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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10)] 노년의 건강 관리 

무병장수의 지름길 ‘내 몸의 전문가가 돼라’ 

글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만병통치약 걷기와 긍정적 사고는 ‘필수’… 노년 건강 최대의 적은 우울증, 사회활동 반드시 해야

▎2017년 9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노인의 날 기념 어르신 잔치’에 참가해 장수기원 맷돌체조 플래시몹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 /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7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712만 명으로 집계됐다. 전체인구에서 노인인구 비중은 14.2%로 증가했다. 유엔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7%이상 14%미만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 20% 미만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다. 한국은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이후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됐다. 일본이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할 때 25년이 걸렸던 것보다 속도가 빠르다.

노화에 따른 질병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예방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평소에 건강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질병에 걸릴 위험이 낮아지고 더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50년 이상 환자를 진료해 온 동서한방병원 박상동 원장(79)은 노년층이 가장 많이 걸리는 질병으로 뇌혈관, 심혈관, 근골격계 질환, 치매를 꼽는다. 박 원장은 “나이가 들어 노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원인과 증상을 반드시 알아두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뇌혈관 질환은 뇌의 혈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병이다. 뇌혈관 질환이 발전하면 흔히 중풍이라 부르는 뇌졸중이 된다. 뇌졸중에는 뇌경색(뇌혈전증, 뇌색전증), 뇌출혈(뇌내출혈, 지주막하출혈), 일과성 뇌허혈증 등 질환이 있다.

뇌졸중에 걸리는 원인은 다양하다. 특히 고혈압, 심장병, 당뇨, 동맥경화증, 고지혈증 등의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박 원장은 뇌졸중에는 다양한 전조증이 있으며 이를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럼증이 순간순간 있거나 이명 증상이 있다든가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 현상 등이다. 이 밖에 눈 밑이 떨리는 증세, 목 안에 뭔가 걸려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매핵기 증상, 팔다리가 힘이 빠지고 쥐가 자주 나고 걸을 때 중심이 흔들리고 갑자기 언어구사력이 떨어지면 병원에 빨리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4대 노인성 질환, 제대로 알고 조심해야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국민건강보험과 함께하는 건강백세 운동교실에 참여해 요가와 몸풀기 체조를 하고 있는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 주민들
박 원장은 “뇌졸중은 바로 발견해 치료하면 거의 회복된다. 증상이 악화된 상태에서는 회복이 안 되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 원장이 얘기하는 뇌졸중 골든타임은 3시간. 늦어도 7시간 안에는 치료가 들어가야 한다. 그는 “평소 당뇨를 앓고 있거나 혈압에 문제가 있던 사람에게 전조 증세가 심해진다면 십중팔구 뇌졸중을 의심해야 한다. 이 분들이 골든타임(3~7시간)을 놓치면 난치성 질환으로 악화돼 평생 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 자신이 느꼈던 전조증상이 더 심해지는지 항상 체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심혈관 질환은 심장과 주요 동맥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심근경색, 협심증을 들 수 있다. 심혈관 질환의 특징적인 전조증은 극심한 가슴통증과 식은 땀이 나고 숨이 차는 증상이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의식을 잃거나 급체한 것 같은 상복부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혈관 질환이 무서운 이유는 조기 진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돌연사의 80%를 차지하는 것이 이 질환이다. 심장 이상으로 피가 뇌에 4분 이상 공급되지 않으면 뇌사가 진행되고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심혈관질환은 관상동맥의 동맥경화가 주 원인이다. 심장에 혈액과 산소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지방질 등의 물질이 동맥벽에 쌓여 동맥이 좁아지고 혈액공급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질병이다. 박 원장은 이를 막기 위해 고밀도콜레스테롤(HDL)과 저밀도콜레스테롤(LDL), 중성지방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동맥경화의 주범인 LDL콜레스테롤은 130mg/㎗ 미만이 정상이다. 160mg/㎗ 이상으로 높다면 관리가 필요하다. HDL콜레스테롤은 수치가 높을수록 좋다. 혈관벽에 쌓여 있던 LDL콜레스테롤을 수거해 간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HDL콜레스테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과는 약간 다른 지방성분인 중성지방도 동맥경화를 유발한다. 200mg/㎗를 넘어서면 안 된다. 중성지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 탄수화물을 과잉 섭취하면 몸에서 사용되고 남은 에너지가 중성지방의 형태로 지방세포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난제로 불리는 치매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건강한 뇌세포들이 죽어서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감소돼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상실되고 언어능력이 떨어지면서 성격이 변하면서 생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알츠하이머에 의한 치매는 50~60%, 혈관성 치매가 20~30%를 차지한다.

