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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김정은의 북한경제 회생 플랜 

한 손엔 외자유치, 또 한 손엔 공포정치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대북제재 속 북한경제 고립, ‘통치자금 관리’ 노동당 39호실도 돈줄 말라…한계 직면한 경제개발구와 현지지도 ‘버럭정치’, 이선권 냉면 발언은 초조감의 발로

▎북한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평양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하는 이 발전소 연기는 평양 대기오염의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발전소는 1965년 옛 소련의 지원으로 건설됐다.
역시 문제는 경제다. 남북한 지도자 모두 경제가 골치 덩어리다. 남한은 코스피(국내 종합주가지수) 2000선이 무너졌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주가 하락 대책을 요구하는 청원 글이 수백 건 올라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겠지만 시장경제 원리로 움직이는 주가를 올리는데 대통령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평양 정상회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닥 수준의 실물경기 때문에 원위치다. 정상회담 컨벤션 효과는 대략 한 달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다. 정부의 경기부양 이론인 소득주도 성장론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집권 21개월이 지나가는 상황에서도 성과가 불투명함에 따라 향후 경제회복 기대는 여전히 난망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로 평화를 실현하고 남북경협을 통한 한반도 신경제지도로 한국경제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구상도 북한 비핵화의 속도 부진으로 청사진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책의 노선 수정이 없다면 경제 위기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내외 경제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궁극적으로 경제위기는 남북관계 발전의 발목도 잡을 수밖에 없다.

북한 경제 역시 난국을 타개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17년 하반기 본격화된 국제사회의 그물망 제재와 압박으로 지난해 -3.5% 성장에 이어 금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북한 경제가 제재와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북한은 오히려 지난해 3.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반박했다. 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의 이기성 교수는 10월 13일 교도통신에 “2017년 북한의 GDP가 307억 달러(한화 약 34조7000억원)로 2016년의 296억 달러(한화 약 33조5000억원)에 비해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의 인구는 2016년 2515만 9000명에서 2017년 2528만 7000명으로 증가했으며 지난해 북한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은 1214달러(한화 약 137만원)로 미얀마 수준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기성의 주장은 북한 경제가 2017년 이전 해에 비해 -3.5% 성장을 기록했다는 지난 7월 한국은행의 발표와 상반되는 내용이다. 이기성은 한국은행의 조사 결과가 단지 추정치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교도통신은 “이기성이 GDP 산출에 어떤 요소들이 반영됐는지 밝히지 않아 발표 내용의 정확도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이기성은 북한이 경제 성장을 다른 나라들에 의존하지 않고 이뤄냈다고 주장했으나 서훈 국정원장은 10월말 내곡동 국정원에서 개최된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 예산이 1년에 약 7조원”이라고 언급했다. 이기성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인정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기성은 “북한이 유엔 대북경제 제재의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면서 “원유 사용을 아끼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했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북한이 GDP를 공개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2016년과 2017년도 북한의 GDP에 관한 정보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공세적으로 일본언론을 통해 플러스 경제 성장을 주장한 사실은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속에서도 경제가 위축되지 않고 발전하고 있다는 제재 무용론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의 플러스 성장 주장은 근거를 밝히지 않아 진위여부를 검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재로 인하여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비명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당 39호실 산하 경흥지도국 당위원장 이철호는 2017년 12월 북한 노동당 대내 기관지인 [근로자] 12월호에 적대 세력들의 제재 책동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 정치 사업’이라는 기고문에서 제재로 인해 노동당 39호실의 외화벌이가 지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유류 공급 제한으로 주유소를 폐쇄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11월초 노동신문 보도를 통해 “적대 세력들이 우리 인민의 복리 증진과 발전을 가로막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 보려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했다”고 미국을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북한식 경제발전론의 허실


▎조선중앙TV는 오석산 화광석 광산 노동자들이 평안남도 룡강군 협동농장에서 모내기 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이 방송은 “알곡고지 잠령에서 네 일, 내 일이 따로 없다”고 독려했지만 북한의 생산성은 높지 않다.
남북한 모두 최고지도자가 획기적인 해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국민과 인민들의 아우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핵 문제나 평화 등의 안보 상황보다도 남이나 북 모두 다 먹고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지도자의 미래는 어둡다. 새해 들어 집권 8년차를 맞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제리더십을 분석하는 것은 북한의 미래를 조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2018년은 핵문제를 잠시 옆으로 내려놓고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고립의 탈피를 시도한 특별한 한 해였다. 핵개발의 완성을 선언한 만큼 경제에 매진하겠다는 김 위원장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고 성과를 관측하는 작업도 북한 경제의 미래를 전망하는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것이다. 남한의 경제성장 키워드가 소득주도성장이라면 김 위원장이 북한 경제를 이끄는 3대 키워드는 경제특구 성장, 현지지도 성장, 남북경제협력 성장 등이다. 3대 분야 성장론의 허와 실을 분석해 보자.

