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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의 쿠바탐험 | 부에나 비스타, 아바나(10)] 쿠바의 세대 갈등 

혁명의 나이테가 늘어날수록 골은 깊어진다 

김해완 작가
해방과 전쟁 이후 세대 갈등 깊어진 한국과 판박이…1959년 혁명 이후 급속한 변화에 세대 갈등 깊어져

▎어린 아이와 부모가 동네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K-드라마 열풍이 한창이다. 그 바람이 어찌나 센지, 세계와 단절된 쿠바까지 불어오고 있다. 10년도 더 전에 방영됐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인 ‘구준표’와 ‘금잔디’, 이 둘의 이름이 2018년 쿠바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사극 [구르미 그린 달처럼]은 어설픈 스페인어 자막을 입고 돌아다니는 중이다. 배우 이민호는 안방에서 아줌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랑이라는 소재다. 혹자는 한국 드라마가 사랑에 대한 유치한 망상을 키운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비현실적인 로맨스’가 만국의 인민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문화권마다 연애하는 방법은 달라도, 연애 감정 뒤에서 별의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똑같은가 보다.

그런데 사랑만큼 보편적이고, 사랑보다 더 리얼한 소재가 있다. 한치의 판타지 없이도 전 세계적인 공감을 사는 이야기 말이다. 바로 세대 갈등이다. 아직 이렇다 할 만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 진작 히트를 치고도 남았을 소재감이다. 한국을 보라.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만 정작 각 지붕 아래에서 세대 갈등은 곪을 대로 곪아 있다. 개인의 자유를 외치는 뉴욕은 또 어떤가. 이민자 부모는 미국인을 닮아가는 자식이 불편하고, 자식은 과거의 생활방식을 붙들고 있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세류(世流)가 밀어낸 시간


▎아바나 비에하의 한 아파트. 발코니가 각 방마다 분리돼 있다. 마치 단절된 쿠바의 세대 차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현실은 모든 세대가 작은 아파트에서 모여 살아야 한다.
쿠바 역시 예외는 아니다. 깡다구의 대명사인 이 약소국은 지난 100년 간 격렬한 역사를 통과했고, 시간의 질곡마다 잉태된 각각의 세대는 전혀 다른 색깔을 입고 있다.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엉기적엉기적 걸어가는 젊은이를 바라보며, 두꺼운 시가를 입에 문 채 불평하는 쿠바 노인의 모습은 한국의 어르신들과 꼭 닮아 있다.

“요즘 애들은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끈기도 없고 예절도 몰라. 조국을 혁명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희생했는데, 이게 결과라니…. 꼰뇨!(‘제길’에 가까운 의성어)”

만약 세대 갈등을 주제로 리얼리티 쇼를 제작한다면, 나는 쿠바를 촬영 장소 1번지로 꼽겠다. 특히나 아바나를 택하겠다. 주거난이 심각한 이 도시에서는 오촌에 팔촌까지 모두들 손바닥만 한 집에 모여 산다. 가까운 신체적 거리만큼 세대 간의 색깔 대비도 확실하고, 혁명이라는 사건 덕분에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우선 세대라는 개념부터 살펴보자. 세대란 무엇일까? 백과사전식으로 정의하면 생물의 재생산 단위다. 나를 낳은 자들이 ‘윗세대’가 되고, 내가 낳을 자식이 ‘아랫세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세대를 생물학적인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아이를 낳고, 늙다가, 죽는다. 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환에 ‘OO세대’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이 시간이 더 이상 생명 활동으로는 설명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제 세대는 문화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세대란 같은 시대를 통과하면서 공통된 감각, 가치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동년배들을 지칭한다. 이런 특수성은 한 편으로는 단절과 고립의 뜻도 품고 있다. 세상이 세대가 교체되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해버린 세상에서 자식은 더 이상 부모가 가르쳐준 대로 살아갈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때도 부모의 경험에 기댈 수 없다. 또, 자신이 얻은 노하우를 미래의 자식에게도 전수해줄 수 없다. 세상이 또 바뀔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확실하게 유동하는 세상과, 그럼에도 확실성을 붙들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속에서 ‘세대’라는 문화적 단위가 생긴다. 따라서 세대라는 개념은 이미 그 안에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세대는 언제나 ‘세대-갈등’인 셈이다. 그러나 이 갈등은 세대의 구성원들이 능동적으로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격동하는 세상, 즉 세류(世流)가 사람들을 각기 다른 시간의 방향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누구는 세대 차이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선사시대의 동굴에 적힌 상형문자를 해독해보니 ‘요즘 젊은 것들은 역시 안 돼’라는 꼰대의 한마디가 나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세대와 세대 사이의 시간 간격이 급격히 멀어지게 된 것은 최근 500년의 일이다. 근대라는 시간, 세계 방방곡곡의 사람들의 운명이 긴밀히 연결되고 쉴 새 없이 변화가 몰아쳤던 급류 구간. 공동체에 의지하여 몇 백 년 동안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가던 토착인들은 이방인의 도래와 함께 알 수 없는 미래를 예감했다. 많은 이들은 고향 땅에서 뿌리 뽑혀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했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의 가속도를 올렸고, 여러 세대에 걸쳐서 공감할 수 있는 집단 문화도 호흡이 점점 짧아졌다.

