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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문희상 국회의장이 말하는 與野 협치와 남북관계 

“보수도 대북정책 실패 바라선 안 돼”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 민생경제 어려움 문 대통령에게 전달… 470조 예산 불가피
■ 보수, 남북관계 잘못 간다고 보지 말고, 변화에 적응해야
■ 北 냉면발언 속상해… 그러나 비핵화와 영구적 평화가 우선
■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민주주의… 가짜뉴스 규제법은 신중해야


▎문희상 국회의장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고, ‘대화가 통하는 정치인’이란 평판을 얻고 있다. 문 의장은 권력쟁취와 협치의 모순적 가치 속에서 한국 의회정치의 활로를 모색하려 한다.
문희상(73) 국회의장은 ‘곰탈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다. 겉모습은 장비 같지만 인간(人間)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 존재라는 것을 선험적으로 체득한 행적을 그려 왔다. 보수성향이 강한 경기 의정부에서 6선 의원을 할 수 있었던 저력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무수석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비서실장으로 그를 발탁한 배경이기도 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 문 의장은 입법기관인 의회의 수장이 됐다. 국회의장은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 의전서열 2위에 해당하는 자리다. 지난 7월 13일 국회는 재적의원 275명에 찬성 259표로 민주당 문희상 의원을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뽑았다. 야당도 문희상 의장 체제에 거부감이 거의 없었다는 반증이다.

선출 직후 문 의장은 “총선 결과, 다당제 국회가 출범했다. 집주인인 국민이 만든 설계도에 따라 일꾼인 국회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후반기 국회 2년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협치가 최우선이 될 것임을 약속한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100여 일이 흘렀다. 월간중앙은 11월 2일 국회 의장실에서 문 의장과 단독 인터뷰했다. 국정감사가 마무리되고, 예산안 심의를 앞둔 시점이었다. 세간의 평판처럼 현안에 관한 문 의장의 화법은 거침없었다. 이렇게 터놓고 얘기하는 화술이 사람의 경계를 허무는 그만의 포용법인 듯싶었다.

1. 예산안과 협치 | “세금주도성장? 경제 아프니까 재정 확대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2019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470조원을 넘는 역대급 예산안에 대한 야당의 반발이 만만찮다.
문 대통령의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 연설(11월 1일)을 앞두고 의장께서 ‘민생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우려를 전달했다고 들었다.

“내가 대통령 만나러 간다고 할 때마다 말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10명 중 8명이 경제 얘기다. (대통령을 대신해) 당시 장하성 정책실장이 설명을 했다. 그래서 내가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해법으로 경제 전체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취지 아니냐? 그런데 아직 과도기적 현상으로 어려울 뿐이지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것 아니냐?’고 하니까 ‘그렇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 얘기를 나한테만 하지 말고 야당과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라. 경제란 것이 심리가 중요한데, 의원들이 나한테까지 말할 정도니 얼마나 어려우니까 그렇겠냐?’고 했다. 나도 (80%의 체감과) 똑같은 심정이다. 민생 현장의 목소리는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숨이 턱턱 차는 현실을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달해드려야 했다.”

정부는 470조 예산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하는데 국회 통과가 순탄치 않을 것 같다.

“예산을 줄이면서 경제를 살리자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야당도 ‘그 돈을 거기 말고, 여기다 쓰라’고 말하는 정책 대안을 내놓을 것이다. 예산을 줄이자는 것은 경기가 호황일 때나 하는 말이지. 지금은 경제가 어렵다.”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세금주도성장이란 비판도 나온다.

“세금주도성장이란 용어는 프레임일 뿐이다. 재정주도라고 하면 말이 된다. 재정이 투입되지 않는 한, 경기 회복은 어려우니까. 내가 경제전문가는 아니지만 경기 회복 국면에서 재정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얘기다. 성장 국면의 경기를 가라앉히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회복하려고 하면 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야당도 항목별로 과도하니까 줄이자고 할 순 있겠지만 전체 예산을 자르자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야당이라고 민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공부문 일자리와 관련한 예산이 특히 첨예할 것 같다.

