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10)] 시(詩): 언어가 머무는 곳, 뜻이 가는 곳 

‘나라는 쓰러져도 봄은 오는구나’ 

하영삼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고대 중국에선 “[시경]을 모르는 자와는 말도 섞지 말라”는 격언…공자 “시는 마음을 일으키고 세상을 보게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게 한다”

▎호북성 무한의 전경과 장강대교·양자강·한강 등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황학루. 도사가 벽에 그린 학이 때마다 춤을 춰 큰돈을 벌게 된 술집 주인이 그 인연을 기려 학이 날아간 뒤 누각을 세우고 황학루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1. 춘망(春望), 시성 두보(杜甫)의 절창(絶唱)

國破山河在 나라가 쓰러져도 산하는 여전하고
城春草木深 봄이 찾아온 성에는 초목이 무성하네
感時花濺淚 저 꽃은 시대를 슬퍼하여 눈물 뿌리고
恨別鳥驚心 저 새는 이별을 아파하여 마음 졸이네
烽火連三月 춘삼월에도 봉화 연기는 가시지 않고
家書抵萬金 억만금보다 더 소중한 가족의 소식
白頭搔更短 흰 머리 긁고 긁어 더욱 듬성듬성
渾欲不勝簪 이제는 비녀조차 꽂기 힘드네


엘리엇(T. S. Eliot)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황폐하고 처절한 가슴속에 절망조차 말할 엄두가 나지 않던 시절, 4월의 꽃은 왜 저리도 따뜻한지.

두보는 그보다 훨씬 옛날에 잔인한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나라가 쓰러져도 국가가 없어져도 여전히 봄은 오고 산은 초록으로 물들고, 강은 지난겨울의 얼음을 녹이며 흐른다. 그런데 이름 없는 저 꽃의 아름다운 이슬이 두보의 눈에는 눈물로 보이고 저 새의 즐거운 지저귐 소리는 국난으로 인한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슬픈 울음소리로 들린다. 어쩌다 들려오는 가족 소식, 억만금보다 중요하지만 나이 든 개인의 한계 앞에 오히려 잔인함으로 들려온다.

이슬람 문명이 화려하게 꽃피었던 곳, 그곳 이라크에 갑자기 석유 전쟁이 터졌다. 낙천과 여유로움과 관용을 생명으로 살던 그들에게 이제는 악마의 멍에를 뒤집어씌우고 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분했으면 자기가 탄 비행기를 폭파시키고, 폭탄을 몸에 안은 채 적진으로 뛰어들었을까? 부모의 사랑을 받고 인간에 대한 정을 배워야 할 어린 나이, 그들은 생이별과 인간에 대한 적개심부터 배우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불과 반세기 전 이 땅에서 꼭 같은 일이 일어났고, 또 한 세대 전에는 미국을 대신해 월남으로 갔고, 이제는 이라크라는 그 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의 전쟁이 끝나면 그 화살은 또 다시 우리가 사는 이곳 북녘 땅으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십 수 년 전, 한 은사님의 정념퇴임 기념책자에 실은 시평인데 오늘의 현실과도 너무나 비슷하다. 지난해 이맘때쯤은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듯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전략 폭격기들이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그러다 올 상반기에는 극적으로 세기의 정상회담들이 이뤄져 곧 통일이 올 듯하더니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정말이지 한반도가 온 세상이 주목하는 격전지로 옮겨온 듯하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세계의 열강들이 이익을 다투고 이념을 실험하는 각축장이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듯 시는 세월이 흘러도 장소와 독자가 바뀌어도 미래를 예지하고 쉼도 없이 일어나는 사건의 본질과 관계를 포착해 지혜를 제공한다. 천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춘망’에서 읊은 관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2. 시(詩)의 본질


▎두보가 겪었던 전쟁, 안사(安史)의 난 주요 현장이었던 시안의 명나라 때 성곽 모습.
시를 사전에서는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두산백과)라고 정의했는데 중국도 별로 다르지 않다. “시는 시가(詩歌)라고도 부르는데 고도로 정련된 언어로써 작가의 풍부한 감정을 형상적으로 표현한, 사회생활을 집중적으로 반영한, 일정한 리듬과 운율을 가진 문학 장르는 말한다.”(바이두백과)

이 정의대로라면 시는 두 가지 조건을 가져야 한다. 하나는 인간의 감동을 표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간결한 언어로 표현한 운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내용이 될 것이고 후자는 형식이 될 것이다.

