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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리포트] 점입가경 미·중 무역전쟁… 종이호랑이는 누구? 

나르시시즘에 올라탄 중국 ‘승산 없는 싸움이다’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미국 주류,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제압하듯 이번엔 중국에 총력전…중국경제 성장률의 마지노선인 6%대 무너진다는 충격적 전망도 나와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 양강 시대를 노렸지만 최근 무역전쟁이라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전부인 사람 앞에는 (시시비비를 가릴)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100달러짜리 지폐의 주인공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을 지적하면서 경계하는 말이다. 나르시시스트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혼자 잘났기 때문에 그 어떤 얘기도 한쪽 귀로 듣고 흘려 버린다. 하루 종일 호수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보면서 만족해 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나르시시스트가 그러했듯, 일에 흥미도 없고 특별히 뭘 배울 생각도 없다. 사실 인간은 모두 나르시시스트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자기 잘난 맛으로 세상을 대한다. 경쟁자나 충고자의 수는 나르시시즘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프랭클린의 말에서 주의할 부분은 나르시시즘의 영역이다. 인스타그램에 셀카 인증샷을 올리고 자신의 출중한 외모와 고상한 취미를 세상에 알린다고 해봤자, 찻잔 속의 태풍에도 못 미친다. 모두가 못 말리는 나르시시스트라면 그냥 피하면 된다. 차원을 달리해 국가 차원에서의 나르시시스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국민은 물론 주변국, 나아가 글로벌 시대 모두가 영향을 입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진행된다는 사막화로 인해 여름철 우리가 사용하는 집 안 전기료가 올라가는 판이다. 국가 차원 나르시시즘의 경우 폐해가 나타나면 피하고 숨을 곳이 없다.

국가 차원의 나르시시즘은 여러 가지 미사여구로 잘 포장돼 전파된다. ‘역사, 우리, 민족’ 같은 거룩한 단어가 따라붙으면서 감성적 부분을 자극한다. 전 세계를 압도할 외모에서부터 고수준의 문화와 역사, 나아가 가공할 군사력과 경제력 같은 것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된다. 프로파간다와 비슷하지만, 정도가 심하다. 밖에서 보면 뻔하게 드러날 자화자찬이지만, 안에서는 민족주의·애국주의로 포장돼 주술과 주문처럼 확대 재생산된다. 국가적 차원의 나르시시즘은 정도가 심할수록 애국적이고 민족적이다. 개인이 그러하듯 국가 차원의 나르시시즘은 그 어떤 시대, 어떤 지역에서도 발생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간 무역전쟁은 국가 차원 나르시시즘의 현황을 이해할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 있어서 세상의 중심은 나르시시스트 본인이다. 국가 차원의 나르시시즘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모두가 자국의 노래·문화·언어 심지어 헤어스타일과 패션까지 따라 한다고 확신한다. 자국이 싫어하는 것은 다른 모든 나라도 싫어할 것이라 믿는다. 아니라고 말하면서 증거를 들이대면, ‘아니면 말고’라는 반응만 얻어낼 뿐이다.

미·중 무역전쟁을 국가 차원 나르시시즘의 근거로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입을 열면 전 세계가 벌벌 떨 것’이란 식의 대국의식에 근거한 나르시시즘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모두를 볼모로 한 나르시시즘이다. 서로에 대해 ‘나를 안 따를 경우 그대는 물론, 지구 전체가 망할 것이다’는 식의 저주와 허풍이 넘쳐난다.

내가 입 열면 세계가 벌벌 떨게 된다?


▎10월 8일 베이징 외교부에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거의 매일 터져 나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는 좋은 본보기다. 어린애조차도 ‘트럼프=미국=나르시시즘 공화국’으로 여길 만한 일방통행 메시지가 거의 매일 발사된다. 현재 미국 미디어는 트럼프 덕분에 먹고산다고도 볼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 트럼프의 ‘유치한’ 발언이 인기 기사로 취급된다. 신문·방송의 지면과 공간은 나르시시스트 트럼프 어록, 그에 따른 분석과 비판기사로 넘쳐난다. 굳이 미·중 무역전쟁이 아니더라도, 트럼프에서 비롯된 미국의 나르시시즘은 전 세계의 화젯거리이자, 비판 대상이다.

