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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포커스] 이해찬 | 민주당 대표의 장악력, ‘독’일까 ‘약’일까 

강성 대표 등장에 청와대도 납작 엎드렸다? 

차재원 교수
‘친노 좌장’의 거침없는 언행에 당·청 관계 역전 기류…여당 목소리 커지면서 청와대 정무라인 존재감 ‘위축’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 8일 서울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홍준표가 준 표, 이해찬이 돌려준다.” 지난 8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승리하자 자유한국당 안팎에서 회자된 말이다. 참여정부 실세 총리 시절 이 대표의 별명은 ‘버럭 총리’. 당시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인물이라도 원칙에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직선적으로 상대를 쏘아붙이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당 입장에선 이 대표가 과거처럼 강성 발언을 마구 쏘아대며 민심을 자극할 소지가 크다고 봤다. 이럴 경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막말로 잃어 버렸던 표심을 만회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전당대회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을 ‘문 실장’으로 호칭해 구설에 올랐던 이 대표의 언행을 들먹이며 그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이 대표가 강한 카리스마와 장악력으로 청와대와 번번이 충돌할 게 빤하고, 그러면 우리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 될 수도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향후 당·청 관계의 악화가 ‘반전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찬 체제’가 출범한 지 두 달여 가까이 된 지금, 이런 전망과 기대는 많이 빗나가고 있다.

당장 민주당 지지율이 급반등했다. 대표 취임을 전후해 시나브로 30%대로 추락하던 당 지지율은 다시 40%대 중반을 회복했다. 물론 9·19 평양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여권 안팎에선 ‘이해찬호 민주당’과 청와대 간 원만한 당·청 관계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책임총리의 관록과 7선 의원의 경험으로 대변되는 이 대표의 정치력을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 대표가 공언한 ‘민주당 20년 집권론’도 더 뜨거운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해찬 체제의 민주당은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 보수야당의 강한 반발, 차기 대권을 둘러싼 여권 내 암투 등 숱한 난제를 뚫고 목표한 고지까지 순항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이 대표의 최고 서포터는 ‘문재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된 유시민 전 보건복지장관이 10월 15일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당대회 다음 날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직접 축하 전화를 걸었다. 집권여당 대표의 선출에 대통령의 격려 덕담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민주당 관계자들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전당대회 전만 해도 이 대표가 당선될 경우 청와대와의 관계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문심(文心)’까진 몰라도 청와대가 선호하는 후보는 김진표 의원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대통령의 최측근, 이른바 ‘3철’ 중 한 명인 전해철 의원은 드러내 놓고 김 의원을 지지했다. 특히 이 대표는 정치는 물론 국정운영 경험에서도 대통령보다 ‘선배격’. 이런 점을 ‘콕’ 집어 “이해찬은 버겁다”는 말이 상대 후보 진영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나돌았다. 공교롭게도 전당대회 당일, 대통령이 태풍을 이유로 참석을 취소하자 이 대표에 대한 사전 견제구 아니냐는 추측마저 나오던 참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전화는 우려를 한 방에 날려 보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장시간 경선을 치르느라 힘드셨을 텐데 완주하고 승리해 기쁘다. 이 대표와 인연이 많아 당·청 관계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 2012년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 (당시 이 대표가) 중간에 그만두게 돼서 그런 것이다.(이젠) 완주해 제대로 해볼 수 있겠다.”

문 대통령 덕담 중 주목을 끈 것은 ‘인연, 궁합, 완주’의 세 단어. 먼저 인연은 이 대표와의 관계가 누구보다 ‘끈끈한 것’임을 대통령이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말로 보인다. “2011년 문 대통령이 이듬해 대선에 나가지 않으려 할 때 부산에 가서 막걸리 20병을 같이 마셨다. ‘나도 나가고 싶은데 대중성이 없으니 당신이 나가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해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 비겁하다.” 이 대표가 전당대회 기간 중 주변에 자신이 출마한 이유를 설명하며 공개한 에피소드다.

