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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의 어드벤처(17)] 백색 낙타와의 짧은 만남, 그리고 이별 

나의 ‘보싸’는 사막의 빛으로 사라지려나 

김미루 사진작가
다시 찾아간 화이트데저트의 오아시스에서 만난 두 마리의 백색 낙타…갑작스런 동료 낙타의 죽음과 홀로 남은 암컷의 살기 위한 몸부림

▎하마다가 집을 짓고 있는 사막 동네의 풍경.
낯선 고장에서 갑자기 나의 작품세계를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생겨나는 소란, 그리고 그 젊은 학도의 진지한 태도에서 느껴지는 당혹감은 한바탕 퍼붓는 소나기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라스 샤이탄이라는 히피마을에 머물고 있는 동안, 나는 예술가로서의 나의 사회적·공적 아이덴티티를 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편했다.

내가 의학도에서 미술학도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공을 바꾸었던 결단, 그 결단은 나의 심미적 비전으로써 인류에게 더 큰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언론매체와 인터뷰할 때마다 힘주어 말하곤 했다. 나의 예술은 그냥 신적인 것이 아닌 다른 예술가들에 의하여 나에게 주어진 영감이다. 영감이라는 선물을 받았으면 그 값어치를 타인에게 되돌려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가 아닐까?

매체의 인터뷰어들에게 했던 이 말들은 과연 빈말이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있어 한 말일까? 그 중국 소녀의 맑은 눈동자가 둥그레지는 것을 보고, 또 그 소녀가 자기 친구들에게 나의 작품을 온갖 열정을 쏟아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가 나의 예술작품에 관해 말하곤 했던 의미부여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런 낯선 해변에서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정말 돌고 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건설한 ‘문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곧 나는 내가 사놓은 낙타가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화이트데저트에서 화이트 카멜과 함께 창조해내고자 했던 그 예술적 이미지를 완성해야만 한다. 2013년 4월 17일 아침, 아쉬운 석별의 인사를 나누며 나는 이 미니 유토피아를 떠났다. 나는 시나이반도의 최남단에 아름다운 산호가 깔린 맑은 바다로 유명한 샤름 엘셰이크(Sharm el-Sheikh)로 가서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로 갔다.

예술의 완성을 위해 다시 화이트 데저트로


▎오아시스에서 처음 만난 백색 낙타 보싸. 너무나 마르고 병약해 보였다.
카이로에서 나는 나의 일본 친구인 타쿠시를 만났다. 타쿠시는 고맙게도 나에게 그의 아파트의 방 하나를 하룻밤 숙박을 위해 내어 주었다. 나는 그의 호의에 너무도 감사했다. 밤늦게 도착해서 아침 일찍 떠나는데 좋은 호텔은 너무 비싸고, 허름한 여관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타쿠시를 나에게 소개해 준 친구는 나에게 암만에 있는 아파트를 재임대해 준 팔레스타인 여자 리나(Leena)였다. 여행 중에 이 많은 사람을 소개로 알게 되어 도움을 받게 되는 정황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는 그다지 사교적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적 네트워크의 형성과정의 핵을 이루는 것이 나의 예술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의 작품 때문에 나를 예술가로서 대접을 해준다. 예술의 이름으로 내가 한 일들은 여행가로서의 나의 삶과 분리할 수 없다. 여행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여행이다. 앉아서 수행하는 구도자가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만행을 하면서 수행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예술은 좌선(坐禪)이라기보다 행선(行禪)이라 할까? 하여튼 예술창작 과정과 삶의 과정은 분리될 수 없는 것 같다. 기실 모든 인간에게는 삶, 그 자체가 예술일 것이다. 그것을 예술로서 인식하든 않든 간에.

다음날, 내가 바하리야 오아시스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이미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마다는 바위티 타운 외곽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는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있는 자기 땅으로 데려갔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그의 그린 필드로 우리 차가 지나갈 때 나는 낙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안절부절못했다. 아~ 저기, 그곳에 우아하게 키가 큰 화이트 낙타 한 마리가 서있었다. 낙타의 이름은 보싸(Bossa)였는데, 아랍말로 ‘키스’라는 뜻이다. 보싸는 너무 말라 보였다. 너무 못 먹었는지 그녀의 등 위의 혹은 거의 없이 밋밋했다. 그녀를 처음 바라볼 때 너무도 측은한 생각이 들어 눈물이 글썽했다.