“그것도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있었다. 내가 2015년 민주당 비대위원장일 때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처음 거론했다. 미국 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이 향후 양국의 공통적인 경제정책을 논문 형태로 발표한 것이다. 그것을 내가 제일 먼저 입수하고 포용적 성장이란 이름으로 발표를 했다. ‘부(富)의 양극화가 이런 식으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 사회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개념이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안이 필요하다. 선진국 내지 OECD 국가 대비 우리나라가 (복지·경찰·소방 등) 취약한 부문에서 공무원 수가 최하위권이니까 국가 재정을 투입해서 그런 빈틈을 메우자는 취지다. 그래서 (공공부문 일자리 증가) 숫자가 계산되는 것이다.”

국회는 신뢰도가 가장 떨어지는 기관이란 여론조사가 있다. 국회는 정쟁하는 곳이란 이미지가 짙다. 협치(協治)의 시작은 무엇일까?

“정치의 본령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집단이든 개인이든 정치인은 이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 지향하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협치다.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문화 자체는 너무 권력 쟁취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민족사적 대전환기에 위치하고 있다고 본다. 시대정신의 하나가 촛불이고, 또 다른 하나가 한반도 평화다. 이것을 아무리 전광석화처럼 정부와 대통령이 추진해서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고 해도 근본적인 제도화가 안 돼 있다. 제도화(법제화)가 안 되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단기적 처방은 돼도 장기적으론 어렵다. 국회에서 법률로 뒷받침해 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헌법 개정이고 그 다음이 개혁입법의 완성이다. 예를 들어서 ‘이게 나라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고 촛불이 일어났다. 이러한 촛불정신을 완성하려면 제도화를 해야 하고 그러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개혁입법, 사법개혁 하라고 하면 공수처법을 통과시켜야지. 그런데 하나도 안 됐다. 재벌개혁 하라고 하는데 상법은 안 고쳐졌다. (국회가) 여러 사회적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개혁도 선거구제 개편하라는 국민의 뜻에 맞게 정치를 해야지. 제왕적 대통령 권력 밑에서 국정이 농단되는 사태를 막아야 하는데 이를 제도화하는 일을 안 해왔다. 그런데 숙명적으로 20대 국회는 다당제라서 협치하지 않으면 한 발도 못 나간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에서 협치를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하다.”

2. 보수의 대북관 | “한반도 평화는 시대정신… 냉전적 의식 버려야”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바닥이다. 전문성과 효율성은 떨어지고, 정쟁만 일삼는 국회의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산 배분에 있어 여야 간 이견이 생긴다면 남북협력기금 사업비가 대표적일 것이다. 대북예산은 장기적이라 한 번 정하면 다시 거둬들이기 어렵지 않겠나?

“투자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그 투자는 대한민국이 경제 회복을 위해서 쓰는 것이지 북한을 위해서 퍼주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처럼 대박까지는 말 못해도 우리 경제에 ‘코리안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자체로 국제적 신용도가 올라가고 투자도 유치된다. 물류가 해운으로 가는 것보다 육로로 가면 기간도, 비용도 준다. 꼭 북한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북한은 통과료만 받아도 상당한 금액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대북예산은) 원래 있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때도 그랬다.”

대화가 되려면 상대측도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수월한데 보수가 분열된 상태다.

“국민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바른미래당이 나중에 생겨, 20대 국회의 숙명인 다당제가 됐다. 협치를 안 할 수가 없다. 협치의 본질은 정치의 원형인 갈등 조절과 해소다. (보수진영의 정치인들은) 정치가 무엇인지, 이게 나라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책무가 있는데 반성은 하지 않고, ‘나는 예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서로 역지사지하되 (보수진영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으면 한다. 그래야 답에 접근할 수 있다. 난 여당일 때, 야당일 때 다 봤는데 협치의 성공사례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협치가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김 전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로서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무조건 협조했다. 남북 기본합의서를 만들었다. 그때 야당이 적극적으로 남북·외교·안보문제에 개입했기 때문에 북방외교도 가능했다. 그때 여소야대였는데 제1야당이 김대중(평민당), 제2야당이 김영삼(민주당), 제3야당이 김종필(공화당)이었는데도 제일 많은 안건을 통과시켰다. 그때 야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줬고, (집권 민정당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재평가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北 냉면발언, 속상하지만 침소봉대는 경계해야”


▎1990년 유엔본부에서 최호중 외무부 장관(오른쪽)과 소련의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한·소 수교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야당들의 협치가 있었기에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문 의장은 말했다.
지금 보수도 대북관을 바꿔야 할까?

