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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사랑학 개론(12)] 톨스토이의 ‘첫째’ 소설 '안나 카레니나' 

불륜에 빠진 귀부인, 결국… 기차에 몸을 던지다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사랑 없는 남편 대신 우연히 만난 청년 장교와 사랑에 빠져…정교회에 비판적이었던 톨스토이, 생각과 실천 사이에서 ‘갈등’

▎2012년 조 라이트 감독이 만든 영화 [안나 카레니나]. / 사진:마리 끌레르 필름&뮤직 페스티벌
"모르는 게 약이다” vs “아는 게 힘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vs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의 경우처럼, 모든 말은 그 말을 뒤집어도 일리가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못지않게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 또한 결코 장난이 아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진리나 지혜는 양면성·상대성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세계 소설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은 [안나 카레니나]에 나온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대동소이하다. 모든 불행한 가정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반대로 이야기해도 말 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행복하다. 모든 불행한 가정은 대동소이하다.”

뭐가 대동소이할까. 불행한 가정은 부부의 속궁합이 잘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섹스리스(sexless)보다는 섹스풀(sexful)한 게 더 좋지 않을까. 애정 없는 결혼보다는 사랑으로 충만한 결혼이 더 좋지 않을까. 가정의 핵심인 부부의 육체적·정신적 사랑이 충족되지 않으면 한쪽 혹은 양쪽이 한 눈 팔기 쉽다.

톨스토이(1828~1910)는 자신이 “가족 소설”로 정의한 [안나 카레니나]가 자신의 진정한 ‘첫째 소설’이라고 자평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예술 작품으로서 아무런 흠이 없다”고 평가했다. 서구 문학사에서 단독 톱 아니면 적어도 톱5, 톱10 소설이다.

없는 음식이 없는 뷔페 같은 책


▎[안나 카레니나]의 한글판 표지.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메신저]라는 월간지에 연재(1873~1877)한 것을 1878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현실주의 소설이다. 서양 언어로 900여 페이지, 한글판은 1500여 페이지다(‘열린책들’에서 출간한 [안나 까레니나] 기준). 영화·연극·오페라·발레로 끊임없이 재해석됐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 역을 맡은 유명 배우로는 그레타 가르보(1927, 1935년 작품), 비비언 리(1948), 소피 마르소(1997), 키이라 나이틀리(2012) 등이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다른 명작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조건의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사랑·불륜·용서·질투·참회·변명·운명·저주·우연·미신, 인생의 의미, 꿈의 해석, 진화론, 자유주의, 1870년대 러시아 상류 귀족 사회의 성 모럴, 정치 상황, 농노해방(1861) 이후의 농촌 문제가 나온다. 대작 [안나 카레니나]는 없는 음식이 없는 뷔페 같은 작품이다. 세계사나 러시아 역사에 대해 좀 관심이 있어야 더욱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가 본래 ‘시력’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다. 21세기에 읽어도 공감을 일으키는 [안나 카레니나]는 “머리의 수만큼 다른 마음이 있고, 가슴의 수만큼 다른 종류의 사랑이 있다”는 작품 중 표현처럼 다양한 부부의 각양각색 사랑을 다룬다.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하는 사람들이 왜 사랑밖에 모르는지 서술하고 설명한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톨스토이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사랑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랑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사랑에도 공짜 점심은 없다) ‘사랑은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사랑은 과대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톨스토이는 ‘사랑제일주의’의 한계나 위험성을 경고한다. 톨스토이는 “신들은 어떤 사람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 때, 일단 그들을 미치게 만든다”고 말했다. 사랑만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안나 카레니나]의 결론은 ‘사랑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인생에 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톨스토이의 ‘꼼수’다. 모든 사람이 사랑에 관심이 많다. 신앙의 문제는 가급적 미루고 피하려는 하는 성향도 있다.

톨스토이는 사랑, 사랑 중에서도 가장 자극적인 불륜을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이 다가 아니다. 행복이 다가 아니다. 행복한 사람도 뭔가 부족하다. 부족한 2%나 0.2%는 신앙이다’는 게 아마도 톨스토이가 진짜하고 싶은 말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불륜에 빠져 가정을 버린 귀부인이 사랑이 식자 절망에 빠져 기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무리한다.’

사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안나와 레빈이다. 둘 다 ‘구원’을 발견한다. 그래서 [안나 카레니나]는 해피엔딩 소설이다. 대조적이면서도 유사한 ‘평행 스토리’를 이어가는 두 주인공 안나와 레빈은 작품 속에서 둘은 딱 한 번 만난다. 레빈의 아내 키치는 안나 카레니나 올케의 동생이다.

