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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닮은 듯 다른 꼴’ 노무현-문재인 정부 비교연구 

정책과 추진방식이 ‘일란성 아닌 이란성 쌍둥이’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경제와 시장, 한미동맹 보는 관점 달라 해법도 제각각…현 정부 들어 의사결정의 투명성, 토론 문화, 법치주의 뒷걸음질 평가도

▎200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고 있다
"4년 뒤 오늘을 돌이킬 때 문재인 정부는 과연 무엇을 위해 애쓴 걸로 기억될까? 미래지향적 가치 같은 건 안 보이고, 일이 터질 때마다 사안별로 대응하는 데 급급할 따름이다.”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용에 대한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의 단상(斷想)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촛불민심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따라서 촛불집회에서 터져나온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요구에 부응해 ‘제도’와 ‘구조’를 바꾸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런데 요즘 정권 주도 세력의 행보에서는 그런 희망이나 설렘을 갖기 어렵다는 게 강 교수의 심정이다.

진실한 문재인 정부라면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예를 거울삼아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고, 검찰권 등 권력 남용을 막고,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국정 시스템 구축에 전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집권 1년 반이 지난 현 시점에 그런 데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정성이 선뜻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적폐 등 과거의 잘못은 처벌하지만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 나간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고 강 교수는 아쉬움을 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정신과 정책을 계승한다고 표방해 왔다. 강 교수의 뇌리에 노무현 정부는 ‘탈(脫)권위주의’ ‘지역주의 타파’ ‘지방분권’ ‘복지증진’ 등 굵직한 키워드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 강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미래로 가는 어젠다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두 정부의 차이점을 짚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늘 보여주기식 이벤트보다는 시스템에 의한 효율을 우선시하는 사람으로 참모들에게 기억된다. [기록-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노무현재단 기획, 윤태영 지음)에 나오는 얘기다.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한반도 남동부를 강타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인근 삼청각에서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를 관람하고 있었다. 태풍 매미는 부산항의 크레인을 줄줄이 쓰러뜨리는 등 이 일대에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남겼다. 국민들이 태풍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대통령은 졸지에 한가하게 뮤지컬을 관람한 모양새가 돼버렸다. 오래전부터 정해 놓은 일정이었다는 해명에도 여론의 비난을 빗발쳤다.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사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에게는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고 윤태영 전 비서관은 이 책에 기록한다.

“대통령의 철학이란 바로 시스템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눈을 뜨고 밤잠을 안 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가 민생 현장을 방문해야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철학이었다. 그 대신 더욱 밀도 있는 연구와 토론을 통해 보다 바람직한 정책 대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현 정부, 권력기관 줄 서게 만들어”


▎2017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4대 권력기관을 독립시키려 노력했다. 이와 관련한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시 발언은 [기록-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추천사에 잘 나와 있다. “권력기관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잘한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고 성공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했다. 그러나 옳게 하는 대통령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 추천사를 쓴 사람이 2014년 당시 문재인 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제왕적 군주상을 허물어뜨리는 권위주의 문화 타파와 탈권위주의 실현을 위해 애썼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이 갈구했던 권력기관의 독립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 문제에 대해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졌으며, 정정당당했다”고 인정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좋게 말해서 권력을 부리는 데 굉장히 세련돼 있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문 정부는 권력기관을 아주 잘 다룬다”면서 “그래서 권력기관이 알아서 줄 서게 만든다”고 혹평했다. “이는 권력 입장에서는 잘하는 것일지 몰라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중요 정책이 어떻게 내려지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지적도 받는다. 누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세부 정책을 이끌어 가는가가 명료하지 않다고 한다. 주요 정책 결정이 공개적, 개방적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생각이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좌우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강원택 교수는 “국무회의나 집권당이 정책 결정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면서 “국가 정책이 매우 폐쇄적인 구조에서 이뤄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우려했다. 보수 진영의 한 소식통은 “문 대통령에게 주요 국정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는지, 있으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보수 진영에서 제기된다”고 귀띔했다.

