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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우파 원로’ 이문열 작가가 보수에게 주는 ‘고언(苦言)’ 

“자유한국당, 진보진영 낙인찍기 전략에 휘말리지 말아야”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우파, 죽어야 할 사람 죽지 않으면 갈수록 꼴사납게 표류…좌파, 모험주의자와 종북들이 끼리끼리 말아먹는 듯해 더 불안

▎이문열 작가는 “보수 진영에 체제를 지켜야겠다는 명분도, 열정도 안 보인다”고 우려했다.
월간중앙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의 한 사람인 이문열 작가에게 두 달 전에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말하고 싶지 않아서 잘 안 한다”는 완곡한 거절이 돌아왔다. 얼마 뒤 자유한국당이 이 작가를 조직강화특위 위원으로 위촉하고자 했으나 또한 손을 내저었다. 그는 “시간이 충분치도 않고 별로 능력도 없는 일에 나 자신을 소모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의문이 들었다”고 거절 사유를 밝혔다. 나아가 “정치권에 가더라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사익(私益)보다는 공익(公益)을 우선시할 수 있는 지식인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스스로를 위치할 줄 아는 심성의 소유자다. 그렇다면 시간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자유한국당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그의 발길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수의 진로, 정치의 역할, 한국인들의 의식 세계에 대한 얘기를 듣고자 10월 11일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자락에 위치한 그의 문학사 숙 부악문원을 찾았다. 이 작가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의 잣대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권에 따라 사법적 판단이 다 무너지는 통에 ‘대한민국에서는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일종의 공황 상태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 결과 “자기 검열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보다 더 심해졌다”며 정부여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조직강화특위에 참여해 달라는 자유한국당의 요청을 왜 거절했나?

“모든 일에 다 때와 모양이 있는 법이다. 내 나이도 이제 일흔인데 그 일을 하는 것은 때도 모양새도 맞지 않다. 하지만 내가 거기에 가든 안 가든 상황 정리는 해봐야 할 것 같다. 늘 얘기하듯이 보수 진영은 진지전 개념으로 볼 때 진지를 온전히 탈환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놓쳤다. 정치인 개인의 무능은 차치하더라도 오랜 세월에 걸친 패배여서 하나로 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당에서 불러도 내가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가봤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다. 비대위든, 조강특위든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더라.”

“보수, 여론을 가장한 낙인찍기에 말려들지 말아야”

자유한국당은 이제 구제불능이라는 말인가?

“세상에 그렇게 잘라 말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우선 그런 일(조직 강화를 위한 칼질)을 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힘을 줄 수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세상의 눈 흘김을 받는 해당 행위자들도 그걸 겁내 순순히 목을 내놓을 사람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그걸 강요할 만큼 우월적인 권위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권위의 부재로 갈수록 더 꼴사납게 표류할 가능성마저 있다.”

인터뷰가 있던 10월 11일 전원책 변호사는 자유한구당 조직강화특위 명단을 발표했다. 또 김무성 의원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설에 대해 “본인들이 큰 그릇이라면 빠지고, 끝까지 고집하면 본인 스스로가 무덤을 파는 일이 된다”고 사실상 불출마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자유한국당이 진보 진영의 낙인찍기 전략에 빠져든다”며 보수의 리더들이 조롱받는 현실을 개탄했다.

과거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서 자유한국당이 새 출발을 할 수 있을까?

“전원책 변호사가 조강특위 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첫째로 내세운 게 옛날로 치면 칼질이더라. 홍준표·김무성 전 대표에게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나오지 말라고 했지. 내게 제일 걱정되는 일이 바로 지금 그 두 사람에게 내려진 선고의 원인이 된 세평 혹은 여론을 가장한 낙인찍기, 인상조작 과정이다. 반대진영의 가장 저급한 행동대,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 있는 좌파 드루킹들이 반복과 뻥튀기로 만들어 낸 이미지와 심리적 폭력으로 이미 진창에 굴러떨어진 자유 한국당의 리더들이 함부로 희화화돼 말살되는 일에 함께 시시덕거리는 못난 짓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들(김무성 전 대표의 새누리당)에게 표를 주지 않아 총선 패배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 것으로 충분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요즘 인기가 제일 없는 축에 들지만 이는 이미지를 덧씌운 결과다. 그에게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다고 해도 그 책임만으로 30년 정치 이력을 포기하라고 말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 이름만 나오면 돼지발정제가 나오고, 말도 안 되는 강간미수 시비까지 거는 자들은 한심한 정도를 넘어 가엾기까지 하다.”