첫 번째 주인공 백작부인 안나는 지적이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28세 여성이다. 굳이 단점을 꼽는다면 자신의 감정을 술술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 남편은 고관(高官)인 카레닌 백작이다. 안나보다 20년 연상. 머리 하한선이 날로 북상하고 있는 중년 남성이다. 둘 사이에는 8세짜리 아들 세료자가 있다. 부부는 결혼 후 8년간 겉으로는 그럴듯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부재 상태다.

안나는 우연히 브론스키라는 청년 장교를 기차역에서 만난다. 서로 첫눈에 반한다. 안나는 처음엔 브론스키의 애정공세를 방어하지만 결국 둘은 만리장성을 쌓고 만다. 첫 거사를 치른 후 안나는 죄책감에 휩싸여 흐느껴 운다.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게 끝났다. 내게는 이제 당신밖에 없다. 그렇다는 것을 기억하라.” 무서운 말이다.

세상에 샛서방, 즉 “남편이 있는 여자가 남편 몰래 관계하는 남자”라는 것은 존재하기 힘들다. 사랑·가난·기침은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의 불륜을 눈치챈 남편 카레닌은 황당함 속에 결투·별거·이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일단 이혼 거부를 선택했다. 그는 출세에 미친 사람은 아니었지만, 세인의 눈길을 의식했다. 그래서 카레닌은 안나에게 “서방질을 하더라도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지 않게 하라”고 경고한다. 또 브론스키와 집에서는 만나지 말라고 한다.

러시아 상류 귀족 사회는 안나와 브론스키가 부적절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안나는 급기야 임신한다. 딸 안나가 태어난다.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말 러시아 상류사회의 이중성·위선을 고발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브론스키는 ‘귀부인을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도리어 또래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는다. 위대하기까지 한 용감한 일이라는 것이다. 브론스키의 어머니 또한 처음엔 아들의 불륜을 용인한다. 아들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는 불륜이 만연했다. 들키지 않으면 별 문제가 안 됐다. 들키면 사회에서 매장됐다. 남성은 아니고 여성만.

온 천하가 다 아는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브론스키는 계속 사교계 모임에 갈 수 있었다. 안나에게는 사회가 가혹했다. 그는 사교생활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시험삼아 오페라에 갔는데 그를 본 지인들이 욕을 퍼부었다. 그 자신 불륜 경력이 있는 어떤 여자까지도 말이다.

사회에서 매장된 안나는 더욱 브론스키에게 집착하게 됐다. 브론스키가 바람난 것은 아닌지 상상하고 의심하게 됐다. 브론스키에게는 오직 안나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안나에 대한 브론스키의 사랑은 사랑을 넘어 숭배에 가까웠다. 하지만 안나의 근거 없는 질투는 브론스키를 숨막히게 만들었다.

절망은 안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브론스키의 사랑이 시든 기미를 보고 절망한 것일까. 어쩌면 안나 자신의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이 시든 것을 자각하고 절망했는지도 모른다.)

자살 외에 그에게 다른 구원은 남지 않았다. 열차에 몸을 던지기 직전, 찰나의 순간에 안나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진정으로 참회하며 신(神)에게 용서를 빈다. 정교회 교리에 따른다면 안나는 천국에 갔을 것이다. 진정으로 참회하며 신의 용서를 빌었기에.

19세기 말 러시아 상류사회의 이중성·위선 고발


▎발레 [안나 카레니나] 중 브론스키 공작과 안나 2인무. / 사진:백야의 별 조직위원회
살아있을 때 안나는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과 브론스키 사이에서 브론스키를 선택했다. 불륜의 대가는 지옥벌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안나와 카레닌은 이혼 문제를 두고 왔다갔다한다. 이혼에는 안나가 더 적극적, 반대로 카레닌이 더 적극적인 순간순간들이 있었다. 당초 카레닌은 안나와 브론스키가 괘씸해 이혼을 거부했다가 결국엔 동의한다. 안나는 이혼을 요구했다가 막상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자 주저한다. 이혼하면 아들이 자신을 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는 정교회가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안나-카레닌 부부가 이혼해도 안나와 브론스키는 정식 부부가 될 수 없었다. 당시 러시아 정교회 교회법에 따르면, 이혼해도 아내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재혼할 수 없었다. 이혼하더라도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내가 아니라 정부(情婦, mistress)가 될 수 있을 뿐이었다.

카레닌과 브론스키의 퍼스트네임(first name)은 모두 ‘알렉세이’다. 둘의 이름을 같게 설정한 톨스토이의 의도는 뭘까. 두 알렉세이 모두 안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두 인물 모두 괜찮은 인간이었다. 카레닌은 안나가 혼외정사로 낳은 딸을 자신의 딸로 받아들인다. 또 카레닌은 브론스키를 용서했다. 용서하자 카레닌은 깊은 영적인 평화를 얻는다.

용서받은 브론스키는 수치심을 느끼고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한다. 총알이 심장을 비껴가 살아남는다. 브론스키는 출세를 포기하고 안나를 사랑했다. 어려운 일이다.

