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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연구] ‘황교안 뜨니 이낙연도 급부상’ 역대 총리의 대권 경쟁력 

품격 언행에서 나오는 안정감이 강점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비교정치학) 교수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선두권에 들어 ‘눈길’…진영논리 벗어난 통합정치에 대한 강한 기대심리도 인기에 한몫

▎이낙연 국무총리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각각 범진보와 범보수 예비 대선후보 중 선두로 나섰다. 역대 총리들 중 상당수는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했으나 실제 청와대에 입성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국무총리, 박근혜 정부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범(汎)진보·보수 정치인 가운데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여론조사에 대해 일각에서는 차기 대선이 3년이나 남은 상황인 만큼 순위에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한다.

이낙연 총리는 10월 4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이낙연 대망론’을 언급하자 “어리둥절하다. 왜 이렇게 빨리 이런 조사를 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다”면서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더 분발해 준다면 대망론이 커지지 않겠느냐”는 이용호 의원의 질의에 “현재 맡고 있는 일을 충실히 하기도 힘에 부칠 정도”라며 몸을 낮췄다.

황교안 전 총리는 9월 7일 [황교안의 답] 출판기념회에서 ‘차기 대권 도전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런 말씀을 잘 듣고 있다”고만 했다. 향후 한국당 입당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오늘 이 정도로만 합시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의 핵심 관계자는 “제1야당이 붕괴 직전에 있는 위기 상황인데 황교안 전 총리가 대권 잠룡 1위로 나오는 여론조사는 당 처지를 모르는 너무 한가한 소리”라며 “책임져야 할 올드보이들이 백의종군하지 않고 당권 경쟁에 나서면서 당에 대한 국민 불신만 커지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총리 대망론, 위력은 있을까


▎이낙연 국무총리와 전직 국무총리들이 5월 15일 서울 종로구 총리 서울공관에서 열린 역대 국무총리 만찬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후 자리를 옮기고 있다. 왼쪽부터 김황식·고건·이수성·이현재 전 총리, 이 총리, 노신영·정원식·이홍구·정운찬·한덕수 전 총리.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세, 보수 진영의 분열과 자유한국당의 혁신 부진 등의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대선후보 인물 군이 형성됨으로써 향후 예상되는 정계개편과 신당 창당 과정에서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있는 만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전·현직 총리가 차기 주자로 부각되는 경우는 과거에도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여의도 정가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두 사람 모두 행정부 서열 2위로 큰 잡음 없이 국정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총리라는 공통점에다 ‘문재인의 총리’ vs ‘박근혜의 총리’라는 좌우 대결구도가 호사가들의 관심을 끈다. 과거에도 이회창·고건·이홍구·이수성 등 전 총리들 중 상당수는 잠룡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전직 총리 출신 중 실제 대권을 거머쥔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어 ‘희망고문’으로 끝날 수도 있다. 전·현직 총리들의 대망론이 일장춘몽 같은 신기루가 될지, 아니면 반전이 있는 신기원이 될지 늘 논쟁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황교안·이낙연 전·현직 총리가 차기 잠룡으로 부각되는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며 다음 대선에서는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까.

우선 여론조사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9월 23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인터넷 매체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실시한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조사에서 이낙연 총리가 13.2%로 1위를, 황교안 전 총리가 12.9%로 2위를 차지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는 CBS 의뢰를 받아 9월 27~28일 이틀간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502명을 대상으로 ‘9월 월간 정례 범진보·보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했다. 순위는 ‘알앤써치’의 조사와 같았다.

우선 범진보 대선주자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민주당·정의당·민주평화당 그리고 무당층 응답자에서 이낙연 총리가 16.2%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범보수 대선주자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무당 층 응답자에서는 황교안 전 총리가 전월 대비 6.9%포인트 상승한 28.5%로 1위를 차지했다.

이낙연 총리와 경쟁하고 있는 범진보군은 누구일까?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경수 경남지사는 11.6%로 보합세를 기록했지만 다른 주자군의 부진으로 한 계단 상승한 3위를 차지했다. 이어 심상정 정의당 의원(9.1%), 이재명 경기지사(7.1%),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6.7%),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4.2%), 이해찬 민주당 대표(3.4%),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3.1%), 송영길 민주당 의원(2.6%) 등이 뒤를 이었다.

황교안 전 총리와 경쟁하고 있는 범보수군은 누구일까? 역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10.7%(+0.1%포인트),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이 10.6%(+1.2%포인트)로 각각 2~3위를 유지했다. 이어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7.9%), 오세훈 전 서울시장(7.1%), 김무성 한국당 의원(4.4%), 김문수 전 경기지사(3.9%), 원희룡 제주지사(2.7%),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2.6%),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1.2%)이 뒤를 이었다.

