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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물연구] 한국프로야구 ‘두산 왕조’ 개창한 김태형 감독의 리더십 

혼냈다 풀어줬다 ‘곰탈여우’는 밀당 고수 

이재국 야구전문기자
2015년 지휘봉 잡은 이래 올해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시켜 명장(名將) 반열 올라…선수들과 ‘직설화법’ 고집하며 굵으면서도 섬세한 야구, 최선 다해 많이 이기는 “두산다운 야구” 호평

▎김태형 두산 감독은 코치를 통한 간접 소통보다 선수와 직접 대화하는 직접 소통을 즐긴다. 돌려서 말하기보다 직설적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한다. 단, 길게 얘기하지는 않는다. / 사진:두산 베어스
압도적인 레이스였다. 역설적으로 가장 시시한 시즌이었다. 적어도 두산 팬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졌을 2018년 페넌트레이스였다. 두산은 시즌 초반부터 독주를 거듭한 끝에 일찌감치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4월 7일 공동 1위로 올라선 뒤 단 한 차례도 선두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9월 25일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다. 당시 2위 SK에 무려 12게임차 앞서 있었다. 시즌 내내 의심의 여지가 없는 1위. 추격을 하는 팀도, 도전장을 내미는 팀도 없었기에 오히려 “긴장감 떨어지는 레이스였다”는 말이 나왔다.

이로써 두산은 2015년부터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내는 역사를 썼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라선 것은 ‘왕조’로 불리는 해태(1986~1989년), SK(2007~2012년), 삼성(2011~2015년)에 이어 이번에 두산이 역대 4번째다.

이만하면 두산도 앞선 세 팀과 함께 왕조를 구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새 역사를 지휘한 사령탑은 바로 김태형(51) 감독이다. 2015년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라 우승을 차지한 뒤 올해까지 4년 연속 모조리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감독 데뷔 후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정규시즌 1위를 이끈 삼성 류중일 감독(현 LG 감독)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김태형 감독의 리더십 요체는 무엇일까.

눈빛으로도 선수를 제압하는 카리스마

“무서워요.”

“엄하신 분이죠.”

“긴장을 풀리지 않게 하십니다.”

“함부로 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반응은 비슷하다. ‘김태형 감독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어떤 느낌이라고 소개하고 싶느냐’는 말에 두산 선수들은 베테랑이든, 어린 선수든 대부분 이렇게 얘기했다. 심지어 코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말처럼 김 감독은 간단치 않은 인물이다.

키 1m73㎝, 몸무게 76㎏. 운동선수치고는 크지 않은 체격. 그러나 김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카리스마가 넘쳤다. 개성 강한 선수들도 그의 한마디에 제압됐다. 그가 눈 한 번 찡긋하면 알아서 움직였다. 외국인선수도 예외가 없었다.

“선수 시절부터 리더십이 보였어. 전체적으로 선수들을 하나로 끌어 모으는 힘이 있었지. 그래서 주장도 맡겼고. 선수들을 보면 지도자감이라고 느껴지는 선수가 있어. 물론 그런 선수 중에 나중에 실제 코치나 감독이 된 다음 예상과 달리 실망스러운 결과를 내는 부류도 있지만, 김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리더가 될 만한 자질을 보였는데 감독으로서도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는 것 같아.”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현 KBO 총재 고문)의 말이다. 김 전 감독은 1994년 말 선수단 이탈 사건으로 난파선이 된 OB(현 두산) 선장을 맡은 뒤 곧바로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인물이다. 2003년까지 9년간 두산 사령탑을 역임하면서 역대 베어스 감독 중 최장수 감독으로 남아 있다.

김태형 감독은 신일고와 단국대를 졸업한 뒤 1990년 OB에 입단해 2001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그중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연속 주장을 맡았다. 당시 외국인선수 타이론 우즈가 돌출행동을 할 때면 따로 불러서 커튼을 친 뒤 혼을 내면서 ‘제압’을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기 후 수훈선수에 선정돼 상금을 받으면 우즈는 그 상금을 공평하게 동료들과 나눠 갖는 두산만의 관행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냈다. 자신이 잘해서 받은 상금을 왜 다른 선수들에게 줘야 하느냐는 논리였다. 김태형 주장은 통역을 대동하고 커튼을 친 뒤 “앞으로 네가 받은 상금은 전부 네가 가진다. 단, 다른 선수들이 상금을 탔을 때는 너만 빼고 나눠준다”고 하자 우즈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흑곰’으로 불린 우즈는 캡틴이 커튼만 치면 순한 양으로 변했다.