보수 진영은 지난 9년 동안의 집권기를 허송세월한 것인가?

“1998년부터 2008년 초까지 좌파들이 집권하다가 이명박 대통령 때 보수 진영으로 권력이 넘어왔다. 그렇게 잡은 보수 권력은 종북(從北)으로 급속하게 기울어진 우리 사회를 공들여 바로잡아야 했음에도 자기네들끼리 둘러앉아 권력을 누리기에 바빴다.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처음 들어올 때 이미 죽은 지 50년이 훨씬 지난 이탈리아 공산당 초대 당수의 ‘진지전’ 개념과 ‘헤게모니’ 이론이 우리나라만큼 잘 적용된 경우도 없을 것이다.”

“실용적 좌파, 초보적 우파… 승패는 이미 결정 나”


▎2004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 시절 기자회견을 열어 보수 재결집을 주장하는 이문열 작가.
그 진지전, 헤게모니 싸움이 어떤 식으로 펼쳐졌나?

“특히 주사파(주체사상 신봉그룹)가 진지전 개념을 전파하면서 맹렬하게 문화적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였다. 먼저 대학과 교회에서 불길이 솟고, 문학과 예술 쪽으로 번지더니 가톨릭과 사찰도 쑥대밭이 됐다. 그리고 그 30년의 첫 번째 성과가 1997년 대선 승리였고, 여세는 2002년 대선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2007년 횡재 같은 승리가 있었고, 요행은 2012년에 한 번 더 있었지만 보수 우파는 그 기회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보수 우파가 헤게모니 장악에 실패한 이유는?

“이는 뼈저린 반성을 요하는 것이다. 내 짐작으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런 진지전에 관심조차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명박 전 대통령 같은 이는 오히려 자신도 학창 시절 민주화운동으로 몇 달 감옥 갔다 온 걸 은근히 내세우고 싶어 하는 데마저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껏 어릿한 초등학교 반장이 적어낸 불량학생 명단보다 더 애매한 블랙리스트 같은 걸로 애꿎은 각료들이 감옥이나 들락거리게 했다. ‘민주화’의 탈을 쓴 좌파들이 음험한 진지전을 이미 30년이나 수행해 온 터라 심각하게 대처할 방안을 강구해야 했는데도 두 전직 대통령 모두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전 대통령에게는 한 번 진지하게 말할 기회가 있었으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눈치가 아니었고, 박 전 대통령은 아예 만나 본 적조차 없었다. 그렇게 넋 놓고 9년의 세월을 허비하는 사이 한층 고도화되고 기민해진 저들의 전략에 진지가 다시 탈환당하면서, 뒤이어 밀어닥친 기동전(機動戰)에서도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보수 우파 정부도 이전 진보 정부의 인사, 정책을 다 뒤집고 물갈이를 시도한 것이 사실인데.

“진지라는 건 혼자서 지켜지는 게 아니다. 새로 들어선 보수 정부가 좌파들에 장악된 ‘진지’(정부 부처)에 ‘사령관’(장관)만 달랑 떨어뜨려 놓은 격이었지. 진보 정부가 진지에 심어놓은 하급 장교와 하사관, 병사들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진보 정부 10년 동안 정부가 물 주고 북돋아 키워준 공무원들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같은 사령관 하나 바뀐다고 크게 달라졌겠나. 박근혜 정부 당시 상부의 지시를 거부해 ‘나쁜 사람’이라고 찍혔던 국장급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한직으로 쫓겨난 지 몇 달 안 돼 현 정부가 들어서고 차관으로 승진했다던가. 이렇게까지 오게 된 건 여러 가지 자충수도 있었지만 가장 근원적으로는 좌파의 진지전 개념은 실용적이고 치밀하게 운용된 데 반해 우파의 그것은 아주 안일하고 초보적 수준에 그쳤다는 데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조강특위를 이끄는 전원책 변호사 입장에서는 뭐든지 해야 할 입장일 텐데.