중국은 어떨까? 민주주의 국가가 벌이는 지구 차원의 나르시시즘에 비해, 천국·지옥이 포함된 우주 차원의 나르시시즘으로 비쳐진다.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의 나르시시즘은 트럼프를 통해 나타나는 미국식 나르시시즘에 비교될 수준이 아니다. 트럼프가 아무리 나르시시즘에 광분한다고 해도 미국 전체가 그쪽 방향으로 나갈 수는 없다. 미국은 삼권분립, 나아가 언론자유를 누리는 나라다. 막장 대통령을 견제하고 충고해 줄, 수많은 안전장치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트럼프에 대한 비판·비난·비하의 출발점은 외국이 아닌, 자국인 미국이다. 아메리카 퍼스트, 나아가 트럼프 퍼스트에 환호하는 미국인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절반 정도의 국민은 미국식 나르시시즘의 한계와 수치를 인지하고 있다. 중국은 다르다. 미국과 비교하면 중증 상태의 나르시시즘이다. 중화사상에 기초한 공산 독재국가이기 때문이다.

공산 독재의 경우, 어디 하나 비판할 세력이나 사람 하나 없다는 점에서 나르시시즘의 정점에 서 있다. 감히 나르시시즘에 대들면 곧바로 임의연행이다. 법 절차상 중국은 법원의 영장에 근거한 수사와 무관하다. 데려가서 일단 감옥에 집어넣은 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면서 자백을 강요한다. 이후 영장의 근거를 만든다. 세계적 배우라는 여성이 행방불명 몇 달 만에 세금포탈범으로 나타났지만, 그동안 왜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얘기는 비밀 그 자체다.

국가에 의한 폭압이지만, 중국인들 모두가 당연시한다. 공산당과 공권력 역시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로 풀이한다. 반대자가 없는 상황에서, ‘국가적 나르시시즘=국민적 나르시시즘’으로 재빨리 정착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는 중화사상은 공산 독재 이전에 성립된 중국 나르시시즘의 기반이다. 전 세계 모든 역사의 출발이 중국이라 믿는 중화사상은 공산 독재가 조장한 ‘하나의 세계관’과 더불어 우주 차원의 최강 나르시시즘으로 발전된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중국의 나르시시즘은 그 같은 배경 아래서 이해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된 중국의 나르시시즘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트럼프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결국은 중국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는 식이다. 착한 중국은 피해자에 불과하고, 문제가 생겨도 결국 미국에 닥칠 것이고 트럼프의 실정(失政)도 곧 전 세계에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에는 사라진 얘기지만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미국 농민의 수출품인 콩, 셰일가스와 오일을 금수할 경우 곧바로 항복할 것’이라는 주문도 무역전쟁 초기의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수출이 어려워질 경우 연방정부 차원의 손실보상금이 자동 지급된다는, 너무도 간단한 미국 법에 무지한 나르시시즘이다. 미국의 현실이지만, 사실 수출이 어려워질 경우 입게 될 손해보다 정부가 지급한 손실보상금의 액수가 더 크다. 간간히 불만에 찬 농민의 목소리도 있지만, 수출을 하든 안 하든 손에 들어오는 돈의 액수는 비슷하다.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이라고까지 불렸던 농·수산물 관세 인상은 중국 나르시시즘에 기초한 천동설 희망에 불과하다.

중국식 주체사상의 종착역


▎영국 매카트니 사절단이 청나라 건륭제를 알현하는 모습. 중국과의 통상 제의는 거절당하지만 중국 내부의 약점을 파악한 영국 외교의 승리로 이어진다. / 사진:유민호
미·중 무역전쟁에 임하는 중국 나르시시즘의 현상 중 하나로 중국식 주체사상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이 나를 필요로 할 뿐, 중국은 미국만이 아닌 그 어떤 나라와 교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중화사상의 나라답게 세상의 모든 것이 중국에 모여 있다고 믿는, 신앙에 가까운 생각이다. 1793년 8월 24일 청나라 건륭제(乾隆帝)가 영국의 매카트니 사절단(Macartney Mission)에게 보여준 자신만만한 행동은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화사상 나르시시즘의 본보기다.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의 당시 나이는 82세. 청의 최고 전성기인 동시에 쇠퇴기에 접어들던 시기다. 건륭제는 ‘영국 측의 간절한 애원을 뿌리치지 못해’ 외교관 매카트니를 중심으로 한 사절단을 만난다. 중국에 들어온 이래 두 달 이상 기다리게 한 뒤의 만남이다.