현재 북한 경제는 2016년 5월 6일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확정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당 대회를 통해 국가의 굵직한 경제개발 계획을 제시한다. 1956년 4월 개최된 3차 당 대회에서는 ‘인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 61년 9월 4차 당 대회에서는 ‘인민경제발전 7개년 계획’, 80년 10월 6차 당 대회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의 10대 전망 목표’를 제시했다. 김정은 집권시대 들어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은 과거의 정책이 경제발전에 대한 계획인데 반해 ‘전략’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 특색이다. 구체적인 각 부문별 생산목표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채, 기존의 선행 부문과 ‘먹는 문제’ 해결을 재강조하는 추상적 수준에 그쳤다. 계획을 세웠다가 목표 달성에 실패해 경제 관료는 물론 최고 지도자까지 곤욕을 치른 과거를 고려해 ‘전략’이란 수단 지향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주요 목표는 경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경제발전 계획과 대동소이하다. 3대 총괄목표는 ▷인민경제 전반의 활성화 ▷경제부문 사이의 균형 보장 ▷나라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 마련 등이다. 4대 방향은 ▷경제 및 핵무력 병진노선 ▷에너지 문제 해결 ▷인민경제 선행 부문과 기초공업 부문의 정상화 ▷농업과 경공업 생산을 늘리는 인민 생활의 질 향상 등이다.

북한은 지난 4월 2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새 전략노선으로 채택했다. 새 전략노선의 해석을 둘러싸고 남한의 전문가들 사이에는 논란이 있었다. 핵무기 개발은 상수(常數)로서 핵과 경제의 병진 노선을 더욱 추진하겠다는 북한식 경제 돌파구 전략을 표방한 것인지? 혹은 이미 핵개발은 성공했음으로 이제 핵개발의 속도를 늦추고 각종 자재와 재원을 순수 경제 건설에 총력을 다 하겠다는 뜻인지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7월 3일자 노동신문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의 세 번째 해인 올해 경제전선 전반에서 활성화의 돌파구를 얼어 제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반적인 경제건설의 소프트웨어는 인민경제의 자립성, 주체성, 현대화 및 정보화다. 이를 통해 현장에서 달성해야 할 미시적인 목표는 ▷식량 자급자족 ▷에너지 문제 해결 ▷경공업 발전 ▷무역구조 개선 ▷경제개발구 자본 유치 ▷관광산업 활성화 등이다.

이외에 ‘남한과의 경협을 통한 경제건설’이 새롭게 추가될 것이다. 식량 자급자족은 1948년 북한 정권 창설 이래로 여전히 미해결의 영원한 숙제다. 개인의 영농의욕을 고취시키지 못하는 협동농장의 구조적 문제에다 각종 농자재 공급 부족은 식량 생산량이 소비량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일차적 원인이다. 에너지 문제 역시 중국에서 단동-신의주 간 송유관을 통해 보내는 연간 40만t 내외의 중유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각종 중소형 발전소의 건설을 통해 전력 부족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으나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공업 발전 역시 자재 부족으로 소비재의 70% 이상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수출입의 불균형으로 무역구조 개선 역시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문 대통령 백두산 관광 ‘선전효과’


▎중국은 지도자 덩샤오핑의 체계적 개방 전략에 힘입어 해외 직접투자 0원(1978년)에서 출발해 1000억 달러(2012년)의 기적적 성장을 일궜다. 국제자본은 확신이 들 때까진 들어오지 않는다.
2017년 기준으로 북한의 전체 무역액은 55억5000억 달러다. 수출은 17억7000억 달러, 수입은 37억8000억 달러로서 무역 적자가 2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수입이 감소되지 않는 상태에서 수출이 2016년 28억2000억 달러에서 37% 감소했다. 무역 적자 심화에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등으로 2017년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에 비해 3.5% 감소했다. 97년 -6.5% 이후 최저치로서 전년 중 큰 폭으로 증가했던 광업, 제조업, 전기가스, 수도업 등이 감소한 결과다.

