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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공관병 갑질’ 논란 불명예 퇴역한 ‘대장 박찬주’의 격정토로 

“포토라인 서는 날, ‘제복’ 입혀 날 망신 주려 했다” 

‘공관병 갑질’ 빌미로 전역 막고 다른 혐의 씌워 기소… 민간인 신분인데도 군사법원 회부행위 헌법 위반 소지 커

군 최고 명예의 자리에 있던 장수에게 졸지에 ‘파렴치범’이란 낙인이 찍혔다. 계급장을 단 채 포승줄에 묶였다. 사관학교에 입학해 꼬박 40년 동안 입었던 분신과도 같았던 군복도 벗어야 했다. 그에게서 계급장을 빼앗아갔던 혐의들은 우여곡절 끝에 대부분 무죄로 판명됐다. 하지만 분노가 들끓었던 여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를 잊었다. 육군 제2작전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대장 박찬주(60)의 얘기다. 지난해 7월 파문이 불거진 뒤로 두문불출했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공관병 갑질 파문으로 군복을 벗은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1년여의 은둔 끝에 입을 열었다. 그는 적폐 청산의 본보기로 찍힌 자신에 대한 전역 방해와 군 검찰의 수사가 위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충남 계룡시의 자택에서 만난 박 전 대장은 제복의 명예를 지켜주지 않은 데 대해 침통해 했다.
11월 초 서울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한 시간 20분쯤 달려 충남 계룡역에 도착했다. 박 전 대장의 자택은 계룡역에서 500m쯤 떨어진 산자락의 아파트다. 지난해 8월 공관병 갑질 논란이 벌어진 뒤 경기도 용인의 자택을 처분하고 한적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파문이 불거진 이후 박 전 대장은 외부와 연락을 끊었다. 밖에선 그가 “폐인처럼 산다”는 말이 돌았다. 박 전 대장이 그토록 고사했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이런 소문 때문이다. 박 전 대장은 “여전히 언론과 인터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나를 걱정하며 기도해주는 분들이 많은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갑 병과 중 최초의 육군 대장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던 그를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은 과거 그와 함께 생활했던 몇몇 공관병들의 폭로였다. 군인권센터는 지난해 7월 말 박 전 대장이 공관병들을 ‘노예’처럼 부렸다고 주장했다. 분노한 여론이 들끓었다. 정부는 박 전 대장의 보직(제2작전사령관)을 박탈하고 군 검찰에 수사를 맡겼다.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은 ‘정의로운 사회’였다. 박 전 장군이 적폐 청산과 갑질 근절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박 전 대장은 “내용이 너무 허황된 것들이어서 처음에는 오해가 쉽게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별 4개’ 떨어뜨린 갑질 파문의 진실

공관병들에게 전자팔찌를 채웠다는 얘기에 국민들의 분노가 컸다.

“황당한 얘기다. 원래 공관병들을 부르는 호출기는 주방에 고정돼 있었다. 내가 언제 부를지 모르니 공관병들은 돌아가며 주방에 항상 대기해야 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식당 종업원들이 주로 쓰는 팔목에 차는 휴대용 호출기를 지급했다. 병사들에게 족쇄를 채운 게 아니라 편의를 봐주려고 했던 거다.”

모과를 따서 모과청을 만들게 했다는 건 무슨 얘긴가?

“2작전사령부 영내에는 모과나무가 많다. 해마다 모과를 따서 모과청을 담근다. 이걸 전직 사령관들에게 예우 차원에서 보내는 전통이 예전부터 내려왔다. 남는 건 장병들이 나눠먹기도 한다. 선후배 장병들을 이어주는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게 내가 저지른 갑질로 둔갑되니 당황스러웠다. 갑질 파문이 있은 뒤로는 이 전통은 사라진 것 같다.”

“軍 내 전통과 관례마저 갑질로 몰아”

마음에 들지 않는 공관병을 전방으로 ‘유배’ 보냈다는 내용도 있었다.

“공관병들은 훈련도 열외 될 때가 많아 제대할 때까지 공관 밖을 벗어날 일이 거의 없다. 군인다운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하는 거다. 그래도 군대에 왔으니 최전방을 체험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공관병들에게 차례로 일주일간 전방 부대를 체험할 기회를 줬다. 누군 보내고 누군 안 보낸 게 아니다. 병사들도 꽤 만족스러워했다. 한 병사는 이를 ‘DMZ투어’라고 부르더라. 이걸 유배라고 하면 지금도 전방을 지키는 장병들이 유배 중이란 소리밖에 더 되겠나.”