이에 다른 후보들은 구차하게 대통령과의 ‘인연팔이’를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대통령 입장에선 이 대표의 강권이 오늘의 ‘대통령 문재인’이 있게 된 하나의 계기였고, 그 고마움을 ‘쿨하게’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다 ‘궁합’이란 말은 두 사람 관계의 연원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바로 ‘친노(親盧)’라는 운명적인 ‘정치사슬’이다. 한때 ‘폐족’이란 조롱을 받으면서도 ‘노무현재단 이사장’ 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참여정부 가치’를 버텨낸 양대 축이 두 사람. 대통령으로선 이 과정을 통해 다져진 이 대표에 대한 신뢰가 원만한 당·청 관계의 윤활유가 될 것으로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키워드 ‘완주’ 역시 향후 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적극적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사실 축하 전화에서 언급된 2012년 대선 사례는 대통령에겐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이 대표에게도 자의반 타의반의 치욕적 선택으로 각인됐다. 당시 야권 후보단일화에 나섰던 문재인 후보는 ‘친노 책임론’을 꺼내든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요구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안 후보가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해찬을 비롯한 친노 중진들의 정치일선 후퇴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굽히지 않았다. ‘정치초보’ 문 후보를 ‘배후 조종’하는 친노 큰손들의 입김을 차단해야 단일화 협상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이해찬이 두 손을 들고 나섰다. “정권교체를 위한 단일화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핑계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무겁고 자랑스러운 당 대표의 소임을 내려놓는다.” 당시 제1야당, 민주통합당의 대표로 선출된 지불과 162일 만의 자진 하차였다.

그러나 결과는 단일후보 문재인의 대선 패배였다. 대통령은 그때 일을 뼈아프게 상기하면서“(이젠) 완주”를 힘줘 말한 것이다.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오더라도 이제는 함께 끝까지 하겠다는 다짐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당 출신 정부 측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전화 한 통으로 이 대표 견제설도, 치열했던 전당대회 경선의 후유증도 말끔히 사라졌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대표가 이젠 ‘친노 좌장’을 넘어 ‘친문 후견인’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여권 내에선 그에게 정치적 딴지를 걸만한 사람도, 세력도 사라졌다. 어쩌면 이제부터 이해찬의 최고 서포터는 문재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자존심 회복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10월 1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0월 8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선 고위당정청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기사의 주인공은 어김없이 이 대표였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제가 지금까지 공직생활하면서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악화된 각종 경제지표 탓에 회의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이어지자 이 대표가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정부 측을 독려하기 위해 건넨 말이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야당은 “책임을 회피하는 면피성 발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민주당도, 청와대도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모습이었다. 당·청 관계를 주도하는 이 대표에 대한 야당의 관성적 견제구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였다.

실제 8월 전당대회 이후 당·청 관계의 균형추는 확연히 당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견해다. 그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게 바로 이 대표. 각종 이슈에 적극 대응하고, 한발 더 나가 새로운 의제까지 제시하고 이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취임 초 맞닥뜨린 부동산 문제에 대한 대응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이 경제 문제를 넘어 사회적·정치적 문제로 비화하자 연일 대응방안을 쏟아냈다. ‘3주택 이상, 초고가 주택에 대해 종합부동산세 강화’(8월 30일 고위당정청협의회), “중요한 건 주택 공급을 크게 확대하는 것이다’(9월 3일 당 최고위원회의), ‘토지 공개념을 도입해 놓고 20년 가까이 실체를 만들지 않아 집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9월 11일 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 등.