“전원책 변호사는 나도 조금은 알고 잘 지내는 사이다. 내게 어떤 믿음을 거셨던 것 같은데 사실은 내가 거기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내가 2016년 말에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죽었으면 좋을 사람들이 아무도 안 죽고 살아서 오히려 눈을 치뜨고 덤벼도 누구 하나 제압하지 못하는 당이 자유한국당이다. 지금은 죽이는 사람이 잘 골라 죽여야 하는 게 아니고 죽어야 하는 사람이 알아서 잘 죽어줘야 하는 상황 같다. 현실은 자유한국당은 죽지도 않았고, 새로 온 사람이 뭘 하려고 해도 누굴 죽일 수도, 공천권을 행사할 수도 없는 처지 같아 보인다. 현실적으로 무리하게 뭘 했다가는 당이 필요로 하는 보수 가치 재정립도 못할 판이다. 가치 쇄신과 인적 개혁이 겉돌고 있다. 나 또한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고 막막할 따름이라 선뜻 나설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보수당은 영영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봐야 할까?

“걱정이다. 옛날 2004년 한나라당의 천막당사 시절만 해도 비록 일패도지(一敗塗地)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박근혜가 있었고 이명박도 있었다. 대선주자급이 둘이나 뚜렷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강력한 구심점을 형성할 수 있었지. 지금은 그런 사람도 잘 안 보인다.”

“보수 진영, 무력증을 넘어 자포자기 상태”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조직강화특위 위원들이 10월 11일 국회 본청 회의실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보수의 본류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은 권력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가 많다.

“이 체제를 지켜야겠다는 강력한 명분도 없고 불이익을 맞서가며 감수하는 열정도 안 보인다. 어쩌면 보수 본류는 지난 2년의 타격으로 무력증을 넘어 자기 포기의 심리적 상황에 이르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우슈비츠 학살을 다룬 9시간짜리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아우슈비츠 가스실 입구에 기다란 광장이 쭉 펼쳐져 있고 다섯 줄에 40명 단위로 200명씩 구획 지어 앉은 사람들이 가스실 앞에서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다음은 자기들 차례인데 아무런 표정이나 움직임이 없더라. 한동안 적막한 그 광경을 스크린에 비춰주던 영화 제작진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독일군 경비병을 찾아내 인터뷰했는데, 그새 늙은이가 된 그 경비병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저렇게 아무 기척도 없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 200명이 조용히 가스실로 갔는가를 묻자 그 늙은 옛날의 경비병은 말했다. ‘200명 대부분이 앉은 자리에서 옷에다 변을 지렸어요. 죽음 앞에서 모든 것들이 풀리니까 그냥 싸 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요, 다섯 줄의 똥 무더기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내가 요즘 느끼기로는 우리 보수가 모두 돌이킬 수 없는 끝장이 나는 순간까지 말없이 줄지어 앉아서 똥이나 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작가는 인터뷰 도중 책상 위에 펼쳐 있는 신문의 한 모퉁이를 가리키면서 “그래도 자신이 한때 거기서 경기도지사까지 했고 유망한 대선주자로 활동했던 보수당(자유한국당)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하는가”며 혀를 찼다. 자유한국당의 보수 대통합 구상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자유한국당에는 미래가 없다’ ‘자유한국당은 곧 사라질 당’이라고 꼬집은 대목을 일컫는다. 이 작가는 “자유한국당이 진퇴양난에 빠져 당장은 진퇴가 어려운 당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망해서는 안 된다”면서 “더구나 손학규 대표가 그렇게 말한 것에는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고 정색을 했다.

한국 사회의 여론 편향성, 패거리 문화에 대해 늘 경계해 왔다. 그게 이 작가에게는 시대와의 불화로 와 닿았을 텐데.