11월 9일 퇴임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각도에서 고민을 토로했다. 찬반 논란으로 사업 진행에 진통을 겪는 흑산도 공항 건설에 대해 “논의를 붙일 구조가 없다”고 말한 아쉬움이 그것이다. 김 전 장관은 “(개발과 보존에 대한) 의견이 다르니까 조정이 필요하고, 그래서 대안을 만들고 논의해야 한다”며 정부가 조정기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흑산도 공항 문제는 청와대나 총리실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조정 역할을 해야 했다”면서 노무현 정부 당시 2007년 충남 서천의 장항 갯벌 개발 문제를 상기시켰다. 당시 국토교통부가 추진하고,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를 못 내준다고 버티던 쟁점을 청와대가 나서 조정하고 매듭을 지었다고 돌이켰다.

활발한 토론을 통해 중론을 모으고 대통령 본인이 논의를 이끌어 가던 참여정부 일처리와는 사뭇 다른 대목이다.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비서관뿐 아니라 배석했던 행정관들도 기탄없이 의견을 개진했다는 얘기는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 입에서 자랑처럼 반복되는 레퍼토리였다.

김용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386비서관과 좌파 경제학자들이 청와대에 입성은 했지만 대통령이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토론을 교정하고 이끌어갈 힘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현 정부 청와대는 구조적으로 내부 토론이나 비판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는 게 김 총장의 관전평이다. “국가 현안이 집단신념에 좌우되고 토론단계에서 걸러지지 않다 보니 현실의 벽에 부닥치는 일이 잦다. 지지기반의 이완을 우려한 정부는 그럴수록 더 포퓰리즘으로 내달리곤 한다.”

문재인 정부 성역이 된 대북정책·경제정책


▎2008년 2월 25일 청와대를 떠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문재인 비서실장 등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뿌리를 같이하는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간 서로 다른 스타일을 대통령의 캐릭터와 인생역정에 결부시키는 시각도 있다.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장은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투쟁하고 투철한 정치철학에 입각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고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대통령 탄핵과 촛불집회 국면에서 기획된 상품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간주했다. 친구 사이지만 두 사람의 집권 방식은 판이했다는 것이다. 출발점이 이러하다 보니 노 전 대통령은 자기 주도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했고, 토론을 통해 어젠다를 세웠으며, 옳다고 생각하면 지지층의 반대도 돌파하는 소신과 뚝심을 보여줬다. 반면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여러 그룹에 의해 추대되다시피 집권했다. 따라서 자기 주도력, 어젠다 설정에 제약이 따르고 개인의 가치와 신념이 부각될 여지도 노 전 대통령보다는 비좁다는 분석이다.

서 원장은 “문재인 정부에는 손댈 수 없는 성역이 몇 개 있다”고 말한다. 대북정책과 경제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다 뭔가 문제를 직설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도 아니라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위축되고 말을 조심한다. 무슨 의견을 내든 적폐로 몰면 얘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지식인들 중에서도 말하기를 매우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한국사회가 경직되고 있다.”

경제 분야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경제성장률 둔화, 일자리 증가율 감소 등 경기 하강 국면에서도 청와대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고수한다. 경제와 기업을 대하는 방식에서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확연히 구분된다.

현 정부 들어서는 일자리 관련 통계를 비롯해 실업률, 공장가동률, 설비생산 투자 등 주요 경제지표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법인세 인상, 이익공유제 등 기업의 활동을 옥죄는 정책이 검토되면서 해외로 짐을 싸는 기업이 증가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 관계자는 국내 언론과의 만남에서 최근의 현 정부의 반(反)기업 정책이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오랫동안 계속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해 성장동력을 떨어뜨리고 그와 함께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돼 왔기 때문(2018년 7월 23일 규제개혁점검회의)”이라고 해석했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기존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전문가 일각에서는 분배에 치우친 경제 정책의 초점을 성장으로 이동하고, 시장원리에 기반한 경제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시장의 여론에 충실하게 반응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을 넘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는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고 규정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했고, 한·중 FTA, 한·EU FTA를 체결하는 물꼬를 텄다.