보싸는 분명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가 왜 그토록 불행한지를 알지 못했다. 그녀의 병력에 관한 정보가 불충분했다. 그리고 최근에 친구가 죽은 것을 목격한 트라우마가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 지역에 있는 유일한 수의사도 그가 신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지, 친구 문제로 단순히 디프레스된 것인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마다는 보싸를 수단에서 데려왔다고 했다.

그러나 실상 수단에서 수송해 오는 거리를 생각해볼 때, 과연 보싸가 수단에서 왔는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그들은 내게 받은 금액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어려운 루트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딜러들이 말하기를 보싸가 다섯 살이라고 말했지만, 그것도 완벽한 거짓말이다. 내 눈에 보싸는 그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낙타의 보통수명은 30~40세 정도다).

그러나 보싸가 정말 수단에서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게 털이 짧고, 색깔이 흰 낙타는 내가 방문한 이집트 어느 곳에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보싸는 수단이나 어디로부터 카이로로 먼저 수송되어 왔다. 그리고 카이로에 있는 낙타시장에서 또 한 마리의 흰색 낙타와 합류해 바하리야에 있는 하마다의 땅으로 다시 수송되어 왔다.

다른 한 마리의 흰색 낙타에게 하마다는 ‘사피나(Safina)’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사피나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도 색깔이 아주 희었다. 사피나의 긴 목덜미 등쪽에는 아름다운 곱슬머리 털이 일렬로 나 있었다. 하마다는 이 두 마리의 낙타가 낮에는 들판을 자유롭게 소요하면서 행복하게 놀았고, 그리고 들판에서 자기들이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저녁때가 되면 이 두 마리의 암놈들은 집으로 되돌아왔고, 서로 가까이서 잠자리를 같이 했다. 다리 하나는 기둥에 묶인 채. 이렇게 한 달 동안 이 두 마리의 낙타는 새로운 환경에 매우 잘 적응하는 듯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건강문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4월 10일 아침, 사피나는 잠자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보싸는 밧줄을 끊어버리고 도망쳤다. 충격 속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고개를 저으며, 하마다는 도자기색으로 변색해 버린 사피나의 시체를 자기 집을 짓고 있던 건축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 먼 곳으로 옮겨 놓았다. 시체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부패하고 해체되어 간다.

이날 저녁 하마다의 사람들은 보싸가 하마다의 집에서 꽤 먼 곳에서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보싸를 트럭에 실어 하마다의 집으로 옮겨 왔다. 그리고 트럭에서 내려서 밧줄로 묶어 보싸를 원래 잠자리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래야 발 하나를 기둥에 단단히 묶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피나의 죽음,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런데 매우 기묘한 일이 발생했다. 보싸는 그의 친구 사피나가 죽은 그 잠자리로 그를 데려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고 그 자리 부근으로 가는 것을 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다. 보싸는, 그 자리가 말끔히 치워졌고 또 사피나의 시체는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밤 사피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유일한 목격자는 보싸뿐이다. 그 죽음의 장면은 그의 영혼을 뒤흔들 정도로 아주 끔찍한 사건이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하마다는 하는 수 없이 보싸에게 새로운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하마다는 낙타가 그토록 강렬한 기억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매우 놀랐다고 했다.

보싸의 극적인 반응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여러 번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부분 베두인들과 뚜아렉 사람들을 통한 것이었겠지만, 낙타라는 동물이 몇 년 전에 일어난 일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고, 사람을 개별적으로 식별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낙타들은 자기를 해친 사람에 대한 원한을 품을 줄 알며, 몇 년 후에까지 그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동일한 사람을 해치는 복수를 감행할 줄도 안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고 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정말인지, 또 낙타의 장기지속형 기억력(longterm memory)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인지 어떤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같은 종류의 이야기들을 낙타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세계 지역에서 수집한 나로서는 이 하나의 명제만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낙타는 진실로 탁월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보싸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낙타라는 동물의 예민한 감성과 이성적 능력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사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대부분의 도시문명세계에서는, 낙타는 코믹하게 생겼고 아둔하고, 좀 기이한 낯선 동물로 인식되며, 농담이나 만화 속에서 웃기게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보통 문명인들은 낙타에 관해서는 실제로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보싸를 우연히 만나고, 그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나는 낙타라는 긴 목을 지닌 신비스러운 유제류(有蹄類: 발굽이 있는 동물)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바꾸게 되었다. 그것은 동물 한 마리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인식의 질적 전환을 의미하는 문제였다.