“사실 나는 소위 말하는 인기 작가였기에 대중과의 거리가 그리 멀진 않는데 지금은 차단막이 생겨 버렸고, 그 차단막이 아주 치밀하고 견고하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이는 내가 문학을 했기에 가질 수 있는 단상이기도 하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은 1990년대 중반 문단의 상황이 닮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하는 과정을 찬찬히 더듬어 가다 보면 먼저 90년대 중·후반쯤으로 가늠되는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의 카르텔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는 내가 문지하고 가깝게 지내던 즈음이라 그 과정과 배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제 3세계 문학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아시아·아프리카(AA) 작가회의’ 한국 행사를 창비가 아닌 문지에서 유치하기에 저도 참여했고, 그 뒤로 더러 일본을 오가며 함께했는데 첫 회부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공산당 간부가 지부장인가였는데 야스다 강당에 불을 지른 적군파 이론가도 회원으로 있는 그 단체에는 시청 직원으로 일하는 작가도 있었다. 한국에서 참여하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는 질이 달라도 아주 다른 것 겉아 매우 인상적이었다.”

개인 성향과 어울리지 않는 일 속으로 빠져든 건가?

“더 이상한 것은 그 세미나의 주제의식이었다. 심심찮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시장경제, 신제국주의 착취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저항문학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곤 했다. 구성원들의 성향으로 봐선 이런 행사는 창비가 하는 게 마땅한데 문지가 왜 유치했던 걸까? 같은 문학 비평을 하지만 (현실에 적극 개입하는) 창비와 (현실투쟁과는 조금 거리는 두는) 문지는 원래 서로 경쟁하는 사이로 다른 길을 걸어 왔지만 2000년 이후에는 격렬한 이론 시비는 사라지고 양자가 한배를 탄 것처럼 느껴졌다. 이후 문학 행사의 주도권이나 단체의 자리는 창비와 문지가 번갈아가며 차지하는 형국이 됐다. 내가 2001년 진보세력을 겨냥한 홍위병 발언으로 책 장례식을 당할 때도 ‘그러면 안 된다’고 드러내놓고 나서는 세력이 없었다. 나는 그때 그들의 카르텔이 굳어진 것으로 이해했다.”

한국 문단의 획일화 경향과 맞닿아 있다는 말인가?

“문단의 헤게모니가 창비와 문지 둘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이념적 성향을 물어보면 스스로는 오른쪽이라고 하는 문인들도 있었는데 지금 내놓고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저 개인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제 글에 대한 비평 자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좋다, 나쁘다는 의견도 없는 완전히 배제되는 모양이었다. 요즘은 책과 인쇄물 같은 활자로만 차단되는 게 아니라 전파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책을 펴내면 인터넷 공간에서는 서평이 읽히는 게 아니라 ‘이문열 우파’ ‘꼴통’ 이런 언어들이 댓글로 달려 온라인 공간을 뒤덮는 식이다. 내가 원래 책을 내면 초판에 5만 부 정도 찍는데 2000년 이후에는 3만 부 이하로 그리고 근래에는 3000부로까지 줄었다. 심지어 제 책을 내는 출판사에 특정 집단이나 사람들의 전화가 폭주하는 통에 책 주문 전화를 못 받게 되는 사태로까지 번지기도 했다고 들었다. 인터넷에서 그런 이상한 소문들이 돌면 잘 나가던 책도 판매량이 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 이것도 넓게 보면 현실의 영역이자 인터넷 시대의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시대에 의한 것인데 내 확신도 요즘 확 떨어진다는 걸 느낀다. 지금 특히 요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선….”

개인적 신념, 판단이 흔들리기도 하는가?

“그렇다. 현 정부 들어 일어나는 일들에 많은 의문부호가 생긴다. 도통 이해하지 못할 일이 많은데 대답도 없고 언론도 시원하게 풀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 혼자 유추해서 답을 내려다 보니 확신이 줄어들더라. 옛날같이 프로테스트하거나 레지스탕스 식으로 저항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보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됐느냐’ ‘그러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이다. 앞으로 내가 정색하고 사회에 대한 말을 시작한다면 질문으로 시작할 거라고…. 탈(脫)원전 정책만 해도 우리 정부의 태도에 대해 적어도 열 가지 질문이 줄을 잇는다. 집권과 동시에 왜 탈원전 정책을 불에 덴 듯 선언해야 했는지 묻고 싶다. 그게 원래 대선공약이었다고? 그럼 그게 왜 중요한 대선 공약이 됐는지 묻고 싶다. 이 정부에서는 이처럼 이해가 잘 안 되는 일들이 숱하게 일어난다.”

