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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한반도 워치] 비핵화 국면의 남·북·미 갈등 관리법 

평화는 능숙한 외교 저글링 끝에 온다 

김영희 안보·국제문제 칼럼니스트
남북관계, 반걸음 정도 앞서 가되 미국과의 간격, 너무 멀지 않게…文, 북한과 대화하고 미국과 협의하는 투 트랙(two-track) 찾아야

▎10·4 선언 기념 방북단이 10월 4일 오후 평양 과학기술전당을 방문, 한반도 지형 모형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잘 됐다, 생산적이었다가 전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남는다: (1) 폼페이오와 김정은의 오찬 포함한 5시간 반의 회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의 첨예한 쟁점을 얼마나 풀었는가. (2)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 플러스 알파 대(對) 미국이 요구하는 핵 목록 주고받기에 의견은 접근했는가. (3)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기계공장, 북한이 미끼로 던진 방대한 영변 핵 시설의 완전 폐기의 사찰과 검증은 미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4) 포괄적으로 말해서 북한 핵·미사일 폐기의 국제 사찰은 실효성과 구체성이 있는 것인가. (5) 북·미 2차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에 관해서는 얼마나 입장이 접근했는가.

대답보다 의문을 많이 남긴 폼페이오 방북은 그래도 6·12 북·미 싱가포르 선언 이행 문제로 깊은 수렁에 빠진 대화를 강둑으로 끌어낸 성과는 거뒀다고 평가된다. 김정은·트럼프·폼페이오 세 당사자 모두가 김-폼페이오 회담에 만족하고 큰 진전이 있었다고 말하고 트위터에 올렸다.

가장 확실한 합의는 북·미 2차 정상회담을 빠른 시일 안에 열기로 합의한 것이다. 북·미 고위 실무급 대표들은 바로 시기와 장소에 관한 협의에 들어갔다. 시기는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전이냐 후냐로 압축됐다. 전이면 10월 말이고, 후면 11월 중순에서 말 사이가 된다. 어느 쪽이라도 가까운 시일 안이다.

시기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어디서 열리느냐의 장소 문제다. 남·북·미가 선호하는 장소가 제각각이다. 트럼프는 워싱턴과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별장 마라라고를 마음에 두고 있다. 처음부터 싱가포르는 아니라고 말한 트럼프는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빈약한 교통·통신·병참 수단으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불편을 배려하여 가까이는 태평양상의 괌, 조금 멀리는 유럽의 빈이나 제네바도 좋다는 여유 있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리는 그림은 김일성광장의 수십만 군중 앞에 선 트럼프일 것이다. 그러나 평양의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호텔 등의 회담 인프라다.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는 회담 장소는 5000명 정도의 취재진을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도시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은근히 판문점을 희망한다. 판문점일 경우 회담의 중간 단계쯤에 문재인 대통령이 합류해 종전선언을 하는 이점이 있다. 자연스럽게 남·북·미 3각 정상회담이 되고, 분단을 고착시켜 버린 판문점을 전쟁을 종식시키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는 데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판문점으로 할 경우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한 연내 서울 방문이 증발되거나 무기한 연기된다.

판문점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판문점의 상징성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충분히 부각되고 활용됐다. 북·미 2차 정상회담 장소로는 판문점보다는 서울이 의미가 더 크다. 우선 북한 최고지도자의 한국 방문이 최초로 실현된다. 서울이면 ‘서울 종전선언’이 된다. 서울 북·미 정상회담은 세상의 관심을 한반도 평화에 집중시키고, 냉전의 마지막 고리를 끊는 세계사에 남을 평화 메시지의 발신지가 된다. 정부는 뜬구름 같은 상징성에 집착하지 말고 보다 손에 잡히는 현실성·실용성을 적극 세일할 것을 기대한다.