군중 속에 유령처럼 스쳐가는 얼굴들: 검고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지하철역에서’, In a Station of the Metro)


에즈라 파운드는 파리의 지하철역에서 스쳐가는 군중들의 모습을 14개의 단어로 읊었다. 검은 나뭇가지는 지하에 있는 공간의 어둠을 시사할 수도, 혹은 시간이 밤이라는 것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뭇가지가 젖은 것으로 봐 비가 내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퇴근길에 오른 군중의 피곤에 젖은 얼굴들을 햇빛을 받지 못하고 과습(過濕)으로 축 처진 꽃잎의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시인은 군중을 나뭇가지와 접속하고 얼굴을 꽃잎과 접속해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듯한 군중들의 유령성을 포착한다. 그래서 파운드의 시를 이미지즘의 대표라 부르는 것일까? 여하튼 파운드는 영시를 혁신하기 위해 한시(혹은 일본의 하이쿠)의 전통을 응용해 인상 깊은 시를 남겼다.

중국의 시는 원래부터 한자라는 이미지성 글자를 사용해 극도로 절제된 표현으로 지어졌다. 앞서 인용한 두보의 ‘춘망’도 겨우 40자로 이뤄졌다. 이 40자로 시인은 당시의 세상과 자신의 처지를 대구(對句)와 대비·리듬과 강약은 물론 슬픔과 위로·절망과 희망을 함께 녹여 냈다.

훨씬 더 짧은 시도 있다. 왕유(王維) 같은 시인은 5자씩 된 4구의 20자라는 극도로 절제된 길이로 자연과 내면의 이치와 심오함을 그려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시는 소동파의 평가처럼 “시 속에 그림이 든 듯하고 그림 속에 시가 든 듯한 (詩中有畫, 畫中有詩)” 한 폭의 그림이다.

중국이 시가 발달하고 모든 문예의 중심이 된 것은 중국어와 한자에 힘입은 바 크다. 중국어는 단음절어인데다 성조어라서 균형과 리듬감을 갖추기에 유리하다. 또 한자는 한 글자 한 글자가 한 단어인데다가 네모꼴로 되어, 강력한 직관적 속성을 가졌다. 특히 한자가 갖는 이미지성은 시가 갖는 본질에 매우 부합한다.

알파벳이나 한글이 독음만 갖고 있지만, 한자는 복합적인 속성을 가졌다. 형성 구조가 거의 대부분임을 감안하면 의미도 독음도 다 가졌다 할 수 있다. 다만 둘 다 완전한 모습이 아니어서 모호성까지 더해 준다. 게다가 한자는 단순한 그림도 아니고, 평면적인 의미만 담은 것도 아니다. 고도의 추상화된 그림이면서도 이미지이다. 이 때문에 한자는 복잡 다양한 의미체계를 형성한다.

