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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財테크 | 고란의 ‘알(면)쓸(모있는)신(기한)재(테크)’(6)] 부동산 시장의 중립은 ‘1주택’이다 

‘규제 3종 세트’ 과거 이력 보니 투기 늘고 집값 더 올라… 돈줄 죄어 투기수요 잡으려니 경기침체 악화 ‘딜레마’ 

고란 중앙일보 기자
‘노무현 정부 시즌2’.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부터 집값이 꿈틀댔다. 사람들은 참여정부를 떠올렸다. 그때처럼 집값이 오를 거라고 믿었다. 부동산은 수요를 넘어선 심리에 의해 움직인다.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책 발표에도 집값은 잡히지 않는다. 부동산, 지금이라도 올라탈까. 아니면 다음을 노릴까.

▎재건축 후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탈바꿈한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옛 신반포1차)와 재건축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지난해 말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한 반포주공1단지. 아크로리버파크 시세는 평당 1억원을 돌파했다. / 사진:연합뉴스
'…강도 높은 규제책 예고에도 부동산, 특히 아파트값이 꿈틀대고 있다. 정부가 ‘투기과열지구 지정’이라는 고강도 규제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이번 주에도 0.45% 오르며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 얘기인가 싶다.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2007년 6월 10일 온라인에 필자가 쓴 기사다. 날짜를 지웠다면 며칠 전 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1년여가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다. 집값이 급등하면 정부는 엄포를 놓는다. 경고에도 집값이 하락하지 않으면 대책을 발표한다. 그때뿐이다. 주춤하다 가격은 다시 오른다. 마치 이전에 못 올랐던 걸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 더 빨리 오른다. 집값 상승이 강남에서 시작됐으니 강남을 누른다. 강남을 누르니,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 뜬다. 마·용·성을 눌렀더니, 이번엔 관동별곡(관악·동대문)이 뜬단다. 정부와 시장의 끝나지 않을 듯한 술래잡기가 이어진다.

그러는 사이 소위 건강한 중산층은 얇아진다. 월급을 아껴 열심히 모아봐야 또 전세 보증금 올려 주기도 벅차다. 세입자의 노동소득이 고스란히 집주인의 자본소득으로 전이 된다. 막대한 빚을 지고(지금은 대출 규제가 강해져 그럴 수도 없지만) 집을 사면 그때부턴 자린고비 모드로 전환한다. 원리금 갚느라 쓸 돈이 없다. 소비를 통해 자영업자에게 흘러 들어가야 할 돈이 부동산에 묶인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이 되레 자영업자 붕괴를 촉진한다.

쏟아지는 규제책, 집값 잡을 수 있나


오르는 집값과는 반대로 정권 지지율은 떨어진다. 집값을 잡지 못하면 정권의 운명이 위태롭다. 백화점식으로 부동산 규제책을 쏟아낸다. 여기서 밀리면 ‘20년 집권 플랜’은 고사하고 남은 3년도 힘들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해법으로 정말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팩트 체크를 해보자.

①분양원가 공개 효과 있었나? ‘NO’

요즘 이슈인 분양원가 공개부터 따져 보자. 핵심은 건설사 폭리 문제다. 건설사가 집값 상승치를 과도하게 계산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고, 높게 책정된 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끌어올린다는 가설이다.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건설사 폭리 부분이 공개되고 비난 여론을 의식한 건설사가 분양원가를 낮춘다. 그러면 주변 집값도 영향을 받아 하락할 것이라는 풀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이런 견해를 지지한다. 지난달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정 대표가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서는 분양원가 공개가 특효약”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장관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분양원가 공개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일종의 영업비밀인 민간 건설사의 분양원가를 정부가 공개하라는 게 시장 자본주의에서 옳고 그르냐는 이념 문제는 일단 차치하겠다. 팩트만 체크해 보자. 분양원가를 공개해서 집값을 잡았는지.

분양원가 공개가 처음 결정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2월. 민간의 저항을 고려해 공공주택부터 시작했다. 61개 항목에 대한 원가를 공개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07년 2월 95.6인 아파트 가격지수(2015년 12월을 100으로 가정한 상대 가격지수, 논란이 되는 서울·아파트로 기준을 삼았다)는 다음달 95.7을 기록했다. 정부 의도대로라면 집값이 꺾여야 하는데 그해 말 97로 올랐다. 이듬해에도 꾸준히 올라 2008년 9월 102.9로 정점을 기록했다. 그러다 10월 102.6을 기록하며 상승세가 꺾였다.

분양원가를 공개했는데도 집값이 올랐다. 1년 반 정도가 지나서야 집값이 꺾인 건 분양원가 공개의 여파가 아니다.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다. 돈줄 죄기와 ‘이제 부동산은 끝이다’는 비관론이 팽배해지면서 원가 공개는 고사하고 미분양이 넘쳐났다. 이런 상황에서 원가 공개가 무슨 의미냐는 건설사들의 주장에 2012년 공개 항목은 12개로 줄었다.