박 원장은 “치매는 치료제가 아직 없다. 약물로 병세 악화를 지연시키는 수준이다. 진행을 막아 주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주로 50대 이후에 발병하는데 요즘에는 40대에도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 박 원장은 “뇌세포가 노화하면서 오는 질환이라 노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지만 발병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 나이에 상관없이 건망증이 있다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주 3회 이상 생선, 견과류 등을 섭취해야 한다. 특히 야채, 과일주스를 계속 마시면 건망증 증상이 70% 개선되는 결과도 나왔다.

규칙적인 운동과 절제된 식습관 필요


▎송파구A+봉사단의 재능기부공연 중 마술쇼가 펼쳐지는 모습.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노년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박 원장은 건강 관리를 위해 규칙적인 운동과 절제된 식습관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노년층에서 자주 발생하는 뇌혈관, 심혈관, 근골격계 질환 등의 원인은 대부분 성인병과 관련 있다. 의학계에서는 비만, 당뇨, 고혈압, 골다공증, 동맥경화증, 심장질환 등을 성인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성인병이 단초가 되어 건강을 위협하는 질환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박 원장은 “노인들은 유산소운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중에서 걷기를 가장 추천한다. 하루 1만 보를 걷게 되면 세포가 활성화되고 면역력이 올라간다. 동시에 피가 맑아지고 콜레스테롤도 떨어진다. 뇌혈관, 심혈관 질환 발병 가능성이 자연스레 낮아진다. 만병통치약이다”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걷기의 의학적 효과는 심폐기능 향상, 혈액순환 촉진, 심장질환 예방, 체지방 감소로 인한 비만 개선,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 성인병 예방, 골다공증 예방, 우울증 치료, 스트레스 해소, 기억력 회복, 면역력 증가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제된 식습관도 필요하다. 박 원장은 “짠 음식을 피하고, 쌀, 설탕, 밀가루 등 당질성 음식을 최대한 적게 섭취해야 한다. 탄수화물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단백질 보충을 잘 해야 한다. 식물성 단백질인 콩, 두유와 기름기가 적은 오리고기, 소고기 등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트랜스 지방이 함유된 음식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금연과 절주도 중요하다.

박 원장은 자신의 건강 비법도 소개했다. “기상 후 공복에 미지근한 물 한 컵을 마치고 스트레칭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목, 허리, 어깨 등 몸을 풀어주고 나서 땀이 날 정도로 20~30분 동안 런닝머신을 뛴다. 이후 사과 세 쪽, 유산균, 두유로 아침을 대신한다. 스트레칭은 하루 세 번 한다.”

그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앓고 있는 질병은 없다. 당뇨도 없고 전립선도, 치아도 건강하다. 한번 필드에 나갔다 하면 4~5시간은 걸어야 하는 골프도 문제없다고 한다. 박 원장은 지금도 주3일은 진료를 하고 진료가 없는 날에는 강연, 봉사활동 등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원장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힘줘 말한다.

“사업으로 성공해 재력이 상당한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당뇨로 고생을 많이 했다. 무절제한 식습관 때문이었다. 그러다 오른쪽 고관절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당뇨는 혈중 콜레스테롤 상태를 악화시키고 뼈까지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왼쪽 고관절마저 부러졌다. 혼자서는 옆으로 눕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 욕창이 오고 병세는 호전이 안 되고 6개월도 되지 않아 운명을 달리했다.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박 원장은 스스로 자기 몸에 대해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수시로 혈액 검사를 해서 중성지방이 높으면 탄수화물을 줄이고 LDL 수치가 높으면 트랜스 지방을 줄이고 HDL 수치가 떨어지면 단백질을 섭취하는 등 자가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적인 측면을 관리하는 것 이상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원장은 “질병과 함께 노년층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것이 우울증이다. 심리적 고립, 외로움이 발전한 우울증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화병으로 변한다. 노년 건강의 최대의 적은 고독감”이라고 말한다.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활동이 필수적이다. “무조건 밖을 나가야 한다. 혼자 운동을 하든 경로당에 가서 친구를 만나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어떤 일을 할지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목표 없는 삶은 무료하고 지루하다. 그러다 보면 우울해지고 병약해질 수밖에 없다.”

봉사로 인생2막 연 ‘송파구A봉사단’


▎가야금 공연을 하고 있는 홍성자씨.
박 원장이 강조한 것처럼 목표를 갖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단체가 있다. 2013년 4월에 창단한 송파구자원봉사센터 산하 ‘송파구A+봉사단’이다. 전문직종 종사자 및 은퇴자들로 구성된 이 봉사단은 전문성을 지역 사회에 필요한 곳에 활용하고 건전한 노인 자원봉사 모델을 만들고자 창단됐다. 현재 20명의 단원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주로 펼치는 활동은 멘토특강과 재능나눔공연이다. 월 3회 진행되는 멘토특강은 단원들의 삶의 지혜를 청소년들에게 전해 주는 봉사활동이다. 재능나눔공연의 경우 관내 요양원, 데이케이센터 등에 방문해 공연을 통해 거동이 불편한 분들에게 기쁨을 드리고 있다.