여론조사 결과의 함의(含意)


▎지난해 1월 22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청년과의 대화 ‘청년유답콘서트’에 참석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황교안 전 총리가 부동의 1위로 독주하면서 보수층에서만 30%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낙연 총리가 오랫동안 1위를 달리던 박원순 서울시장을 제치고 20%대를 향하며 1위로 올라선 점이다.

물론 현시점에서 순위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낙연 총리의 선전은 그동안 부재했던 ‘호남 대선후보’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경쟁자’인 박원순 시장 측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낙연 총리와 황교안 전 총리를 대권주자로 지지하고 있는 층은 누구일까? 지지층의 특성을 분석하는 것은 대권주자가 떠오른 배경과 의미 그리고 지속적인 경쟁력 여부를 확인하고 추론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선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통해 이낙연 총리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령대별 지지율(%)은 20대(10.3), 30대(15.6), 40대(20.7), 50대(11.1), 60대 이상(14.6)으로, 30~40대에서 우세하다. 지역별 지지율은 서울(15.7), 경기·인천(16.2), 대전·충남·세종(11.8), 강원(7.6), 부산·울산·경남(11.3), 대구·경북(14.3), 광주·전라(17.7), 제주(14.4)로, 호남권과 수도권 및 대구·경북에서 우세하다. 정당별로는 민주당(19.2), 자유한국당(10.0), 바른미래당(12.1), 민주평화당(13.4), 정의당(12.3), 무당층(10.3), 보수야권 무당층(10.5), 범여권 무당층(16.2)으로, 민주당과 범여권 무당층에서 우세하다. 이념 성향별로는 보수(14.8), 중도(16.1), 진보(14.5)로, 중도에서 우세하다.

이낙연 총리 지지층의 특징을 요약해 보면 ▷연령별로는 30~40대 ▷지역별로는 호남권, 수도권, 대구·경북 ▷정당별로는 민주당과 범여권 무당층 ▷이념 성향별로는 중도에서 지지를 받았다.

황교안 전 총리 지지층의 특징은 어떨까. 연령대별 지지율은 20대(7.1), 30대(5.5), 40대(12.3), 50대(19.6), 60대 이상(21.0)으로, 50대 이상에서 우세하다. 지역별 지지율은 서울(15.3), 경기·인천(11.6), 대전·충남·세종(11.9), 강원(24.6), 부산·울산·경남(10.6), 대구·경북(30.2), 광주·전라(6.9), 제주(4.0)로, 서울과 강원 및 대구·경북에서 우세하다.

정당별로는 민주당(3.8), 자유한국당(49.1), 바른미래당(12.7), 민주평화당(8.6), 정의당(2.3), 무당층(11.5), 보수야권 무당층(28.5), 범여권 무당층(5.4)으로, 자유한국당과 보수야권 무당층에서 우세하다. 이념 성향별로는 보수(34.8), 중도(13.0), 진보(4.3)로, 보수에서 우세하다.

요약해 보면 ▷연령별로는 50대 이상 ▷지역별로는 서울과 강원 및 대구·경북 ▷정당별로는 자유한국당과 보수야권 무당층 ▷이념 성향별로는 보수에서 강세를 띠었다.

두 총리가 뜨는 미시·거시적 원인과 의미


유권자들은 황교안·이낙연 전·현직 총리를 왜 대권주자로 선호하고 지지하는 것일까? 미시적인 원인과 거시적인 원인을 나눠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시적 차원의 첫째 원인은 ‘인물의 성격’(personality)과 ‘업적’(performance) 차원에서 진단된다.

두 사람 모두 성품과 언행 그리고 국무총리직 수행에 있어서 큰 하자 없는 ‘안정감’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 안정감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정이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기대심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두 총리 모두 점잖은 언행과 온화한 성품 그리고 국무총리직 안정적 수행으로 중도층과 보수층 유권자에게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진보성향의 이동형 작가는 자신의 팟캐스트를 통해 이낙연 총리가 뜨는 이유에 대해 “품격 있는 언행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황교안 전 총리가 뜨는 이유에 대해서도 “막말로 품격 없는 언행으로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홍준표 전 대표와 대조되는 황 전 총리의 억제된 언행과 안정감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미시적 차원의 둘째 원인은 ‘정치적 기회구조’(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에서 진단된다. 대선에서 패배한 보수 진영은 유력한 대선후보가 없는 ‘무주공산’ 상태에 있었다. 집권당 역시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혔던 안희정 전 충남 지사가 낙마하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내상을 입게 되면서 정치적 공백 상태를 맞았다.

