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ZOOM UP] ‘2018 킬리만자로 챌린지 트립’ 동행기 

힘겨울 때 내밀어준 손이 더 따뜻하다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참가자 18명, 여행 전 4개월 동안 기부금 1000만원 모아 탄자니아 ‘어린이 돕기’ 현지 방문…후원 아이들의 터전 방문, 아프리카 최고봉 올라 척박한 삶 공유하는 계기 삼기도

▎후원자 일행을 마중 나온 어린이들이 환영인사를 하고 있다. 탄자니아컴패션이 운영하는 어린이센터에서는 200여 명의 지역 아동이 생계 지원을 받고 있다.
9월 24일(현지시간) 일군의 여행객이 탄 버스가 탄자니아 키루아니 지역의 ‘컴패션 어린이센터’에 도착하자 수십 명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달려 나왔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이곳에 오기까지 꼬박 22시간이 걸렸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여행객들은 새하얀 치아가 훤히 드러나도록 웃는 아이들을 보자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마중 나온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방문객들의 손을 잡고 어린이센터로 향했다.

컴패션은 미국인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1952년 전쟁 중인 한국에 설립한 어린이양육기구다. 현재 25개국에 180만 명이 넘는 어린이를 후원자와 연결해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고 있다. 컴패션은 후원자가 돕는 어린이를 직접 만나는 여행 프로그램인 ‘비전 트립’을 기획해 운영한다.

후원하는 아이들 만난 보람에 눈물 ‘글썽’


▎자신이 후원하는 어린이의 집을 방문한 임헌일(50)씨가 한국에서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한국컴패션은 9월 22일부터 10월 2일까지 10박11일 간 탄자니아를 방문하는 ‘2018 킬리만자로 챌린지 트립’를 기획했다. 아이들을 만난 뒤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등반에도 나섰다. 18명의 후원자가 이번 여행을 함께했다.

“낸시! 사진보다 훨씬 예쁘구나. 만나서 정말 반가워.”

박성일(51)씨가 다섯 살 아이를 품에 안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 초부터 컴패션을 통해 후원하고 있는 아이였다. 박 씨는 옷과 인형 등 낸시에게 줄 푸짐한 선물을 준비해 왔다. ‘큰 꿈을 꾸고, 절대 희망을 잃지 말 것’이라고 적은 카드도 함께 선물했다. 박씨는 “후원하는 아이를 만나 행복했지만 허름한 집을 보고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렸다”면서 “낸시 가족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컴패션을 통해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참가자 일행은 여행 4개월 전부터 이곳에 화장실과 우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4500여 만원 중 1074만원을 모아 기부했다. 어린이센터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 화장실 완공 기념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새 화장실은 파란색 지붕이 씌워진 아담한 건물이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일행과 함께 화장실로 들어간 아이들은 연신 세면대에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수도꼭지를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자기 몸통만 한 소변기를 살펴보던 한 소년은 카메라를 보자 찡긋 윙크를 날렸다. 어린이센터를 이용하는 200여 명의 아이는 그동안 하나뿐인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손 씻을 수도시설도 없었다.

아이들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던 이유아(36)씨는 “이 시설이 올바른 위생 습관을 만들고 질병을 줄이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거리공연을 하며 아이들을 위한 모금을 해온 장정우(50)씨는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 기부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킬리만자로 등반 ‘고행’


▎북극곰을 닮은 인형 ‘고마’를 품에 안은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고마는 박성일 장금신아트워크 대표가 만든 인형 캐릭터로 ‘꿈과 추억을 배달하는 우체부’를 상징한다.
참가자 일행은 아이들을 만난 다음날부터 킬리만자로 등정에 나섰다. 킬리만자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휴화산이다. 정상 우후루 피크(Uhuru peak)는 해발고도 5895m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다. 적도 부근인데도 만년설에 쌓여 있어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토착어(語)인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이라는 뜻이다.

킬리만자로 북쪽의 룽가이 게이트(Rongai gate)에서 시작된 여정은 6일 동안 이어졌다. 산림지대에 마련된 심바 캠프를 지나 키케리와 동굴(Kikelewa caves)을 거친 뒤 킬리만자로에서 둘째로 높은 마웬지 피크(Mawenzi peak)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3일이 걸렸다. 시시때때로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장대하게 펼쳐진 은하수를 보며 고단함을 잊었다.

일행을 이끈 가이드 토니는 우후루 피크에 오르는 순간까지 “폴레이(Pole)!”라고 거듭 외쳤다. 탄자니아 말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고산병 때문이었다. 해발고도 5895m에선 건강한 사람도 고산병에 걸릴 수 있다. 고산병에는 약이 없다. 그저 천천히 걸어 오르며 몸을 적응시키는 방법뿐이다.

킬리만자로 등정 5일째, 우후루 피크에 오르는 날이다. 전날 자정부터 숙소에서 나선 일행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한 채 가파른 경사를 쉬지 않고 올랐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추위로 발가락은 떨어져 나갈 듯 고통스러웠다. 극심한 두통과 ‘그만 포기할까’ 유혹을 불러오는 무기력증이 일행을 괴롭혔다. 갈수록 심해지는 고산병 때문이었다.

“가난해도 밝은 아이들과 동행하며 살아갈 것”


▎후원자 일행과 아이들이 후원금으로 새로 만든 화장실 건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 지역은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아이들이 손을 씻을 세면대조차 없었다.
숙소에서 출발한 지 6시간이 지날 무렵 정상으로 가는 길목의 첫 번째 관문인 길만츠 포인트(Gilman’s point)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잠시 쉬는 새 지평선 위로 여명이 밝아 왔다. 아프리카 대륙 위로 떠오르는 태양의 온기가 일행을 감쌌다. 따뜻한 햇볕을 즐기는 것도 잠시, 정상까지는 2시간을 더 올라야 했다.

한 걸음씩 내딛고 또 내디딘 끝에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Uhuru Peak, 5898m’라고 쓰인 나무판이 일행을 반겼다. 이효진(35)씨는 “추위와 고산병만큼 힘들었던 점은 제대로 갖춰진 화장실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만났던 아이들은 이런 일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고 등정 소감을 밝혔다.

정상에 서서 눈물을 글썽이던 양홍준(31)씨는 “동료들의 도움과 격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이번 여행으로 ‘함께하는 소중함’이 무엇인지 절감했다”고 감격해 했다. 양씨는 또 “앞으로 가난 속에서 힘겨운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이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햇빛을 머금고 있었다.


▎맑은 물이 나오는 세면대를 바라보며 아이들이 신기한 듯 손을 내밀고 있다.



▎화장실에서 한 소년이 자기 몸집만한 소변기 앞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효진(36)씨가 자신이 후원하는 어린이를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지고 있다. 이씨는 이번 탄자니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후원을 시작했다.



▎후원자 일행이 버스에서 내려 어린이센터로 향하는 길에 인근 마을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부르며 환대하고 있다.



▎참가자 일행이 킬리만자로 산 중턱의 사막지대를 지나고 있다. 트레킹 가이드는 “10년 전만 해도 더 크고 멋진 만년설을 볼 수 있었는데 예전 같지 않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후원자 일행이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루 피크에 도달한 뒤 기념 사진을 찍었다. 6일간의 힘든 등정 과정에서 참가자 일부는 고산병을 앓아 하산하기도 했다.
- 사진·글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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