이 대표의 말에 시장 반응은 자못 뜨거웠다. 정부도 서둘러 ‘9·13 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해찬이 주도했고 기재부가 거든 정책”이라는 평가가 제기됐다. 홍영표 원내대표도 최근 방송에 출연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했는데, 사실 당이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주당 추천 몫으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양문석 경남 통영고성지역위원장은 “이 대표가 가까이는 부동산에서 중장기적으론 국가보안법(국보법)까지 여러 현안에 당의 입김을 분명히 불어넣으면서 당·청 관계 전반에 확연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추미애 당 대표 시절 중간 당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이해찬 효과’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민주당 정부’를 표방했지만 그간 당과 청와대 관계는 수직, 바로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90도에 가까웠던 경사도가 수평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히 당 쪽으로 완화됐다”고 말했다.

당 소속 의원들도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전직 의원은 “8월 초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자 제대로 당론 수렴도 없이 서둘러 이의 입법을 추진하는 당시 지도부에 대해 당을 ‘청와대의 여의도 사무소’로 만든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 대표 체제가 들어선 후 정책의총에서 뜨거운 공방을 거쳐 당론이 모아지는 과정에서 불만이 많이 누그러졌다고 한다.

“우리 해찬이가 달라졌어요”


▎2015년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친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 악수를 청하는 이해찬 의원.
당의 분위기도 상당히 밝아졌다고 한다. 당의 주도권 회복에 따른 반사적 영향에 힘입은 바 크다. 정작 당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확 달라진’ 이 대표를 주요 이유로 꼽았다. 사실 6년 만의 당 대표 복귀에 당 안팎의 긴장도는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깐깐한 원칙론자 이 대표가 호통형 리더십으로 당무를 틀어쥔 채 ‘마이웨이’할 것으로 지레짐작해 다들 몸을 사렸다는 것.

특히 당 대표와 분리해 뽑은 최고위원과의 불통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최고위원 5명 중 당내 최연소 의원 김해영, 40대 초반의 박주민 등 초·재선만 4명. 이 대표와는 정치 커리어나 나이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최고위원들에게 각각의 전문성을 고려해 역할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샀다. 또 당권 경쟁자였던 김진표·송영길 의원을 각각 국가경제자문회의장과 동북아평화협력위원장으로 포용했다. 2012년 통합민주당 당 대표 시절 당 사무처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예능프로그램 제목을 패러디한다면 ‘우리 해찬이가 달라졌어요’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국가보안법 발언 파문에서도 이 대표의 유연한 변화는 분명히 확인된다. ‘10·4 선언’ 기념행사차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보법 개정을 언급한 데 대해 보수야당은 강력 반발했다. 이 대표 역시 강하게 맞부딪힐 것으로 예상됐다. 참여정부 때 국보법 폐지를 앞장 서 추진하다 좌절했던 그가 호락호락 물러설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와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폐지, 개정한다고 얘기한 게 아니다”며 서둘러 자신의 말을 주워담았다. 모두들 어리둥절해하자 이유를 덧붙였다. “북·미간 대화가 완전히 이뤄져서 평화협정을 맺는 단계가 돼야 제도 개선 얘기를 할 수 있다. 제도 개선을 먼저 얘기하면 본말이 전도된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이 대표의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원칙은 지키면서도 실용을 앞세워 여유를 부리는 저 자신감과 여유가 우리로선 무섭다.” 이 대표의 변신은 당내에서도 화제였다. 특히 ‘20년 집권론’ 해명에 대해 “정말 이 대표가 한 말 맞느냐”는 말들이 오갔다. 이 대표는 평양에서 국보법 개정론과 함께 “살아 있는 한 정권을 안 뺏기겠다”고 발언했다. 이에 야당은 “국민 선택을 무시한 반민주적 발언”이라고 발끈했다. 여권에서도 “다소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던 터였다.

