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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살롱] 여성 최초 대한가수협회장에 오른 이자연 

“상당수는 생활고 심각, 권리·복지부터 챙길 터”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4500여 회원 화합 위한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방송출연료, 저작인접권 등 개선 위해 노력할 것

말 많고 탈도 많던 대한가수협회의 ‘구원투수’로 이자연이 나선다. 대한가수협회는 8월 28일 이자연을 제6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여성 가수로는 최초로 회장에 오른 이자연은 “회계 등 살림살이를 투명하게 하겠다. 또 가수들의 복지는 물론 방송출연료 현실화, 방송 출연 표준계약서 의무 사용 등 권리 개선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자연 신임 대한가수협회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협회의 현안을 진단하는 한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5월 김흥국 제5대 대한가수협회장은 원로가수 남진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 수락을 요청했다. 협회 운영을 둘러싸고 집행부 내부에서 고소·고발 등이 난무하면서 대한가수협회가 사실상 집행부 공백 사태를 맞았던 때다.

2006년 대한가수협회 설립에 앞장섰던 남진 초대 회장을 비롯한 원로·선배 가수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차기 회장으로 누구를 세워야 할지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대한가수협회는 순수 친목단체인 만큼 화합과 봉사가 회장의 최우선 자격 조건이다.

그러던 지난 8월 초 어느 날, 원로·선배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생겼다. 20년 가까이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가수분과위원회(대한가수협회 전신 격) 위원장을 지냈던 김광진 대한가수협회 고문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자연이라면 잘할 것 같은데…, 사심 없고 늘 한결같잖아?” 김광진의 50년 지기(知己)인 남진은 무릎을 쳤다. “등잔 밑이 어두웠구나. 자연이라면 잘할 거야. 우리가 돕자.”

2006년 협회 창립 때부터 이사·부회장 등으로 일해 온 이자연. 그는 동료 가수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신임 가수협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자연은 10월 1일부터 3년 동안 대한가수협회를 이끈다. 월간중앙이 여성 최초로 대한가수협회장에 오른 이자연을 만나 가수협회의 현안과 고민 그리고 향후 운영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에는 대한가수협회 김광진 고문과 김원찬 사무총장이 배석했다. 김 고문은 대한가수협회의 전신 격인 가수분과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오랫동안 일했고, 김 사무총장은 저작권·출연료 등 법과 제도적 측면에 매우 해박하다.

“우리는 친목단체… 첫째도 둘째도 화합”


▎2016년 11월 데뷔 30주년 기념공연에서 팬들과 만나고 있는 이자연.
여성 최초로 대한가수협회장이 됐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여러 선배님들이 ‘자연이 네가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12년 동안 협회에서 일했으니까 나만큼 흐름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전임 회장들이 하지 못했던, 실천이 미흡했던 부분들을 꼼꼼히 따져 가면서 일할 생각이다.”

여성이라서 느끼는 부담감은 없나?

“여성이라고 좀 약하게 보는 분들도 더러 계신다. 그래도 알뜰하게 협회 살림을 잘할 것으로 기대하시는 분이 더 많더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드릴 생각이다.”

역대 회장은 어떤 분들이었나?

“남진(초대)-송대관(2대)-태진아(3·4대)-김흥국(5대) 회장이 협회를 이끌어 주셨다. 다들 열심히 하셨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도 없진 않을 것이다. 3년 후 회장직을 마치고 떠날 때 박수받는 회장이 되고 싶다.”

남진·송대관 전 회장의 임기는 2년이었다. 그러다 태진아 전 회장이 2년 임기를 마친 뒤 연임하게 될 때 임기가 3년으로 1년 연장됐다.

이번 협회장 선거에는 단독 입후보해 무투표 당선됐다. 그동안 대한가수협회에 무슨 일이 있었나?

“전임 회장과 일부 임원 사이에 송사 문제로 잡음이 많았다. 국민과 팬들에게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다. 아름다운 하모니도 부족한 마당에 송사가 웬 말인가. 우리는 순수 친목단체다. 명예회복을 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최근 ‘사나이 눈물’ 등 신곡을 발표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가수활동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12년 동안 대한가수협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주차비 한 번 받은 적이 없다. 봉사를 소명이라 여겨왔다. 개인적 희생? 그런 것은 괜찮다. 우리 협회가 잘되고 우리 회원들의 권리와 복지가 향상될 수 있다면 개인 이자연의 작은 희생 정도는 즐겁게 감수하겠다.”

대한가수협회는 무슨 일을 하며, 회원 수는 얼마나 되나?

“다시 말하지만 순수한 친목단체다. 그래서 우리들은 단합이 잘돼야 한다. 한마디로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수들을 위해 법·제도·정책 등의 측면에서 권익도 대변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함께 있던 김원찬 사무총장이 말을 덧붙였다. 김 사무총장은 “회원은 전국적으로 4500명쯤 된다. 가수의 등록 기준은 신곡이 포함된 음반을 낸 사람 그리고 방송국의 심의를 얻은 사람이다. 방송국 심의라는 것은 판매용 음반 또는 음원을 의미한다”며 “저작인접권 단체인 음실련(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에 등록돼 활동하는 사람은 1만 명가량 되지만 음반을 내지 않고도 야간업소 등에서 활동하는 가수들까지 더하면 수는 훨씬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노래방 권리’도 찾아야


▎2011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의 대중가요 전문 공연장 탈바꿈 기념공연에서 이자연(앞줄 왼쪽)이 열창하고 있다. 이자연 옆으로는 조항조·한혜진·성진우.
대한가수협의 가장 큰 고민거리 혹은 현안은 무엇인가?