쿠바 혁명, 세 세대를 잉태하다


▎공원과 길거리는 쿠바의 모든 세대가 모이는 장소다. 산책과 인터넷 서핑, 수다, 축구 등 세대별 액티비티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쿠바도 근대의 급류에 휩쓸렸다. 오늘날 쿠바의 세대를 가르는 핵심 사건은 무엇일까? 혁명이다. 혁명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1959년 1월 1일 아바나에 혁명군이 진입한 순간부터 쿠바의 시간이 달라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쿠바 혁명은 근대에서 피어난 가장 화려한 꽃 중 하나다.

앞서 연재에서도 말했지만, 쿠바는 근대가 시작된 첫 장소다. 1492년 콜럼버스가 쿠바를 발견한 이후에 식민주의의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시작됐고, 플랜테이션 농업이 가능해졌으며, 식민지 상품을 기반으로 한 세계 무역이 탄생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라는 경쟁자 없이 홀로 아메리카 땅을 흡수한 유럽은 마침내 두 대륙의 경쟁자까지 굴복시키며 세계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근대의 전부는 아니었다. 근대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대학자라도 어렵겠지만, 근대가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 같은 기간 동안, 다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제국주의의 악덕에 반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운동도 함께 태어났다. 민주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반인종주의, 양성평등주의, 독립운동, 노동조합 운동…

아메리카 대륙은 가장 먼저 식민주의가 태어난 땅이었다. 그만큼 변화의 조류에 있어서도 앞서 있었다. 19세기 초, 중미의 아이티가 독립의 첫 신호탄을 울렸고 그 다음에는 북미의 미국이, 그 다음에는 남미의 여러 국가들이 독립의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근대 실험을 계속해 나갔다. 그런데 유달리 쿠바의 시간은 이 격렬한 흐름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다. 쿠바는 푸에르토리코와 더불어 스페인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최후의 식민지였다. 쿠바의 지배 계층은 친서파와 친미파로 나뉘어서 이 땅을 누구에게 넘겨줄 지 의논했다. 시인 호세 마르티와 장군 안토니오 마세오가 독립운동을 조직하는 와중에도,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은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즉, 쿠바는 근대의 첫 단추였으면서도 동시에 근대가 오랫동안 지연된 장소였던 셈이다.

변화를 바라는 쿠바인들의 욕망이 마침내 터져 나왔던 것은 마지막 100년이었다. 20세기 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뤘지만 곧바로 미국의 위성 국가로 전락하자 쿠바인들도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반독재,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 반자본주의, 반계급주의를 주장하는 외침이 거리를 메웠다. 이 카오스 속에서 1959년 혁명은 명분을 얻었다. 그것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경험한 해방 운동의 압축판과 같았다. 게다가 이웃 나라들과 결정적인 차이점도 있었다. 혁명이 정말 성공했던 것이다. 보통은 한 세기 가까이 노력해도 이뤄내기 어려운 사회 구조의 변화가 이 섬나라에서는 당장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혁명의 성공’이란 무엇일까? 더 이상 길 잃어 불행한 세대가 없으리라는 걸까? 아니었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혁명의 길에는 산더미 같은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었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혁명가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자꾸만 길을 틀었다. 즉, 이는 혼란의 종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로써 세대 갈등은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했다. 혁명 이후 쿠바를 경험한 쿠바인들은 세 가지 세대로 분류된다. 혁명 세대, 잃어버린 세대, 그리고 인터넷 세대다. (세대 구분과 명명은 필자가 임의로 한 것일 뿐, 쿠바에서 실제로 쓰이는 개념어는 아니다.)

열정과 냉정 사이: 혁명 세대 VS 잃어버린 세대


▎중년 부부와 쿠바의 젊은 여성이 따로 떨어져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혁명을 경험했을 노인(왼쪽)은 물끄러미 다른 곳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김해완
존재감이 가장 강한 세대는 첫 번째 세대, 즉 혁명 세대다. 2018년 현재 이 세대는 60대 초반에서 70대 후반의 나이에 이르렀다. 이 노년들에게 혁명은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 아니다. 이들은 두 눈으로 혁명을 목격했고, 피부로 변화를 겪었다. 빈농의 자식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됐고, 시골 구석구석에 의사가 파견됐으며, 집 없는 자들에게 집이 생겼다. 그때 그 시절, 혁명 세대는 국가의 번영이 곧 나의 번영이요, 모두의 번영이라는 공식을 진심으로 믿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혁명의 일꾼이 되기를 자처했다.