그러자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전당대회 때) 20년 집권론을 얘기했는데 제가 20년 살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일순 좌석에선 폭소가 터졌다. ‘그리 오래 살지도 않을 터이니 너무 괘념치 말라’는 뜻을 우스갯소리에 실어 한바탕 소극(笑劇)에 부쳐 버리고 만 것. 노회한 정치인의 관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난 8월 23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강찬호의 시선’은 여권 안팎에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기사에 따르면, 이틀 뒤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선이 유력시되던 이해찬 후보를 당시 추미애 대표가 밀고 있다는 것. 그런데 지원 이유가 좀 묘했다. 여당과 당 대표를 무시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할 말 할 수 있는 이해찬’을 적극 민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기사 제목도 ‘임종석, 이젠 불편해져야’였다.

그렇다면 이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임 실장은 과연 불편해졌을까. 적어도 ‘이해찬호의 민주당’이 당·청 관계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듬직하다. 하지만 외형상 드러나는 갈등과 대립은 눈에 띄지 않는다. 17대 국회에서 두 사람과 함께 의정활동을 했던 김형주 전 의원의 말이다. “여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희망을 담아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을 수 있을지 모르나, 갈등할 만한 관계가 아니다.” 그는 “각각 70년대 민청학련 세대(이해찬), 80년대 전대협 세대(임종석)로 10여 년의 시차를 두긴 했지만 한국 학생 운동권을 이끌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는 정치적 동질성을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연결 고리는 두 사람이 맺고 있는 정치적 인연이 상당수 겹친다는 점이다. 당장 청와대 요직에 ‘이해찬 키즈’들이 포진해 있다. 정태호 일자리 수석은 이 대표의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고, 한병도 정무수석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이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백원우 민정비서관도 평화민주통일연구회에서 이 대표와 함께 활동했다.

임종석 정치 복귀 시니리오와 ‘친노’의 선택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8월 27일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고 회의실로 들어오고 있다. / 사진:중앙일보
임 실장 입장에서도 평소 막역하게 지내는 정치적 인사들이 여러 당직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이른바 ‘당 3역’인 원내대표(홍영표)·사무총장(윤호중)·정책위의장(김태년)과 모두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의중을 전달하고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도 이를 뒷받침했다. “추미애 대표 때는 청와대가 아예 당을 다소 얕잡아 보고 무시하는 기류가 팽배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한병도 정무수석 등을 통해 청와대 동향은 물론 주요 정책 사안에 대한 기류까지 정확히 읽고 있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이 대표가 정부보다 앞서 방향을 제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정책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두 사람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일치하고 있다. 최근까지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한 인사는 “임 실장이 다시 정치를 재개하기 위해선 당으로 복귀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2020년 총선 공천권을 쥔 이 대표와 가급적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청와대, 국회를 거쳐 수도권 기초단체장을 맡고 한 인사는 한걸음 더 나갔다. “임 실장이 단순히 정치 복귀 때의 편의, 그 이상을 위해서라도 이 대표를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에 따르면 임종식 실장이 현재 구상 중인 정치 복귀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먼저, 내후년 총선 때 국회의원을 거쳐 당내 세력을 키운 뒤 2022년 차기 대권에 직행하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국회의원을 거치거나 또는 패싱해서 대권보다는 같은 해 차기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해 성공한 뒤 차후를 도모하는 계획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열성적 지지층인 친문에다 친노까지 포섭할 수 있다면 성공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이때 친노 좌장인 이 대표의 말 한마디가 천군만마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입장에서도 임 실장의 정치적 활용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일단 당·청 관계의 무게 중심을 당 쪽으로 돌려놓았지만 청와대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재역전이 가능한 상황. 이런 상황을 방지하는 데 임 실장은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자신의 공직생활 마지막이 소임이 될지도 모르는 여당 대표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청와대와의 끈끈한 관계 유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향후 당·청 관계는 순풍에 돛 단 듯이 2020년 총선 승리, 2022년 정권 재창출, 나아가 20년 집권, 더 욕심을 내 50년 장기집권까지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정치권 주변 다수 관측통은 “글쎄”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먼저 당·청 관계 양대 기둥인 ‘이해찬-임종석’의 관계가 언제든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양측의 협조가 서로의 현실적 필요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두 사람 사이가 껄끄럽다는 이런저런 얘기가 나도는 것은 맞는데, 대통령이 당·청 간 협조를 유독 강조하며 직접 챙기고 있는 탓에 밖으로 소리가 새 나올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여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당·청 관계의 아킬레스건은 청와대 정무라인의 약화다. 다른 전직 의원의 말이다. “한병도 정무수석이 보이지 않는다. 송인배 정무비서관도 드루킹 사건으로 위축돼 있다. 청와대 독주도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한꺼번에 당 쪽으로 힘이 확 쏠리는 것도 문제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도 정무라인을 확 키워야 한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약화는 야당과의 협치가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로도 지적된다. 전직 의원의 계속되는 얘기다. “여당의 새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협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럴수록 청와대가 야당과의 활발한 접촉을 통해 여야 간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예 당 쪽에만 맡긴 채 뒷짐만 지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당내 쓴소리, 비주류의 소멸 낌새도