분양원가 공개로 건설사 폭리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집값을 잡지는 못했다. 되레 분양원가 공개로 건설사가 분양가를 낮출 경우 ‘로또 분양’이 우려된다. 주변보다 지나치게 싼값에, 일단 당첨만 돼도 5000만원이나 1억원을 번다는 소리가 들린다. 투기 세력이 몰린다. 집값이 떨어질 리 없다.

②대출 규제로 효과 있었나? ‘NO’

지난해 8월 발표된 8·2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대출 규제다. 서울 전 지역은 투기과열지구로, 강남 3구 등 서울 11개 지역은 ‘투기지구’로 지정됐다. 투기과열지구의 핵심은 재건축 투기 금지다. 투기지구는 은행이 돈을 적게 빌려주게 만들어 소위 ‘갭투자’를 막겠다는 취지다.

8·2 대책 전에는 집값의 60%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다(LTV·주택담보대출비율 60%). 하지만 대책 시행 이후 투기·투기과열 지구 안에서는 40%까지밖에 돈을 빌릴 수 없다. 또 종전에는 빚(원리금) 갚는 데 쓰는 돈이 버는 돈의 절반만 넘지 않으면 대출을 해줬다(DTI·총부채상환비율 50%). 그러나 대책 이후엔 버는 돈에서 갚는 돈의 비중이 40%를 넘겨서는 안 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17년 7월 서울 아파트 가격지수는 106.6이다. 정부의 의도는 더 이상 은행 돈을 빌려 무리하게 집 사지 말라는 얘기니 투기 수요는 빠지고 실수요자만 남아야 한다. 실수요자만 남은 시장에서 비이성적으로 급등한 가격은 정상을 찾는다. 다시 말해 집값이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 다음달인 8월에 107.7을 기록하면서 오르더니 이후에도 꾸준히 올랐다. 지난 8월 기준으로 117.2다. 매달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대출 규제로 가계부채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집값을 잡지는 못했다. 최근 한 언론이 각 지역 대표 아파트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다. 강남권의 반포아크로리버파크·래미안대치 팰리스 등 4개 단지 229가구를 확인한 결과, 2016년 이후 매매가 이뤄진 아파트 24가구 가운데 5가구만 소유권 이전일에 은행으로부터 근저당권이 설정됐다. 알기 쉽게 말해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산 경우는 21%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평균 매매가는 17억원. 최대 24억원을 현금으로 내고 아파트를 산 사람도 있었다. 대출을 받은 사람만 따졌을 때 대출액 평균은 4억원 정도였고, 현금 구매자를 포함한 전체 대출 의존도는 4.8%에 그쳤다.

8·2 부동산 대책 이후 되레 아파트 시장은 현금 동원력이 좋은 자산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비유하자면 대출 규제책 이전엔 고소득 전문직 맞벌이 부부가 은행 대출을 받아 강남에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면, 이제는 돈 많은 중견 그룹 회장의 백수 아들만 강남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③공급 확대가 효과 있을까? ‘NO’

정부가 아닌 시장의 논리다. 수요를 누르지 말고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주택시장에서 공급이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어디에 공급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평당 억대 분양가를 기록하는 아파트가 출현하는 등 집값이 고공 행진하는 듯 보이지만 강남 일부의 얘기일 뿐이다. 주택시장은 최근 침체기로 진입하고 있다.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미분양 물량은 6만2050가구를 기록했다. 2016년 8월(6만2562가구) 이후 최고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4만7000가구 수준에 그쳤지만 올해 6만 가구를 돌파했다. 지방의 미분양이 전체의 85%(5만2542가구)로 특히 심각하다.

집값의 핵심은 돈줄… 죌 수 있을까


▎정부의 잇따른 규제를 비웃듯 서울의 집값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강남권 일부 아파트는 공시 가격이 전년보다 30% 이상 올랐다. 강남 일대의 아파트 단지 모습. / 사진:연합뉴스
지방은 넘쳐나는데 서울, 특히 강남은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강남 쏠림’ 현상의 일부는 8·2 부동산 대책 탓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강북이나 지방 등 비(非)강남 3구 거주자가 강남 아파트를 사는 비중은 8·2 대책 전 21.4%에서 이후엔 50%로 급증했다. 투기의 온상인 다주택자를 잡겠다고 양도세를 강화했더니 다주택자들은 다른 집을 모두 정리하고 소위 ‘똘똘한 한 채’에 몰렸다.