“지금 논리라면 문 대통령도 탄핵 사유 발생할 수 있어”

정부가 주요 정책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건가?

“그런 것 같다.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면서 해버리는 것 같다.”

역대 정부는 그런 게 덜했나?

“덜 했다고 생각한다. 역대 정부 사람들도 입이 있어서 선전하고 싶어 했다. 나는 역대 정부에서 이렇게 중요한 사안들이 비밀리에 진행된 사례를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설명 여부를 떠나 현 정부의 정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말로 들리는데.

“정부의 설명은 앞뒤의 연결이 잘 안 되니까 국민이 불안해진다. 그렇다면 언론이 질문해서 보도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 되는 것 같다. 요즘의 언론 환경은 권위주의적인 박정희 시대보다 더 험한 것 아닌가 싶다.”

문재인 정부에서 언론의 자유가 제약되고 후퇴하는가?

“많이 제약되는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자기 검열의 강도는 옛날 전두환 시절 언론 통폐합 때보다 더 강한 것 같다. 그때보다 글을 쓰기가 더 어려운 분위기다. 최근 잡지에 연재하던 소설도 군데군데 숭숭 빼먹고 쓴다고 결국 마무리를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었다. 나같이 얇은 얼음 위를 지나듯 살아온 사람도 자기 검열이 심해져 글이 안 써진다.”

사회환경적 요인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하는 검열하는 심리적 요인 아닐까?

“아니다. 법에는 금과옥조 같은 원칙이 있다. 죄형법정주의, 형벌 불소급의 원칙 등등. 현 정부 들어 이런 원칙들이 다 무너진 것 같다. 그들이 잡아넣고 싶으면 잡아넣게 되는 거다. 국가가 공황 상태에 빠져든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이 별다른 증거도 없이 진술에 따라 벌을 받는다. 과거의 사법적 판단이 지금 와서 다 뒤집어지고 무효가 된다. 지금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이 과거보다 더 나은 세상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더 예의도 없고 불안감과 자기 검열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보다 훨씬 더한 듯하다.”

대한민국에서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다.

“내 생각에 (문재인) 대통령 자신에게도 지금 같은 논리대로라면 (훗날) 박근혜 전 대통령 같은 탄핵 사유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십조 원의 예산을 청년, 실업자 일자리 창출 등등에 쏟아 넣었는데 그게 처음부터 그런 용도로 배정된 예산인 것인가? 지난해 추석 도로공사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지 않았는데 정부의 시책에 따라 도로공사로 돌아갈 자금을 전용하진 않았나? 정책을 현 정부 하는 식으로 따지려 들면 사법처리 대상이 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은 걱정이 든다. 나중에 극우 정권이 하나하나 엄밀한 잣대를 들이밀며 정책과 예산 집행을 파헤치면 많은 이가 붙잡혀 갈 것이다. 대북 경협사업 비용에서 소소한 남북 행사 비용이며 푼돈이지만 평양에서 열린 10·4선언 기념행사 비용까지 여러 가지로 시비가 있을 수도 있다.”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 사라질 위기에”


▎6·13 지방선거 참패 후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표정이 심각하다.
예전 인터뷰를 보니까 ‘어떤 정부보다 목표를 성취하는 방법 또는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 대단히 마음에 안 든다’고 했던데.

“경로나 과정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 내가 사상적 문제가 있어 이 정부를 이해를 못하는 것이라면 그저 슬픈 일 정도로 치부하면 그만인데 지난 1년을 지켜본 바로는 내 느낌이나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다가 나중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정부가 그렇게 자신 있어 하는 걸 보면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요즘 사법부를 보면 이미 법원은 행정부에 장악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잡아넣으면 앞으로 누가 행정부에 반(反)해서 재판할 생각을 하겠는가? 우리나라 사법부는 사라지거나 인민재판 집행기관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가 알았던 삼권분립의 원칙이나 사법부 독립은 형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집요하게 추궁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유무죄 문제가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원리와 부딪히는 문제다.”