▎8월 25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당원, 대의원들. 최근 들어 민주당이 여권 내 발언권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고 당이 야당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도 않다. 물론 이 대표는 전당대회 당선 수락연설에서 “국민을 위한 최고 수준의 협치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취임 첫날에는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뿐 아니라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까지 참배했다. “이제 평화공존의 시대로 가는 길목에 있다. 두 분에게도 예를 표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표의 설명에 야권과의 협치를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최고 수준의 협치’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이 대표는 9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토론도 격이 맞아야 하는거다”고 일갈했다.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에 맞서 김성태 원내대표가 제기한 출산주도 성장과 관련한 맞짱 토론을 제안하자 단칼에 잘라 버린 것이다. 한국당은 “오만불통의 자세를 내려놓아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한국당 협조 없이는 단 하나의 입법도 쉽지 않은 상황.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국회선진화법도 없었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했던 참여정부 시절에도 여당 단독으로 아무것도 못했다”면서 “바로 그 조바심 탓에 힘으로 밀어붙였다가 민심을 잃고 엄청난 표 차이로 정권을 내줬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대표가 평양에서 국보법 개정과 ‘정권교체 불가론’을 펼친 것은 노회한 정치력이었다는 평가와는 달리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당 의원의 한 보좌관은 “야당을 결기를 돋우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의 진정성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고 절하했다.

이 대표의 강력한 당 장악력이 자칫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전당대회 이후 당내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 유연한 리더십을 내 보이고 있지만 이 대표를 ‘군기반장’쯤으로 여긴 다수 의원이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다. 당내에서 반대 목소리는커녕 아예 비주류마저 사라진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 내 개혁 소장파로 청와대 견제에 적극 나섰던 정태근 전 의원은 바람직한 당·청 관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당 지도부의 판단 못지않게 당내 혁신그룹이 청와대와 각을 세울 수 있도록 당내 언로를 만들고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과 지지층의 의견을 제대로 담을 수 있고 청와대 견제 때 명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보수야당 한쪽에선 이 대표의 차기대권 도전설을 자아내고 있다. 정치 9단에 비견되는 정치력, 여당 당 대표, 과거 도전 경험에다 충청 출신의 ‘중부권대망론’ 수혜 등을 그 근거로 든다. 윤기찬 한국당 부대변인은 최근 이 대표가 촉발시킨 5·24조치 해제 논쟁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대북 문제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해결했다’는 업적을 내세워 대권행보를 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다.” 만약 이 대표가 실제 대권 행보에 나설 경우 여권 내 권력지형은 상당히 요동칠 수밖에 없고 당·청 관계의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여당 관계자들은 “전형적 여권 흔들기”라고 일축했다. 그 근거로 이 대표의 전당대회 기간 중 발언을 들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모시고 함께 고락하는 것으로 저의 정치를 끝내겠다.”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 jwhn20@naver.com

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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