“말할 것도 없다. 근본적인 것을 바꿔야 한다. 지금 (보수야당과 보수층 일각의) 북한을 보는 시각은 냉전논리에 입각한 수구적 사고에 가깝다. 시대정신은 한반도 평화인데 이를 읽지 못하고 있다. 내가 볼 때 우물 안 개구리들이 바다가 뭔지를 모르고 있다. 외국에서는 ‘6개월 전만 해도 전쟁을 걱정했는데 믿어도 되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야당 일부는 오히려 안 되길 바라는 것 같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려고 하지 않고, 이렇게 가는 것이 불행하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대북정책에서 미국에 비해 우리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시각이 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현 정부에서도 우려하는 바다. 대통령이 한 이야기가 있다. ‘살얼음을 딛듯이 조심조심 나가야 한다’고. 나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는 표현을 했다. 정부가 호랑이 눈을 뜨고 주도면밀하게 국제정세를 잘 살피면서 특히 미국·일본과 같은 노선으로 가야 하고 여기서 반보만 앞서 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느려도 앞으로 계속 가야 한다. 우리 정체성의 문제이고, 통일 문제니까 주체성을 가지고 뚜벅뚜벅 가야 한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보듯이 구한말 우리 선조들이 우물쭈물하다가 국권을 상실하고 다 놓쳤잖나. 천재일우의 이런 기회가 우리에게 또 오겠나? 한국·북한·미국 지도자가 이렇게 궁합이 맞을 수 있을까?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여야가 갈등하고 있다. 거기서 대장 되면 그냥 우물 안 대장이다. 이렇게 싸우기만 해서 되겠는가?”

6선을 한 지역구 의정부는 위치상 반북(反北) 정서가 견고했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나?

“처음 정치를 한 이유가 고향 의정부의 발전이었다. 그때 고향사람들 만나면 내가 했던 말이 ‘우리 의정부가 꼴찌다. 안보라는 미명하에 30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였다. 군사시설보호법·고도제한법에 걸려서 뭔가를 만들려고 하면 다 안보시설이야. 무슨 방호벽 같은 걸 쭉 세워놓고 허가를 전혀 안 내준다. ‘왜 안보의 희생을 의정부만 당해야 하나?’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 물꼬가 터져서 북으로 가는 관문 도시가 될 수 있다. 경의선과 금강산 열차의 발착역이 될 수 있다. 경기 북부가 유라시아 대륙으로 가는 물류센터의 기지가 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후 대통령 지지도 상승을 보면, 큰 틀에선 반기지만, 디테일에선 ‘냉면발언’처럼 국민들이 속상해 할 수 있다.

“나도 속상하다. ‘(발언 당사자인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에 관해) ‘미친 거 아니냐’고 하고 싶다. 그래도 만절필동(萬折必東)이다. 만 번을 꺾여도 황하는 결국 동쪽을 향해 간다. 이선권 같은 이도 자기 앞의 (대기업 총수들이) 투자를 안 하면 북한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안다. 정부 투자에 한계가 있는데 결국 기업이 투자하는 것이다. 제정신이라면 (정색하고) 그렇게 말을 했을까?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네까?’는 자기 딴엔 농담 식으로 한 말일 것이다. 과잉열등의 반응일 수 있다. ‘투자를 얼마씩 하겠다고 온 것 아니오? 그에 관한 얘긴 한마디 안하고, 우리들 핵만 없애라고 하는데 밥이 넘어갑니까’란 표현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겁을 주려고 했다면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부각시키는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이를 넘는 가치가 있으면 그걸 해야지. 뭣이 중헌디!(영화 [곡성]의 대사를 인용해) 우선순위가 있잖은가! 남북교류를 통한 완전한 비핵화, 이에 따르는 영구적인 평화정착과 남북통일로 연결돼야지. 이런 기회가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데 작은 잡음을 침소봉대하려는 의도가 뭔지 묻고 싶다.”