당시 진보 진영에서는 “한국 경제가 미국에 예속된다” “양극화 해결이라는 국정 과제와 양립하기 힘들다”는 이유 등으로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보좌했던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이 반대 여론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밖에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으며,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폐지했다. 전통적으로 좌파 정부는 분배정책에 치중해 왔지만 노무현 정부는 한미 동맹이라는 객관적 조건과 경제적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유연성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록-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에 추천사를 실은 문재인 당시 국회의원은 이렇게 기억했다.

“그(노무현 전 대통령)는 ‘겸손한 권력’이 되고자 했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따뜻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부족함을 미안해하고 오류에 대해 정직하게 성찰했습니다. ‘민생이란 말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나를 아프게 찌른다.’ 그가 대통령일 때 한 말이었습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제조업 가동률이 떨어지는 현실에 언급, “현재는 실물이 어렵고 경제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 자원 배분을 왜곡시키는 건 분명하다”고 소득주도 성장론에 유감을 표했다. 심지어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경제정책의 틀을 일신해야 하며 국정의 전면 쇄신이 시급하다”고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이런 외부의 주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청와대 정책 파트의 핵심인사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일시적인 불이익과 여론의 역풍을 감수하더라도 일관되게 추진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경제의 문제점을 익히 알고서도 비판 여론이나 국민적 압력을 못 견디고 결국엔 중도에 개혁정책을 접은 역대 정권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물씬 배어 나온다. 과거 정부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건너가야 할 강은 건너야 한다”는 말로 청와대 내부의 기류를 전했다.

“홍남기-김수현 라인은 소득주도 성장 실현 카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공개 토론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방안을 선호했다.
정부 정책이 당장의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지율 하락을 부르게 된다. 청와대도 이런 위험성을 모르는 게 아니다. 이 인사는 “정무적으로는 지지율에 신경을 써야겠지만 정책의 경우 지지율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지층이 바란다고 해서 모두 그 방향으로 가면 개혁은 끝내 좌절하고 후퇴한다는 게 청와대 정책 라인의 의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내년에도 경제 전망이 어둡고 2020년 총선에 악재로 작용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의연하게 대처하겠다면서 이 인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도 내년 경제가 더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부동산으로 경기를 띄우거나 투자를 촉진하는 방법을 동원하는 일은 없다. 단기 부양책은 일시적으로 경기는 살리겠지만 구조 변환은 더 늦춘다.”

그래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김수현 정책실장 투톱 라인은 “소득주도성장을 확실하고 속도감 있게 실행해서 성과를 내는 카드”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 지금은 정책기조를 바꿔야 하는 시점이 아니라 기존 정책의 성과를 내도록 실행하는데 방점이 있다. 한마디로 “정해진 방향대로 차질 없이 실행할 수 있는 분들이 발탁됐다”는 말이다.

이런 구조의 정점에 문 대통령이 있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보다 더 큰 틀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사고한다는 것이다. 앞서의 인사는 “문 대통령은 시대적 대변환. 변곡점을 보고 있으며 그래서 더 멀리 크게 보면서 (정책을)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올 들어 문재인 정부는 외교안보 이슈가 여타 현안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숨가쁘게 진전된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개선은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이상일 입소스코리아 본부장은 말한다. “남북관계는 보수 정권 10년간의 대결에서 벗어나 3차례 정상회담이라는 유화적 결과를 낳았고, 올겨울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약속된 상황이다. 나아가 교황의 북한 방문을 현실화시켜가는 외교적 성과도 거뒀다.”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 또한 남북 및 북·미 관계와 맞물려 돌아간다. 남북 관계, 북·미 관계가 순항하면 지지율이 오르고 반대의 경우 지지율이 하락하는 동조화 현상마저 보인다고 이 본부장은 분석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9월 첫 주에 49%까지 하락했던 국정운영 지지도는 9월 셋째 주에 열린 평양 3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반등했다.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남북 관계가 맨 앞줄에 자리하다 보니 대북 저자세 논란이 따라붙는다. ‘할 말은 하는’ 원칙 있는 대응으로 남북 관계에 임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이들일수록 현 정부의 대응에 불만을 품게 마련이다.