베이징(北京)에서의 만남은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것이 아닌, 환관 3명으로 이어진 간접적인 대화로 이뤄졌다. 말을 하면 환관이 바로 옆 환관에게 차례로 전달하는 식이다. 건륭제와 매카트니 사이 거리는 최소한 30m 정도로 추정된다. 매카트니는 양국 간 통상과 무역항 개방을 요청한다. 건륭제는 곧바로 거부한다. “중국에는 모든 물건이 전부 다 있다. 문을 열어 새로 사고 싶은 물건도 없고, 팔아서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다. 중국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매카트니 사절단의 요청은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영국 역사에서 매카트니 사절단은 대성공으로 기록되고 있다. 구체적인 요구조건에서는 실패했지만, 중국 사정과 중국인의 세계관을 파악한 절호의 찬스였기 때문이다. 모두 앞다퉈 황제에게 감언이설을 하지만, 영국인을 만나면 특권을 주겠다며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골몰하는 중국식 정치의 약점을 정확히 알아차린다. 법 없이, 개인 임의로 행해지는 통치라는 점도 알아낸다. 1842년 영국은 무력으로 난징(南京)조약을 체결한다. 홍콩을 빼앗고 상하이(上海)를 영향권에 둔다. 아편전쟁을 끝낸 뒤 이뤄낸 불평등조약이다. 중화 나르시시즘과 주체사상의 약점을 활용한 영국 군사외교의 승리다.

미·중 무역전쟁을 통해 드러난 나르시시즘은 누군가 하나는 쓰러질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란 고대 그리스 교훈을 거론하면서 기존 패권국과 신흥국 간 싸움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그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누가 이길지에 대한 전망이나 관전평이 넘쳐난다. 한국 신문·방송을 보면 중국에 기우는 느낌이 든다. 워싱턴발 미국 경제의 부정적인 뉴스는 크게 처리되는데 반해 무역전쟁에 따른 중국 내 경제 추락에 대한 얘기는 부분적으로 들려올 뿐이다. 10월 8일 이뤄진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왕이(王毅) 외교부장과의 만남에 대한 서울발 기사는 좋은 본보기다.

폼페이오 장관의 3시간짜리 베이징 체류


▎판다의 외교 무대 데뷔 시점은 1970년대 미·중 수교 교섭 당시가 아닌, 1941년 국민당 쑹메이링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 사진:유민호
“왕이, 폼페이오 면전서 작심 비판 ‘중국 오길 기다렸다.’”

왕이의 시선에서 폼페이오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식의 기사다. 기사 내용도 중국 측 주장에 근거해 미국을 꾸짖는 식으로 이뤄져 있다. 폼페이오의 베이징 방문은 북한 김정은과의 만남에 대한 브리핑이란 성격이 강하다. 비핵화가 될 때까지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 교류를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도 전달됐다. 폼페이오가 무역전쟁에 대한 의견을 전할 만한 만남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무시됐지만 폼페이오의 베이징 방문은 역대 장관급 이상 미국 관료의 체류 일정 가운데 가장 짧은 것으로 기록됐다. 전부 3시간이다. 공항에서 목적지까지 왕복 소요시간을 뺄 경우 1시간 남짓 베이징에 머물렀다. 왕이에 이어, 외교담당 최고위급인 양제츠(楊潔篪) 외사공작회의 판공실 주임(정치국원)을 만난 것이 전부다.

한국의 신문·방송은 폼페이오가 중국에 간 이유가 아닌, 중국이 폼페이오를 대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발 통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판단되지만, 중국 나르시시즘에 동조하는 한국 측 정서의 일환이란 점으로 해석된다.

나르시시즘의 충돌인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가 아닌 전 분야로 확대될 전망이다. 경제 하나에 맞춰진 승자가 누구일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 언제까지 이뤄질 것인가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10월 4일 펜스 부통령이 행한 중국 비판 연설은 향후 펼쳐질 미·중 간 격돌 상황을 예상케하는 증거다. 양국 간 불화가 깊어지는 과정에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워싱턴에서 보면 다르다. 11월 이뤄질 트럼프의 아시아 방문에 앞선 입장만이 아닌, 장기적 차원에서의 대(對)중국 출사표에 해당되는 것이 펜스의 연설이다. 한국에도 부분적으로 보도됐지만, 크게 보면 전부 6개 사항으로 압축된다.