박 전 대장은 “시대에 맞지 않는 잘못된 관행은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 누군가를 망신 주고 법적 책임을 씌워서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 검찰의 수사에서도 이러한 의혹은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군용물품 절도 혐의를 받았던 공관의 냉장고도 박 전 대장이 사비로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인의 갑질 의혹은 어떻게 된 건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위생 관리에 소홀할 때 이따금 공관병들을 꾸짖은 건 사실이다. 공관에는 상주 인원만 8명이다. 불편함이 왜 없겠나. 다만 우리 부부가 본의 아니게 병사들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도의적인 책임과 비난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

군 검찰은 갑질 의혹을 불기소했다. 그러자 군인권센터는 “봐주기 수사”라고 비판했다. 박 전 대장은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였다”고 했다. 그는 “군 검찰이 어떻게든 나를 엮으려고 집요하게 괴롭혔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가 ‘불법적으로’ 자신의 전역을 막았다고도 주장했다. 갑질 의혹이 터진 지 열흘쯤 뒤(8월 9일) 국방부는 2작전사령관 보직을 박탈하고 ‘육군인사사령부 정책연수’라는 새 직책을 부여했다. 박 전 대장은 “정책연수라는 보직은 내가 40년간 군 생활하면서 들어본 적도 없다. 무보직 상태가 되면 자동 전역을 막을 수 없으니 있지도 않은 보직을 만들어 억지로 붙잡아 둔 것이다”고 말했다.

박 전 대장은 서울행정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한달 뒤(9월 8일) 법원은 정책연수 발령이 잘못됐다며 인사명령 중지 가처분을 받아들였다. 박 전 대장은 보직이 없는 상태가 됐지만 국방부는 그에게 자택에서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박 전 대장의 변호인인 이종업 변호사는 “박 전 대장의 신분 전환을 막은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군인사법 20조 3항은 ‘중장 이상으로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직위에 있는 사람은 그 직위에서 해임 또는 면직되거나 그 보임기간이 끝난 후 다른 직위로 전직되지 아니하면 현역에서 전역된다’고 명시돼 있다.

국방부가 일부러 전역을 막았다는 의미인가?

“내 경우 2작전사령관에서 해임과 동시에 자동 전역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육군 대장이 오를 수 있는 자리는 7개(합참의장·합참 1차장·한미연합사 부사령관·참모총장·제1·제3 야전군사령관·제2작전사령관)뿐이다. 백 번 양보하더라도 행정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이 나와 정책연수 발령이 무효화한 순간에라도 내 전역을 허용했어야 했다. 결국 민간인을 군 검찰이 잡아 가둔 셈이 됐다.”

첫 포토라인 서던 날 ‘군복 입으라’ 강요


▎1. 2007년 준장 진급 때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삼정검. / 2. 박 전 대장은 기갑 병과로는 최초로 대장에 오른 기갑전의 대가로 꼽힌다. / 3. 2015년 3월 청와대에서 열린 군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박 전 대장의 삼정검에 수치를 매어주고 있다.
국방부는 왜 그토록 박 전 대장의 전역을 막았다고 생각하나?

“국방부는 내가 현역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였다. 작년 8월 초 피의자로서 군 검찰에 처음 출석하기 전날 국방부 관계자가 ‘내일 출석할 때 군복을 입으라’고 연락해왔다. 용산에 있는 군 검찰단 입구에 포토라인이 설치될 거란 얘기는 이미 들은 터였다. ‘경황이 없어서 군복을 대구(2작사령부)에 두고 왔다’고 둘러댔다. 그랬더니 밤에라도 올려 보낼 테니 꼭 입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는 거다. 그때 짐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군을 망신 주려는 거구나….”

당시 출석 때 옷차림은 정장이었는데?

“국방부 관계자에게는 일단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내 이름에 먹칠하는 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군복의 명예까지 더럽힐 수는 없었다. 국방부에 연락하지 않고 그냥 양복을 입고 나갔다. 그것 때문에 더 미운 털이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박 전 대장은 “전역한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해달라고 국방부 주요 인사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인사소청도 했지만 누구도 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일각에선 연금이 끊길까 봐 전역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의심도 한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전역 후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연금이 중단된다. 단지 제복의 명예만은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법률 전문가인 군 검찰이 몰랐을 리가 있나?