혁명 세대를 발견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만약 남녀노소가 모인 대강당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온다면, 청년들은 기계적으로 부르는 반면에 혁명 세대는 목 터져라 부를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존경심을 피력하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를 ‘피델리스트’라고 지칭한다면 이 역시 혁명 세대다. 정치 이야기에 핏대를 세우며 ‘이게 다 미국 탓이다’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도 물론 혁명 세대다.

혁명 세대라고 해서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눈 감고 귀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악화되고 있는 조국의 상황에 분노한다. 당신들이 젊은 시절을 희생해서 이룩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당신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의지할 곳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분노는 다른 세대보다 훨씬 더 뜨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종착역은 언제나 미국 아니면 (혁명을 이어나가는 데 실패한) 쿠바의 젊은 세대다. ‘그때 그 시절’혁명은 이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고귀한 가치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자기 두 손으로 새로운 쿠바를 탄생시켰다는 자부심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혁명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자기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혁명 세대가 불꽃같은 열정을 품었다면, 그 다음 세대는 얼음 같은 냉소를 띠고 있다. 이들이 바로 잃어버린 세대다.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생으로, 현재 4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에 포진해 있다. 혁명 세대의 자식뻘이거나 조카뻘 된다고 보면 된다. 이들이 잃어버린 세대라고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단체로 쿠바를 떠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쿠바에서 전문직 종사자들을 보면 대부분 30대 아니면 50대다. 40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소련이 붕괴됐던 90년대, 잃어버린 세대는 막 20대에 들어선 청년들이었다. 바로 그때 쿠바인이라면 누구도 잊을 수 없는 특별 시기가 시작됐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전기도, 물도, 쌀도, 고기도, 아무것도 없었다. 저녁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 온갖 곳을 헤매야 했고, 떠돌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어야 했다. 한창 인생을 설계하고 있을 시기에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힌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떠나는 거다. 남은 인생을 걸고, 새로운 나라로 가서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밖에. 이렇게 90년대에 청년이 된 세대는 있는 힘을 다해 쿠바를 탈출했다. 이 끔찍한 현장이 그들이 진정으로 목격한 ‘혁명’의 결과였으므로.

잃어버린 세대는 전 세대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쿠바의 몰락에 혁명 세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정의감으로 제 아무리 뜨겁게 불타오른다고 해도, 머리는 차갑게 식혀야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혁명 정부는 쿠바가 지난 400년 간 식민지 지배를 당하면서 이미 기형적인 경제 구조에 빠졌다는 사실을 무시했고, 아무리 효과적인 시스템을 건설해도 그 안에 사는 개인이 자기 동력을 잃는 순간 시스템은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시작한 적 없는 혁명의 희생자가 된 이 세대로서는, 혁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다’고 여전히 주장하는 전 세대의 고집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답을 택한다. 우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다’고.

잃어버린 세대 VS 인터넷 세대


▎베다도의 ‘존 레논 공원’에 설치된 존 레논의 동상. 미국 음악을 전면 금지했던 혁명 정부가 존 레논의 인기곡 ‘이매진(Imagine)’의 노랫말이 혁명의 대의와 부합한다며 만든 공원이다. / 사진:김해완
잃어버린 세대라고 해서 고향땅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정기적으로 고향을 방문하고 있고, 가족과 친척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정치적인 일과 연루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정치에 대한 뿌리 깊은 냉소와, 재입국을 금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들의 선택에 대한 평가는 양가적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시선도 있고, 조국을 포기한 배신자라는 시선도 있다. 심지어 이런 짓궂은 농담도 있다. ‘저곳에 가서 코카콜라를 마시면 이곳은 잊게 되지.’