1. 중국의 미국 민주주의 내정에 간섭

2. 정치·경제·군사에 관한 힘을 총동원해 영향력 확대

3. 자국민 억압으로 180도 방향 전환

4. 아시아·아프리카에 차관 대여를 통한 돈놀이외교

5. 남중국해에서 벌어진 무모한 행위

6. 중국의 공세에 맞서 미국은 자국의 노동자 시민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

서울에서 보면, ‘펜스의 연설=신냉전을 조장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과장된 협박’ 정도로 해석될 듯하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트럼프의 불예측성은 ‘트럼프=뻥외교’로 이해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워싱턴에서 보면 다르다. 펜스나 트럼프만의 생각이 아닌, 워싱턴을 포함한 미국 전체의 생각으로 풀이된다.

중국에 대한 출사표는 대중(對中) 강경파만의 극단적 생각이 아닌, 공화·민주를 포함한 미국 주류의 공통된 인식에 따른 결과물이다. 글로벌 지상주의자나 리버럴의 경우 적극적으로 찬성을 안 한다 치더라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펜스의 연설, 나아가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에 대한 반발이나 반론이 거의 없다는 것이 증거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미국 경제의 손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대중국 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은 반대하지 않지만 내 주머니의 돈이 나가는 것이 불편하다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할 뿐이다. 반대로 미·중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한층 더 상승한다는 점에서도, 펜스가 밝힌 대중국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없다. 객관적 통계로 나타나는 각종 수치가 중국이 아닌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우호의 상징 ‘플라잉 타이거즈-판다’는 더 이상 없다


▎지난해 11월 중국을 방문한 미국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가 베이징동물원의 판다관을 찾았다. /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기사로 날밤을 새는 신문·방송을 보면, 마치 어느 날 갑자기 트럼프가 나타나면서 미·중 관계가 악화된 듯 느껴진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분석이 필요하다. ‘세대의 변화’는 미·중 관계 악화가 경제를 넘어서 전방위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간단히 말해 중국에 호감을 갖고 있던 미국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현 상황을 설명해 주는 배경이 될 수 있다. 중국인은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美国)라 부른다. 발음상 같지만, 일본처럼 쌀의 나라(米国)가 아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보면 서방 열강 가운데 미국만이 평화적이었다는 점에서 납득할 만하다. 근대사 얘기지만, 영국·독일·프랑스·일본 할 것 없이 열강 모두 중국 땅 따먹기 경쟁에 몰두했다. 놀랍게도 근대화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과 악연을 맺은 적이 없다. 유럽이 중국에 눈을 돌릴 당시 미국은 중남미에 주목했다. 식민지 정책과 관련해 아시아는 유럽이, 반대쪽 중남미는 미국이 주도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중국에 식민지 같은 강압정책을 편 적이 없다.

더불어 1940년대 항일운동 과정에서 미국 민간인에 의한 플라잉 타이거즈(Flying Tigers)도 미·중 우호의 상징이다. 중국에서 비호대(飛虎隊)로 불린, 장제스(蔣介石)의 중화민국 공군 소속 항일의용대다. 대만과 미국 국기를 나란히 하면서 비호대란 한자가 새겨진 점퍼는 아시아 주둔 미군의 관광 선물 중 하나다. 10여 년 전이지만 서울 이태원에서도 플라잉 타이거즈 문양의 조종사용 점퍼를 본 적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민간 차원 교류지만, 일본의 중국 침략에 맞서 싸운 미·중 우호의 결정판이 플라잉 타이거즈다. 항일이란 차원에서, 국민당만이 아닌 공산당도 고맙게 여기는 기억들이다. 물론, 미국인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중국과의 우호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인이 즐겨 쓰는 라오펑요우(老朋友)로서의 미·중 관계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플라잉 타이거즈야말로 미·중 우호의 첫걸음이자 양국 간 신뢰의 초석에 해당된다고 분석한다. 중국에 대한 미국인의 긍정적 느낌의 출발점이 항일을 기점으로 한 플라잉 타이거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 외교의 상징인 판다의 등장이다. 판다가 중국 외교의 상징이 된 것은 국민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제스의 부인으로 영어가 유창한 쑹메이링(宋美齡)이 주인공이다. 플라잉 타이거즈를 포함한 미국의 항일 지원에 감사하기 위해 쑹메이링이 뉴욕에 들르면서 판다 두 마리를 선물로 보낸 것이 첫 역사다. 정확히 1941년 12월 30일로 장소는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이다.