8월 27일, 서울 송파구 A+잠실데이케어센터에서 재능나눔공연이 펼쳐졌다. A+잠실데이케어센터는 심신허약, 치매, 중풍을 앓고 있는 80~90대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단원은 10명, 공연에 나선 이는 6명이었다. 단원들은 하모니카, 오카리나, 가야금, 민요, 판소리, 마술 등 각자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노인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있었다. 곱게 한복을 입은 단원은 가야금을 뜯으며 아름다운 곡조를 들려 주었고, 판소리 명창은 구성진 목소리로 흥을 돋우며 공연의 분위기를 띄웠다. 1시간이 넘는 공연시간이 끝나고 난 뒤 단원들에게 물었다. 이들이 생각하는 노년의 건강은 어떤 의미일까.

봉사단 창단 초기부터 활동하고 있는 남승례(73)씨는 “건강이란 것이 60~70 나이를 넘으면 삶의 전부인 것 같아요. 왜냐면 건강을 잃으면 자신감도 떨어지고 삶의 질도 떨어지고, 주위의 모든 것이 단절돼요. 건강해야 밖을 나갈 수 있고 사회 활동도 할 수 있고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죠. 건강관리는 늦게라도 신경 써야 하는 노년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라고 말했다.

공연에서 가야금을 연주한 홍성자(70)씨는 요즘 들어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홍씨는 “지금까지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 건강은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작년에 눈에 핏줄이 터져 망막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큰 수술을 하게 됐어요.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또 핏줄이 터지면 상태가 크게 안 좋아질 것이라 얘기를 하니 건강이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라고 말했다.

단원들의 말처럼 노년의 최대 화두는 건강이다. 이들이 얘기하는 건강관리 비법은 규칙적 운동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이었다.

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박상애(69) 단장은 “오늘 새벽에도 단전호흡을 하고 왔다”며 최근의 경험을 얘기했다. “계속 가슴 통증이 와서 검사를 다 해봤는데 이상 있는 곳이 어딘지 안 나오더라고요. 아파서 잠도 안 오는 상태였어요. 그 때 즈음에 탁구장에 회원 등록만 해 놓고 나가질 않았어요. 그러다가 그냥 탁구장을 갔어요. 잘 치지 못하고 같이 할 사람도 없는데 그냥 갔죠. 그런데 탁구장 총무님하고 두 시간을 쳤는데 치고 나니까 아픈 게 사라졌어요. 그 때 느꼈죠. 내가 아픈 사람이라 생각하지 말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겠다고. 병원을 갈 것이 아니라 운동을 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운동도 하다보면 신이 나고 몸이 건강해지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꽃누리국악예술단 소속으로 판소리 공연을 한 심백자(65) 씨는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곧 건강을 챙기는 길”이라고 말한다. 심씨는 20년차 야쿠르트 아줌마다. “일하는 것이 건강을 챙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오전에 4~5시간씩 걸으며 고객들 만나면서 건강도 챙기고 웃으며 일하니까 덤으로 엔돌핀도 돌게 되죠. 오전에 일이 끝나면 오후에는 판소리, 민요, 각설이창극 등 공연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돈도 벌기야 벌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아요. 야쿠르트 일할 때는 사람들 만나서 얘기 나눠서 재밌고, 공연에서 노래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게 또 기쁘고. 일하면서 몸 움직이고 스트레스 덜 받으려고 노력하는 게 건강 비법입니다.”

남승례씨는 운동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라고 했다. “운동을 시작한지는 10년이 됐어요. 주 5일 하루에 1시간 30분 정도 꾸준히 해왔어요. 같은 운동만 하면 지루하니까 요가도 하고 건강댄스도 하고 수영도 했죠. 운동하러 가지 못하는 날에는 걷기라도 하려고 꾸준히 노력해요. 습관이 되니까 하루라도 거르면 오히려 몸이 더 아픈 느낌이 들어요.”

홍성자씨는 최근 유행하는 홈트(홈트레이닝의 줄임말)를 자신의 건강 비법으로 꼽았다. 홍씨는 “하루에 1시간은 집에서 꼭 걷기와 스쿼트를 한다”고 말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근육에 힘이 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아령을 이용해 간단한 근육 운동도 하고 있어요. 운동하는 동안에는 잡념이 생기지 않죠.”