“군 검찰도 처음에는 자동 전역이 맞다고 보고 사건을 민간 검찰로 이송하려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별건으로 나를 구속해 영창에 집어넣고, 군사법원에 기소했다. 군 검찰단 관계자는 ‘상부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왜 그랬는지 짐작 가는 게 있나?

“적폐 청산을 외치는 정부로서는 대장이 계급장을 달고 군사법원에 서는 모습이 매우 상징성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대장도 적폐의 대상이 되면 군법회의에 회부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내게 ‘1심 재판이 끝나면 전역될 테니 장군님이 좀 참아달라’고도 했다. 이게 무슨 뜻이겠나?”

포로보다 치욕적이었던 영창 생활

군 검찰은 9월 20일 박 전 대장을 구속했다. 경기도 용인의 자택에서 대기하던 그는 헌병대 호송차량을 타고 서울 용산의 국방부 헌병대대 지하에 있는 영창에 수감됐다.

국방부 영창은 사병과 부사관, 장교를 한꺼번에 수용한다. 사병은 3~4명, 장교들은 2명이 한 방을 쓴다. 서너 평에 불과한 방에 박 전 대장은 홀로 갇혔다.

4성장군이 영창에 갇힌다는 건 짐작하기가 어렵다

“장군은 나밖에 없었다. 독방을 줬다는 것 말고는 시설에 차이가 없었다. 사병이나 영관장교, 부사관 몇 명이 옆방에 수감돼 있었다. 일부 장교는 나를 보고 울먹이며 ‘사령관님, 힘내십시오’라고 했다. 내 신세가 너무나 부끄럽고 치욕스러워서 차라리 포로가 더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3개월 동안 영창에 구금된 채 군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갑작스런 신분 변화를 견디기 어려웠을 법한데.

“식사할 때에도 다른 장병들과 마주치지 못하게끔 시간차를 뒀다. 옆에 선 헌병의 감시 속에 혼자 밥을 먹으려니 도무지 삼켜지지 않았다. 하루 두 번, 30분씩 체조하는 시간 외에는 앉아서 책을 읽거나 묵상하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1분 간격으로 순찰하는 헌병들의 군홧발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심각한 불면증이 찾아왔다.

영창 외부로 나갈 때는 어땠나?

“불면층 진료를 위해 수도통합병원을 세 번쯤 간 적이 있다. 검찰 조사를 받으러 다닐 때처럼 군복을 입고 수갑을 찬 채 이동하게 했다. 헌병 2명이 늘 양쪽에 따라붙었다. 군복을 입고 끌려 다니는 모습을 교도관들이 보기에도 민망했는지 나중에는 체육복을 입으라고 배려해 주더라. 몰래 달걀 후라이를 하나 더 주려던 장병도 있었다. 그런 작은 응원들을 위로 삼아 이를 악물고 버텼다.”

구속 사유가 무엇이었나?

“공관병 갑질에서 혐의를 찾지 못하자 군 검찰은 먼지털기식으로 수사망을 조였다. 한 달간 나와 아들의 집 등 세 군데 압수수색을 당했다. 심지어 내 친목회와 아내의 계모임에서 회비를 주고받은 지인들의 계좌까지 조사했다. 어떻게든 죄를 만들어 잡아넣으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죄명이 뇌물수수와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이었다.”

군 검찰은 박 전 대장이 폐자원 매매업을 하는 곽모 씨로부터 20차례에 걸쳐 760여 만원의 향응을 받았다고 했다. 또 부하 장교의 청탁을 받아 보직 변경을 해줬다며 군사법원에 기소했다. 군 검찰은 징역 5년에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판결은 수원지방법원에서 나왔다. 박 전 대장이 대법원에 제기한 재판권 쟁의에 관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13일 박 전 대장이 2작전사령관에서 해임된 2017년 8월 9일에 자동 전역돼 민간인 신분이 됐다고 판단했다. 국방부는 대법원 결정이 나오자 보직 해임 이후 박 전 대장에게 지급했던 4개월치 급여를 환수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셈이다.

폐자원 업자인 곽씨와는 어떤 관계였나?