예컨대 일(日)과 월(月)을 상형자라 하지만, ‘일(日)’과 ‘월(月)’이 어떻게 해와 달을 그렸다 하겠는가? 한자를 모르는 사람에게 ‘일(日)’과 ‘월(月)’이라는 형상을 보여주고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해’와 ‘달’이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해’와 ‘달’을 그리라고 한다면 ‘일(日)’이나 ‘월(月)’처럼 그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있다면 천재이거나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이들을 해와 달이라 인식하는 것은 그 전 단계에서 과 이 있기 때문이다. 각기 둥그런 모습의 ‘태양’과 이지러진 모습의 ‘달’을 그렸으며, 해를 움직이게 한다는 삼족오(三足烏)와 달에 산다는 두꺼비를 점으로 상징화까지 했다는 설명도 보태졌다. 이후 이들은 해와 달뿐만 아니라 시간적 개념의 날과 달, 왕과 왕비, 음과 양은 물론 합쳐져 ‘세월’이라는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체계를 형성했다.

또 天(하늘 천)은 어떤가? 처럼 써 정면으로 선 사람과 키운 머리를 그려놓고 그와 맞닿은 곳이 ‘하늘’임을 그렸다. 그래서 중국은 출발부터 하늘이 인간과 분리되고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연결된 공존의 개념이었다. 이 때문에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런 연상이 가능해졌다.

鬼(귀신 귀)도 마찬가지다. 와 같이 써 사람의 얼굴에 큰 가면을 덮어쓴 모습이 ‘귀신’이다. 그래서 귀신도 인간과 대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서 변형된 존재일 뿐이었으며, 인간으로의 환생이 그 목표였다. 동양의 귀신과 서양의 드라큘라가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처럼 중국어와 한자라는 배경 탓에 시가 중국 문학의 출발점이 됐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문학 작품의 분류도 ‘시’에서 리듬과 대구 등 운율적 속성이 얼마나 줄어드는가에 따라 사(辭), 부(賦), 변문(騈文), 희극, 소품(小品: 산문), 소설(小說) 등으로 구분돼 갔다. 가장 산문적인 소설이라 하더라도 극적인 장면에서는 언제나 운문을 사용한다.

[삼국연의]의 시작과 끝, 극적 장면들을 되새겨 보라. 뿐만 아니라 표현과 인지 방식도 시처럼 이미지적인 동시에 모호하고 완곡하며 다중적이다. 한자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제국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3. 시(詩)는 언어의 제련 기술인가?


▎두보초당(사천성 성도). 579년 안사의 난을 피해 여기서 4년을 머물렀으며 여기서 ‘춘야희우(春夜喜雨)’ 등 240여 편의 시를 지었다.
언사막시(言寺莫詩). “언(言)과 사(寺)의 결합이 시는 아니다(莫詩)”라는 선언이다. 단순한 부호의 결합, 나아가 말의 제련이 시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2010년 필자의 연구소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보통과는 좀 색다른 형식을 시도했다. 세계의 저명학자를 초청해 1시간 발표에 2시간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수강료도 받았다. 진행의 편의를 고려해 중국어를 공용어로 했고, 통역 없이 진행했다.

처음에는 1시간의 발표가 너무 길지나 않을까, 2시간이나 통역 없는 토론이 이어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갈수록 격렬해지고 토론은 끝없이 이어졌다. 회의장뿐 아니라 만찬장에서 뒷자리에서 다시 숙소에서 마지막 문화 탐방을 가면서도 내내 발표 내용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4일간 잊을 수 없는 회의가 반도의 조그만 도시에서 진행됐다.

이때 독일 본(Bonn) 대학의 쿠빈(Wolfgang Kubin) 교수가 에즈라파운드의 시가 서구에서 성공하게 된 연유를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3대 중국학자로 꼽힐 정도로 유명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뽑은 중국에 가장 영향을 끼친 외국인 1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된 인물이기도 한다. 그는 중·미 수교를 성사시킨 헨리 키신저, 베이징올림픽을 선사한 사마란치 올림픽위원장 등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쿠빈 교수는 “중국의 현대 문학은 쓰레기”라는 도발적인 선언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왜 중국 현대문학이 쓰레기인지, 정말 그런지를 중국의 각 대학은 그를 청해서 들어야만 했다. 그는 중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받아 한 해의 절반은 지상에서 절반은 비행기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때는 우리 연구소의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처음은 2009년 서울대에서 개최된 재외 국민 등을 위한 국재하계캠프에 초청되었을 때 한번 들렀다. 그는 “영어로 [논어]를 강의하는 독일인”이라는 호기심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고, 우리 연구소 개소식에 와서는 “한자는 동양정신이 녹아 있는 중요한 문화자산”이라고 설파했다.