북한, 불완전해도 핵 리스트 내놓아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0월 7일 평양에서 오찬을 끝내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종전선언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말을 액면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북한이 미국에 기대하는 상응조치 플러스 알파에서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완화, 해제가 우선순위의 맨 위에 있다. 북한에 종전선언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종식의 큰 부분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정상회담에 관한 대국민 보고에서 종전선언이 비핵화를 거쳐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에 이르는 긴 평화 여정의 첫걸음이라고 정의했다. 종전선언을 바이패스하고 무엇부터 하자는 것인가. 문 대통령의 초심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방북을 앞둔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핵 목록을 접어두고 바로 북한 핵 시설의 사찰·검증으로 가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 사찰은 전문가들이 빈손으로 가서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핵 목록을 바이패스 하자는 것은 해도(海圖) 없이 북극성만 쳐다보고 어둠 속 망망대해를 항해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완전하지 않은 것이라도 북한이 제공하는 핵 리스트가 있어야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세계의 유수한 핵 전문가들이 가진 북한 핵 정보와 비교·대조하면서 검증하고 사찰을 할 수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핵·미사일의 배치 지도다. 핵과 미사일은 북한의 험준한 산악지대의 수많은 곳에 분산돼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과 핵협상을 하는 데 시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핵협상은 긴 여정이다. 서두르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시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트럼프의 북한 비핵화의 열의가 떨어진다. 트럼프의 수많은 정책 어젠다에서 순위가 뒤로 밀린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모멘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속도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도 그런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양선언문에 담기지 않은 의미 있는 성과를 뒤늦게 공개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을 김정은 위원장이 열렬히 환영한다는 낭보다. 문 대통령은 10월 18일 교황과의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교황 북한 방문 환영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신론의 나라,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종교를 대신하는 나라를 실제로 방문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신론과 평화는 상호 배타적이 아니다. 세계 곳곳을 방문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면 오히려 북한이 무신론의 나라이기 때문에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설득하기를 기대한다.

2018년의 북한이 1979년의 폴란드와 다른 점


▎10월 4일 울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11주년 기념 평화통일 기원 행사. / 사진:연합뉴스
세계의 가톨릭 신도는 10억 명이다. 교황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광장이나 능라도의 5·1 경기장에서 수십만이 동원된 북한 주민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주제로 연설을 한다면 반향과 여운은 클 것이다. 세계의 10억 가톨릭이 북한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세계의 이목이 평양에 집중돼 북한의 정상국가화가 또 한번 도약을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의 정상국가화는 김정은에게 자신감을 주어 한반도의 비핵·평화를 추동하는 작용을 할 것이다. 사실 로마 교황의 공산국가 방문을 초청하고 설득하는 것은 먼 과녁을 쏘는 것(long shot)에 비유할 수 있다. 맞힐지 못 맞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쏘지 않으면 맞힐 확률은 제로다.

로마 교황이 처음으로 공산국가를 방문한 것은 1979년 6월 요한 바오로 2세의 폴란드 방문이다. 폴란드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모국이다.

1979년이면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의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하던 시기다. 그럴수록 폴란드를 포함한 동유럽의 공산 독재자들은 이미 가혹한 압제의 고삐를 조일 때였다. 폴란드에서는 조선소 노동자들 중심으로 자유노조운동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폴란드는 인구 4000만 중 가톨릭이 90%다. 4000만 폴란드인의 3분의 1이 요한 바오로 2세를 보러 거리로, 대규모 미사로 쏟아져 나왔다. 6월 10일 크라쿠프에서 열린 마지막 미사에는 200만 신도가 모였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간 다음해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자유노조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크라쿠프의 평신부 시절 대학에서 윤리학을 강의하면서 지하 반체제 운동에 참가한 경력을 가진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 방문 중 자유와 인권을 많이 강조했다. 그가 1981년 성베드로 광장 1만5000명의 신자 앞에서 저격수의 흉탄을 맞고 중상을 입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련 스파이 기관 KGB의 살인청부를 받은 터키인의 소행으로 의심을 받았다. 불가리아 정보기관이 소련을 대신해 저격범을 고용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그러나 이탈리아 법정은 그가 그 시간 집에 있었다는 알리바이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 판결을 내려 사건은 영원한 미궁에 빠졌다.

서산에 기우는 저녁 해와 같은 1979년의 폴란드는 경제가 살아나고 활기를 되찾는 2018년의 북한이 아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아니다. 그래서 두 교황의 어젠다는 확연히 다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사회주의 체제 붕괴를 지원하러 폴란드에 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양에 간다면 그 목적은 북한 체제 전복이 아니라 북한을 이해당사자(stake holder)의 하나로 하는 핵 없는 한반도 평화에 세계 10억 가톨릭 신도의 지지를 업고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양을 방문하더라도 자유와 인권보다는 평화 메시지의 전파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한반도 평화는 한반도의 변화만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주변과 국제적인 환경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밀어줘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은 한반도 평화 만들기의 세계적인 환경 조성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쉽지는 않아도 시도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와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상당히 생산적인 대화였다. 또 한 걸음 내디뎠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김 위원장도 오찬 때 “오늘은 우리 두 나라의 좋은 미래를 약속하는 매우 좋은 날이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손에 잡히지 않아도 재개될 북·미 협상의 전망이 밝다는 징조로 읽힌다. 남은 큰 구도는 생산적인 고위급 준비회담→북·미 2차 정상회담→남·북·미 종전선언→김정은 위원장 서울 방문→중국이 참가하고 러시아와 일본이 보증하는 남·북·미·중 평화협정 체결과 동시에 북·미 수교의 순서일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실망스러운 청와대 논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을 기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밝은 전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한국 정부가 한국의 독자적인 대북제재인 5·24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해석될 발언을 트럼프가 문제 삼아 외교적으로나 동맹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폭언을 쏟아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대북제재 일부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라는 백악관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은 우리의 승인(approval)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정책 판단이 한순간에 미국의 승인 사항이 돼버렸다. 트럼프는 ‘승인’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 미국이 한국의 종주국인가. 할 말 안 할 말 가릴 줄 모르는, 난폭한 언어를 구사하는 트럼프라고 해도 5·24조치 해제는 사전에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폭언이요 망언이다.

