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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5G 항로 개척하는 KT호(號) 선장 황창규 회장 

“1등 되찾겠다” 약속 지킨 승부사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CEO 직속 미래융합사업추진실·플랫폼사업기획실 중심 사업 추진…2014년 이후 괄목할 경영 성과, 2017년에는 영업이익만 1조375억원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막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8에 참석했다. KT 전시관에 들른 황 회장이 직원으로부터 5G 네트워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KT
2002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회로 학술회의(ISSCC) 총회에 중년의 아시아인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차분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반도체 집적도는 1년에 두 배씩 증가하며, 그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모바일 기기와 디지털 가전 등 이른바 비(非) PC가 될 것입니다.”

유명한 ‘황의 법칙(Hwang’s Law)’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이전까지 반도체 집적도와 관련해 1년6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철칙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어의 법칙에 도전한 황의 법칙에 세계는 반신반의했지만 머지않아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황의 법칙의 주인공인 황창규 KT 회장은 삼성전자 재직 시절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는 국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1989년 황 회장은 ‘일본을 반드시 꺾겠다’는 마음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1980년대 말 스탠퍼드대 연구원 시절 만났던 일본 히타치연구소의 부소장은 그에게 “한국의 반도체 기술은 20년이 지나도 일본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7의 기조연설을 통해 “KT가 2019년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상용화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 사진:KT
황창규 회장은 삼성에 입사한 지 5년 만에 일본의 오만한 콧대를 꺾었다. 1994년 그가 이끄는 개발팀이 일본보다 앞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마침 256메가 D램 개발을 대외에 공표한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었다. 연구 결과에 대해 일본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국제 학회와 미국 HP의 호평에 일본은 한국의 기술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황창규 회장을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CEO로 키운 것은 세계 최고를 위한 끊임없는 고민과 더불어 비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영철학이다. 그의 사무실은 좋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에게 ‘출입불가’의 공간이다.

“내 사무실에는 나를 칭찬하는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한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나가라고 발로 찬다. 내 사무실에는 ‘이러면 안 됩니다, 저러면 안 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만 들어오게 한다.”

2015년 발간된 [한국경제를 만든 이 한마디](한국CCO 클럽 지음, 프리이코노미북스)는 한국 경제를 일군 기업인 70명의 어록과 일화를 공개했다. 본문 202~205쪽에는 위에서 언급한 황창규 KT 회장과 관련된 이야기가 실렸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총괄 사장, 기술총괄 사장 등을 지낸 황 회장은 2014년 KT 회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3년 뒤인 지난해 연임에 성공, 현재에 이르고 있다. KT 회장의 임기는 3년이다.

결정적 순간을 기회로 만들다


▎황창규 KT 회장이 9월 5일 서울 광화문 KT 스퀘어에서 열린 기가 스토리책 발간 기념 북콘서트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사진:KT
‘5G 전도사’ ‘5G 리더’로 불리는 황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5G를 강조했다. “2018년은 KT에 ‘결정적 순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2018년 평창에서의 성공을 시작으로 5G 상용화를 제대로 준비합시다.”

황 회장은 2018년 평창올림픽에 전력투구했다. 세계 최초로 5G 시범서비스를 실시하는 중요한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만일 평창 ‘쇼케이스(showcase)’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는다면 2019년 5G 상용화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대성공. 3년에 걸쳐 준비한 평창올림픽 5G 서비스에 대한 반응은 찬사 일색이었다. 통신 부문 공식 파트너인 KT는 지난해 10월 강원도 평창·강릉 경기장 일대에 5G 시범망 구축을 끝냈다. 이를 토대로 대회 기간 통신망과 방송 중계망을 책임졌다. 세계 최초로 5G 시범서비스를 선보인 것이다.

황 회장은 평창올림픽 성공을 토대로 2018년을 5G 상용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조직 개편에서 5G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마케팅 부문에 유무선사업본부·미디어사업본부·디바이스본부와 함께 5G사업본부를 편제했다. 5G사업본부는 주파수 전략, 네트워크 구축 계획 등 5G 상용화 추진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다.