이러한 공백 상황은 여야 모두에 ‘보완재’ 내지는 ‘대안재’라는 새로운 기회구조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 빈자리에 행정부 서열 2위의 총리로서 안정감을 주고 있는 황교안·이낙연 전·현직 총리가 기회를 얻어 대권주자로 부상하게 됐다는 점이다.

보수진영은 대선 패배 이후 대선주자였던 홍준표 전 대표, 유승민 전 대표에 대한 피로감 누적으로 ‘무주공산’ 상태에 빠졌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집권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성폭행 논란으로 대권에서 멀어졌고,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배우 김부선씨와의 스캔들 의혹으로 생채기가 많이 생겨 지지율이 급락한 상태다.

그렇다면 황교안·이낙연 전·현직 총리가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르는 거시적 원인은 무엇일까? 인물의 성격, 안정감에 대한 기대, 정치적 기회구조의 발생 등 미시적 원인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것은 거시적 차원의 원인 진단을 하는데 있어 핵심 단서가 된다.

이회창·고건의 흑역사 극복할까


▎1997년 10월 교원단체 행사에 참석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대선후보가 반대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
핵심 단서들의 연결을 통해서 볼 때 전·현직 두 총리의 대망론이 뜨는 거시적 원인은 ‘안철수 현상’과 ‘반기문 현상’ 같이 좌우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새로운 정치, 즉 중도 수렴의 국민통합정치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기대로 보여진다.

민주화 이후 불어닥친 세계화, 정보화, 후기산업화, 탈냉전, 탈권위, 시민참여 등 거시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대 상황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치규범에 대한 국민의 기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광화문 촛불시민혁명, 적폐논쟁, 남남갈등 과정에서 반복되고 있는 좌우 진영 간의 대립·갈등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다.

또 최근 심화되는 경제난과 남남갈등 속에서도 이해찬·손학규·정동영 등 당대표 선거로 다시 돌아온 ‘올드보이들의 귀환정치’는 일부 국민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옛 질서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새 정치가 지연되는 상황이 안정적이고 온화한 두 총리의 기대와 지지로 모아졌다고 해석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두 총리가 뜨는 것에 대한 정치적 의미는 올드보이들의 귀환을 견제하고, 좌우 진영논리와 적대적 공생관계를 벗어나 좌우를 통합할 수 있는 중도수렴정치에 대한 강력한 기대와 주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여론조사에서 박원순·김경수·김부겸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친 이낙연 총리와 유승민·홍준표·안철수·오세훈 등을 따돌린 황교안 전 총리의 부상은 대권 승리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역대 총리들의 대권 도전이 흑역사(黑歷史)로 끝났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황교안·이낙연 전·현직 총리의 대권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역대 총리들의 대권 도전이 모두 실패했기에 이낙연 총리와 황교안 전 총리의 대망론이 실패할 것으로 보는 것은 속단이다. 역대 총리들의 대권 도전 사례는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이다. 대권에 도전했던 모든 총리들의 경력과 스타일, 역량이 다르기 때문에 가장 유사성이 있는 총리를 선택해 가늠자로 대입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이낙연 총리가 국회의원과 도지사를 경험한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통 관료 출신이면서도 3선 국회의원을 경험한 이회창 전 총리의 사례와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황교안 총리는 국회의원을 경험하지 않고 법무부 장관, 대통령 권한대행 등을 역임한 ‘정통 관료 출신’이라는 점에서 대통령 권행대행을 지낸 고건 전 총리의 사례와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관건은 경쟁력과 전투력 그리고 권력의지


▎1997년 5월 2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신한국당 전국위원회. 오른쪽부터 이회창·김윤환·이홍구·이한동·이수성·박찬종 예비후보.
이회창 전 총리는 총리 출신 중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그는 ‘대쪽’이지만 ‘포용력 부족’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 전 총리는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등의 경력을 발판 삼아 1993년 12월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이회창 전 총리는 헌법으로 위임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는 새로운 총리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대통령의 방탄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국무총리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소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민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 총리가 원하던 국무총리상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 전 총리는 사퇴하면서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 1.6%포인트 차, 2002년 16대 대선에서 2.3%포인트 차로 패했다. 결과적으로 두 차례 모두 3위 후보 때문에 승리를 내준 셈이 됐다. 이 전 총리에게도 이인제(15대)·정몽준(16대)과의 단일화 유혹이 있었지만 원칙을 내세우며 거부했다. 자신을 대권주자로 만든 ‘대쪽’스러움이 ‘포용력 부족’이란 역설로 이어져 발목을 잡았다.

고건 전 총리는 관료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회창 전 총리와는 공통점도 있지만 이 전 총리와 달리 정당 생활과 국회의원을 경험하지 못한 데다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김영삼 정부 때 이미 국무총리를 지내고 김대중 정부 때는 민선 서울시장까지 역임한 그는 노무현 정부의 첫 국무총리가 됐다.