문 정부의 상황 관리능력이 떨어진다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통일부가 지난 10월 15일 탈북자 출신 기자를 남북 고위급 회담 취재단에서 배제한 정부의 조치가 대표적이다. 당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한과 원만하게 고위급회담을 진행해야 하는 측면에서 (탈북자 취재 배제 결정은) 불가피한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는 달랐다고 말한다. 2006년 5월 북한은 개성공단 취재단에 뽑힌 중앙일보 기자의 방북을 막은 적이 있다. 평소 비판적인 대북한 논조를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선별적 취재 제한은 원칙에 어긋난다고 북한에 항의하면서 방북을 관철시킨 적이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북한의 잘못된 요구에까지 순응하는 모습은 여론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노무현 정부는 비교적 솔직했을 뿐 아니라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은 꼭 하는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상황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주요 의제 중 현 정부에서 자취를 감춘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법치주의를 들 수 있다.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기치로 내건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얘기할 때면 늘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문 대통령도 변호사로 돌아간 2009년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우리 국정의 전 분야에 걸쳐 법치주의적 개혁을 다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했다”고 되새겼다. 나아가 “공권력을 행사할 때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얼마나 존중하느냐가 법치주의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가늠자”라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 정부 들어서 정부여당과 야당이 대치 전선을 형성하는 주요 메뉴의 하나가 법치주의 논란이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경우 2017년 12월 ‘문재인 정부 법치 파괴-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여기서 민간인이 참여하는 국정원 적폐청산 TF 등이 기밀누설 등 초법적 기구라고 여권을 정조준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도 정부가 불법행위를 한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구상권 청구소송을 철회하자 “정부가 공권력을 무력화하고 법치를 파괴했다”고 가세했다. 어쨌거나 법치주의는 여권이 아닌 야권의 언어로서의 지위를 키워가는 실정이다.

법치주의와 관련해 현 정부 들어서도 논란이 계속되는 이슈의 하나가 피의사실 공표다. 10월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상기 법무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피의사실 공표가 많은 영향을 줬다고 보느냐’는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 질문에 “그렇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또 ‘검찰이 피의사실을 미리 공표하는 것은 여론으로 압박하고 그것으로 수사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도 하고 있다”고 수긍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검찰의 공명심과 승부욕입니다. 사실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형사절차에서 자기를 방어하는 것은 설사 그가 극악무도한 죄인이거나 역사의 죄인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인간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찬주 전 육군대장의 피의사실 공표


▎11월 14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연차 게이트로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과 권양숙 여사가 조사를 받자 노 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치려다 만 편지의 일부 내용이다. 이는 2009년 10월 노 전 대통령 참모 출신 인사들로 이뤄진 ‘노무현재단 대국민보고서 기록위원회’가 발행한 [내 마음속 대통령-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에 실렸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 것이다. “검찰이 미리 그림을 그려놓고 없는 사실을 만들거나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해선 안 됩니다. 그동안 수사팀은 너무 많은 사실과 범죄의 그림을 발표하거나 누설했습니다. 검찰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불법행위입니다. 검찰은 끝내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건이라도 만들어낼 것입니다.” 정권 교체 후 전직 대통령 주변에 가해진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에게 어떤 압력과 고통을 안겼는지 오롯이 전해지는 편지 구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저서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검찰의 공명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목했다. “검찰이 자신 있는 부분은 공식 브리핑으로, 다른 부분은 ‘수사관계자’로, 또 다른 어떤 부분은 ‘익명의 검찰관계자’로 내보냈다. … 또한 검찰이 줄곧 피의사실 공표를 해왔지만, 수사기획관이라는 사람이 노골적으로 매일 오전 오후 브리핑한 예는 없었다.”