“창립 초기에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런데 회원이 많이 떠나면서 분위기기 가라앉았다. 화합 차원에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안정이 필요하다.”

이 질문에 대해 김광진 고문의 보충설명이 뒤따랐다. “대한가수협회는 오래전 백년설·현인 선생 등이 회장을 맡아 이끌었던 단체다. 그러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이 문화·예술인을 통폐합하기 위해 예총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가수협회도 한국연예협회로 포함되면서 가수분과위원회로 격하됐다. 그러다 2006년 부활했다. 순수 친목단체로 출발은 좋았는데 최근 들어 잡음이 커지면서 인식이 나빠졌다.”

김원찬 사무총장도 부연해서 설명했다. “대부분의 가수는 음악 관련 종사자들 가운데 을(乙)이다. 권리 찾기가 시급하다. 방송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 출연 표준계약서를 만들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 대한가수협회에서 가수들을 위해 상용화해야 한다. 요즘 지방 케이블TV를 포함해 방송사가 크게 늘면서 가수들의 수입은 되레 줄었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축제까지 TV를 통해 중계방송되면서 가수들이 무대출연료가 아닌 방송출연료를 받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생활 안정화를 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저작권과 관련한 대한가수협회의 입장은 무엇인가?

“가수들이 가장 권리를 찾지 못하는 분야가 저작권이다. 작사·작곡자들은 저작권협회를 통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받고 있다. (히트곡이 꽤 많은) 나도 한 달에 몇 십만 원 정도 받을 뿐이다. 앞으로 대한가수협회가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음원(音源) 사용료, 또 하나는 방송보상금이다. 음원 사용료는 모바일 등에서 노래를 다운받을 경우 가수 몫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스트리밍(streaming)을 기준으로 유통사 40%, 권리자 60% 비율로 수익을 나눈다. 권리자는 제작자(44%), 작사·작곡자(10%), 가수·연주자(6%)로 다시 나뉜다. 방송보상금의 경우 작사·작곡자가 100을 받을 때 가수들은 18을 받는다. 그 18도 연주자와 나눠야 한다. 분배 영역에서 가수들은 철저히 소외돼 있다. 노래 부르는 것이 생업이 될 수 있도록 권리를 찾아야 한다. 또한 방송출연료 현실화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내 대중가요 관련 저작권 단체는 크게 3곳이다. 작사·작곡자들이 속해 있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제작자들이 회원인 한국음반산업협회, 가수·연주자들의 대변 단체인 음실련이 있다. 가수들은 각종 권리 협상과 관련해 음실련이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지적한다.

수익 분배에서 가수들이 소외된 이유가 있나?

“가수들은 노래방에서 자신의 노래가 수만 번 불려도 수익에 대한 권리가 없다. 작사·작곡자들은 자신들의 몫을 받아 가는데 말이다. 대형 노래방 기기 제작사들을 상대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 인기가수는 전체의 1%도 안 된다. 나머지는 ‘반짝이 옷’만 입고 있을 뿐 노래가 생업이 못 된다. 예전과 달리 전국적으로 야간업소 문화가 크게 쇠퇴하면서 많은 회원이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야간업소에만 잘 출연해도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대한가수협회는 회원들의 권리 찾기와 복지 향상, 두 가지를 보고 일하겠다.”

“가수들이 비빌 언덕 만들어 갈 것”


▎여성 가수로는 최초로 대한가수협회장에 오른 이자연. 여성답게 꼼꼼한 살림을 다짐하고 있다.
대한가수협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저 혼자서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다. 전문가와 상의하고 회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선배들의 조언을 겸청(謙聽)하겠다. 모든 일에서 협회가 우선이다. 지금 협회가 무너졌다. 재건하는 게 이자연의 목표다. 재건은 회원들 간의 화합이다. 그리고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회장의 헌신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묻겠다. 어려운 살림을 떠맡는 게 숙명인 거 같다.

“(웃음) 그러고 보니 팔자인가 보다. 내가 막 야간업소 무대에 섰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졸지에 처녀가장이 됐지만 동생 4명을 키워 대학에 보냈다. 돌아보면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협회 일도 마찬가지다. 3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어려운 살림을 맡았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겠다. 선후배님들이 도움을 주실 것으로 믿는다.(웃음)”

김광진 고문은 이자연 회장 선출과 관련한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누구나 아는 중견 인기가수 A씨가 당초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고 한다. A씨는 공교롭게 이자연 회장과는 30여 년 전 야간업소 데뷔 동기다. 이때 김 고문이 이자연을 신임 회장으로 추천하면서 ‘이자연 대안론’이 일었다. 김 고문은 “데뷔 때부터 50년 친구인 남진이도 ‘A보다는 자연이가 백번 낫겠다’며 힘을 실어줬다”고 귀띔했다. 대안론은 금세 대세론으로 바뀌었다.

곧 임기가 시작된다. 회원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가수는 대중의 꽃이다. 꽃은 향기가 있어야 한다. 꽃은 설령 예쁘지 않더라도 열매를 맺어야 한다. 꽃이라면 향기를 주든지 열매를 주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협회는 하모니를 발하는 꽃이 돼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아들딸, 손자손녀가 ‘우리 아버지·어머니, 할아버지·할머니는 훌륭한 가수였다’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협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신임 회장으로서 포부를 밝혀 달라.

“가수라면 누구나 회원이 되고 싶어 하는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명품 대한가수협회를 만든다면 그런 날이 오지 않겠나?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정체불명의 가수 단체들이 생기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인정하는 사단법인은 대한가수협회 하나뿐이다. 다 해산하고 한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도록 대한가수협회를 일으켜 세우겠다. 가수들의 복지와 권리를 챙기겠다. 가수들에게 고향 같은 비빌 언덕이 되겠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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