3. 현실 정치에 관해 | “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원수 확대 없이 가능”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이 국회 본관 앞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치권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선거구제 개혁의 적기라고 본다.
의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법안 발의만 남발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자성이 들린다.

“다른 방법이 없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뽑은 것도 국민이다. 민주주의는 (다음 선거까지는) 이를 바꿀 순 없다. (보여주기에 천착하는 의원들이) 각성해서 자제할 수 있도록 국회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 일 잘하는 실무국회를 만들려면 소위원회 활성화가 필요하다. 상시 국회로 1년 열두 달 문을 열고, 소위원회는 의무적으로 1주일에 두 번씩 문을 꼭 열도록 하자는 것이 내가 말하는 대안이다. 미국 의회에 동아시아태평양 소위라고 좋은 예시가 있다. 우리가 미국의 상원·하원의장 이름은 기억 못해도 동아태소위원장은 안다. (외교정책에서) 우리의 운명을 좌우했던 이들이 동아태소위원장들이다. 우리도 소위에 결정권한을 주고, 그들이 청문회를 할 수 있게 해주면 국정감사도 훨씬 효과적이 된다. 국정감사를 한 달 동안만 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미국에 왜 국정감사가 없겠나? 그들은 소위를 열어서 수시로 청문회하고 불러낸다. 우리처럼 (피감 기관에) 자료만 많이 내라고 하고, 호통만 치다가 시간 보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소위를 활성화시키면 의원들이 공부를 안 할 수 없다. 그러면 언론인들도 달려들 것이고, 누가 양화인지 악화인지 가려질 수 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제 개혁이 화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 투표 기준으로 의석수 배분) 도입은 가능할까?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다. 가령 자유한국당은 지난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경기도 득표율 25%를 기록했는데 정작 1명만(단체장·도의원·시의원 통틀어) 당선됐다. 이것이 정치인가? 국민의 뜻에 비례해서 의석수를 갖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것이 안 된다면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가짜뉴스 규제법안, 맨 나중에 생각해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란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가짜뉴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위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 얘기처럼 정당명부제로 가려면 의석이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도 있다.

“지금 현재의 숫자(300명)로 하면 된다. 현행 200명(지역구), 100명(비례대표)에서 조절하면 된다. 이를테면 300석을 놓고, 정당 득표율 비례에 따라 우선적으로 의석을 정하는 방식이다. 가령 정의당이 10%를 얻었는데 (지역구에서) 5명밖에 (당선이) 안 되면 나머지를 비례에 의거해 주자는 것이다.(즉 10% 득표이니까 의원수 30명이 되도록 비례대표 25자리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이 (지역구에서) 더 많이 당선된다면, (비례대표에서 비율을 나눌 때) 보완을 어떻게 하는가가 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의석수 확대 없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간다면 지방의 지역구들은 합쳐져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헌법이 있고, 이에 대한 비율이 있다. 지금도 작은 동네는 합치고 있는 실정이다.”

가짜뉴스에 대해 정부가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일 수 있다.