“곽씨는 수년 전부터 개인적 친분을 쌓아 교류해 왔다. 곽씨의 아버지가 육사 11기였는데 그 후원모임에 나갔다가 인연이 됐다. 함께 가족 여행을 다니면서 형, 동생처럼 지냈다. 더러 내가 밥을 살 때도 있고, 곽씨가 여행경비를 좀더 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애들 용돈을 챙겨준다든지 경비를 따로 봉투에 담아 건네기도 했다.”

곽씨가 군부대 폐자원 매매 사업을 하는 줄 몰랐나?

“폐자원을 처리하는 사업을 한다고만 알았을 뿐 군부대 입찰에 참여한 건 전혀 몰랐다. 군부대의 폐자원 관리는 내 소관도 아니었고,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의 온라인 공매시스템(온비드)을 통해 입찰이 이뤄지기 때문에 내가 유리하게 결과를 조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부하의 인사 청탁을 들어준 건 사실인가?

“전에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부하 장교가 거동을 못하시는 부모님을 보필해야 하니 배려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안 되면 전역하는 수밖에 없는 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인사 배려가 가능한지 검토해 보라고 했다. 대가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고, 부하의 희망 근무지가 인기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지휘관으로서 부하의 고충을 들어주는 건 당연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정치논리에 짓밟힌 ‘제복’의 명예

수원지법 형사11부(이준철 부장)는 검찰이 기소한 혐의 중 일부(184만1600원)만 인정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400만원과 추징금 184만1600원을 선고했다.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박 전 대장은 “부정한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믿는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나를 군사법원에 세우려고 헌법상 기본권까지 침해했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간인 아니라더니 4개월치 급여 회수


▎2016년 6월 청와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 격려 오찬에서 박 전 대장(가운데)이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오쇼너시 주한미군 부사령관, 왼쪽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군 검찰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건가?

“대법원은 내가 2작전사령관에서 해임되는 순간 자동 전역돼 민간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을 소급하면 군 공권력이 민간인을 감금(구속)해 수사하고, 군사법원에 세운 셈이 된다. 헌법 27조 2항에는 민간인은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당시 군 검찰은 위법이란 것을 잘 알면서도 상부의 의도에 따라 행동했다. 이런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에 대해 사법부가 응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유사한 일이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장의 변호인은 “진행 중인 재판이 마무리되고 나면 기본권을 유린한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진행되는 2심 재판에서는 민간인 신분이었던 박 전 대장에 대한 군 검찰의 수사와 기소 행위의 적법성에 대한 판단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8일 서울 용산의 국방부 청사 인근 군 검찰단에 출석한 박 전 대장. 출석 전날 국방부 관계자가 박 전 대장에게 “군복을 입고 나오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장이 분노한 지점은 ‘제복의 명예’를 지켜주지 않은 데 대한 서운함과 문제의식이었다.

“선진국에선 군 고위 장성의 비위가 발견되면 우선 신분을 전환해 처리하는 관례가 있다. 제복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도리어 내 전역을 강제로 막았다.”

‘군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잘못


▎박 전 대장의 서재에는 40년간 근무했던 주요 부대의 마크가 새겨진 기념패와 휘장이 전시관을 방불케 할 만큼 가득했다. 박 전 대장 뒤에 육군 대장을 상징하는 별 네 개가 달린 붉은색 성판이 눈에 띈다.
그는 “적어도 군 통수권자라면 제복의 명예만은 지켜주리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군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는 것만큼 군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군을 보호하는 것도 군 통수권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 정부 관계자들이 군 통수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군 통수권을 잘못 사용한 것을 문제의 본질로 보나?

“군의 정치 개입 금지와 함께 민주국가에서 금기시하는 원칙이 있다.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군에게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군을 마음대로 다뤄도 좋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그 순간 군 통수권은 이미 위험에 빠진 것이다.”

지나친 확대 해석 아닌가?

“정부 핵심 관계자들이 군 통수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해프닝들이 여러 번 있었다. 지난 10월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방부 장관 등을 이끌고 비무장지대(DMZ)를 시찰한 것도 한 예다. 대통령이 부재 중일 때 군 통솔권은 국방부 장관에게 있다. 굳이 필요한 자리였다면 국방부 장관이 호스트가 되어 위원들을 초대하는 모양새가 더 좋았을 거다.”

국방부 장관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남의 실수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평양정상회담에 수행했던 송영무 전 장관의 발언도 경솔함을 보여준 한 예다. (송 전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해 해병대 1개 연대를 동원해 한라산에 헬기 패드를 설치하겠다고 해 비판을 자초했다.) 국방부 장관은 군령과 군정을 통합 행사하는 꼭지점에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데 주변 분위기에 너무 쉽게 취했다.”

