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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일방통행식 ‘탈원전’에 성난 울진군 

“널뛰는 정부 정책의 희생양 만들 건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에 울진군민 열흘간 상경 시위…주민 뜻 묻지 않은 40년 전 원전 건설 때와 판박이 태도에 분노

▎경북 울진군에 건설 중인 신한울 원전 1, 2호기. 정부는 10년간 진행해 온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경북 울진군 주민들이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중단된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을 촉구하고 나섰다.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공동의장 장유덕·장헌견·이상균)와 재경울진군민회(회장 전태수)는 9월 14일 청와대 연무관 앞 광장에서 울진군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신한울 원전 3·4호기건설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집회에는 울진군민 700여 명이 참여했다. 범대위는 8월 28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본사를 항의 방문한 데 이어 9월 5일부터 열흘에 걸쳐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여 왔다.

집회 참가자들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예정지인 울진군과 상의도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탈원전을 결정한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성명서를 통해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 정책 기조에 입각해 신한울 3·4호기 건설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군수와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영양·영덕·봉화·울진), 장유덕 범대위 공동의장, 전태수 재경울진군민회장 등은 집회 도중 청와대에 들어가 한병도 정무수석과 면담했다. 이들은 한 수석에게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변경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전한 뒤 울진군민과 별도의 소통 창구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한 수석은 면담에서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범대위 측은 밝혔다. 울진군은 한수원과 울진군 의회, 군민 대표 등으로 구성된 소통기구를 만들어 대화 채널을 가동하기로 했다.


▎9월 14일 울진군민 700여 명이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주민 대표단은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 사진:울진군
정부의 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결정 과정에 울진군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탓에 지역에선 주민들의 소외감과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울진군은 한때 거센 원전 건설 반대운동이 벌어졌던 곳이다. 1995년 말 정부가 한울원전 5·6호기 건설을 추진하자 울진군은 민·관이 연합해 이듬해까지 정부를 상대로 원전 건설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당시에도 정부가 지역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게 원인이었다. 전태수 재경울진군민회장은 “40년간의 희생과 고통을 말없이 감내한 군민들은 대한민국 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마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울진군 지역경제는 먹구름이 잔뜩 낀 상태다. 울진군은 1978년에 원전 건설부지로 확정돼 1982년 1호기 착공을 시작으로 6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원전 발전량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원전을 주축으로 지역 산업기반이 형성돼 있는 탓에 원전 건설과 가동이 중단될 경우 직격탄을 맞게 된다. 울진군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으로 연인원 600만 명의 일자리 창출 기회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범대위는 주민들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대정부 투쟁의 수위를 높여갈 방침이다. 한수원 직원들의 출근을 막아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물리력 행사도 예고해 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울진군의 반발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스기사] 전찬걸 울진군수 인터뷰 - “원전 끼고 사는 주민 의견은 왜 안 듣나”


▎전찬걸 울진군수는 정부의 일방적인 원전 중단 정책에 맞서 원전지역 5개 지자체와 연대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중단될 경우 지역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정부의 신한울 3·4호기 건설 약속에 따라 지난 10여 년간 지방정부와 민간의 모든 행정·경제 행위가 이에 맞춰 이뤄져 왔다. 그런데 갑자기 일방적으로 3·4호기 건설 중단이 결정되면서 지역에선 앞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중단되면 유동인구 감소와 지역 공동화를 비롯해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 전문 용역기관에 의뢰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60년간 약 67조원의 직·간접 피해와 24만3000명의 고용 상실 등 타격이 막대하다. 원전지역 5개 지자체와 연대해 ‘원전지역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결정 과정에 울진군과 주민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나?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정부의 약속이었다. 지역의 의견을 묵살하고 일방적으로 파기한 거다. 단 한 번의 공청회도 개최하지 않았다. 공론화위원회를 열면서도 정작 당사자인 원전지역 주민의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었다. 국가 에너지정책을 앞세워 원전을 강제로 건설했던 1980년대 정부와 역시 명분을 앞세워 강제로 중단한 지금 정부의 태도가 다르지 않다.

원전 건설과 중단은 ‘국민적 합의’에 앞서 ‘원전지역 주민의 합의’를 토대로 결정돼야 한다. 원전으로부터 수백㎞ 떨어져 있는 사람보다 앞마당을 내어 준 사람의 의견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원전을 껴안고 희생을 감내하며 살고 있는 울진군 주민 5만 명의 합의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상식이다.”

탈원전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가 높다. 신한울 3·4호기가 건설돼야 하는 당위성이 있나?

“신한울 3·4호기 건설 사업은 사업계획서 몇 장으로 단기간에 추진된 사업이 아니다. 10년 전인 2008년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이미 반영돼 있었고, 2014년 제2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과 2015년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유지되어온 정책이다. 2015년 일반·방사선 환경영향평가 공청회를 거쳐 작년 2월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 실시계획 승인과 건설허가를 심사 중이었다.

이 사업은 울진군과 정부의 신의성실 원칙에 입각해 오랜 기간 협의와 절충 끝에 비로소 착공을 앞두고 있었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이를 폐기하는 건 국가 정책의 일관성과 국민적 신뢰를 잃는 것이다.”

미래의 원전 제로시대에 대비해 울진군이 갖고 있는 비전이 무엇인가?

“울진군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한 관광산업과 친환경 농·수산업 위주의 자립경제 구조였으나 1981년 첫 원전이 착공된 뒤 국가 에너지정책에 따라 ‘원전 의존형’ 지역으로 바뀌었다. 원전을 대신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자연에서 찾으려 한다.

울진군은 ‘삼욕(三浴, 해수·온천·산림욕)’의 고장이라 불려왔다. 조선 숙종 때부터 왕실이 직접 관리했던 울진 금강송 숲은 산림 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금강송 숲의 혼농·임업시스템은 국가 중요농업유산 7호이자 임업유산 1호로 지정돼 있다. 앞으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또 올해 8월에는 산림청이 금강송 숲을 이용한 산촌거점권역 육성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했다. 2022년까지 약 500억원을 투입해 금강소나무치유휴양네트워크 구축과 산림휴양치유 거점 육성, 숲 레스토랑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금강송 숲을 휴(休) 관광 콘텐트로 활용해 산림자원 공유순환경제의 거점을 마련할 길이 열린 것이다.

울진의 대표적 특산물은 금강송 숲에서 나는 송이버섯이다. 10월 5일부터 사흘간 울진엑스포공원 일대에서 ‘제16회 울진금강송 송이축제’가 열린다. 이번 주제는 ‘울진금강송 송이랑 푸지게 먹고 놀자’이다. 이번 가을에 전국 최고의 품질과 생산량을 자랑하는 울진 금강송 송이의 맛과 향에 푹 빠져 보시길 권하고 싶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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