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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한민국 핫 피플 6人(6)] ‘송중기와 동급’ 베트남을 사로잡은 민간외교관 박항서 

“한국 만나면 이기겠다. 그래도 나는 한국사람” 

아시안게임 최초 4강 진출 등 새 역사 쓰며 국민 영웅으로… 목표의식에 단결심·자존심·투지 등 더해 ‘베트남 정신’ 완성

▎박항서 감독이 10월 18일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베트남 대표팀은 11~12월 동남아 일원에서 열리는 AFF 동남아축구선수권(스즈키컵)에 출전해 10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다. / 사진·연합뉴스
올여름 베트남에는 ‘박항서 열풍’이 몰아쳤다.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인 박항서(59) 감독은 한류스타 송중기와 맞먹는 인기를 누린다.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음식 쌀국수와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을 합해 ‘쌀딩크’라 불린다. 베트남 축구팬들이 “쌀딩크, 베트남으로 귀화해 주세요”라고 요청할 정도다. 수도 호찌민 시민들은 박 감독을 ‘박 선생님’이라 부르는데, 베트남에서는 극존칭이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서 4강 신화를 썼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 211개국 중 랭킹이 102위에 불과한 동남아시아 축구 약체다.

하지만 박 감독이 ‘항서 매직’을 이뤄냈다. 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강호 일본을 꺾고 조 1위에 올랐다. 16강에서 바레인을 제압했고 8강에서 시리아를 눌렀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출했다. 비록 조국 한국에 패하면서 질주를 멈췄지만, 분명 위대한 도전이었다. 앞서 박 감독은 지난 1월 아시아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이끈 데 이어 또 한 번 베트남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박항서 신드롬’은 태풍급으로 발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광화문을 붉게 물들였다. 16년이 흘러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베트남이 난리가 났다. 9000만 명 베트남 국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단체응원을 펼쳤다. 경기 당일 베트남 기업과 공장들은 1~2시간 단축근무를 할 정도였다.

수도 하노이 시내에는 베트남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휘날렸다. 박항서 감독 실물 크기의 입간판까지 등장했다. 꽹과리를 치는 베트남인도 있었다. 베트남 팬들은 “생큐 박항서, 생큐 코리아”를 외쳤다. 베트남 언론들은 ‘박항서 매직’을 대서특필했다.

9월 2일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과 특별기를 타고 베트남에 금의환향했다. 공항에서 소방차 2대가 쏘는 물대포 사열을 받았다. 비행기 앞에 깔린 레드카펫을 밟았다.

베트남 각지에서 축구대표팀을 위한 포상금만 1억원 넘게 모였다. 베트남에서 쌀국수 한 그릇이 1500원 정도고, 베트남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385달러(약 264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가 직접 박 감독을 격려했다.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 베트남에서 출간됐는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름 비슷한 박카스 베트남서 280만 병 팔려


▎9월 2일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과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를 환영하는 행사가 열린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이 팬들로 가득 찼다. 박 감독은 아시안게임 사상 첫 4강 신화를 이룬 베트남 축구대표팀과 함께 이날 금의환향했다. / 사진·연합뉴스
베트남에서 박 감독은 한류스타 송중기·송혜교 못잖은 스타 광고모델이다. 삼성전자 TV, 종가집 김치, 득비엣 소시지, 신한은행 등의 광고에 출연했다. 박 감독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동아제약 ‘박카스’는 출시 4개월 만에 280만 병이 팔렸다. 박카스 제조사인 동아제약의 지주회사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주가는 13% 치솟았다.

매니지먼트사인 DJ매니지먼트의 이동준 대표는 “광고모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감독님이 현지에서 식당에 가거나 택시를 타면 돈을 안 받으려 한다. 리조트들은 한 번만 와 달라고 사정할 정도”라고 전했다. 박충건(59) 베트남 사격대표팀 감독은 “박 감독님이 베트남에서 축구를 ‘킹스포츠’로 만들었다. 요즘 베트남인들은 식당에서 김치를 먹고, 한국 TV프로그램을 시청한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잡초’ 같은 축구인생을 걸어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4강에 올랐다. 하지만 그해 아시안게임 감독을 맡아 4강에서 탈락하자 경질됐다. 한양대 출신인 박 감독은 아시안게임 감독에 내정됐을 때부터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닌 ‘비주류’라며 헐뜯는 얘기에 시달렸다. 갈 곳이 없던 박 감독은 3년 후배 최순호 당시 포항 감독 밑에서 코치직을 맡기도 했다.