김태형은 선수 시절부터 팀워크에 해가 되는 선수는 두고 보지 못했다. ‘개인보다는 팀’이 우선이었다. 심지어 선배들에게도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었다. 거침이 없었다. 딱 부러졌다. 선배들도 그래서 그를 쉽게 보지 못했다.

“한화에 있다가 99년에 두산에 갔는데 김태형 선배는 주장으로서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개성이 강했던 강병규·김동주·이혜천·정수근 등이 튀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면 가만 두지 않았죠. 바로 지적을 하고 혼냈어요. 수퍼스타들은 감독이나 코치도 잘 건드리지 못할 때가 많은데, 야구 좀 한다고 예의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면 김태형 선배가 바로 나섰죠. 다들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웃음) 한때 김태형 감독과 한솥밥을 먹은 홍원기 넥센 코치의 얘기다.

‘흑곰’ 우즈도 커튼만 치면 순한 양으로


▎2018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두산 선수단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 넷째가 김태형 감독. / 사진:두산 베어스
감독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적할 것이 눈에 보이면 곧바로 선수를 불러 혼낸다. 코치라는 필터 과정을 거치지도 않을 때가 있다. 전 경기가 생중계되는 요즘, 이런 장면은 여과 없이 팬들에게 전달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4월 10일 경기였다. 포수 양의지가 이닝교대 후 7회말 수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후배 투수 곽빈의 연습 투구를 뒤로 빠뜨렸다. 공은 바로 뒤에 서 있던 주심의 다리를 맞을 뻔했다. 양의지 스스로는 “고의로 공을 잡지 않은 것은 아니다”고 부인했지만, 앞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을 만한 일이 있었고, 공을 뒤로 빠뜨린 것도 일부러 놓쳤다고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일명 ‘볼 패싱 사건’이었다.

당시 김 감독은 곧바로 더그아웃에서 양의지를 불렀다. 연습투구를 받으려던 양의지는 더그아웃 앞으로 가더니 김 감독 앞에서 곧바로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 채 고개를 숙였다. 그 장면이 TV 생중계를 통해 팬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양의지는 공수에서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국내 최정상급 스타다.

양의지는 ‘김태형 감독은 여전히 어려운 분인가’라는 질문에 “일단 무섭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에 들어왔을 때부터 배터리코치님으로 만났는데 그때부터 무서웠다. 혼낼 일이 있으면 바로 지적하신다. 내가 왜 혼나는지 나 스스로 알게 만든다. 목소리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압도되고 긴장이 된다”고 설명했다.

바람직하지 않게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휘계통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코치가 중간에서 할 일이 없어져 한 마디로 허수아비가 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감독이 굳이 악역을 맡을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통 선수를 혼낼 일이 생기면 코치에게 맡기는 감독이 많다. 그러나 김태형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이유는 분명했다.

“내가 부드러운 스타일은 아니다. 말이 짧다(웃음). 선수가 경쟁에서 밀려 2군에 내려갈 때도 조금만 참고 해라, 열심히 하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다,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없다. 그냥 ‘붙어서 이겨’, ‘그렇게 준비 안 돼 있으면 안 돼’라고 확실하게 말한다. 얘기할 건 그 자리에서 바로 얘기하는 편이다. 대신 길게 얘기하지는 않는다. 속에 쌓아두면 오히려 나중에 오해가 쌓이고 역효과가 날 수 있지 않은가. 참고 참다가 감독이 아무 설명 없이 선수를 2군에 내려 보내게 되면 선수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어떤 것을 보완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냥 감독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다른 오해를 할 수가 있다. 그것보다는 확실하게 설명하고 지적하는 게 낫다. 진짜 혼내려면 아무 말 없이 ‘가’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

김 감독의 소통 방식은 직거래 방식이다. 중간에 깎이거나 살이 붙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전달하는 것을 선호한다.

“스타일의 차이라고 본다. 코치를 통하면 감독의 뜻이 잘못 전달될 수 있다. 난 ‘똑바로 하라’고 강하게 얘기하는데 코치가 중간에서 그런 얘기를 확실히 전달 안 할 때도 있다. 코치가 마음이 약해서 그럴 수 있다. 또 반대로 감독의 뜻은 그렇지 않은데 코치가 다르게 해석해서 선수에게 강하게 전달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냥 내가 얘기할 건 그 자리에서 얘기를 한다.”