현 정부의 군 인사에 대해 박 전 대장은 “군 내부 불만이 작지 않다”고 전했다. 현 정부 들어 비 육군, 비 육사 중용 추세가 뚜렷하다. 국방부 장관에 해군 출신(송영무 전 장관)과 공군 출신(정경두 장관)이 연이어 발탁됐다. 육군도 3개 야전군사령관 중 비육사 출신이 2명으로 늘었다. 지난 10월 정경두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박한기 합참의장도 학군 출신이다. 지난해 8월 전역한 3사관학교 출신의 이순진 전 합참의장부터 세 번 연속 비육사 출신이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육사 출신들의 상대적인 소외감이 클 수밖에 없다. 육사 출신의 한 예비역 장성은 “군사독재 시절에는 육사 출신의 정치군인들을 중심으로 독재권력을 보위하는 결사체가 되어 권력을 누리기도 했지만 옛말”이라며 “요즘은 육사 출신이란 이유로 ‘그 동안 많이 해먹었으니 불이익을 줘도 된다’는 식의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박 전 대장의 불명예 전역이 터진 것이다.

군 내부의 견제가 있었던 건 아닌가?

“김관진 전 안보실장과 독일육사 선후배 사이라는 이력 때문에 항간에는 박근혜 정부 때 ‘독사파(독일 육사 출신들을 의미)’가 군의 실세란 말이 돈 적이 있다. 독일 육사는 육사 24기부터 28기까지 기수별로 두 명씩, 29기부터는 한 명씩 파견됐다. 다 합쳐봐야 몇 명 되지도 않는다. 앞뒤 기수끼리 만나는 일은 있어도 전체가 모이는 모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수한 생도들이 선발됐기 때문에 각자 위치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일 뿐 조직적인 활동은 전혀 없었다.”

“전 정권 실세 ‘독사파’ 멤버는 오해”

지난 정부에서 대장에 진급했으니 수혜자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장군으로 진급한 건 2007년 노무현정부 때다. (그의 서재에는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삼정검이 꼿꼿하게 세워져 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전시작전권 전환 추진단장을 맡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야전으로 나오기 전까지 주로 한미동맹 분야를 다뤘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군의 상부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이후에도 45명의 정예 장교를 모아 전작권 전환 이후 한미연합 방위체제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지난해까지도 사드(THAAD) 도입 문제에 깊숙이 참여하기도 했다. 나는 군인으로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박 전 대장은 군 내부에서 부하들의 신망이 두터운 편이다. 작전과 전쟁 기획능력이 뛰어난 전략통으로 꼽힌다. 그는 육사 생도 시절부터 쟁쟁한 동기들 틈에서 주목을 받아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와 신원식 전 합참작전본부장,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동기생이다.

육사 37기를 대표해 독일 육사에서 유학했고 임관 후에도 독일에서 기갑 고등군사반, 독일 지휘참모대학에서 독일의 선진 군사학을 배웠다. 대령 시절에는 독일에 교관으로 파견돼 독일군 장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국내에서 ‘기갑전의 대가’라는 평가도 받는다. 기갑 병과 출신으로 국군 역사상 대장에 오른 건 그가 처음이었다.

박 전 장군은 현 정부의 군 인사에 대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군 인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군심(軍心)’을 강조했다.

군심을 고려하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특정 출신을 배제하겠다든가, 특정 군을 약화시키겠다는 정략적 의도가 개입된다면 그것은 ‘해군(害軍) 행위’다. 대통령이 민심(民心)을 따르듯 군 통수권자는 군심을 존중해야 한다. 군 인사가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군이 정권의 눈치를 보게 된다.”

박 전 대장은 국방·대북정책의 기저에 자신의 문제를 다룰 때처럼 군에 대한 경시 태도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파동을 들기도 했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 파동은 숙군(肅軍)의 명분이 된 중대 사안이었다.