박 감독은 K리그 경남·전남·상주 감독을 지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워낙 불같은 성격이라 구단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K리그 1, 2부도 아닌 3부리그격인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 생활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1959년생 박항서는 일반직장으로 치면 정년퇴직까지 염두에 뒀다.

그런데 어느 날 박 감독의 부인이 “동남아 쪽을 알아보는 게 어때?”라고 물었다. 에이전트 이동준 대표가 박 감독과 베트남을 연결시켜 줬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직은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이라 불렸다. 단기간에 성과를 못 내면 곧장 잘렸다. 박 감독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U-23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처음에는 베트남 현지에서 박 감독을 두고 “한국 3부 리그 출신 감독(내셔널리그 창원시청)이 말이 되냐”며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박 감독은 K리그 상주 감독 시절 벤치에 앉아 졸고 있는 듯한 모습 탓에 ‘슬리핑 원(Sleeping one)’이라 불렸다. 조제 모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별명 ‘스페셜 원(특별한 존재)’에 빗댄 조롱 섞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박 감독은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베트남에 다가갔다. 이동준 대표는 “당시 감독 지원자가 300명에 달했다. 박 감독님은 베트남축구협회 임원 면접 때 손을 머리 위에 대고는 ‘난 키가 작아 베트남 선수들 비애를 잘 안다. 작지만 빠르고 기동력 있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임원들이 크게 웃으며 ‘당신 축구를 이해하겠다’고 호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베트남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약 165㎝인데, 박 감독은 선수 시절 165㎝ 키로 악바리 같은 플레이를 펼쳤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처음 맡았을 땐 속된 말로 ‘당나라 군대’ 같았다. 선수들은 식사시간에는 서로 대화 없이 각자 휴대전화만 쳐다봤다. 더운 날씨 탓에 경기든 훈련이든 시간이 절반 정도 지나면 선수들은 쉽게 지치고 포기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뒹굴며 고정관념을 하나씩 무너뜨렸다. 박 감독이 분석했을 때 베트남 선수들은 ‘체격’이 작을 뿐 ‘체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민첩하고 스피드가 뛰어났다.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던 피지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밤마다 30분씩 상체 강화 트레이닝을 했다. 오리고기, 우유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권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체질 자체를 바꿨다. 물론 베트남 고유문화는 인정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보통 오전 5시 기상해 6시쯤 출근한다. 박항서 감독은 이런 아침형 생활패턴에 맞춰 훈련시간을 앞당겼다. 또 낮잠 자는 문화를 인정했다.

아시안게임 당시 베트남은 파이브백(수비 5명)을 세운 뒤 역습하는 실리축구를 펼쳤다. 신장은 작지만 심장은 컸다. 베트남 선수들은 후반 15분 이후에 더욱 강해졌다 연장전에 돌입해도 쉽게 지치지 않았다. 경기 내내 줄기차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박 감독의 ‘족집게 용병술’도 통했다. 16강과 8강에서 교체로 넣은 선수들은 잇따라 결승골을 터트렸다.

선수 발마사지 해주는 ‘파파 리더십’


▎베트남이 올해 1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자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환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 감독은 선수들을 자식처럼 챙기는 ‘파파 리더십’을 펼쳤다. 아시안게임 때 베트남 한 선수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8초짜리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영상에는 박 감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사지기를 들고 베트남 선수의 발을 정성스럽게 문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선수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감독님’이란 글과 함께 베트남 사회에 빠르게 퍼졌다.

박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한국어로 베트남 통역을 통해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 감독은 “우리는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데 성공했다. 우리는 베트남이다. 절대 멈추지 않는다. 오케이?"라고 선창하면, 선수들이 “오케이“라고 답했다. 이 동영상 역시 유튜브를 통해 전파돼 베트남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베트남 선수들도 인간미 넘치는 박 감독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선수들은 박 감독을 ‘짜(Cha)’, ‘타이(Thay)’라 부른다. 베트남어로 ‘아빠’ ‘스승’이란 뜻이다.

사실 박 감독은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부터 ‘형님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코치를 맡아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했다. 폴란드전에서 첫 골을 터트린 황선홍은 히딩크 감독이 아니라 박항서 코치에게 달려와 안겼다.

박항서는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감독 시절 생일을 맞은 선수에게 책을 선물했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게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책을 골라줬다.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챙겼다. 첫 페이지에는 손편지를 남겼다. 선수들은 ‘감독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총칼을 겨눈 사이다. 하지만 ‘민간외교관’ 박 감독 덕분에 인구 9000만의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올랐다. 요즘 한국 관광객이 베트남 식당에 가면 ‘박항서의 나라’에서 왔다며 음료수를 서비스로 준다. 음식 값을 아예 안 받는 곳도 있다.