차세대 성장동력인 5대 플랫폼 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KT는 미디어, 스마트에너지, 기업공공가치 향상, 금융거래, 재난·안전·보안을 5대 플랫폼으로 선정하고 집중 육성하고 있다. 또 황 회장은 AI·블록체인과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해 관련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블록체인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AI 부서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황창규 회장은 “5G는 위치·보안·제어와 같은 솔루션과 빅데이터·AI와 같은 첨단 ICT가 결합된 지능형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며 “5G 기반의 지능형 네트워크가 기후변화·감염병 등 인류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 위해서는 전 세계 통신사업자들의 활발한 논의와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골탈태… 넘버원의 자존심 회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2차 주요 기업인과의 간담회 겸 만찬에 앞서 칵테일 타임을 열고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문 대통령, 허창수 GS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황창규 KT 회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돌아보면 황 회장이 지휘봉을 잡았던 2014년만 해도 KT는 큰 위기였다. 민영화 이후 첫 적자, 성장절벽, 기업 이미지 하락 등 내우외환의 연속이었다. 미래는커녕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실제로 2014년 3월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KT의 신용도를 A3에서 Baa1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계열사 CEO들은 기준급 30%를 반납해야 했고, 직원들은 명예퇴직에 내몰렸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일조했던 황 회장은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통신회사답게 통신 부문 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게 황 회장의 복안이었다. 황 회장은 그룹 전체를 수술대에 올리고 직접 메스를 잡았다. 2013년 56개이던 계열사는 2017년 36개로 줄었다. 도려낼 것은 도려내고 살릴 것은 살린 것이다.

과감한 체질개선 후 KT는 옛 모습을 되찾았다. 황 회장 취임 첫해였던 2014년에는 영업이익 40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2015년 1조2000억원 흑자로 ‘1조 클럽’에 재가입했다. 이어 2016년 1조4000억원, 2017년 1조3000억원을 찍었다. 서비스매출은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20조원대를 기록했다.

또 2014년 말 92.3%에 이르던 순부채 비율이 2017년 말에는 36.4%로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황 회장 취임 2년차인 2015년 연결매출은 22조2812억원으로 이석채 회장 시절인 2013년 23조8105억원보다 1.6%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54% 늘었다. KT렌탈과 KT캐피탈 등 계열사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2013년 22조원에 육박하던 KT의 부채는 2017년 초 17조4700억원으로 20.5% 줄었다.

이익은 늘고 부채는 감소하니 신용도를 회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디스는 지난해 1월 KT의 신용도를 기존 Baa1에서 A3로 상향 조정했다. 무디스와 함께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푸어스와 피치 역시 KT의 신용도 A레벨을 유지했다.

황 회장은 2014년 1월 27일 주주총회에서 “어려운 시기 회장에 선임된 데 대해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며 “통신 대표 기업 1등 KT를 향한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그때만 해도 신임 CEO의 의례적인 인사말 정도로 여긴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4년여가 지난 2018년 KT는 ‘1조 클럽’ 회원과 대한민국 대표 통신기업의 위상을 되찾았다.

KT 관계자는 “황창규 회장 취임 후 사상 최대 위기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하게 됐다. 1등 KT를 내세워 통신 시장에서 본원적인 경쟁력을 회복한 것도 황 회장의 공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황창규 KT 회장은- 출생: 1953년 부산. 학력: 부산고, 서울대 전기공학과 학사·석사, 미 매사추세츠주립대 박사. 경력: KT 회장(2014~현재) 성균관대 석좌교수(2013) 헌법재판소 자문위원(2011) 삼성전자 기술총괄사장(2008~2009)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2004~2008) 세계 최초 256메가 D램 개발 성공(1994) 미국 인텔사 자문(1987)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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