“군은 항상 만에 하나를 예상해 대비하는 집단이다. 0.01%의 가능성을 무시해선 안 된다. 우리 군은 1년에 두 번은 한미연합으로, 그리고 한 번은 국군이 독자적으로 전쟁 대비 연습을 하고 있다. 연습 때에는 계엄상황실을 운영하고 여러 상황을 가정해 준비태세를 점검한다. 언론에 소개된 기무사 문건은 연습 때 나온 내용을 종합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군 통수권자가 해외에 나가서 공개적으로 검찰 수사를 지시해 온 국민과 장병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요란스럽게 다뤄야 할 일인가. 그러니까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오해받는 것이다.”

그는 “군 통수권자가 군으로부터 ‘만약’, ‘가정’이란 단어를 빼앗아 간다면 그 군대는 행동의 자유도 없고 할 일도 없어진다. 그냥 누워 지내는 식물군대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 군이 한 발짝 양보할 수 있지 않을까?

“대통령이 정치적 의미로 이제 전쟁은 없다고 공언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시에 군 통수권자로서는 군에게 전쟁에 대비하라고 해야 한다. 군을 마치 평화정책의 걸림돌인 듯 대한다면 그것은 통수권자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군의 역할은 앞에서 끄는 게 아니라 뒤에서 힘으로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질수록 군은 오히려 긴장의 끈을 당기고 있어야 한다.”

“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니 조급함 앞서”

남북간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인 9·19 군사합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정치적 대의를 위해 군을 좀 손보면 어떠냐는 풍조가 깔려 있다. 외형적인 등거리 상호주의라는 명분에 묻혀서 서해 5도가 갖는 전략적 가치를 성급하게 버렸다. 우리가 어렵게 확보한 해양과 공중 전력 우세를 훼손함으로써 오히려 전선 일대의 불안정성이 증대됐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지금 남북은 재래식 전력에서 적절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안정을 유지하는 상태다. 그 안정성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지나치게 경계를 앞세우는 건 아닌가?

“정부는 우리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몇 번 되돌아갔다가 다시 걷는 길이다. 이 길이 처음 가는 길이라면 희망이 앞서겠지만 지난 역사에서 되돌린 경험이 있다. 우리의 미래를 상대의 선의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막연한 기대에 의지해 조급해하지 말고 신중하고 치밀한 전략적 계산 아래 움직여야 한다. 협상이란 조급한 쪽이 지는 거다. 왜 우리가 조급해하나. 북한이 급해서 나왔는데 오히려 우리가 조급해하니 북한이 상대적으로 여유를 부리는 것 아닌가. 우리가 조급해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본다.”

인터뷰는 어느덧 3시간을 넘어갔다. 쉼 없이 이어져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얼굴에 생기가 더해졌다. “군복을 입었을 때 할 수 없었던 마음 속 이야기들을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정말 민간인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박 전 대장은 “당분간은 재판에만 집중하려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군 내부에선 정부가 군을 평화정책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서운함이 없지 않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군의 명예를 존중해 주는 문화를 정착하는 데 대통령이 솔선수범해주길 바란다.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군 스스로도 노력해야겠지만 통수권자가 군을 존중해줄 때 비로소 국민들도 군대를 존중하고 아끼게 될 거다.”

[박스기사] 박찬주 전 대장 사건 일지


● 2017년 7월 31일 : 군인권센터, 박 전 대장 부부 ‘공관병 갑질’ 폭로

●2017년 8월 1일 : 박 전 대장, 국방부에 전역지원서 제출

●2017년 8월 4일 : 국방부, 박 전 대장 형사입건…軍검찰 수사로 전환

●2017년 8월 8일 : 국방부, 박 전 대장 전역연기 결정… ‘육군인사사령부 정책연수’ 발령

●2017년 8월 8일 : 박 전 대장, 軍검찰 출석

●2017년 8월 9일 : 軍검찰, 박 전 대장 공관 등 압수수색… 강제수사

●2017년 9월 8일 : 서울행정법원, 인사발령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 국방부, 자택 대기 명령.

●2017년 9월 21일 : 박 전 대장 ‘뇌물수수 혐의’ 구속

●2017년 10월 10일 : 軍검찰, 박 전 대장 뇌물 및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공관병 갑질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는 무혐의 처분

●2017년 12월 13일 대법원, 박 전 대장의 민간인 신분 확인. 수원구치소로 이동.

●2018년 1월 30일 수원지법 보석 허가, 수원구치소서 석방

●2018년 7월 18일 검찰, 징역 5년, 벌금 1억원 구형

●2018년 9월 14일 수원지법,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벌금 400만 원과 추징금 184만1600원) 선고.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진행 중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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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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