2013년 4월 18일 내가 바하리야에 도착했을 때, 사피나가 죽은 그날 이후로 보싸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하마다는 내게 말했다. 보싸가 이렇게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그도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주변 친구들이 다 말하고 있다고. 그런데 문제는 경험 있는 아프리카의 지역민들도 보싸가 왜 단식투쟁에 돌입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친구가 죽고 난 다음부터 음식 먹기를 거부한다는 사실만을 지적할 뿐이었다. 나는 서구화된 상식에 기대 하마다에게 암시했을 뿐이었다. “사피나는 분명 전염성의 병으로 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보싸가 그 병에 전염된 것 같아요. 보싸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전염병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겠죠. 그럼 정확한 처방이 나오겠죠.”

하마다는 반복해서 말할 뿐이다. 수의사를 한번 데려왔는데, 수의사도 보싸가 왜 잘못되었는지를 전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고. 수의사가 주고 간 약간의 약을 투약해도 사태의 진전이 없었다. 그 지역에는 여러 마을을 관장하는 단 한 명의 수의사가 있었는데, 항상 매우 바빴다. 그래서 지역민들은 가축들이 병들면 기껏해야 동종요법(homeopathic methods: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 약물을 극히 소량 물에 타서 먹이는 요법. 여기서는 그냥 민간요법을 뜻함)과 같은 민간요법을 사용하는 일 외로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가축들이 죽으면 그것은 천운이었고, 생명의 현실일 뿐이다. 보싸를 쳐다볼 때마다, 나는 슬픈 감정과 죄책감에 동시에 휩싸였다. 보싸는 그 먼 길, 바하리야까지 나 때문에 와야 했다. 그의 실존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는 것이다. 나는 진실로 그를 그냥 그렇게 죽도록 놓아둘 수가 없었다.

친구를 잃은 보싸의 깊은 트라우마


▎보싸에게 약을 먹이는 모습.
보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가 나를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정면으로부터 매우 부드럽게 접근해 들어갔다. 그러자 그는 주의 깊게 나를 피하는 듯 약간 옆으로 몇 발짝 움직이며 고개를 젓곤 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이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마주서서 그를 계속 응시했다. 그리고 나는 결코 그를 해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 같은 것을 불어넣어 주려고 애썼다.

자세히 그를 검진한 결과 나는 그의 눈이 백내장 같은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눈동자가 뿌옇게 마치 구름으로 덮여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신선한 클로버와 같이 생긴 줄기가 긴 풀만이 제공됐다. 하마다는 이것이야말로 낙타에게 제공될 수 있는 최상의 음식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경계심이 많은 보싸는 신선한 풀을 주며 병 간호를 해주는 내게 유일하게 접근을 허락했다.
불행하게도 하마다의 구역 내에서는 휴대전화를 이용하기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낙타의 음식과 질병에 관해 연구할 방도가 없었다. 클로버가 과연 이런 상황에서 최상의 음식이라는 보장도 없는 듯했다. 바하리야에 오기 전에 보싸의 소식을 듣자마자, 이미 보싸를 고칠 수 있는 치유방법에 관한 전문적인 정보를 수집했어야 했다. 그렇게 머리가 돌아가지 않은 것만이 통탄스러웠다. 그러나 이미 달리 무엇을 시도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그의 곁에 서서 클로버잎을 들고 있으면서 그가 그것을 먹도록 종용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보싸는 그것을 먹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나의 지성(至誠)에 감복했는지 조금씩 그 연한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씹으면서 소량을 삼켰을 때 나는 만세를 불렀다. 그 사건 이후로 보싸는 내가 클로버 이파리를 내밀기만 하면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단지 내가 주는 것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하마다의 사막집 시설은 매우 단순하고 소박했다. 그가 지으려는 호텔은 지금 건축 중이었고 완성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였다. 하마다는 그 와중에도 내가 머물 수 있는 방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 방은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고, 전기가 들어왔고, 또 부속된 작은 욕실이 있었다. 욕실이 부속되어 있어 매우 편리했지만 수도꼭지를 틀면 뻘건 흙탕물이 나왔다. 그리고 샤위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물이 찬데다가 수압이 약해 졸졸 흐르니까 실상 샤워가 무의미했다. 그냥 대야에 물을 받아 조금씩 몸을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막의 각박한 캠핑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보싸 곁에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트라우마에 빠진 보싸는 내가 준 풀을 가까스로 먹으며 겨우 생명을 유지했다.
보싸의 건강이 증진되어 화이트 데저트에서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뭔가 사진 이면에 기구한 사연이 배어들어갈 수 있겠지! 그러나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15일 동안 나는 매일 온종일 보싸 곁에서 그를 돌봐 주어야만 했다. 나중에는 내가 왜 보싸를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그 이유조차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의식의 초점이 될 수 없었다. 섬세한 마음을 소유한 생명체의 생과 사가 엇갈리는 문제에 나는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민감한 마음의 소유자! 그 친구가 어떻게 죽었길래 그토록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걸까!

