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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전시] 평화와 공생 메시지 담은 '법화경展' 

무기력한 현대인에게 내리는 ‘죽비’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부처 되는 길은 만인에게 열려 있다’ 파격의 가르침 담긴 경전…세계 문화재급 유물 150여 점, 오는 10월 14일까지 부산 전시

▎8월 24일 열린 ‘법화경 - 평화와 공생의 메시지展’ 개막식에 참석한 내빈들이 중국 둔황 막고굴 벽화 재현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막고굴은 중국 둔황시 남동쪽 20㎞ 지점에 있는 석굴(石窟)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당(唐)나라 승려 지승(智昇)은 당시까지 전해져 오던 불경목록을 정리해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으로 펴냈다. 후한(後漢)대인 67년부터 책을 펴낸 730년까지 176명의 스님이 한역(漢譯)한 불경 총 7046권의 목록이 실려 있다. 지승은 이 가운데 중복되거나 거짓인 것을 걸러내고 실제로 내려오던 불경 5048권을 ‘입장목록’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했다.

그중에서 [법화경(法華經)]은 여덟 권에 불과하다. 그러나 [화엄경] [금강경]과 함께 대승불교의 3대 경전으로 꼽힐 만큼 귀하게 여겨져 왔다. 인도에서 발원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10개 언어로 번역돼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전이 담고 있는 강력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법화경]에서 석존(釋尊)은 설법에 앞서 ‘부처가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선언한다. 계급도, 성별도 불성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석존의 말에 반발한 제자들이 자리를 뜨는 장면이 [법화경]에 나올 정도로 당대에는 파격적이었다.

[법화경]의 파격은 현대에 와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경쟁이 미덕이 된 세태 속에서 무기력에 빠진 사람에게는 희망과 격려를, 미움과 폭력에 빠진 사람에게는 인간에 대한 존경과 평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한다. 한국SGI와 동양철학연구소, 중앙일보플러스가 공동 주최하는 [법화경 - 평화와 공생의 메시지展]은 [법화경]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계기로 손색이 없다. 8월 24일 부산 수영구 한국SGI 수영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이 전시회는 10월 14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문의전화 051-758-6556)

2000년 인류 헌신 담긴 '법화경' 사본


▎김인수 한국SGI 이사장이 개막식에 참석한 내빈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평화와 공생의 메시지는 분단과 전쟁, 인간소외로 괴로움을 겪어 온 인류에게 절실한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된 [법화경] 사본의 복제품을 비롯해 [법화경]을 모티브로 한 중국 둔황(敦煌) 막고굴(莫高窟)의 벽화를 소개하는 패널 등 관련 문물 150여 점이 소개된다.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소] 등 희귀 유물 10만 점을 소장한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양고문서연구소(이하 ‘동양고문서연구소’)와 세계 최고의 동양학 연구기관으로 평가받는 인도문화국제아카데미 등 6개국 12개 기관과 협력해 전시를 준비했다.

2006년 11월 홍콩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6개국에서 80만여 명이 전시장을 방문할 정도로 대호평을 받아 왔다. 한국에서는 2016년 서울에서 처음 열린 이래 14만여 명이 관람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다라습이 한역(漢譯)한 [묘법연화경] 8권(券) 28품(品) 전체를 만나볼 수 있다. 구절마다 한글로 된 설명을 붙여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법화경] 사본들은 1전시실에 모여 있다. 여러 사본 가운데서도 동양고문서연구소가 소장한 ‘산스크리트어 법화경 사본 페트로프스키본’이 눈에 띈다. 1998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동양고문서연구소(당시 동양학연구소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부)와 동양철학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법화경과 실크로드展]에서 다른 불전(佛典)과 목판본 등 47점과 함께 처음 공개됐다. 페트로프스키본은 19세기 후반부터 페트로프스키·코즐로프 탐험대를 비롯해 많은 선구자가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발굴하고 수집한 결과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레닌그라드 포위전’으로 100만여 명이 희생되는 가운데서도 지켜져 내려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10세기경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25장 ‘관세음보살보문품’도 살펴볼 수 있다. [묘법연화경]은 5세기 초 구자국 출신의 승려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으로, 중국 불교에서 법화(法華) 사상이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번역본이다. 법화 사상은 한반도로 넘어와 꽃을 피웠다. 경주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세워진 석가탑과 다보탑이 그 상징이다. [법화경] 말미에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석존과 제자들 앞에 나타나 석존이 설법하는 것을 옳다고 증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바로 석존과 다보불의 만나는 모습을 형성화한 것이다.