김정은 시대 경제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경제개발구 정책이다. 경제특구의 북한식 표현인 경제개발구 정책의 원조는 역시 중국이다. 외자유치(FDI)는 경제개발 초기 자본이 부족한 저개발국가의 필수적인 마중물이다. 하지만 저개발 국가의 전망이 불확실함에 따라 자본 유치는 쉽지 않다. 오늘날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일 정도로 성장한 중국의 해외 직접투자 연간 유입액은 덩샤오핑이 개혁과 개방을 단행한 78년에는 제로였다. 국제자본은 중국의 개혁과 개방에 확신이 들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덩샤오핑의 눈물 어린 노력으로 1980년에 겨우 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과 같은 거대 시장도 연간 유입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84년이었다. 10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1992년, 50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2002년, 100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2010년이었다.

돈에 확실한 꼬리표가 달린 국제자본은 불투명성과 불확실성을 극도로 싫어한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분명한 판단이 서지 않으면 미동도 하지 않는다. 과연 김 위원장은 78년 덩샤오핑의 점(点)→선(線)→면(面) 개혁과 개방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인지 혹은 흉내만 내는 것인지 진단해 보자. 특구 경제발전 전략은 오직 최고지도자의 의지와 결단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복심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특구전략은 외국자본의 추출(extraction)과 내부자원의 동원(mobilization)을 특정지역에서 연결하는 동원추출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화교 출신인 양빈 전 신의주특구 행정장관. 그가 중국공안에 체포된 뒤 북한의 개방은 흐지부지됐다. 최근 양빈이 대만 기업인들과 협력해 북한에 다시 진출한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 경제특구의 원조는 91년 12월 지정된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다. 84년 합영법 제정 이후 최초의 특구다. 하지만 보수파의 공격을 받아 나선특구를 주도했던 97년 김정우 대외경제 협력추진위원장이 공개 총살을 당하고, 99년 김달현 전 경제 부총리가 자살함으로써 나선특구는 막을 내렸다가 2010년 첨단 물류 및 무역 수송 특구라는 간판을 새로 내걸고 재지정됐다. 2002년에는 신의주국제경제지대,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국제관광특구 등이 연속적으로 지정됐다. 개성과 금강산은 남한과의 경제협력 대상 지역으로 지정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본격화됐다.

2008년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2016년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개성공단이 중단됐다. 신의주특구는 화교 출신인 양빈이 행정장관으로 평양에 의해 임명됐으나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된 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최근 석방된 양빈 전 장관이 대만 기업인들과 협력해 북한 진출을 시도한다는 보도가 나옴으로써 향후 북한이 그를 어떻게 활용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2010년에 친중파인 장성택을 앞세워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를 지정해 중국자본 유치에 주력했다. 하지만 장성택의 처형으로 황금평·위화도 특구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총론적으로 개성과 금강산만 남측과의 협력으로 절반의 성공이었으나 문이 닫혔고 나머지 중국 자본을 겨냥한 특구는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위에 언급한 5대 경제특구는 중앙에 의해 결정됐고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결정돼 김정은의 독자 브랜드와는 거리가 있다. 다만 금강산 특구에 애정이 각별해 인근 원산에 75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는 ‘원산 특별개발’ 정책은 특구는 아니지만 금강산 특구 개발과 연계하는 매머드 프로젝트로서 김 위원장의 야심작이다. 하지만 75억 달러의 조달과 유치는 여전히 청사진 수준이다. 김 위원장의 특구정책은 선대 지도자들의 계획과 전혀 차별화하지 못함으로써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경제특구 전략과 연계된 경제건설 전략은 관광산업 육성이다. 특히 관광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점을 감안해 김정은·시진핑 간 3차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인들의 대북관광 해제가 합의돼 단체관광이 재개된 것은 북한 경제가 제재와 압박으로부터 숨통을 트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현장을 올해 들어 세 번째로 시찰했다고 지난 10월 30일 보도했다. 눈을 흠뻑 맞으며 삼지연 현장을 둘러보는 사진은 북한이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삼지연은 백두산이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백두산 관광 거점 지역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백두산 천지를 공개해 향후 남한 사람들을 겨냥한 관광시설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김정은의 현지지도는 ‘버럭정치 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백두산 방문은 향후 한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사전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경제특구 전략과 연계된 북한 경제재건의 핵심전략은 관광사업 육성이다. / 사진:연합뉴스
김 위원장 경제 리더십의 주요 키워드 중의 또 다른 하나는 빈번한 현지지도를 통한 군기잡기다. 부지런한 애민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현지지도는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권력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상징정치이자 선전전을 통한 심리정치다. 김 위원장이 무더위에 지친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특별히 기록적인 더위가 예상됐던 8월 3일 현지지도를 감행했다는 노동신문의 보도는 거의 하나의 드라마였다. “이 불타는 삼복더위에 어이하여 그이께서 만은 그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셨던가. 사랑이었다.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 위대한 헌신이었고 강렬한 분투” 등의 표현을 쓰며 김 위원장의 ‘애민’을 강조하였다. 주민들은 이러한 노동신문의 선전을 통해서 최고 영도자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밑에 있는 고위관료들이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서 나라가 어렵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2년 집권 이후 2017년 10월말까지 총 896회의 현지지도를 했다. 이중 경제 분야가 308회로 33.4%, 군사 분야가 299회로 33.4%를 차지했다. 이외에 정치 분야 15.3%, 사회문화 14.8%, 대외 및 기타분야가 2.1%다. 군사 분야보다도 역점을 둔 것이 경제 분야로서 김 위원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감지할 수 있다.