강의와 토론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당시 보스톤 대학의 예술학과 종신교수로 있던 백겸신 교수가 쿠빈의 강의를 듣고, 휴식시간에 그 내용을 한 장면으로 그려낸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세계적인 학자의 시론 강의를 세계적인 예술가가 하나의 이미지로 즉석에서 그려낸 명작이다. “말의 정련이 시가 아니다.”

4. 시(詩)의 어원과 그 주변 글자들


▎“말의 정련이 시가 아니다.” 세계적인 중국학자 쿠빈 교수의 시론에 대한 강의를 하나의 이미지로 그린 백겸신 교수의 서예작품. / 사진:하영삼
정말 그럴까? 한자에서 시(詩)는 言(말씀 언)이 의미부고 寺(절 사)가 소리부인 구조로, 말(言)을 가공하고 손질하는(寺) 것이 바로 시(詩)라는 의미를 담았다. 즉 언어를 가공해 정감을 표현해 내는 ‘시’라는 장르의 문학적 기교와 예술성을 강조한 글자다. 그러나 시(詩)가 그 전에는 [설문해자]의 이체자(異體字)처럼 언(言)과 지(止: 가다)가 결합한 (訨)로 써, ‘말(言)이 가는 대로(止) 표현하는 것’에서 ‘말을 인위적으로 가공하는’ 것으로 변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시(詩)를 구성하는 사(寺)는 매우 중요한 글자다. 시(詩) 외에도, 時(때 시), 恃(믿을 시), 侍(모실 시), 待(기다릴 대), 特(수컷 특), 峙(우뚝 솟을 치), 痔(치질 치), 等(가지런할 등) 등 언뜻 보기에 연관이 적어 보이는 않은 중요한 글자들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는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사(寺)는 지금은 士(선비 사)와 寸(마디 촌)으로 구성됐지만, 그전에는 又(또 우)가 의미부이고 지(止)나 之(갈 지)가 소리부로, ‘어떤 곳으로 가서 일을 처리하다’가 원래 뜻이었고, 이후 ‘처리하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확장됐다. 이후 우(又)가 촌(寸)으로 변하고 지(之)가 사(士)로 잘못 변해 지금의 자형이 됐다. 지(之=止)는 어떤 정해진 곳으로 가는 것을, 손을 뜻하는 우(又)는 인간의 일이 대부분 손에 의존했기 때문에 ‘일하다’는 뜻을 갖는다.

그래서 사(寺)는 그러한 일을 처리함을 말했고, 임금을 곁에서 모시고 후궁의 일을 맡아 보던 그런 사람을 특별히 시인(寺人)이라 했다. 또 그런 관원이 머무는 곳을 사(寺)라고 했고, 이 때문에 관청이나 부서를 뜻하기도 했는데 이때는 ‘시’로 읽힘에 주의해야 한다. 한나라 때 불교의 유입 이후에는 불교 사원인 ‘절’도 지칭하게 됐다.

그래서 사(寺)로 구성된 글자들은 대부분 관리하다, 모시다, 관청 등의 뜻을 가진다. 예컨대 持(가질 지)는 사(寺)에서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수(手)를 더해 분화한 글자이며, 侍(모실 시)는 ‘받들어 모시다’가 원래 뜻인데 ‘어떤 곳으로 가서 일을 처리하는(寺)’ 사람(人)을 말했다. 옛날에는 이런 사람을 시인(寺人)이라 불렀고, 이로부터 곁에서 모시다의 뜻이 나왔다.

