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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약으로 쓰이는 곤충, 방아깨비 

기침, 해열, 진통, 복막염, 산후 후유증 등 민간 약재로 이용… 냄비에 넣어 달달 볶아 먹는 등 단백질 공급원으로도 제격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방아깨비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풀색을 보호색으로 한다.
필자도 어릴 적에 방아깨비를 많이도 잡았다. 작은 수놈(♂)은 행동이 빨라서 잡기 어려우나 몸집이 큰 암놈(♀) 방아깨비는 느림보라서 쉽게 잡는다. 특히 아침 찬이슬에는 행동거지가 느리기에 놈들 잡기는 누워 떡먹기다. 또 잡았다 하면 긴 두 뒷다리를 움켜잡게 되고, 절로 마치 디딜방아처럼 위아래로 끄덕거리기에 딱 어울리는 ‘방아깨비’란 이름이 붙었다. 사실 그것은 도망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힘이 꽤 세서 조금만 소홀해도 바로 박차고 도망가기 일쑤다.

방아깨비가 그렇게 방아 찧기 할 때, “아침 방아 찧어라, 저녁 방아 찧어라, 콩콩 찧어라”하며 음률을 맞춰 노래 불렀지. 그러면 방아깨비는 마치 노래에 박자 맞추듯이 껑충껑충 연달아 끄덕거린다. 또 수놈은 딱딱한 양 앞날개를 서로 부딪쳐 따다닥 따다닥 소리를 내면서 날기에 ‘따닥개비’라고도 한다. 방아깨비 수컷은 1초에 약 30회 빠르기로 날개를 퍼덕여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멀리 날아가고, 암컷은 덩치가 엄청 커서 얼마 날지 못하고 힘없이 뚝 떨어진다.

우리 또래들은 마을 어귀 논밭 가나 소꼴을 먹이러 가서 심심풀이로 방아깨비를 잡아서 신나게 방아깨비놀이를 하였다. 우리 때는 벌레나 푸나무(자연물)가 그 자체가 장난감이었으니…. 두 사람이 각자 방아깨비를 한 마리씩 잡아들고 동시에 방아를 찧게 하여 더 오랫동안 찧는 쪽이 이긴다. 이 놀이가 끝난 방아깨비(oriental longheaded locust / Chinese grasshopper)는 매몰차게 메뚜기(grasshopper)와 함께 구워 먹었다.

방아깨비(Acrida cinerea)는 메뚜깃과의 곤충으로 긴 원통형이고, 머리는 대단히 긴 것이(longheaded) 앞쪽으로 돌출했으며, 정수리에는 커다란 겹눈이 옆쪽으로 툭 튀어나왔다. 몸길이는 수컷이 4∼5㎝, 암컷은 7~8㎝로 다른 곤충들이 다 그렇듯이 수컷이 암컷보다 작고 비쩍 말라서 다른 종으로 보일 정도다. 암컷은 한국에 서식하는 메뚜기 무리 중에서 가장 길고, 큰 편이다.

몸 빛깔은 대개 녹색 또는 갈색이고, 촉각(더듬이)은 넓적한 칼 모양이다. 등에 1개의 세로 융기선과 때로는 3개의 어두운 색의 세로줄이 있다. 앞가슴은 머리보다 짧고, 중앙부가 잘록하며, 날개는 발달해 배의 말단보다 길고, 앞날개의 말단은 뾰족하다. 그리고 방아깨비는 벼메뚜기와 함께 전형적인 곤충으로 여기고, 곤충 하면 뭐니 해도 몸이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나뉘고, 날개 두 쌍에 다리는 세 쌍이다. 그리고 예전부터 방아깨비는 가을 들판에서 흔하게 접하는 전형적인 가을 곤충으로 주요 먹이는 벼과 식물인 강아지풀이다. 강한 턱으로 식물의 잎줄기를 싹둑싹둑 자르고 갉는다. 연 1회 발생하고, 성충은 7월에서 10월까지 볼 수 있으며, 나비나 벌과는 달리 유충이 자라 번데기시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탈바꿈해 성충(成蟲)이 되는 불완전변태를 한다.