현지지도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문제는 영도자의 빈번한 현지지도가 경제발전을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가 여부다. 최고지도자가 현지지도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양적(quantitative) 접근방법이며 노동집약적 발전전략이라는 것이 헝가리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 등에서 오랜 기간 사회주의 정치경제이론을 강의한 코르나이(J. Kornai) 교수의 지적이다.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자본주의에서도 모든 산업현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노동력 이외에 자본과 기술을 확충하는 질적인(qualitative)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필자는 2000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500만 달러를 투자한 남포 경공업 공장을 방문했다. 공장 안 벽면에는 다양한 정치구호와 함께 “1950년대의 정신으로 일하자”라는 빨간색의 구호가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안내하는 참사에게 물었다. “1950년대에는 어떻게 일했기에 50년대 정신으로 일하자고 합니까?” 그는 “선대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때는 하나를 투입하면 두 개가 나오고 두 개를 투입하면 4개가 나오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물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양적인 성장을 하던 시절이라 노동력 1명을 투입하면 두 배의 성과들 거뒀다는 의미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은 한계성장 체감의 법칙으로 일정 수준이 되면 노동력의 추가 투하가 오히려 효율성을 저하시킨다. 북한에 지금 필요한 요소는 자본과 기술이지 단순 노동력이 아니다. 현지지도의 문제점은 양적인 접근방법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황해남도 삼천군의 메기농장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우호적 여론을 끌어내기 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현지 지도는 질적 경제발전을 끌어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 사진:연합뉴스
현지지도는 김 위원장이 관료들의 군기를 잡는 시간이다. 이른바 날카로운 질책을 통해 실적 달성을 독려하는 버럭 정치의 현장이다. 지난 7월 함경북도 일대 경제 현장을 둘러본 김 위원장이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며 관리자들을 꾸짖었다고 ‘대단히 격노한 사실’을 북한 매체들이 상세히 보도했다. 수력발전소인 어랑천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은 그는 “30여 년이 지나도록 공사가 완공되지 못한 실태를 현지에서 직접 료해(시찰) 대책하기 위하여 왔다”며 진척이 없는 원인을 파악했다. 이어 관리 책임자가 최근 몇 년간 현장에 한 번도 들른 적 없다는 보고를 받고 “도대체 발전소 건설을 하자는 사람들인지 말자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벼르고 벼르다 오늘 직접 나와 보았는데 말이 안 나온다”라고 했다. 이어 평소 현장에는 안 나오다가 “준공식 때마다는 빠지지 않고 얼굴을 들이미는 뻔뻔스러운 행태”라며 내각 등 책임자들을 인신 공격적으로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보고서 작성 등에만 치중하는 형식적 업무 행태에 대해서도 ‘주인답지 못하다’며 호되게 질책했다. 김 위원장은 내각, 노동당 경제부·조직지도부 등 경제 부문 책임자들의 방만한 태도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청진 가방공장을 찾아선 “태도가 매우 틀려먹었다”고 화를 참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10월 원산 관광지구를 시찰한 자리에서 “전혀 옴짝도 하지 않고 동면하고 있는 보건성을 비롯한 성, 중앙기관들에서 어떻게 세계적 수준의 관광휴양 및 요양기지 꾸리기와 관련한 기술 과제서를 내놓겠는가”라며 질책했다. 선대 김일성, 김정일과 달리 젊은 지도자의 현장 책임자에 대한 질책과 비판은 고모부 장성택 처형 집권 초기 70여 명의 고위관료가 김 위원장의 눈밖에 나 하루아침에 퇴출됐던 만큼 공포 수준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책임자에게 언제까지 완공할 것인가를 다짐받고 현장을 떠난다. 어랑천발전소는 현장 책임자가 2019년 10월 완공을 약속했다.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한 공장과 기업소 및 건설 현장은 최고지도자가 방문한 곳으로 특별 관리를 받게 된다. 이후 자재와 물자 및 인력이 최우선 지원된다. 준공 기한 엄수라는 최고 지도자의 ‘버럭 지시’에 따라 해당 현장은 이유를 불문하고 완공에 총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본인의 비자금을 풀지 않는 한, 총량이 정해진 물자와 예산 형편에서 특정 지역에 물자가 집중될 경우 다른 지역의 지원이 축소되는 것은 자명하다. 책임자가 총살형을 면하기 위해 다른 건설공사에 투입될 자재를 가져다가 집중 투입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의한 생산증가는 일시적인 노동 투입량 증가 이외에는 다른 지역에 배정된 자재와 물자가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한 현장으로 단순 이동하는 풍선효과(Balloon effect)를 적나라하게 상징한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발언의 속내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방북한 대기업 총수들을 향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라고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그만큼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절실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숨은 의도는 남한 자본과 기술의 유치 전략이다. 앞서 이기성 교수도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따른 경제 협력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이종혁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과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등 북측 인사 7명이 방남하는 것도 경협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최대한 압박 전략으로 김 위원장의 통치자금 마련도 여의치 않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한과의 경협 재개가 매우 시급하다.