재능기부와 건강·행복 세 마리 토끼 잡아


▎판소리 공연을 펼치고 있는 김상순 판소리 이수자(왼쪽)씨와 심백자 꽃누리국악예술단 부단장(오른쪽).
규칙적인 운동, 긍정적인 마음가짐 등 노년의 건강관리를 위한 다양한 조언이 쏟아져 나왔지만 단원들은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회생활을 꼽았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감정적인 교류가 있어야 더욱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송파구자원봉사센터 서찬수(63) 소장은 “정년퇴직을 하거나 자녀들이 출가하게 되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60~70대들이 많습니다. 노년에는 단체 활동이 굉장히 중요해요. 같이 식사도 하고 얘기를 나누고 술 한잔하면서 정서 나눔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한다.

“혼자서 뭔가를 계속하면 자기만의 늪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면 작은 일에도 섭섭한 감정이 생기고 때로 노여움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다 보면 서로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 이건 별일이 아니구나’하면서 쉽게 넘길 수 있게 되죠. 일단 누군가를 만나 목표를 갖고 뭔가를 한다는 과정 자체가 중요합니다.”


▎송파구A+봉사단이 합동공연을 펼치는 모습.
무엇보다도 단원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이 훨씬 나아졌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37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박 단장은 “명예퇴직으로 학교를 떠났지만 봉사의 길로 이끈 것도 교육이었다”고 말했다. “정년을 앞두고 학교에서 상담부장을 하면서 아이들 인성 교육이 절실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하는 말이 방과후에도 학원 다니느라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퇴직 후 청소년 상담봉사를 하자고 결심하고 집 근처에 있는 자원봉사센터 봉사단에 참여하게 됐어요.”

박 단장은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고 했다. “멘토특강을 진행하면 아이들이 상담 후 소감문을 작성하는데 ‘선생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은퇴를 하고 나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다’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봉사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좋을 것 같다’ ‘힘들어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 단장은 재능기부공연에 대해서도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공연을 다니다 보면 제 스스로 굉장히 겸손해지게 돼요.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80~90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거든요. 자연스럽게 내 인생에도 감사하게 되죠.”

홍성자씨는 봉사활동이 삶의 활력소가 된 좋은 사례다. “남편과 사별한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아마 우울증 같은 증세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릴 적 10년 정도 배웠던 가야금을 다시 시작했고 가야금을 통해 봉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봉사활동을 하고 난 뒤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차다고 한다. 평소에는 가야금을 연주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재능기부공연을 하면서 끼를 맘껏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씨는 “공연 준비를 열심히 하다 보면 손주들 보러 갈 시간도 부족하다”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판소리 이수자인 김상순(73)씨는 재능기부공연에 대해 “우리는 밑지는 장사는 안 해요”라고 농담을 던지며 설명했다. “소리하는 사람들은 봉사활동을 잘 안 해요. 어렵게 판소리를 배워서 왜 봉사하냐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내가 얻어올 것이 있으니 봉사를 하는 거죠. 소리를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즐거워요. 온 몸을 쓰는 판소리를 하면 내 건강도 좋아집니다. 그저 스스로 즐겁기 위해 하는 겁니다.”

송파구A+봉사단에는 은퇴자들만 활동하는 게 아니다. 봉사활동 기간만 30년이 넘는다는 박종문(61)씨는 회사생활과 봉사단 활동을 겸하면서 행복감에 푹 빠져 지낸다. 그는 1986년부터 문화재 지킴이를 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근무시간(서울메트로 근무)이 끝나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죠. 몇 달 후의 스케줄까지 이미 잡혀있습니다. 퇴직하고 나서 시간이 많아지면 지금보다 봉사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니 무료해질 틈이 없겠죠.”

봉사단의 공연을 지켜보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됐다. 공연을 보는 사람들보다 재능기부에 나선 단원들의 표정이 훨씬 행복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뭘까. 서 소장은 봉사활동 예찬론을 폈다. “봉사활동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도움을 받는 사회활동이에요. 봉사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거든요. 사람들과 계속 소통하고 접촉하면서 정신건강이 좋아집니다. 보람을 느끼는 기분은 덤이지요. 어떤 분들은 더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운동 등 자기관리에도 더 적극적이에요. 일종의 선순환이죠.”

사실 봉사는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다.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일부 기관에서는 자격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쉽지 않다. 그러나 자원봉사센터는 이에 구애받지 않는다. 구 단위마다 위치한 자원봉사센터에 방문하면 봉사자들을 모아 동아리 형식으로 그룹을 만들어 외부 기관에 연결시켜 준다.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어떤 형태의 봉사든 가능한 구조다.

서 소장은 은퇴 후 방황하는 노년들에게 조언한다. “따로 특별한 일을 하시지 않으면 가까운 자원봉사센터를 찾으셔야 합니다. 많은 분이 자신의 재능을 썩히고 있어요. 각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 대해 젊은 사람들에게 상담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상담도 하고 때로는 도시미화를 위해 벽화도 그리시고 저소득층 가정 정리수납 봉사도 하시면서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맞춤형으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해 건강과 삶의 기쁨을 동시에 잡는 기회를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 글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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