고 전 총리는 2004년 3월 16대 국회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의결해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그는 2004년 5월 12일 탄핵 기각이 결정돼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 후 국무총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두 달여 동안 대통령 대리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유력한 대권주자로 올라섰다.

당시 고 전 총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3강을 형성했다. 여권에서는 정동영·김근태·유시민 등을 가볍게 제치고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2007년 1월 16일 고 전 총리는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저의 역량이 너무 부족함을 통감한다”고 밝히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2017년 12월 1일 출간한 회고록에서 대선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민주당계 정당 후보는 영남에서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다. 그런데 호남 출신이라 그런지 여론조사상 영남에서 지지율이 별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여 포기했다”고 밝혔다.

이회창과 고건 전 총리의 대망론이 신기루가 된 원인은 뭘까? 이회창 전 총리의 경우는 ‘대쪽’ 이미지의 역설로 인해 당 내외 계파에 대한 ‘포용력과 통합력 부족’ 탓이 크다. 고건 전 총리의 경우는 관료적 마인드에서 경선을 꺼리거나 추대를 바라는 ‘권력의지 부족과 현실의 정당정치의 경험 부족’이 실패의 원인으로 크게 지적될 수 있다.

그렇다면 황교안·이낙연 전·현직 총리는 이회창과 고건의 약점을 극복하면서도 여론조사가 주는 정치적 의미인 중도 수렴의 통합정치에 응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이 가진 장점을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이 총리는 21년 신문기자 생활에 이어 4선 국회의원, 전남 지사를 지낸 뒤 총리직에 오르는 등 이력 면에서 대권주자로 부족함이 없다는 평을 받는다. ‘국회 대정부질문 어록’이 나돌 만큼 이 총리의 가장 큰 강점은 ‘언어 정치’다. 기자 출신답게 단단한 팩트와 반문하기, 동의하기 등의 다양한 화법은 상대방의 예봉을 피하고 지지자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李 친노·친문 넘고, 黃 파괴력 발휘해야

황교안 전 총리의 장점은 뭘까? 정통 관료 출신으로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으로 분류된다. 보수진영에서는 황 전 총리의 안정감과 정제된 언행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때 비등했단 차출론에도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를 지킨 것을 높이 평가한다.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등 낙선한 대선후보들과는 달리 ‘아직 써보지 않은 카드’라는 점은 보수 층의 기대를 키운다.

그렇다고 이들의 앞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이낙연 총리는 고건 전 총리가 회고록에서 밝힌 바처럼 지역주의 풍토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호남 출신 대통령후보가 영남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호남 대통령 한계론’에 도전해야 한다. 당장은 당내 친노·친문의 지지를 받는 게 핵심적인 관건이다.

하지만 이 총리의 온화한 성격과 스타일상 친노·친문의 급진적 욕구를 채우기엔 역부족이란 전망이 많다. 결국 민주당의 주류인 친노·친문이 노무현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영입한 유시민 작가와 혈투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정치 초년병인 황교안 전 총리의 앞날은 더욱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순간, 검증 과정에서 자칫 고건 전 총리처럼 중도 낙마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후계자’ 이미지는 지지 층 확대의 족쇄가 될 수 있다.

9월 26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황 전 총리가 9월 20일 서울 마포구 한 식당에서 자유한국당 친박계 의원 6명과 회동했다. 식사 도중 두세 명의 의원이 전당대회 출마를 요청하자 황 전 총리는 “결심만 선다면 상처를 입더라도 전당대회에 나가서 당권을 잡도록 하겠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의 마음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친박계의 ‘황교안 대선후보’ 구상이 성공으로 이어지더라도 딜레마는 적지 않다. 야권으로부터 ‘박근혜 정부의 부역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황 전 총리가 단순히 보수 결집을 넘어 전체 판을 뒤흔들 만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지난해 2월 대선 과정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로 인해 황교안 대안론이 떠오르자 당시 유시민 작가는 “황교안 대행이 출마한다면 오히려 야권에서 반색할 수밖에 없는 카드”라고 평가절하했다. 황 전 총리의 출마는 프레임을 설정하는 데 되레 도움이 된다는 말로도 해석됐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 총리는 4선 의원, 전남지사를 거쳐 총리를 지내고 있다. 검사로 잔뼈가 굵은 황 전 총리는 법무부 장관과 총리를 지냈다”며 “수십 년간 공적 영역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검증을 받았고, 임명직으로는 최고 자리인 총리까지 올라간 두 사람을 주목해야 한다”며 두 전·현직 총리의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다.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비교정치학) 교수 ccw73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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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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