브론스키는 자선사업에도 열심이다. 농민을 위한 병원을 건립한다. 안나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후, 브론스키는 자비로 의용군을 모집하고 전쟁터로 떠난다. 죽기 위해서다. 러시아인들과 같은 슬라브족인 세르비아들을 오스만 터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악인이 나오지 않는 소설이다. 톨스토이의 인간관을 반영하는 등장 인물들은, 그저 크고 작은 인간적인 결함이 있을 뿐이다. 또 주인공들은 모두 종교적이다. 신(神)이 만약 있다면, 그는 불륜마저도 자신의 구원 사업에 이용하는 것일까.

예컨대 아내의 불륜은 카레닌을 신앙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브론스키는 안나를 만나기 전, 실없는 바람둥이였다. 재미삼아 아무 여자나 보면 집적대고 껄떡거리는 그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안나를 통해 ‘사랑이라는 종교’에 귀의한 것이다.

두 번째 주인공, 어쩌면 [안나 카레니나]의 진정한 주인공인 레빈은 농장주다. 32세. 그에겐 어린이 같은 순수함이 있다. 결국 아내가 된 18세 키티에게 청혼하지만 한 번 거절당한다.(레빈은 거절당하자 농민 여성과 결혼할 생각도 한 기이한 사람이었다.) 키티는 브론스키를 더 좋아했기 때문. 이런 과거사 때문에 레빈은 키티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아니면 그저 결혼 상대가 필요했는지 의심한 적도 있다.

레빈과 키티는 신혼 3개월 동안 사랑 싸움을 한다. 아주 사소한 일로 싸웠다. 결혼 전 레빈은 사소한 일로 싸우는 부부들을 비웃었으나 자신 또한 그렇게 되니 일면 황당했다. 결혼 생활은 레빈이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레빈·키티 부부는 결혼 속 현실적 사랑은 소박하고 평범하며, 따분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배운다.

안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두’ 알렉세이


▎2015년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정통 멜로 연극 [멜로드라마]. 결혼 10년차 부부를 비롯한 다섯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파격적인 소재와 치밀한 구성으로 풀어나갔다.
레빈은 신을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의혹이 많다.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agnostic)였던 그는 결국 자신의 어릴 적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회심한다. 한 농부와 긴 대화를 나눈 게 결정적이었다. 아내의 22시간 난산도 회심에 한몫했다. 레빈은 아주 오랜만에 기도했다.

레빈은 회심으로 구원을 얻었으나, 자신이 온전히 의롭게 되지 않았다는 데 대해 실망한다. 그는 구원받은 후에도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 신앙은 ‘신과 나 사이’의 사적인 문제이기에 타인의 신앙에 대해서는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레빈은 톨스토이의 분신이다.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재능만 빼고는 레빈은 당신”이라고 말했다. 레빈과 마찬가지로 톨스토이는 1862년 18세의 소피아와 결혼한다.

레빈은 자신의 과거가 담긴 일기장을 키티에게 보여준다. 부부 사이에는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일기장 공개는 톨스토이가 아내에게 한 짓이었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유념할 부분 중 하나는 자식 문제다. 사랑에 눈이 멀면 자식은 눈에 안 보인다. 잊어버린다. 사랑 때문에 미움 때문에 자식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안나카레니나]의 주인공들은 결국 자식에 대한 사랑을 복원한다.

보복은 오로지 신의 영역?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레닌은 그를 일러 ‘혁명의 거울’이라고 칭송했다.
톨스토이는 9세에 고아가 됐다. 어머니는 그가 두 살 때 사망했다. 아버지는 1837년 여행 중 살해당했다. 카잔대에 재수로 입학했지만,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했다. 34세 때 톨스토이는 1862년 18세 소피아와 결혼한다. 자식이 14명이었다.

톨스토이는 제도화된 정교회에 비판적이었다. 그가 생각한 그리스도교는 두 마디로 요약된다.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 ‘악의 세력에 저항하라.’ 톨스토이는 82세에 가출한다. 자신이 표방한 것과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 사이의 간격을 메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부싸움에도 지쳤다. 톨스토이 또한 역에서 별세했다.


▎2010년 8월 상봉 행사에 참석한 전 세계의 톨스토이 후손들이 ‘위대한 할아버지’의 무덤을 참배하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제사(題詞, epigraph: 책의 첫머리에 그 책과 관계되는 노래나 시 따위를 적은 글)는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 주겠다(Vengeance is mine, I will repay)”이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나오는 말이다.

톨스토이가 이 구절을 [안나 카레니나]의 에피그래프로 삼은 이유는 뭘까. 만약 신이 있다면…. 창조주인 신이나 피조물인 사람이나 모두 사랑과 용서를 해야 하지만, 보복은 오로지 신의 영역이라는 뜻 아닐까.

※ 김환영 -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등이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11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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