시기와 질투가 작동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 시대가 또 다시 바뀐 것도 한몫한다. 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세대는 잃어버린 세대만큼 절망적으로 쿠바를 느끼지 않는다. 이들은 특별한 시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여 자의식을 갖추게 됐을 때는 이미 21세기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쿠바는 관광업과 해외 의사 파견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며 힘겹게 일어서고 있었다. 이들은 경제난과 관료주의로 엉망이 된 사회 시스템을 보면서 자랐지만, 또 상황이 조금씩 호전되는 것 역시 보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쿠바에 인터넷이 찾아왔다.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된 지 4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젊은 세대는 순식간에 이 신세계에 적응했다. 쿠바에서 인터넷은 1시간에 1CUC(약 1200원)으로 물가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 그러나 인터넷 세대는 쿠바인답게 해결책을 찾아냈다. 한 명이 다운로드 받은 자료를 USB에 담아서 100명이 돌려보고,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유튜브로 세계와 소통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는다. 또, 메신저 앱으로 쿠바를 떠난 친척 및 친구들과 훨씬 쉽게 소통한다. 이는 괄목할 만한 변화다. 지리적인 거리가 옛날만큼 심적인 거리를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대의 특징은 차이다. 차이는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각기 다른 관심사와 취미활동을 가지고 있다. K팝을 듣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며, 동양의학에도 관심을 갖는다. 또, 경제 개방과 함께 쿠바 내에서도 빈부 격차가 커졌다. 다 같이 가난하고 다 같이 굶주리던 옛날과 달리, 인터넷 세대는 나이키 신발을 신고 아이패드를 쓰는 학생과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하는 학생이 한 교실에서 조우한다.

자본주의 국가들과 쿠바의 차이를 더 명확히 인식하려는 흐름도 젊은이들 사이에 존재한다. 무료 교육이 쿠바의 강점이며, 자본주의가 완연히 침투하기 전에 이 혜택을 최대한 누려야 한다는 의식도 있다. 이처럼 인터넷 세대는 작은 여력으로나 마 스스로 자기 길을 찾는 중이다. 혁명에 ‘올인’하거나 아니면 혁명 조국과 영원히 작별하거나, 둘 중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밖에는 택할 수 없었던 전 세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터넷 세대도 기회만 있으면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서 배운 문화와 축적한 자본을 가지고 다시 쿠바로 돌아오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족과 떨어져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돈 벌 방도만 마련된다면 쿠바에서도 ‘부유한 외국인’처럼 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들이 어떻게 쿠바를 바꾸어나갈 것인지, ‘쿠바 문화’와 ‘쿠바인’이라는 정체성은 또 어떤 변화의 물살을 겪을 것인지는 지켜봐야 하리라.

혁명도 가르쳐 주지 않는 공생법


▎아바나의 명물인 호텔 아바나 리브레 외벽에 걸려 있는 혁명 선전물. ‘자유로운 쿠바여, 흥하라’라는 문구와 혁명의 주역들이 그려져 있다. 선전물 위에는 외국인 전문 여행사가 성업 중이다.
혁명은 1959년에 일어난 한 번의 사건을 전후해 다른 시기에 태어난 쿠바의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현실을 보았고, 살기 위해 서로 다른 길을 찾아냈다. 이 길들은 아바나의 닭장 같은 아파트 거실에서 교차한다. 국제 뉴스를 보는 할아버지, 미국 마이애미로 떠난 언니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필요한 물품을 보내달라고 하는 어머니, 그리고 구석 소파에서 핸드폰을 하는 아들. 역시 삶은 혁명보다 어렵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한 지붕 아래 공생하는 법은 혁명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공생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세대 간의 공감은 내가 겪어보지 않은 시간, 혹은 받아들이기 거북한 시간을 알고자 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쿠바의 세 세대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모두 혁명이라는 사건의 변주로서 태어났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뜨거운 이상, 세계의 흐름에서 벗어나 살 수 없다는 냉철한 현실, 결국 모든 것은 유동하며 자기 개성을 드러내고픈 보편적 욕망을 보여준다.

누구는 쿠바의 시간이 멈췄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90년대 이후 30년만을 지칭할 뿐이다. 이 30년의 쉼표가 자연스럽게 보일만큼 쿠바는 20세기 내내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세대는 이 살아 있는 역사의 진정한 나이테다. 이들의 다른 캐릭터를 부정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을 때에야, 쿠바 혁명은 ‘1959년’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새롭게 나갈 수 있으리라.

젊은이는 늙는다. 늙은이는 죽는다. 새로운 시대는 새 생명의 탄생과 함께 다시 온다. 우리는 영원히 이 사이클 속에서 있다. 그러니까, 과거와 미래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언제나 지금 뿐이며, 현재 속에서 우리는 늘 다른 세대와 함께 해야 한다. 이것이 쿠바에서도 한국에서도 모두 유효한 리얼리티 쇼의 결말일 것이다.

※ 김해완 - 1993년 생. 십대에 중졸백수를 자처했으나 지금은 평범한 이십대 청년백수다.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후 남산강학원에서 5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읽고, 쓰고, 같이 사는 법을 익혔다. 2017년 9월부터는 쿠바 아바나에 정착해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른 10대의 탄생],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 [뉴욕과 지성-뉴욕에서 그린 나와 타인과 세상 사이의 지도]가 있다.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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