언론은 손 놓고 있다고 보나?

“언제부터인가 보수 언론이 잘 안 보인다. TV만 봐서는 보수 언론은 거의 전멸한 것 같다. 몇몇 활자매체가 힘겹게 저항하고 있지만 전파력은 별로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요즘은 내치(內治)보다 비핵화 등 외교안보 문제가 국민의 정서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국민감정의 현주소를 짚는다면?

“얼마 전 대구 인근의 유림(儒林) 행사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식사를 겸한 뒤풀이 자리에서 모골이 송연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북·미 정상회담 전망과 관련해 증시(證市) 예측 마냥 종잡을 수 없어 불안하기 그지없다고 했더니 일흔도 더 된 노인들이 한결같이 ‘그거는 건드리지 말라’고 얘기를 하더라. 비핵화, 북·미 대화는 그저 잘 되도록 기대해야 하고, 잘 안 되더라도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든 분들이 이렇다면 정부의 대북정책과 의지가 세상사람들에게는 벌써 파블로프의 개가 듣는 종소리처럼 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꿈꾸는 것은 과거에 전혀 없는 낙관들”


▎‘사법 농단’의혹과 관련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관련자들의 형사처벌을 요구하는 공무원노조 관계자들. / 사진:연합뉴스
그 말에 작가는 어떤 생각이 들던가?

“역사를 봐야 한다. 과거란 거울이 있지 않은가. 유사 이래 몇 천 년의 경험과 기억이 있지 않은가. 지금 (정부가) 꿈꾸는 것은 과거에는 전혀 없거나 기억에 별로 없었던 낙관들이다. 예전에 전쟁까지 한 집단(북한)이 하는 평화 얘기를 어디까지 얼마나 진정되게 믿어야 하는가?”

유림의 노인들이 역사의 교훈과 지혜를 가벼이 여긴다는 뜻인가?

“대강 그런 의미다.”

우리가 한 번 도 안 가본 길을 갈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두 종류다. 아무도 안 가본 길은 아닐 것이다. 그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더듬어 가는 길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우리 느낌은 우리가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정표까지 아는 (결정된) 길을 내몰려 조바심 치며 걸어가는 것 같다. 내가 젊은 사람들의 낙관을 너무 깨는 것 아닌가? 그렇더라도 지금 내가 하는 걱정이 나중에 부끄럽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북한이 ICBM을 포기하는 대가로 핵전력을 미국에 인정받은 뒤 한국에 우위를 확보하려는 속내라는 우려도 있기는 하다.

“드러내놓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 이상의 상상까지도 억지로 억누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해는 잘 안 되는데 김정은을 위해 대통령이 자임해서 (교황 방북) 주선에 나섰다는 보도를 듣고, 보면서 참 의아했다. 대통령이 메신저로 간다? 글쎄다. 이럴 순 있겠지. 대통령이 북한의 부탁을 받아 외교부장관을 시켜서 할 수는 있을 텐데 본인이 직접 가서 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너무 기우(杞憂)에 빠진 건가? 우리가 사실 많이 지켜봤다. 세계사에서도 그렇고, 한국 역사에서도 그렇고, 월남전 철수 때도 그렇고…. 어디로 봐도 걱정할 게 전혀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사에서도 수없이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낙관은 어디서 왔을까? 김정은 자신은 (집권한 지) 얼마 안 되어 제대로 모른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배우고 물려받은 전통은 70년이 되고 지금까지 이어진다. 당장 김영철이나 장군들 보면 김정일 때 사람이고 김일성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김정은의 등장으로 이들이 환골탈태했다고?”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사람 같은가?

“제일 자신 없는 것이 이 사람에 대한 판단이다. 흉악한 악당인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인간형인지 분간이 안 간다. 전례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짧지 않은 외국 유학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는 트인 사고를 하고 있을 수 있고, 합리성도 배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낙관의 여지를 가질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거의 선험적으로 주입된 관념도 많을 것이다.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절대 권력도 어느 날 문득 물려받은 것이지 않은가. 가장 좋은 경우를 생각한다면 알렉산더 대왕처럼 아버지는 무지막지한 무장이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인에게 배워 덕을 이룬 인물이라면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라면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글쎄….”