병든 보싸를 위한 헌신적인 간호


▎보싸는 내 손을 살짝 물거나 얼굴을 혀로 쓰다듬으며 호의를 표현했다. 얼굴을 맞대고 카메라를 들이대도 전혀 거부하지 않는다.
기초적인 음식재료를 사러 타운센터에 잠깐씩 다녀오는 것 외에 나는 하마다의 친구가 운영하는 농원을 한 번 들르곤 했다. 그 외에는 어떻게 하면 보싸가 더 잘 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며 하루 종일 보싸 곁에 붙어 있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신선한 클로버가 더미로 쌓여 있었다. 그러나 보싸는 내가 와서 그것을 한 뭉치로 만들어 입에 대주지 않는 한 먹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이런 작업만 해도 매우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보싸가 조금씩이라고 먹기만 한다면 굶어죽지는 않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나는 이 작업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이 작업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나는 클로버뭉치로 그의 얼굴을 살랑살랑 휘감아 주면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때로는 나는 토속적인 산제나 마을굿에서 하듯이 양손에 클로버 뭉치를 쥐고 그것을 향대처럼 모아 동쪽, 남쪽, 서쪽, 북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절을 하고는 그것을 보싸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확실히 보싸는 더 잘 먹는 듯이 보였다.

첫 이틀 동안은 보싸가 특별히 음악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내 랩톱을 그에게 가까이 가지고 가서 다양한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틀어 주었다. 얼마 지나면서 나는 보싸가 전설적인 재즈 가수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 1915~59)를 특별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의 주관적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빌리 할러데이에 맞추어 블루 문(Blue Moon: 리처드 로저스와 로렌츠 하트가 1934년에 만든 곡으로 고전적 발라드의 한 전형)이나 섬머타임(Summertime: 거쉰의 오페라 [포기 앤 베스]의 한 아리아. 20세기 들어 재즈 버전으로도 불렸다)을 부르면 보싸는 매우 행복해 보였고 클로버잎을 더 먹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하루 종일 낙타를 먹이려고 애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날짜는 제법 빠르게 지나갔다. 보싸는 나의 루틴에 매우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5일째, 보싸는 더 많이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손으로 주는 것만 먹었다. 하마다를 위해 일하는 깡마른 10대 소년이 아침이면 신선하게 채취한 풀을 한 더미 가져다 놓는다. 그러나 보싸는 내가 직접 내 손으로 먹여 주지 않는 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보싸는 내가 자기를 도우려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모종의 굳건한 신뢰관계가 보싸와 나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내가 보싸를 만져주면 그는 조용히 있었다.

자기 등을 내어 준 보싸와의 교감


▎보싸는 이 마을에서 오직 내게만 자기 등을 내어 주었다. 내가 마사지를 해주면 보싸는 만족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는 백내장이 심했지만, 나를 쳐다보고 식별할 수 있었다. 9일째가 되자, 지역민들은 내가 보싸와 교감하는 것을 보고 나를 낙타의사라고 불렀다. 11일째, 나는 드디어 보싸가 앉아있을 때 그의 등에 올라앉아 그 몸을 두루두루 문질러줄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은 그의 머리와 몸을 마사지 해주었는데, 보싸는 너무도 기분이 좋았는지 머리를 늘어뜨리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 한 면을 땅에 철푸덕 댄 채. 내가 마사지를 멈추었을 때, 보싸는 곧 머리를 쳐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보싸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멈추세요?”

내가 보싸 등에 올라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를 마사지 해주고 있는 광경을 본 하마다는 너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마다나 하마다의 공인들이 보싸에게 접근하면, 그는 크게 소리를 치거나 피하거나 어떤 때는 아주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보싸는 나 이외의 어느 누구도 자기 몸을 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보싸가 나 외에 경계심을 갖지 않는 또 한 사람은 목초를 베어 오는 십대 소년이었는데, 그는 보싸를 무서워했다. 그래서 목초만 한 더미 엎어놓고는 부리나케 달아났다.