▎중국 카슈가르 주재 러시아 총영사였던 페트로프스키가 1892년 입수한 ‘산스크리트어 [법화경] 사본 페트로프스키본.’ 두 차례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보존돼 법화경 신앙을 연구하는 중요 자료로 자리매김했다. / 사진:한국SGI
이 밖에도 남투르키스탄 브라흐미 문자로 쓰인 ‘[법화경] 서문(序文) 사본’과 ‘네팔계 산스크리트어 [법화경] 다라수잎 사본’이 전시돼 있다. 인도의 해안 주변에서 자라는 야자나무의 이파리에 쓰인 ‘다라수잎 사본’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법화경] 완본(完本)으로 꼽힌다. 한국 SGI 관계자는 “[법화경]은 2000년의 장구한 시간 동안 아시아 전역의 수많은 사람과 민족, 국가의 헌신으로 지켜지고 전해졌다”며 “그 역사적 시공간은 인류가 낳은 최고의 휴머니즘이자 정신유산”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둔황 석굴 보게 될 줄이야”


▎중국 베이징 민족문화궁장이 소장하는 ‘네팔계 산스크리트어 [법화경] 다라수잎 사본’.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법화경] 완본(完本)이다. / 사진:한국SGI
2전시실에서는 인도에서 실크로드를 지나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는 불교의 전파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실크로드를 콘셉트로 한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실제 막고굴의 것과 같은 크기로 만들었다는 좁은 문이 나온다. 중국 둔황에 위치한 막고굴 85굴 벽화를 재현한 방이다. 8월 24일 열린 개막식에 참석한 김수아 동명대 교수(소운 스님)는 “둔황에서 한참 떨어진 부산에서 막고굴을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중국 구자석굴연구소가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에게 증정한 ‘젊은 구마라습상’. 구마라습은 법화경을 비롯한 불경 380여 권을 한역(漢譯)해 중국에 전파한 인도의 승려다. / 사진:한국SGI
막고굴은 중국 둔황시 남동쪽 20㎞ 지점에 있는 석굴(石窟)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총 연장 1600여 m에 달하는 492개 석굴에 4만5000㎡에 달하는 벽화, 2400여 점의 불상·소조상이 남아 있어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상태가 좋은 불교예술의 보고(寶庫)로 꼽힌다. 4세기 중반부터 13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송(宋)나라 이후 해상 교통이 발달하면서 실크로드 한 가운데 위치한 이곳은 점차 잊혀졌다. 이후 1900년 우연히 16굴 북벽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 세계로 흩어진 막고굴 유물에 대한 연구는 ‘둔황학(敦煌学)’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2전시실의 말미에는 [법화경]에 나오는 ‘법화칠비(法華七譬)’를 소개하는 전시실이 나온다. ‘법화칠비’는 석존이 부처가 되기 위한 길을 7가지의 비유를 들어 설법했다고 해 붙여진 말이다.


▎둔황 막고굴 61굴에는 [법화경] 28품 가운데 22품의 내용이 벽화로 표현돼 있다. ‘법화칠비’를 그린 벽화 역시 이곳에서 발견됐다.
7가지 비유 가운데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를 표현한 둔황 막고굴 23굴 벽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해 관람객의 이목을 끈다. ‘삼초이목’은 제각기 크기와 형태가 다른 풀(草)과 나무(木)를 가리킨다. 중생(衆生)도 초목과 같이 지니고 있는 개성과 소질에 따라 제각각이라는 것을 뜻한다. 부처는 중생의 성품과 욕망을 꿰뚫어보고, 그에 따라 설법을 한다. 그러나 가르침은 오직 하나, 생명의 실상을 깨우치는 것이다. 마치 장대비가 크고 작은 초목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내리는 것과 같다.

23굴 벽화에서는 산천초목에 내리는 비와 빗속에서 소에 쟁기를 달고 땅을 가는 농부, 농작을 마치고 불탑 앞에서 예배하는 무리가 함께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은 벽화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해 관람객이 [법화경]의 가르침을 보다 친숙하게 느끼게끔 유도했다. 전시회를 찾은 박경자(55)씨는 “평면적인 전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법화경]의 철학을 소개한 점이 인상 깊다”면서 “불경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를 담은 둔황 막고굴 23굴 벽화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애니메이션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김인수 한국SGI 이사장은 “[법화경]이 전하는 평화와 공생의 메시지는 분단과 전쟁, 인간소외로 괴로움을 겪어 온 인류에게 절실한 철학”이라면서 “전시장에 오면 옛 아시아인들의 뛰어난 사상과 지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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