이에 대해 두산 코치나 선수들도 이제는 김 감독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있다. 감독이 먼저 선수를 불러 직접 혼내거나 지시를 한 다음엔 필요할 경우 나중에 코치를 따로 불러 그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모 코치는 “코치가 중간에서 난처해질 상황이 없다. 코치가 선수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사이가 벌어질 수 있는데 감독님이 바로 말씀하시니 오히려 코치가 편한 측면이 있다. 코치들에게도 지적할 게 있으면 바로 하지만 뒤끝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승호 두산 운영부장은 “선수 시절부터 말을 돌려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면서 “어떤 문제가 있으면 후배든, 선배든 바로 말했다. 프런트에도 할 말이 있으면 선수 시절이나 지금이나 ‘이런 부분은 구단에서 해달라’고 직설적으로 요구하는 스타일이다. 에둘러 표현하면 프런트에서도 오히려 ‘감독님 지금 무슨 말씀이시지?”라고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편하다“고 설명했다. 현장과 프런트가 신경전을 벌이거나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만들 여지가 없다는 것은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아픔이 만들어낸 디테일, 최고 스승들을 만난 행운


▎김태형 SK 배터리코치가 2012 정규시즌 때 자신을 찾아와 인사하는 두산 김선우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김태형 감독을 설명할 때 “무섭다”는 얘기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말이 “꼼꼼하다”는 얘기다. 겉으로 보기엔 두산이 스케일이 큰 야구를 하기에 성격도 그런 것 같지만, 내면은 치열하다. 곰탈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란 별명이 괜한 게 아니다.

두산의 한 코치는 “우리 팀 자체가 스케일이 큰 빅볼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그 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세밀한 야구를 하고 있다”면서 “꼼꼼함으로 따지면 김성근 감독님보다 더 하신 것 같다. 코치가 더 준비를 해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항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팀에만 있다가 두산에 온 코치는 “감독님은 코치들을 존중하고 웬만해서는 터치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코치들은 늘 긴장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감독님은 그런 카리스마가 있다”면서 “경기를 하면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신다.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수비 위치나 선수들 타격 임하는 자세, 포수와 타자의 수싸움까지 다 보신다. 수장이 그 정도로 집중하는데 코치도 선수도 흐트러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그림은 크게 그리지만, 디테일에 강하다. 포수로서 수많은 수싸움과 전투를 치르다 보니 생긴 노하우다. 김인식 감독은 “감독도 여러 유형이 있지만, 포수 출신들이 나중에 감독이 되면 잘하는 것 같다”면서 “포수 중에서도 흔히 말하는 공격형보다는 수비형 포수들이 지도자로 성공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굳이 공격형, 수비형 나눌 것도 없긴 하지만 아무래도 수비형 포수는 선수 시절부터 방망이보다는 수비 쪽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연구를 하고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보는 눈이 넓다”고 평가했다.

김태형 감독도 프로 시절 성적만 놓고 보면 수비형에 가까웠다. 국내리그에서 1990년부터 2001년까지 통산 12년간 82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35(1835타수 432안타), 9홈런, 157타점을 기록했다. 아마추어 시절엔 방망이에도 재능이 있었던 포수였다. 신일고 2학년 시절이던 1984년 봉황대기 고교야구에서 0.500의 타율로 타격 2위에 올랐고, 단국대로 진학한 뒤엔 3번 타자를 맡았다. 3학년이던 1988년에 서울올림픽 멤버로 뽑힐 만큼 아마추어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대학 3학년 겨울에 일본·대만과 치르는 친선대회에 출전해 슬라이딩을 하다 오른 어깨를 다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깨 부상은 습관성 탈구로 이어졌다. 오른팔로 힘껏 송구를 해야 하는 포수에게는 치명적 부상. 타격을 할 때도 한 손을 놓고 칠 수밖에 없었다. 김태형 감독은 “진로가 결정되는 4학년 때 포수를 하지 못하고 내내 지명타자를 했다. 프로에 가야 할지, 실업야구에 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고 그 시절을 돌이켰다.

보약이 된 SK에서의 3년 ‘외유’

1990년 OB에 입단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짧았지만 포수로서 커다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거목들을 만났다. 훗날 포수 조련사이자 명장으로 평가 받은 조범현(전 kt 감독)과 김경문(전 NC 감독). 원년부터 OB 안방을 황금분할 해온 이들은 당시 은퇴를 앞둔 베테랑들이었다. 조범현은 그와 1년을 함께한 뒤 1991년 삼성으로 이적했고, 김경문은 1989년 태평양으로 이적했다가 1991년 OB로 다시 돌아온 뒤 은퇴했다.