트럼프가 광범위한 대북제재가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과 핵협상의 테이블로 불러낸 일등공신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게는 5·24조치의 해제가 대북제재망에 구멍을 뚫는 것이라고 비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우리와 협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도의 대답을 했어야 옳다. 협의(consultation)와 승인(approval) 두 단어의 차이를 트럼프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승인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쓴 것은 남북관계가 비핵화 협상보다 너무 앞서간다는 평소의 불만을 폭발시킨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트럼프의 폭언을 “한미가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물에 물 탄 듯 싱겁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실망스러운 논평이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견이다. 남북 간에 합의된 협력사업이 한둘이 아니다. 하나같이 미국과 협의하고 미국의 이해-승인이 아니다-를 구해야 할 사안들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터질 일이 강 장관의 발언으로 터진 것이고,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거칠게 대응한 것이 한미 공조에 대한 우려를 낳는 것이다.

평화적인 수단으로 불가역적 평화를!


▎9월 26일 아베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터 받은 편지를 공개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한미 간 난기류가 감지된 것은 평양 2차 남북 정상회담 직전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정상회담 대표단이 평양으로 떠나기 이틀 전에 강경화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남북군사합의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 공세를 폈다. 특히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을 두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고 화를 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는 모든 비행기의 비행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니 미국의 반응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방부는 주한미군과 52차례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는 가까이 있는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물었으면 깨끗이 해명됐을 것을 강 장관에게 따진 것이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저서 [공포(Fear)]에서 폭로한 대로 트럼프 행정부 내 난맥상도 보통 수준이 아닌 것 같다. 잘 닦인 산책로에 불쑥 튀어나온 돌부리 같은 이런 일들은 결국 북·미간에만 불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미 간에도 불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문제가 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이미 개설된 남북연락사무소 운영, 빠를수록 좋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남북군사합의서의 구체적인 이행, 봇물 터지듯 확대되는 남북 민간 교류들이 앞으로 한미 간에 자주 갈등을 부를 것이다. ‘승인’을 ‘협의’로 바꾸기만 하면 트럼프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평화학(paxology)의 창시자 요한 갈퉁은 평화적인 수단에 의한 평화를 전도한다. 평화는 베트남에서처럼 전쟁을 통해 올 수 있다. 또는 소련·동유럽에서처럼 사회 혁명을 통해 올 수도 있다. 남북한과 미국은 1950~53년의 열전으로 평화도 전쟁도 아닌 한반도에 평화적인 수단으로 불가역적 평화를 정착시키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질서가 만들어지고 그 질서가 동부아시아 전역으로 넘쳐날 희망이 시야에 들어왔다. 평화적인 수단에 의한 평화는 인류 역사에서 가본 사례가 드물다. 그런 평화의 길은 긴 가시밭길이다. 한미 동맹국 간의 불협화음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지혜롭게 투 트랙(two-track)의 길을 가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대외적인 평화외교의 길이다. 한미 간에는 촘촘한 협의가 필수적이다. 남북관계가 반걸음 정도 앞서 가되 그 속도와 미국과의 간격은 너무 멀지 않게 유지하는 똑똑한 외교가 요구된다. 1871년 독일을 통일해 제2제국을 건국한 오토 비스마르크(1815~1898)는 철혈재상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철혈재상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독일을 둘러싼 러시아·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 같은 유럽의 강자 사이에서 유연한 균형외교를 펴 통일의 걸림돌들을 제거해 나갔다. 그의 외교는 흔히 저글링(juggling)으로 비유된다. 세 개 이상의 공을 공중에 차례로 던져 가며 다양한 묘기를 부리는 곡예다. 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러시아가 그의 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반도 주변 4강과 북한이라는 공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 김영희- 1958년 22세 나이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 필자는 82세가 된 지금까지 현장을 누비는 영원한 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임원 등을 거치고 최근까지도 중앙일보 대기자 및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올해로 기자 활동 60주년을 맞는 그는 외교·안보·국제 뉴스의 한 우물을 판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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