또 恃(믿을 시)는 ‘믿고 기대다’는 뜻인데 ‘어떤 곳으로 가서 일을 처리하는(寺)’ 사람은 마음(心) 속에 항상 믿음이 있어야 하며,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대(待)는 길(彳=行)에서 시중들다(寺)는 뜻으로부터 ‘기다리다’, ‘초대(招待)하다’ 등의 뜻이 생겼고, 이로부터 접대(接待)하다, 공급하다 등의 뜻도 나왔다.

그런가 하면 時(때 시)의 경우 원래는 日(해 일)과 之(갈 지)로 구성돼 ‘태양(日)의 운행(之)’이라는 의미로부터 ‘시간’이라는 개념을 그려냈다. 이로부터 계절, 때, 역법, 時間(시간), 세월 등의 뜻이 나왔고, 시간을 헤아리는 단위로도 쓰였다.

그러나 이후 지(之)가 사(寺)로 바뀌어 지금의 시(時)가 됐는데 여기에는 고대사회에서 시간이 조정에서 관리하는 왕의 전유물이었던 것임을 생각나게 한다. 즉 시간은 왕이나 왕조에서 관리하는 권력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특히 농경사회를 살았던 중국에서 농사에 필요한 역법의 제정과 달력의 반포는 왕의 의무이자 권리였으며 권위의 상징이었다.

閏(윤달 윤)은 왕(王)이 문(門) 안에 든 모습인데 새해가 되면 정해진 역법에 따라 만들어진 ‘달력’을 왕궁의 문 앞에 서서 반포하는 모습을 담았다. 음력을 사용했던 중국에서 매년 남는 5일 이상의 자투리를 모은 윤달을 어디에 배치하는가가 중요했다. 갑골문에서는 달의 중간에 배치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연말에 배치해 13월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14월이라는 이름도 보인다. 우리가 자주 쓰는 입춘(立春)이라는 단어도 사실을 봄의 시작점 즉 한 해의 시작점을 확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입춘대길(立春大吉)과 짝을 이루는 건양다경(建陽多慶)의 건양(建陽)에 다름아니다.

마찬가지로 等(가지런할 등)은 대(竹)를 쪼개 만든 죽간(竹簡)을 손으로 잡고(寺) 정리하는 모습을 그렸다. 옛날의 죽간은 관청의 주요 문서를 상징했고, 정리를 거친 죽간은 경전을 기록한 크고 질 좋은 것, 그 다음의 것, 보통의 일반적인 것 등 내용에 따라 등급(等級)을 정하게 되기 때문에 ‘등급’이나 ‘무리’ 등의 뜻이 생겼다.

이렇게 정리된 죽간은 이후 글을 쓰게 될 재료가 된다는 점에서 ‘기다리다’는 뜻까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또 庤(쌓을 치)나 峙(우뚝 솟을 치)나 跱(저축할 치) 등은 모두 관청의 곡식을 쌓아두는 곡식 창고를 뜻해 각기 높게 솟은 건축물이나 저장고를 뜻하게 된 글자들이다.

5. 중국 시(詩)의 전통과 인식


▎쿠빈(顧彬, 1945~), 독일의 대표적인 중국학자다. / 사진:하영삼
‘말의 제련이 시가 아니라면’, 그럼 중국은 시가 무엇이라 생각했는가? 중국에는 [시경]이라는 중요한 유가 경전이 있지만, 시에 대한 정의는 사실 그 전부터 이뤄졌다. 아마도 [상서·요전]의 언급이 처음이자 중국의 전통을 열었을 것이다.

요임금이 그의 신하였던 기(夔)에게 말했다. “기야, 시는 뜻을 표현하고 노래는 말을 읊조리며 소리는 노랫가락에 의지하고, 악률은 소리에 화합한다. 팔음이 서로 화해해 서로 다투지 않게 되고, 신과 사람이 화합하게 된다.”