“선배들이었지만 사실상 코치 특명을 받고 나를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두 분 스타일은 달랐다. 조범현 선배님은 꼼꼼하시다. 내가 잘못하는 게 보이면 ‘그렇게 해서 되겠나?’라는 식으로 좀 강하게 말씀하시면서 자극을 주는 스타일이다. 김경문 선배님은 ‘이런 게 어떻겠니? 나쁜 습관 들이지 마라’라는 식으로 자상하게 조언해 주시는 스타일이었다. 최고 포수 두 분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프로에서도 어깨는 말썽을 부렸다. 습관성 탈구가 1년에 한두 번씩은 연례행사처럼 찾아왔다. 어깨가 빠지면 단추 맞춰 끼워 넣듯 해야 했다. 한 번 빠지면 한 달 가까이 남몰래 통증과 싸워야 했다. 송구에 불편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방망이를 휘두르기 쉽지 않은 상태가 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강한 송구가 어려우니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른 푸트워크와 정확한 송구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경기를 읽는 눈과 빠른 상황 판단력을 갖춘 김태형은 포수 왕국 OB의 계보를 잇기 시작했다.

1995년 롯데와 만난 한국시리즈. 당시 OB는 1년 전 입단한 거포 유망주인 공격형 포수 이도형을 1차전 선발 포수로 내보냈다가 패했다. 롯데는 그해 220개의 팀 도루를 기록하는 기동력 야구의 팀이었다. 1차전 패배 후 김인식 감독은 마스크를 김태형에게 넘겼고,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이겨내고 두산에 원년 우승 이후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그 역시 야구를 한 뒤 학창 시절부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기는 법과 맛을 알기 시작했다.

포수 왕국 OB에서 포수로 살아가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1995년 유망주 포수 이도형을 밀어내고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됐지만, 1996년 최기문 1997년 진갑용, 1999년 홍성흔 등 걸출한 포수 유망주들이 줄줄이 입단했다.

그러나 최기문은 손이 말썽을 부렸고, 진갑용은 초반에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당시 김인식 감독은 당시 이들이 입단한 뒤 김태형에게 “내 옆에 있어라”면서 일찌감치 플레잉코치처럼 곁에 두고 키우려 했으나, 다시 주전 안방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1999년 신인 홍성흔이 5월 5일 어린이날 처음 선발 마스크를 쓴 뒤 펄펄 날면서 주장 김태형은 백업 포수로 밀려났고 플레잉코치로 2001년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뒤 은퇴하게 됐다.

최고 명장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과 김경문 감독 아래에서 오랜 기간 함께한 것은 그에겐 지도자의 덕목을 쌓아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김인식 감독과는 1995년부터 9년을, 김경문 감독과는 2004년부터 8년을 함께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먼 훗날 감독이 될 수 있는 자양분을 흡수했다.

1990년 OB 입단 후 원클럽맨이었던 그는 2012년부터 3년간 SK 코치로 잠시 다른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두산을 떠날 때만 해도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게 오히려 내면을 더 강하게 만들고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이 아닌 다른 팀의 분위기를 본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됐다. 프런트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문화가 다르고 새로운 부분들을 느끼게 됐다. 내 스타일은 바뀌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많이 성숙해졌던 것 같다”면서 “사실 SK에 있을 때도 아무래도 다른 팀보다는 두산을 더 보게 되더라. 한 발 떨어져서 보니 안에 있을 때 보지 못했던 장단점들도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김인식 전 감독은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덕목으로 유머도 중요시한다. 사람들을 하나로 모이게 하고 좌중을 휘어잡기 위해서는 유머와 위트가 있는 자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김태형 감독은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편한 자리에서는 농담도 잘하고 입담이 좋다. 언어 구사의 순발력이 좋아 한마디 한마디가 촌철살인이다. 김태형 감독은 “이젠 내가 진짜 화가 나서 그러는지, 농담인지 선수들이 안다. 박건우 같은 선수는 같이 농담으로 맞받아친다”며 웃는다.