저녁때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작은 가스버너와 낡은 냄비로 내가 먹을 음식을 간단히 장만하거나, 하마다가 얼쩡거릴 때는 그와 잡담을 나누거나,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목초를 베는 작업을 돕고 하루 종일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선 채로 보싸를 먹이고 나면 녹초가 되어 그저 눈만 감으면 곧 잠들어 버린다.

보싸를 돌보는 동안 나는 초저녁부터 잠을 잤다. 그러나 저녁 때 목격하곤 하는 흥분을 떨칠 수 없는 기괴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꼭 거미 같이 생긴 거대한 생명체인데 갑자기 나타나서 천정의 빔을 후욱 지나가거나 마룻바닥을 유령처럼 스쳐 지나가곤 한다.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 움찔했다.

언뜻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보통 ‘낙타거미(camel spider)’라 부르는 이 생명체는 맹독을 가지고 있다는 루머와 함께 회자되곤 했다. 거미 같이 생기기는 했지만 너무도 크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순간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웹페이지에 이라크전쟁 후에 한 미국 병사의 짐에 묻어 들어온 이 낙타거미가 그 집의 개를 물어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중에 내가 자세히 조사해 본 바로는 이 낙타거미는 사람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로 검증되었다고 한다.

태양으로부터 도망쳐 온 생명체


▎사막에서 발견된 일명 낙타거미라 불리는 솔리푸개. ‘태양으로부터 도망 온 것들’이란 뜻이다.
매우 무섭게 생긴 외모와 달리 몸에 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두부에는 두 개의, 강모(剛毛)로 덮인 집게가 달려 있고, 몸통에는 10개의 다리가 있지만 실제로 땅에 닿는 발 구실을 하는 것은 뒤쪽의 네 쌍이고 제일 앞쪽의 한 쌍의 긴 다리는 페디팔프(pedipalps), 즉 촉수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안테나로서 닥쳐오는 환경과 교섭하는 중요한 감각기관 노릇을 한다(상당히 정교한 복합안점의 눈도 가지고 있다).

이 생명체는 ‘윈드 스콜피온(wind scorpions)’이라고도 불리는데 현재 153속 1000 종이 넘는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로 전갈도 아니고 거미도 아니다. 이 생물체의 이름은 정식으로 ‘솔리푸개(Solifugae)’라 하는데, 거미강(蛛綱)에 속한 절지동물로서 독립된 목(目)을 가지고 있다. 솔리푸개라는 이름은 ‘태양으로부터 도망 온 것들’이라는 라틴어에서 왔다.

내가 하마다의 집에 본 것만 해도 모래 색깔인데 그 크기가 다리를 계산해서 12~15㎝에 이른다. 정말 거대한,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거미모양의 생물이다. 하마다가 말하기를 이 낙타거미는 오히려 사람들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그러나 때에 따라 사람이 걸어가면 졸졸 뒤따라오는데, 그것은 사람의 그림자가 그들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공격을 당하거나, 위험을 느끼게 되면 “스- 스-” 하는 소리를 내기는 하는데 사람을 무는 법은 없다고 했다.

물론 낙타거미는 날카로운 집게로 먹이를 자르고 찢고 할 수가 있으며 이빨도 강력하다. 며칠 동안 나는 이 기묘한 생명체를 관찰하면서 이 징그러운 낙타거미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 이들의 행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은 맨해튼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했다.

2013년 5월 1일 아침, 나는 보싸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보싸는 무엇을 씹고 삼키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보싸는 내가 주는 클로버의 이파리 있는 쪽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보싸는 한 뭉치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릴 힘도 없어 보였다. 뭔가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다. 줄기가 없는 연한 이파리만 조금 떼어 먹고 입 속에서 거품만 지어내었다. 먹고 싶어 하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안타까운 심정은 짙어만 갔다.

※ 김미루 -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2006년 졸업, 미술학 석사 MFA). 이스트 리버 미디아에서 2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뉴욕타임스]와 [에스콰이어] 매거진에서 ‘베스트 앤 브라이티스트(Best and Brightest)’ 예술인으로 뽑혔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한미포토뮤지엄에 소장돼 있다.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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