서훈 국정원장은 “북한 연간 예산 7조 중 6000억을 사치품 사는 데 쓴다. 사치품은 자동차, 모피, 술 등”이라고 말했다. 전체 예산의 8.6%에 해당하는 규모다. 서 원장은 “이 돈은 통치자금에서 나오고, 통치자금을 담당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는데 그 돈은 당, 군부, 또는 정부에서 외화벌이를 통해 나온다”고 덧붙였다. 미사일 등 무기판매, 해외근로자 송금, 해외 북한 식당 매출 등이 주요 수입원이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남측과의 거래를 트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앞으로도 이선권의 남측 정부와 기업에 대한 거친 발언은 계속될 것이다. 사실 대기업 입장에서 대북 투자는 금액이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의 비율이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대북투자 소문만 나도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미국과 거래하지 않는 대기업은 없으며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경제를 힘겹게 선도하는 대기업들의 운신의 폭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중 간의 극심한 무역전쟁 속에서 생존이 불확실한 한국기업들은 ‘이선권의 발언’과 청와대의 입김 등으로 3중고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선 남북한 경제가 함께 사는 방법은 각자도생이다. 국제사회가 동의하지 않는 경제협력은 모두가 어려워지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 모두 각자도생해서 한반도 비핵화가 진전돼 국제사회가 동의하는 그날까지 생존하고 성장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 위원장은 이제 진정한 경제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진정한 개혁 개방의 리더로서 북한판 덩샤오핑으로 거듭날 것인지? 선대지도자와 같이 기존 방식을 고수해 개혁의 시늉만 하는 ‘그럭저럭 버티는(The muddle through strategy)’ 리더로서 남을지를 겨울까지 정해야 할 것 같다. 김 위원장이 눈 덮인 백두산에 다시 올라서 2500만 명의 인민을 먹여 살리는 방안을 결심하기를 기대해 본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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