공급이 중요하지만 살고 싶은 지역에 공급이 늘어나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서울의 주택보급률(가구 대비 주택 수)은 96.3%다. 강남구(115.6%)와 서초구(110%)는 100%를 훌쩍 넘는다. 문제는 자기 집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자가보유율)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서울의 자가보유율은 48.3%로 전국 평균 61.1%에 훨씬 못 미쳤다. 서울에 사는 절반 이상의 시민들은 자기 집 없이 전세나 월세를 살고 있다는 의미다.

집이 없는데도 서울에 사는 것은 그만큼 거주 효용이 높기 때문이다. 경기도 외곽에 살면서 서울에 출퇴근한다고 가정하면 거의 4시간을 길바닥에 뿌리고 다녀야 한다. 교육이나 문화 등 인프라도 비할 바가 안 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은 그래서 문제가 됐다. 장 실장은 지난달 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모든 국민이 강남 가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야 될 이유도 없고 거기에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다”며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실장은 국민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강남에 산다. 그의 집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아시아선수촌아파트 134㎡형이다. 2016년 8월 매매된 같은 평형대 아파트 가격이 17억6000만원이다. 현재 호가는 30억원 안팎이다. 2년 새 10억원 넘게 오른 셈이다. 그의 말처럼 ‘모든’ 국민이 강남에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강남에 살고 싶어 한다. 월등한 집값이 그 열망을 대변한다. 살고 싶은 곳에 공급을 늘리지 않는 한 집값을 잡기 어렵다.

양도세 강화에도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정부의 마지막 카드는 보유세다. 폭탄은 위협할 때 의미가 있다. 터뜨리고 나면 뒷감당을 해야 한다. 보유세를 올리면 투기 수요가 빠지면서 집값이 잡힐지 모른다. 그러나 부작용이 만만찮다. 게다가 역대 증세 정책을 취한 정부는 대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만약 보유세를 올린다면 양도세는 낮춰 다주택자의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꺾였던 집값이 다시 급등한 것은 무엇보다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시장에 돌아다니는 돈이 1117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여차하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돈이다. KB경영연구소가 매년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인 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2018 한국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집값 잡기 엄포에도 부자들의 35.5%가 1년간 부동산 자산을 늘리겠다고 답했다.

“부동산은 심리다… 현재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건 앞으로 나올 규제책이 아니라 과거에 급등했던 경험이다. 서울, 특히 강남·서초·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의 아파트값은 노무현 정부 시절 80% 안팎으로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이념을 상당 부분 계승하는 만큼 강남 아파트값도 오를 거라는 게 (논리적 정합성 여부와는 관계없는)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다.”

맨 앞에 언급했던 기사의 일부분이다. 기사처럼 시장이 움직였다. 심리로 움직이는 시장에서 가격을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돈줄을 죄는 것이다. 금리를 올리면 된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8월 말 금리를 1.5%로 동결했다. 경기 호황에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데도 한·미 금리 역전을 감수하며 동결했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안 좋다는 방증이다. 정부가 맞닥뜨린 딜레마다. 금리를 올려야 돈줄을 죄는데 금리를 올릴 수 없다니. 외통수다.

그래서, 사야 하나?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검토 중인 분양원가 공개는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한 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과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인 이용섭 현재 광주광역시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부터). / 사진:연합뉴스
사설이 길었다. 경제(특히 부동산) 담당 기자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그래서, 사야 하나?”다. 미래를 모르는데 정답이 어디 있겠나.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다(강조하지만 모든 투자는 투자자 책임이다). 시장에서 매수(long)·중립(neutral)·매도(short) 등의 포지션을 결정할 때 중립의 기준은 ‘0’이다.

그러나 집은 다르다. 누구나 ‘살(live)’ 집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주택시장에서 중립은 무주택자가 아니라 1주택자다. 다주택자가 돼야 향후 시장을 좋게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이고, 무주택자는 향후 시장을 나쁘게 보고 매도 포지션을 취하는 셈이다.

업계에서 도는 말 중에, ‘부동산 기자치고 부동산 투자 잘하는 기자 못 봤고, 증권 담당 기자치고 주식 투자 잘하는 기자 못 봤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문가도 모르는 게 시장이다. 그렇게 모를 때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중립은 무주택이 아니라 1주택이다.

ps. 필자도 1주택자다.

※ 고란 - 2003년 중앙일보에 입사, 중앙선데이 경제부문 소속이다. 대학 졸업 후 6개월 은행에 몸담은 걸 빌미삼아 ‘반 금융인’이라고 주장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열어갈 ‘토큰 이코노미’에 관심이 많다. ‘암호화폐의 정석’에 해당하는 [넥스트 머니]를 지난 6월 출간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재테크 및 암호화폐 시장과 관련한 ‘고란의 어쩌다 투자’ 코너를 연재 중이다.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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