노 전 대통령, 문 대통령이 피의사실 공표에 엄청난 거부반응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악습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10월 국정감사에서 박상기 장관은 “(제가 검찰에) 피의사실 공표, 심야수사,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 세 가지를 시정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세 개 다 이행이 안 되고 있는데 가급적이면 시행되도록 하겠다”고 답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 피의사실 공표 앞에서는 제아무리 거물급 인사라도 추풍낙엽이다.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람의 일생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게 바로 피의사실 공표라는 괴물이다. 월간중앙이 12월호에서 인터뷰한 박찬주 전 육군대장만 해도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형성된 여론에 의해 군인으로서의 명예가 하루아침에 난도질당한 경우에 속한다. 알려진 갑질 의혹 상당부분이 오해로 밝혀지고 처벌 대상도 아닌 사안이었지만 이미 세상은 그를 몰염치한 장성으로 낙인을 찍었다. 법정에서 가려질 일이지만 군 검찰은 위법인 줄 알면서도 상부의 지시에 못 이겨 민간인 신분의 그를 군사법정에 세웠다는 의혹마저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가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한다는 질책마저 나온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정부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게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지면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이 정부가 새만금 간척지를 태양광 패널로 덮는 계획을 불쑥 발표하고, 예산 정국에 경제 수장들을 전격 교체하고 그 자리에 여권조차 우려하는 소득주도·탈(脫)원전·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자를 영전 발탁하며, 심지어 이런 위태로운 정책들에 대한 비판을 가짜뉴스(fake news)로 규정해 누르려는 시도를 지켜보면서 호감은 싸늘한 탄식으로 바뀌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고위공직자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을 비롯해 10명에 달하는 사실도 여권엔 부담이다. 박근혜 정부와 같은 수치다. 현 정부 출범 1년 반 정도 경과한 점을 고려하면 박근혜 정부의 기록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서는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된 인물이 3명에 그쳤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를 현 여권의 민주주의에 대한 경시 풍조로 간주한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청문회에서 도덕적 논란이 심각하게 불거져 야당이 전부 반대해도 일방통행식으로 계속 장관을 임명하는 걸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부족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여당 내에서도 아무런 이의 제기가 없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보다 더한 것 같다”고 목청을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익 아닌 의(義) 추구하나?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피해사건 재판 거래 관련 시민단체 기자회견. / 사진:연합뉴스
현 정부 들어 더불어민주당의 행보가 퇴행적이라는 견해를 보자. 국회 헌법 개정 및 정치개혁특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강원택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이 기득권화하면서 자신들이 약속했던 정치개혁입법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와 관련한 제도 개혁을 주장하던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 압승 이후에는 입장을 바꿔 소극적 자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지방선거 승리 후 현행 제도가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여당의 셈법에 화살을 돌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선거제도 개편을 수용한다면 권력을 한나라당으로 이양하는 대연정을 하겠다고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지역주의, 권위주의를 혁파하고 구조적으로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열정과 비전이 있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 아닌가. 이미 기득권 집단으로 변한 현 여권에는 그런 노 전 대통령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진보 권력의 산실이라 할 더불어민주당도 과연 정당하고, 정의로운 걸까? 어쩌면 그들이 검증대에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10년 전 이에 관한 화두를 던진 이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경호실장이라 불렸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 장관은 2009년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에서 당시의 야당 민주당에 이렇게 꾸짖었다. “어떤 당을 지지하려는 사람들은 그 당이 이익이 아니라 의(義)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민주당을 보면 그분들도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의를 추구하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지지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어찌 보면 더 미운 마음이 생긴다.”

유 전 장관이 이렇게 말한 건 그 자신이 노 전 대통령 삶을 관통하는 정신으로 ‘사생취의’를 정의한 것과 무관치 않다. 사생취의(捨生取義)란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는 뜻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도 이익을 취할 때는 취했지만 의로움과 이익이 상충하거나 하나를 버려야 할 때는 의를 취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유 전 장관은 나아가 “나는 그분들이 말로만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당사에 사진만 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말 올바름과 이로움이 충돌할 때 이로움을 버리고 올바름을 추구할 정신을 갖고 있는가, 그럴 준비가 돼 있는가, 이걸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 그 민주당이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여당의 자리에 와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몇 점이나 줄 수 있을까?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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