유머 갖춘 분위기 메이커, 눈물을 아는 남자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승1패로 누르고 14년 만에 정상에 복귀한 두산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홍원기 코치는 “나름대로 유쾌한 분인데, 선수 시절 좌중을 휘어잡는 능력면에서 다재다능했다”면서 “사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도 탁월했다. 2001년 우승했을 때 그룹 고위급 인사들이 왔는데도 재미있게 분위기를 이끌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인식 전 감독도 “체질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회식 자리에서는 술 마신 사람처럼 잘 논다고 하더라”면서 웃었다. 입담 하나만 놓고 보면 현역 두산 선수 중에서는 단연 유희관이 압도적 지위에 올라 있지만, 두산을 잘 아는 이들은 “김태형 감독은 유희관과 쌍벽을 이루는 입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김태형 감독은 혼낼 땐 혼내더라도 선수와 코치를 믿어주는 스타일이다. 섬세함과 자상함도 갖추고 있다. 풀어줄 땐 풀어주고, 당길 땐 당기는 ‘밀당’의 고수다. 때론 가벼운 듯하면서 때론 묵직하다. 평소엔 선수들에게 크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경기하는 데 집중해라. 그 외에는 자유롭게 해라”면서 관여하지 않는다. 양의지도 “자기가 할 것만 하면 선수를 믿어주신다. 그러면 다른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상남자’ 기백이 있는 김태형 감독이지만, 가슴엔 정과 눈물을 담고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NC를 4전승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 김태형 감독은 승장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 감독인 김경문 감독을 언급하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승부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이 선배를 몰아붙이며 완승을 이끌었지만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경문 감독님은 친형같이 지낸 분이었다. 내가 배터리코치로 감독님을 모시면서 함께 준우승만 세 번(2005·2007·2008년)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때 둘이 술 마시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런데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확정했을 때 김경문 감독님이 오셔서 축하를 해주시고 돌아가시는 등을 보는데…. 그렇더라.” 그는 여전히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사나이의 가슴과 눈도 이 순간만은 다시 뜨거워지는 듯했다.

“야구장에서는 스무 살이나 마흔 살이나 똑같아”


▎1994년 서울 라이벌 OB 대 두산의 정규시즌. LG 3루 주자 유지현이 김재현의 1루 땅볼 때 홈으로 쇄도하다 OB 포수 김태형의 블로킹에 걸려 아웃되고 있다.
선수로서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그지만 패자의 아픔도 잘 아는 감독이다. 코치로 두산에서 세 차례 준우승을 하고, 2012년 SK로 이적했지만 다시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물렀다. 두산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2015년부터 2016년 우승을 차지했고, 2017년엔 준우승에 그쳤지만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실적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어쩌면 준우승의 한을 잘 알기에 더 독한 야구로 승리에 매진하는지도 모른다.

‘2015년 김태형 감독을 선임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눈여겨봤는가’라는 질문에 김태룡 두산 단장은 “선수 시절부터 영리하게 야구를 했다. 시야가 넓고 수읽기도 잘했다. 여기에 리더십과 결단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 감독의 장점 중 가장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단순명료한 것이다. 김 감독은 고민은 치열하게 하되 정리가 빠르다. 2015년 감독에 부임했을 때 두산에는 양의지와 최재훈이 주전 포수 자리를 양분하고 있었다. 투수마다 선호하는 포수가 달랐다. 그러자 김 감독은 “우리 주전 포수는 양의지”라고 선언했다. 더 이상 토를 달지 말라는 얘기였다. 선수단 내에 구심점을 만들어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투수마다 선호하는 포수가 다를 수는 있다. 포수 성향도 다르다. 그러나 난 포수가 투수에게 인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맞춰주는 스타일이 좋다고만 보지 않는다. 나도 포수를 해봤지만 팀에 주전 포수는 하나로 정리되는 게 낫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김태형 감독은 2014년 가을 두산 제 10대 사령탑을 맡은 뒤 “두산다운 야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4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두산 야구는 누구나 인정하는 수준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두산다운 야구’가 만들어졌을까.

“난 대충 하는 걸 싫어한다. 야구장에 나오면 스무 살이나 마흔 살이나 똑같다. 베테랑이라고 땅볼 치고 나서 창피해할 필요가 없다. 전력질주를 해야 한다. 느슨한 건 못 본다. 이제 우리 팀에서 그런 선수 없다. 두산다운 야구는 다른 것 없다. 많이 이기는 야구다. ‘두산 야구’라고 하면 두고 뚝심, 허슬, 그런 부분이 많이 부각된다. 이기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야구가 두산다운 야구다.”

- 이재국 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keystone71@naver.com

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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