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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서울의 새 골목길 명소 ‘-리단길’ 

“꼭 전철역과 가까워야 사람 많이 찾나요?” 

이동엽 월간중앙 인턴기자
경리단길, 송리단길, 망리단길… 주택가 골목에 숨바꼭질하듯 숨은 명소 즐비
청춘들은 SNS에 ‘나만의 공간’ 뽐내기 위해 즐겨찾기 ‘꾸욱~!’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모여 있는 경리단길. 주택가 건물 1층을 개조해 만든 카페나 음식점이 많다.
도시에서 일반적인 만남의 장소는 지하철역과 가까운 번화가 카페나 음식점, 멀티플렉스 공간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서로 위치만 다를 뿐 거리마다 흔한 프랜차이즈 가게처럼 천편일률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평범한 것은 싫고 남들이 다 가는 곳엔 가고 싶지 않은 이들은 새 장소를 찾아나선다. 그래서 찾아낸 곳이 ‘주택가 골목길 상권’. 전철역 상권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로데오길과는 다른 이색 골목길이다.

서울에서도 골목길 상권이 처음 뜬 곳은 이태원동의 경리단길이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근처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 육군중앙경리단(현재의 국군재정관리단)이 길 초입에 위치해 있어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는 평범한 주택가 골목이었던 곳에 예술가와 상인들이 하나둘 들어와 이색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몰려든 명소다. 특히 경리단길은 2014년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소개되면서 자유롭고 여유로운 거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입소문을 타고 골목길 상권이 핫 플레이스로 등극하자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의 몇몇 도시에도 경리단길의 이름을 빌린 공간이 생겨난다. 일명 ‘~리단길’ 시리즈라고 할 만하다. 서울의 망리단길과 송리단길을 비롯해 전주 객리단길, 경주 황리단길이 그것이다.

이름을 공유한다고 해서 꼭 이 골목들이 닮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크게 봤을 때 ‘프랜차이즈보다는 각자의 개성을 살린 작은 가게·카페·공방 등이 모인 주택가 골목길 상권’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도심 번화가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형성돼 대체적으로 조용한 공간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망리단길의 한 소품가게 앞에 전시된 제품들을 젊은이들이 쇼윈도 밖에서 구경하고 있다.
그렇다면 젊은층들이 이곳에 즐겨 찾는 이유는 뭘까. TV 프로그램 [알쓸신잡2]에 출연해 대중에게 친숙해진 건축가 유현준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공간을 소유하기보다 공간을 소비하는 쪽으로 변화해 간다”고 설명한다. 유씨는 “공간을 소유할 수 없으니 SNS 같은 사이버공간에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 그러기 위해선 사진과 콘텐트가 필요하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곳을 찾아내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자신만의 사이버 공간에 올린다”고 덧붙였다.

골목길 상권이 뜨게 된 이유를 젊은층의 SNS 문화 확산과 연결 지은 분석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책·음악을 넘어 새로운 공간도 SNS를 장식하는 콘텐트가 됐다는 것이다.

소박한 느낌 가득한 골목, 망리단길


▎망리단길의 주택가 1층 곳곳에는 개성 있는 가게들이 있다.
망리단길은 서울 망원동 망원시장 옆 포은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골목상권을 지칭한다. 이곳의 이름은 포은로가 위치한 망원동과 특색 있는 골목길 상권으로 유명한 경리단길에서 따왔다. 주택가 골목길 건물의 1층을 개조해 만든 가게들이 즐비한 이곳에는 아직도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고 있는데 주택가 생활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이 이색적이다.