박 감독은 10월 16일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에 왔다. 10월 30일까지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 머물며 훈련했고, 한국팀과 연습경기도 가졌다. 베트남은 11~12월 스즈키컵(AAF 동남아축구선수권)에서 ‘라이벌’ 태국을 꺾고 우승하는 게 목표다. 축구에서 베트남-태국은 한국-일본처럼 앙숙이다. 박 감독은 한국 축구를 벤치마킹하고 한국축구의 기(氣)를 받기 위해 조국으로 날아왔다.

덕분에 베트남 언론들은 한국 축구를 주목했다. 최근 한국을 찾는 베트남 관광객들도 급증했다. 베트남에서 박 감독의 고향인 경남 산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여행상품 개발을 위해 베트남 항공사와 여행사가 답사에 나설 정도다.

베트남에서는 한국 특산품 인삼의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박 감독이 선수들 체력 개선을 위해 인삼을 먹였다는 사실이 베트남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인삼 가공품이 아니라 약탕기로 직접 달여 먹였을 정도다. 박 감독이 ‘한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네티즌들은 ‘당신이 진정한 애국자’ ‘대형 외교 못지않은 업적이다’ ‘한국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바꿔버렸다’ ‘훈장을 줘야 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베트남서 한국 인삼도 인기…진정한 한류 전도사


▎히딩크 감독과 박항서 코치(가운뎃줄 왼쪽)가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미국 대 포르투갈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베트남과 2020년까지 계약한 박 감독은 월급 2만2000달러(약 2500만원)을 받고 있다. 루이스 밀라(스페인) 인도네시아 감독(16만 달러)의 8분의 1이다. 베트남 언론들은 ‘적은 돈을 받고 헌신하고 있다. 적합한 대우를 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박 감독은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 박 감독은 평소엔 수행원 없이 백팩을 직접 매고 다닐 만큼 소탈하다. 고향인 경남 산청 사투리를 쓰는데, 말투에는 겸손이 묻어 나온다.

‘베트남 히딩크’란 단어를 꺼내면 박 감독은 “아이고~ 제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 것뿐”이라며 “베트남에서 거둔 작은 성적 때문에 ‘베트남 히딩크’ ‘민간외교관’이란 멋진 수식어가 따라붙어 요즘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라고 손사래친다. 히딩크 감독을 연상시키는 어퍼컷 세리머니에 대해서도 “연출하거나 그런 성격이 못 된다. 어느 순간 느낌이 온 대로 했을 뿐”이라며 쑥스러워했다.

박 감독은 ‘발마사지 동영상’에 대해서도 “부상자를 확인하러 의무실에 자주 간다. 의무진이 한두 명밖에 없어 손이 모자라다 보니 도운 것뿐이다. 언론에서 ‘파파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전 어떤 목적을 두고 선수들을 가르친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사실 모든 걸 내려놓고 베트남에 갔다. 베트남 문화, 선수들, 국민들 모두 존중하려 했다”며 “난 리더십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저 누구에게나 진정성 있게 대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선수들에게 마음을 전달할 방법이 스킨십뿐”이라고 말했다. “발마사지 하는 게 찍힌 줄도 몰랐다. 실은 소집 기간에 소셜미디어를 금지하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 한 번 봐줬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베트남 정부의 고위직들은 박 감독에게 “어떻게 3개월 만에 베트남 축구를 바꿨나?” “어떻게 베트남 정신을 살아나게 만들었는가”라고 물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정신이 무엇일까’ 자문자답했다. 베트남 선수들에게 직접 토의를 해보라고 한 뒤 스스로 해답을 찾았다.

박 감독은 “첫째는 단결심, 둘째는 자존심, 셋째는 영리함, 넷째는 불굴의 투지다”면서 “여기에 내가 봤을 땐 베트남인들은 목표의식이 굉장히 강했다. 리더를 믿고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선수들에게 목표의식을 더해 ‘베트남 정신’을 완성한 것이다.

베트남 대 한국의 아시안게임 4강을 앞두고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박 감독이 가슴에 손을 올린 모습은 한국은 물론 베트남에서도 화제가 됐다. 박 감독은 “난 언제 어디에 가든 대한민국 사람이란 걸 잊지 않고 있다. 국가가 나오면 국가에 대한 예를 표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난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지금은 베트남 축구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물론 국제대회에서 한국을 만나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때도 애국가가 나오면 가슴에 손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마지막으로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축구팬들이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경기력으로 한국 축구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박린 중앙일보 축구 전문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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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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