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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 (제1부 광복) 

제15장 - [1] 노르망디 

복거일 / 조이스 진
1944년 6월 4일은 중대한 일들이 일어난 날이었다. 이미 전쟁의 형세는 분명해졌다. 연합국이 이기고 추축국이 패망하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런 형세 판단으로 전쟁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한번 시작된 전쟁은 나름의 논리에 따라 쓰디쓴 결말을 보아야 끝나는 것이었다. 한쪽이 기권하면 끝나는 운동 경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승패가 결정된 전쟁에서도 나름으로 이정표들이 세워지게 마련이었다.
먼저, 워싱턴에선 이승만이 주미외교위원부 협찬부를 조직했다. 일본의 패망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동안 그는 모든 당파로부터 초연해지려 애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고 줄곧 미국에서 회교 활동을 해온 그로선 당연한 자세였다. 그래서 기호파에 속하는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기회가 나올 때마다 그를 공격해온 서북파도 포용하려 애썼다.



그러나 서북파가 장악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워싱턴 사무소를 개설해서 공개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부서인 주미외교위원부에 맞서자, 그는 고단한 주미외교위원부를 지키는 외곽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협찬부를 결성한 것이었다. 내친 김에 그는 협찬부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는 핵심 조직으로 삼기로 했다. 조선이 식민지 상태에서 곧장 독립하면, 정치적 공백이 생길 터이고, 그런 공백을 채울 정치적 자산이 부족할 터였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뜻을 펴려면, 특히 세력이 크고 잘 조직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자유로운 사회를 세우려면, 그를 충실히 지지하는 정치적 핵심 조직이 필요했다. 아울러, 그런 조직은 정부를 조직할 때 필요한 인재들도 제공할 터였다. 한 세대 넘게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은 터라, 조선에서 정부의 중요 부서를 맡을 만한 인재들을 찾기가 쉬울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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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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