망리단길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말. 홍대앞 상권의 확장이 이 골목길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홍대앞에서 사업을 하던 상인들이 임대료가 오르자 인근 상수동·합정동을 거쳐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망원동까지 하나둘 옮겨왔다. 망리단길로 불리기 전 이곳은 재래시장과 가까운 조용한 주택가였지만 지금은 홍대앞만큼이나 활기가 넘친다.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적지 않게 당황할 수도 있다. 기존의 상권과는 달리 전철역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6호선 망원역 2번출구에서 500m 가까이 떨어져 있다. 골목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풍경은 평범한 주택가로 망원시장을 지나서야 가게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이들 가게는 아담한 규모인데도 꽤나 세련된 느낌을 준다. ‘사진을 찍고 싶어 두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망리단길에는 개성을 뽐내는 가게들이 많다. 가게 주인들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가장 좋아하는 것에 착안한 아이템으로 자신의 가게를 꾸며 놓았다. 이들 이색적인 공간들이 SNS라는 수단을 통해 외부에 알려졌고, 이 골목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게 됐다. 카페 ‘디어마이페어리’의 박수빈 사장은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SNS 트렌드 소개글에 우리 가게가 올랐는데 그 뒤로 찾는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남지수(25)씨는 “골목골목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걷다 보면 뜬금없이 예쁜 가게가 나오기도 해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대학생 문형빈(26)씨는 “예쁜 사진을 찍을 곳이 많아 곳곳에서 사람을 찍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회사원 한민수씨(가명)는 “소박한 느낌을 주는 가게지만 음식도 맛있고 디저트도 유명한 곳이 많아 자주 찾는다”며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곳도 많아 데이트 장소로 좋다”고 말했다.

멀티플렉스~공원~송리단길 걷기


▎송리단길에 위치한 일식당 ‘멘야하나비’. 젊은이들이 식사를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망리단길이 강북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라면, 강남에는 송리단길이 있다. 송리단길은 잠실 석촌호수 근처 백제고분로와 오금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골목 상권을 말한다. 망리단길과 마찬가지로 경리단길의 느낌을 주는 송파구 주택가 골목길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송리단길은 ‘-리단길’ 시리즈 중 가장 최근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찾는 곳이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올해에는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SNS에서 유명한 맛집들의 경우는 식사시간에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곳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기다림 자체가 골목길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듯, 예쁜 디자인의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차례를 기다린다. 한 대학생 커플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을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평범한 주택가 골목을 돌아다니다 갑자기 이색적인 가게와 마주치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지만,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특성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송리단길에서 바라본 롯데타워. 두 곳 사이의 거리는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저녁이 되면 멋진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다.
송리단길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면 잠실역 2번 출구로 나와야 한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롯데월드 몰과 롯데월드타워다. 지난해 4월에 개장한 이 롯데월드타워는 지상만 123층에 달하는 잠실의 새로운 랜드마크다. 기존의 멀티플렉스 성격을 가진 공간과 새로운 랜드마크 공간을 모두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롯데월드타워 바로 앞에는 석촌호수가 있다. 석촌호숫가엔 둘레길처럼 꾸민 공원이 조성돼 있어 도심 속에서 여유롭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멀티플렉스-공원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휴식 공간에다 송리단길이 가진 소박한 매력이 더해지면 사람들의 선택지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독특한 개성과 아기자기한 매력을 갖고 있는 골목 상권이 현재의 모습을 언제까지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경리단길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며 망리단길·송리단길의 내일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골목길 상권의 가장 큰 적은 ‘높은 임대료’


▎경리단길의 한 카페 내부. 방문객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경리단길이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가게 임대료가 상승했다.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게 주인들은 하나둘씩 골목을 떠나야 했다. 그 빈자리에 프랜차이즈 가게 혹은 인형 뽑기 가게 등이 들어섰다. 이곳의 원래 특색은 엷어져 갔고, 사람들의 발길도 줄어들어 골목 상권이 쇠퇴하는 악순환이다.

원조 골목길 상권이라 할 경리단길은 유명한 가게들이 일부 남아 있었지만, 빈 가게들이 심심찮게 보였고 방문객도 적어 한산해 보인다. 옛날의 주택가 풍경이 되살아나는 모습이랄까. 평일 낮에도 손님들이 식당 앞에 길게 줄을 선 망리단길·송리단길과는 사뭇 달랐다.

경리단길의 부침 과정이 다른 골목 상권에도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프랜차이즈에 밀려 떠난 가게들은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새로운 곳에서 둥지를 튼다. 그곳이 또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새로운 ‘길’이 되는 것이다. 점점 쇠퇴하는 경리단길과 가까운 해방촌이 요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리단길의 골목길 풍경. 경리단길의 급한 경사 때문에 독특한 외형을 가진 가게들을 볼 수 있다.
- 이동엽 월간중앙 인턴기자 ldy20197@naver.com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 이원근 객원기자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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