이후 [시경]의 최고 해설서인 한나라 때의 [모시(毛詩)]의 ‘관저’편에 대한 해설에서도 “시라는 것은 뜻이 가고자 하는 바이다. 마음속에 있게 되면 뜻이 되고, 말로 표현하게 되면 시가 된다.” 한나라 때의 유명한 사전인 [석명]에서도 “시(詩)는 지(之)와 같아서 ‘가다’는 뜻이다. 뜻(志)이 가는 바를 말한다”고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시언지(詩言志) 즉 “시란 뜻을 표현한다”라는 오래된 정의이자 시에 대한 인식이다. 본질론적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물론 이러한 뜻(志)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작자의 생각일 수도, 작자의 포부일 수도, 작자의 바람일 수도 있다. 또 표현이란 것도 뜻의 표현일 수도, 사건의 기록일 수도, 감정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여전히 감정의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영사시나 역사시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통 때문인지 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가 됐다. 특히 공자가 [시경]을 정리해 유가의 중요 경전으로 삼은 이후 시는 한 인간을 판단하는 척도이자 교양의 상징으로 사회의 규범으로 기능했다.

공자는 시의 효용을 이렇게 말했다. “시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세상을 보게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고, 사무친 감정을 풀어헤칠 수 게 한다.(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이것이 그 유명한 ‘흥관군원(興觀群怨)’이라는 공자의 시론이다. 그가 말한 흥(興)은 인간의 감성을 격발해 흥분하게 하는 것을, 관(觀)은 사회의 각종 현상을 예리한 눈으로 반영해 그것의 진실과 흥망을 똑바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을, 군(群)은 서로의 감정 교류를 통해 하나로 모이게 하는 것을, 원(怨)은 마음에 쌓였던 울분을 풀어 제치게 하는 기능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어지는 말에서 “시를 배우면 가까이로는 부모를 섬기게 되고, 멀리로는 임금을 섬기게 되며, 날짐승과 길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까지 다양하게 알게 해준다(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라고 했으니,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고 박학다식하게 주는 만병통치약이었다. 그러니 어찌 시를 배우지 않고, [시경]을 익히지 않으리오. 그래서 [시경]을 모르는 자와는 말도 섞지 말라고 했다.

6. 죽은 시인의 사회


▎1990년 개봉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이런 전통 때문일까? 유가가 오랜 세월 지배했던 동아시아에서는 시가 크게 유행했다. 조선시대에는 외교관이 갖춰야 했던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가 시였다. 개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문을 조금이라도 하는 자라면 시를 지을 줄 알아야 했다. 국가 사절이 서로 만나도 모르는 사람과 만나서도 친구끼리도 만나도 스승과 학생이 만나도 서로 시를 짓고 나누며 교류하고 우정을 쌓았다. 지금도 곳곳에서 행해지는 시회(詩會)는 이런 전통을 반영한다.

그 덕에 한국도 시적 전통이 매우 강한 나라다. 시집이 팔리지 않고, 시인이 먹고 살지 못한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시가 대접받는 곳이 한국이다. 이것이 그나마 희망이다.

시와 시인은 “속에 숨어 있던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못 보던 세상을 보게 하고, 서먹한 사람들과 하나로 어울리게 하고, 가슴에 응어리졌던 울분을 풀어주게 하는” 그런 존재이자 사람이다. 시와 시인은 보통사람이 발견하지 못하는 사물의 관계와 시점과 관점을 포착하고, 그것을 제공한다. 그래서 기존의 사고체계나 방식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이자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시가 예술의 꽃인 이유가 여기 있다.

한 사회를 정치가 지배하는 사회,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순으로 나눈 이도 있다. 시가 흥행하고, 시인이 존중을 받고, 나아가 예술이 존중받는 사회, 시를 사랑하고, 시인을 귀히 여기며, 나아가 예술을 즐기는 사회, 바로 그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이자 진정한 선진국이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고,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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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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