이 작가의 글에 면면히 흐르는 정서 가운데 하나가 절대성, 전체주의에 대한 거부와 경계라는 생각도 든다.

“절대성은 인정하지 않지. 최근 평론가로 등단한 어떤 친구가 나에 대해 썼는데 상당히 정확하게 나를 꿰뚫어보는 듯한 논지가 있었다. 나는 세상 눈치를 보며 잘 숨겨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들킨 느낌이 들었다. 반공주의적 사유, 단순한 집단주의에 대한 반대를 넘어 그보다 구체적인 공산주의적인 경향, 사회주의적 지향에 대한 경계심과 거부감 등이 그랬다.”

“문 대통령, 586 참모들 잘 통제하고 있나?”


낙관이 없이 글이 쓰여지나?

“나의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세상에 대한 습관적인 낙관, 전통적인 낙관이다. 사람이 열 살쯤 되면 세상 돌아가는 낌새를 어렴풋하게나마 읽고 기억하기 시작한다. 내가 12세 때 4·19를 봤는데 그때부터 정치나 사회 변화가 우리하고 무관한 게 아니란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이 지났다. 어느 한 해도 우리가 편하기만 하고, 행복하게만 넘긴 해는 없었다. 박정희가 ‘잘살아 보세’ 하면서 돈 많이 벌었다고, 살 만하다고 ‘서울찬가’를 불러댈 때도 반드시 죽고살고가 걸린 문제는 터졌다. 그런데 거기 휩쓸려 죽네 사네 하며 한 해 한 해 넘기고 보니 우리 사는 세상은 엄청나게 발전돼 있는 거라. 도약이론이니 산업화니 하나도 안 믿었는데 어느 날 보니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되어 있었고, 다시 얼마나 지나 보니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무시당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예전에 우리가 비틀스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방탄소년단이 비틀스같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어쨌든 제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좌파의 뜬구름 같은 유토피아론에는 다소 엄격한 경향이 있을 것이다. 과거 우파, 권위주의 군사정부가 할 때는 차라리 덜 불안했는데 좌파 모험주의자와 종북들이 끼리끼리 어울려 모조리 말아먹고 있는 듯하니까 더 불안한 건지 모르지.”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은 잘하고 있나?

“대통령이 586 참모들을 잘 통제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떤 때는 좀 과한 추측도 해보는데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문 대통령도 그렇다. 나는 트럼프 같은 사람은 불신하는 편이다. 자기 이익만 되면 뭐든 할 사람이니까. 김정은도 미덥지 않은 사람이고. 거짓말하는 아이들이 일을 그르칠 것만 같은 상황으로도 비쳐진다.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외교안보 상황도 정연한 예측으로 이어지지 않으니까 계속 의문, 질문을 품게 되는 게 요즘의 대한민국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내가 알기로는 굉장히 예절 바르고 신의 있는 사람이다. 교육부총리 할 때 어려운 일을 부탁했는데 똑 부러지게 일을 처리해 주기도 했다. 요즘은 좀 의아할 정도로 달라진 면모를 보인다. 민주당이 대통령 열 명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던데 반세기 집권이라니 참 큰일 날 소리를 하더라. 이해하지 못하겠다.”

오늘 발언도 거침이 없다.

“살다 보면 몸을 사리는 게 습관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요령이 없어서 함부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사실 몸을 사리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아버지의 유산 덕분이다. 말조심하고, 나를 안 드러내려 했는데 요새는 그게 잘 안 된다. 요즘은 ‘여기서 10년 더 살아 본들 별 볼 일 있겠나, 이러면서 구태여 아낄 게 뭔가’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있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회 현안에 대한 공부는 제법 하는 편인데, 가끔은 그만 얘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나쁜 상상이 현실로 되더라도 내게 눈물을 닦아 달라는 소리는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있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그런 관심, 애착이) 탁 놓아지지는 않는 거라서….”

-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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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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