“정치 초년병 시절 최대 목표는 민주화였다. 민주화의 요체는 자유다. 양심, 표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억압되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보수세력이 궤멸됐다’고도 하던데 맞지 않는 소리다.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심성이 바뀐 게 아니다. 유권자의 30%는 아직도 보수다. 보수가 있어서 이 세상이 지탱된다. 그런데 보수가 지키려고 하는 가치가 의미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 나는 자유 때문에 정치를 했다. 보수를 살리려면 깃발과 기수가 생명이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보수의 깃발을 들고,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밝혀야 하는데 잘못한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대통령이 둘이나 감옥에 있는데도 반성하려는 기미도 없다.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안 보인다. 오히려 일부 보수세력 밑에 숨으려고 하는 비겁한 의원들이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촛불 정신과 남북 평화를 시대정신이라고 규정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선 여야 협치를 통한 법제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소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표현의 자유는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기본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감시받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것을 그냥 보면 되겠나? 언론 자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지금 있는 법률로 규제를 하면 된다. 형법도 있고, 언론중재에 관한 법률도 있어 명예 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때 처벌 가능하다. 새로운 법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자제다. 자율과 보이지 않는 품격, 그런 것들로 사회가 일정한 선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짜뉴스를 접하고 ‘이건 쓰레기야’ 하면서 취급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언론 탓도 있다.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들도 문제지만 언론도 마찬가지다. 특종 경쟁하면서 황색저널리즘에 물들어서 매일 욕만 하는 것을 짜깁기 기사로 내면 안 되는 것이다. 언론인의 사명감과 품격에 안 맞는다. 세상에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학문, 언론, 토론, 출판의 자유를 건드리면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흔들린다. 인기 영합주의를 경계하고 품격을 높이는 것을 스스로 노력하면서 현재 법 체계 안에서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법안은 맨 나중에 생각해야 한다.”

문 의장이 곁에서 본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추구하는 지향성은 비슷하나, 그 인간적 면모는 다를 것 같다.

“세 분은 공통점 두 개가 있다. 첫째 진보적이다. 함께 사는 세상, 남북 협력을 통한 통일, 안보보다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각각 1기, 2기, 3기라고 칭한다. 그 다음은 실용주의적 접근을 하는 점이다. 대통령 리더십의 기본은 머리·가슴·배 세 가지다. 배는 배짱이다. 용장이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제일 강했다. 그분은 전광석화처럼 모든 혁신을 용기를 가지고 실천했다. 역사바로세우기, 하나회 숙청, 공무원 재산 공개…. 이것들을 100일 안에 다 해치워 버렸다. 공무원 재산 공개로 그때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나왔다. 금융실명제는 어떤 대통령도 생각할 수 없는 배짱과 용기의 결과였다.

머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최고였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 시대정신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판단력 이런 것들이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그분이 한국사회의 프레임을 확 바꾼 것이다.

그런데 지장은 덕장을 못 이긴다. 가슴형 리더십의 근간은 공감이다. 굳이 말하자면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의 공감능력이 크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뜨거운 가슴을 가졌다. 모든 형태가 분노로 나타나서 말도 격정적이었다. 차분한 점은 문재인 대통령을 못 따라간다. 따뜻하고 차분한 사람이다. 남북문제에서 결과적으로 이 시기엔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합하다. 나대거나 격정적이지 않으면서 미국과 북한, 양쪽에서 신뢰를 받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대통령이 지금까지 일을 진척시켰다고 생각한다.”

김종필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정리했다. 문 의장에게 ‘정치’란 무엇으로 집약되나?

“한마디로 될까? 왜 정치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가가 중요하다. 첫째가 무신불립(無信不立)으로 [논어]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정치의 요체를 묻자 공자가 안보와 경제 그리고 믿음(信)을 말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믿음을 꼽았다. 공동체 안에 신뢰가 없으면 국가를 만들 수 없다. 국가가 아닌데 안보·경제를 얘기할 수 있겟는가? 정치도 신뢰가 없으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둘째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이것도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는 리더이고 리더는 정치인, 즉 다스리는 사람이다. 나라를 위해선 여당과 야당의 생각이 다르다. 다 똑같으면 독재다. 그 차이를 존중하되 화합해야 한다. 이것이 협치다.

셋째가 선공후사(先公後私)다. 개인보다 당, 당보다는 국가가 중요하다. 사(私)가 먼저면 국가가 안 선다. 국가 안보와 민생에 여야가 어디 있겠나? 난파선에서 싸워 이기면 무슨 의미가 있나? 지금 촛불 정신과 한반도 평화라는 시대 변화의 한가운데 서서 지도자들이, 특히 국회가 사명감에 불타서 일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라시아 국회의장회의에 갔을 때도 내가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다 나를 만나자고 했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만 골라서 만났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신을 안 차리면 그런 기회를 위기로 전락시켜 버릴까 봐 걱정이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 녹취정리·이유림 인턴기자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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