, 싱가포르 해운법인 3곳과 이에 조력한 개인 한 명에 대해 제재를 부과했다. 유엔 결의안에 따른 후속 조치지만 위반자들의 국가에 대해 이행을 촉구하지 않고 미국이 직접 나서 개개인 차원의 제재를 하는 식이다. 법인의 경우 이름만 바꿔 제재를 피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을 모르는 생각이다. 달러로 이뤄지는 돈의 흐름을 조사해 볼 경우 어디가 유령회사인지 정도는 간단히 찾아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한 번 미국에 찍힐 경우 개인은 물론 법인조차도 지구 밖에서 생활하는 식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행하는 국가 차원의 제재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관세, 수출 금지, 수입 금지, 입국 금지와 같은 크고 작은 제재가 세계 각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특히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 곳은 이란·러시아·중국·북한·쿠바·터키다. 미국에 대한 ‘Whataboutism’은 이들 나라가 갖는 공통분모 중 하나다.

제재를 전후해 여러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 추락과 국제 신용평가의 하락은 기본이다. 자국 통화가 떨어지고 투자도 급감한다. 월스트리트를 통해 달러의 세계화가 건재한 이상 제재의 불이익은 곧바로 현실로 나타난다. 여러 나라 가운데 필자가 주목하는 나라는 터키다. 사실상 미국의 동맹국으로, 멀리는 소련과 러시아 최근에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현재는 IS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을 도와 준 나라다. 터키가 없다면 미군 전투기가 시리아·이라크·이란으로 날아가기 어렵다.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전략 요충지가 바로 터키다.

한국의 반(反)트럼프 정서는 ‘반미 2.0 버전’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개정 협상 중단과 폐기를 촉구하는 집회. 미국이 FTA 협상을 통해 한국에 경고를 보낼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트럼프는 미국인 목사 구금 문제와 관련해 터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두 배 높인다. 현재 진행형이지만 미국인 목사 구금에 관련된 터키 정부 내 인사에 대한 개인적인 제재도 예상된다. 제재의 결과는 터키 리라화의 폭락, 수출 급감, 주식 하락이다. 터키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알루미늄·철강 관세 하나만으로 쓰러질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제재 하나만으로 터키 경제 전체가 흔들거린다. 나아가 터키와 같은 신흥국 통화도 불안해지면서 폭락한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동반한 미국의 파워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이런 행보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전후로 더 가속화할 가능성도 있다.

동맹 수준의 나라조차 제재로 공격하는 것이 트럼프식 정의다. 한국에서 보면 이른바 ‘미친’ 트럼프로 비치지만 40%의 미국인 나아가 침묵의 중산층 지지를 통해 자신의 일방 외교를 적극 확대해 가고 있다. 필자 개인의 판단이지만 트럼프의 행적과 워싱턴 상황을 보면 한국에 대한 ‘부분적인 제재’도 임박한 듯하다.

현재 한국 정부의 미국에 대한 ‘Whataboutism’은 남다르다. 반미(反美)는 사라진 듯하지만 반미 2.0처럼 활용되고 있는 것이 반트럼프 정서다. 거의 포퓰리즘에 가까운 ‘Whataboutism’을 통해 미국의 거듭된 경고와 우려를 무시하고 있다. 북핵을 둘러싼 한미 간 해결 방안의 차이만이 아니라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문제도 곧 닥칠 현안이다. 터키의 예를 통해 볼 때 전면적 전방위적 제재는 아닐 것이다. 국부적·개인적 차원의 제재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 대한 제재를 통해 경고를 주는 식이다.

사실 워싱턴 일부에서는 한국이 트럼프의 제재를 의도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피해자 입장으로, 남북이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미국에 공동 대응할 계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언비어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재가 올지 말지를 논하는 플랜A보다 제재가 닥칠 경우를 상정한 플랜B의 준비가 한층 더 필요하다. 피해가 국민 전체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한미 간에 노출되고 있는 이견은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질 것이다. 한국이 보여줄 카드는 극도로 제한돼 있다. 중국조차 트럼프의 관세 부과로 나라 전체가 휘청거리는 판국이다. 트럼프에 대한 ‘Whataboutism’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견을 좁히든가, 플랜B를 준비해 터키와 같은 재앙을 만나지 않는 것이 현실적 해결 방안이 될 듯하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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