따라서 미·중 정상회담이 있을 때 반드시 등장하는 덕담 중 하나가 플라잉 타이거즈 스토리다. 작전 중 전사한 미국인 조종사에 대한 추모도 대대적으로 벌인다. 그러나 그 같은 상황은 이미 흑백필름 당시의 과거에 불과하다. 20세기 사람들이라면 기억할지 몰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세대와 무관한 역사다. 라오펑요우를 대신해 환경 오염, 인권 탄압. 자원 착취 같은 나쁜 이미지만이 중국에 투영된다.

중국은 미국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같은 90대의 노외교관에게 매달려 흑백시대 추억에 주력할 뿐 새로운 세대에 무관심했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얼마 안 되던 좋은 기억이 세대 변화에 의해 사라지면서 민낯의 중국이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거꾸로 어제의 적, 일본이 중국을 적으로 한 미국의 동맹 최전선에 들어서게 된다. 물론 세대 변화로 인해 어제의 적 일본에 대한 어두운 기억도 전부 사라졌다.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닌, 세대 변화가 낳은 새로운 세계관이 반중(反中) 정책을 확산시키는 배경 중 하나다.

10월 중순 들어 중국 주식시장의 폭락세가 이어졌다. 한국을 포함한 중국 경제 영향 아래 있는 나라 대부분도 비슷하다. 미국 주식시장 약세 소식도 간간이 들려왔다. 그러나 중국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배경에서 발생한 것이다. 미국은 연방준비제도(FeD)에 의한 이자율 인상이나, 인플레이션 압박이 주식 하락의 가장 큰 이유다. 주식시장이 과열됐다는 점도 하나의 배경이다.

글로벌 시대의 친절한 미국이 주는 착각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 증시 급락 등의 여파로 10월 11일 코스피·코스닥 지수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어떨까? 주식 폭락의 가장 큰 이유는 미·중 무역전쟁에 있다. 미국의 경우 중국 변수가 거의 없다. 중국에서 미국 변수는 절대적이다. 중국 수출 부진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이 내려가면 중국도 함께 내려간다. 상승세의 미국 경제와 달리 중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은 대폭 하락할 전망이다. 이미 시작된 개발도상국에서의 외환위기가 확산될 경우 내년 경제성장률이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수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중국 경제의 마지노선인 6%대 성장률이 무너진다는 의미다.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에 들어가기 직전 일본 군부는 미·일 국력 조사를 실시했다. 항공모함·전투기뿐 아니라, 인구·자원·인프라·에너지 등 모든 것을 비교한 국력조사다. 수뇌부가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700대 1이라는 엄청난 국력의 열세 차이가 확인됐다. 사실, 당시 수뇌부 대부분은 미·일 간 극심한 국력 차이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지만, 전면전에 나선다.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고,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들 경우 적당한 선에서 미국이 휴전을 제의할 것으로 판단했다. 평화체제 아래서 일본의 이권을 지키고 확장해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300만 명을 죽음으로 몬 대착각이다. 미국은 기습을 당하는 그 순간부터 철저한 보복에 들어간다. 전쟁에 승리한 것만이 아니라, 아예 일본 전체를 미국식 기호에 맞게 개조한다.

현재 벌어지는 미·중 무역전쟁은 수출·수입을 둘러싼 돈 문제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미·일 전쟁사와 이후 상황을 보면, 결과를 전망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총과 피를 대신해, 평화 속에서 웃고 대화를 나누면서 행하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훈련과 정신력 면에서 일본군 1명당 미군 3명 상대 가능. 이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수뇌부가 내린 전투 상황의 기본 전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최악의 전장으로 기록된 이오지마 전투를 보자. 미군 사망자가 6821명인데 반해, 방어에 나선 일본군의 경우 전체 병력 2만1000여 명 가운데 1만 8000여 명이 사망한다. 행방불명자도 3000명이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아 포로가 된 일본군은 216명에 불과하다. 미군 1명당 일본군 3명인 셈이다.

움직이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일어나면 가공할 파워를 발휘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글로벌 시대의 친절한 미국을 보면서 착각하기 쉽지만, 미국 역사를 보면 종이호랑이와 무관하다. 이미 승부는 결정 난 상태다. 어디까지 얼마나 계속되고 확산될지가 관건이다. 한번 결정하고 일어선 이상 간단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종이호랑이가 연출하는 나르시시즘이 아닌, 호랑이 스스로가 보여주는 나르시시즘이 펼쳐질 것이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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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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