암컷은 무서리(묽은 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서둘러 양지바른 논둑이나 밭둑에 똥짜바리(산란관, 産卵管) 흙에 박고 알을 낳는다. 흙에서 월동한 알은 초여름에 부화해 어미 닮은 애벌레로 태어나고, 몇 번을 탈피해 한여름이면 성체가 된다.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고, 아시아·아프리카·유럽·호주 등지에 살며, 방아깨비속(屬)에는 세계적으로 40여 종이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제 1폭의 주인공

늦가을엔 나락 잎을 갉아먹고 자란(축낸) 해론 벌레인 벼메뚜기 잡기에 바쁘다. 벼논이 마른지라 논에 들어가 온 사방을 설친다. 덩치가 큰 암놈, 작은 수놈 가릴 것 없이 마구 잡지만 암놈 등에 올라탄(짝짓기 하는) 수놈을 함께 잡으면 두 배로 횡재다. 비닐도 없고, 빈병도 귀할 때라 잡는 족족 바랭이나 강아지풀의 꽃줄기에 줄줄이, 주렁주렁 목을 꾄다. 냄비에 넣어 달달 볶아 먹기도 하고, 도시락 반찬으로도 썼으니 단백질공급원으로 최고 윗길(최상품)이다. 물론 단백질 사냥으로 늦가을 미꾸라지나 미꾸리, 논우렁이(논고동)를 빼 놓을 수 없었지.

방아깨비는 잡으면 보통은 닭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쇠죽 끓이고 남은 잔불에 굽고, 또 콩서리 하다 남은 모닥불에 익히는데 노르스름하게 익었다 싶으면 날개와 다리를 떼고 냠냠이다. 다른 곤충 등과 마찬가지로 방아깨비 앞날개는 딱딱한 키틴질(큐티클)로 되었고, 뒷날개는 야들야들한 막 같은 것이 통상 앞날개에 덥혀 있다가 날 때는 쫙 편다. 방아깨비는 식용 말고도 기침, 해열, 진통, 복막염, 산후 후유증 등 민간 약재로 이용된 약용 곤충이다.

방아깨비는 잎사귀처럼 보이는 날개와 이삭 같은 더듬이, 줄기 닮은 긴 다리에 풀색 보호색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체색이 분홍갈색이나 빨간색도 있지만 너무 눈에 잘 띄는 색이기 때문에 포식자에 쉽게 잡아먹혀 도태된다. 새나 뱀들에 생기는 백화증(알비노, albino)도 마찬가지다.

방아깨비를 포함한 메뚜깃과 곤충들은 방어 무기가 전무해 철저하게 보호색(保護色)에 의존하고, 사람이나 천적인 포식자에게 잡히는 날에는 풀 냄새 나는 일종의 독성물질인 검푸른 창자액을 입으로 뱉어낸다. 그리고 가끔은 도마뱀들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듯 뒷다리를 떼어 버리고 내빼는 수가 있다.

그런데 방아깨비는 신사임당의 풀과 벌레병풍그림인 [초충도(草蟲圖)]에도 등장하는 곤충벌레의 하나이고, 초충도는 모두 여덟 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폭에 이야기의 주인공 방아깨비가 등장하는데 가지와 벌들을 소재로 그린 것으로 가지를 가운데에 두고, 땅에서는 개미와 방아깨비가 기어다니고, 하늘에서는 벌과 나비·나방이 날아다닌다.

아무튼 옛날사람들은 집안에 수박 그림을 걸어 놓으면 아들을 낳고, 맨드라미 그림을 걸어 놓으면 관직에 오를 수 있으며, 원추리 그림을 걸어 놓으면 마음속의 걱정거리를 덜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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