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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財테크 | 고란의 ‘알(면)쓸(모있는)신(기한)재(테크)’(8)] 눈 뜨고 코 베이는 ‘사기 코인’ 분별법 

‘보물선 인양 사기’ 신일그룹, 이번엔 ‘금광 코인’으로 유혹… 창업자·코인기술 숨기고 일확천금 내세워 다단계 회원 유치 

고란 중앙일보 기자
인간의 탐욕은 힘이 세다. 수천 년 동안, 반 발짝만 떨어져서 봐도 말이 안 되는 사기가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다. 지난 여름 코인판을 달궜던 보물선 코인 세력이 이번엔 아이템을 금광으로 바꿨다. 간판만 바꿨을 뿐인데도, 사기 일당 앞에는 돈이 쌓인다. 어떻게 하면 코인 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물선 ‘돈스코이호’ 투자 사기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신일그룹이 이번에는 ‘25조 금광 투자’를 미끼로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앞서 ‘신일골드코인’이란 암호화폐를 판매했던 이들은 ‘트레져SL’ 코인을 새로 만들어 수백, 수천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현혹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신일그룹의 기자간담회장에 놓여있는 돈스코이호 모형.
● 신일그룹 “그룹 명칭 ‘SL블록체인그룹’으로 바꿀 것”(뉴시스, 2018년 9월 12일)

● 보물선 사기의혹 ‘신일그룹’, 조만간 新 사이트·백서 공개…코인 이름도 ‘SL코인’으로 변경(서울경제, 2018년 9월 12일)

● 신일그룹, SL블록체인으로 변경…사업 재개(팍스넷데일리, 2018년 9월 13일)

● 보물선 의혹 SL블록체인그룹, 사기 의혹 탈피 안간힘…(tvcc, 2018년 9월 15일)

누가 믿을까 싶었다. 사기로 판명 난 사건이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보물의 존재는 의심스러웠고, 이걸 물 밖으로 건져 낼 만한 자본력과 기술력은 도대체 믿음이 안 갔다. 지난 여름, 신일그룹이 보물선(돈스코이호)을 인양하겠다며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끌어 모으려던 일은 미수로 끝났다. 19세 기판 전설을 누가 믿을까 비웃었지만 100억원에 육박하는 돈이 모였다.

‘150조원 규모의 보물이 바닷속에 있다’는 ‘뻥’은 ‘뽕’ 마냥 뇌를 마비시켰다.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말이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하려다 보니 뇌 구조가 새로 조직된다. 처음엔 미심쩍었던 부분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일말의 거짓도 없는 팩트(사실)가 된다. 사기단 멤버의 일부가 구속됐는데도, 사회가 우리의 진심을 몰라준다며 ‘정신승리’를 외친다.

지난 9월, 앞서 거론된 기사가 등장했어도 전혀 의심치 않았다. 이름을 바꾼다고 누가 속아 넘어갈까. 생존을 위한 사기단의 마지막 몸부림쯤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팩트보다 강했다. 뇌가 재구조화된 이들은 사기단의 속 보이는 거짓말에 또다시 투자로 화답했다. 그렇게 당했는데도 또 당하는 일이 벌어진 거다.

이번엔 보물선 아니라 금광으로 사기?


▎트레져SL 코인 홈페이지. 개발자와 블록체인 기술이 제대로 공개돼 있지 않고 문의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구글플레이 스토어의 어플리케이션 사용자 리뷰는 칭찬 일색이다. / 사진캡처·구글플레이 스토어
사기 코인의 주범들은 모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제보를 받았다. 일당 중 일부가 보물선이 아니라 이번엔 금광을 미끼로 코인 사기를 친다고.

지난 10월, 이미 다른 언론(MBC)이 [[단독] ‘보물선’ 현혹하더니 이번엔 ‘25조 금광’…영장 신청]이라며 이들의 사기 행각을 알렸다. 하지만, 여론은 주목하지 않았다. 이 뉴스를 받아쓰는 매체는 거의 없었다.

덕분(?)에 뉴스가 나간 뒤에도 이들은 버젓이 사업을 이어갔다. 홈페이지와 관련 밴드·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코인(트레져SL)을 판매했다. SNS에 나와 있는 안내에 따르면, 코인은 5차례의 프라이빗세일을 통해서만 진행된다. ICO(Initial Coin Offering, 암호화폐를 활용한 크라우드펀딩)는 실시하지 않는단다. 회차가 올라갈수록 코인 판매 가격은 높아진다. 잠재 투자자들의 몸을 달게 만드는 구조다. 마지막 5차 판매는 11월 15일부터 23일까지. 상장은 11월 30일 금요일 오전 9시란다.

‘촉’으론 100% 사기 같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프로젝트를 꼼꼼히 따져보기로 했다. 홈페이지(tslcoin.net)에 접속했다. 제법 그럴 듯해 보였다.

사이트 분류 항목 가운데 ‘Block Explorer’라는 것을 클릭했다. 말 그대로, 해당 블록체인의 블록 상태를 보여주는 항목이다. 이더리움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이더스캔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클릭해 봤더니 블록은 11월 13일 현재 6만 블록을 넘어섰다. 이상한 건 이더스캔이 최근 50만 개 블록의 기록을 보여주는데 반해, 이곳에선 오직 최근 100개 블록의 기록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코인 전송에 따른 수수료 부분이 확인이 안 된다. 전송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일까. 전문가가 아닌 필자가 보기에도 뭔가 이상하다.

백서도 살펴봤다. 앞서 신일골드코인이 스캠(사기)이라고 비판받은 이유 중에 하나가 ICO를 진행하는데 백서조차 공개가 안 됐다는 점이다. 이를 의식한 때문인지 이번엔 백서를 한글은 물론, 영문으로도 준비했다.

한글 버전의 백서를 살펴봤다. 형식은 갖췄는데 역시 뭔가 어설프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인데도 관련 기술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는 점이 거슬린다. 또, 프로젝트 개발팀의 리더를 ‘송명호’로 소개한 점도 찜찜하다. ‘송명호’라는 이름은 지난 7월 유지범씨에 이어 등장한 싱가포르 신일그룹 회장의 이름과 같다. 그는 신일골드코인이 문제가 되자, 자신을 미국 사모펀드의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미국 국적자라고 주장하며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송 회장이 백서에 등장하는 송명호와 동일 인물이라면 그는 금융 전문가인 동시에 세계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블록체인을 개발한 개발자라는 의미다.

백서에는 대놓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8. 트레져SL 보상 시스템’ 항목에는 ‘본 발명을 설명함에 있어 관련된 공지 기술 등이 본 발명의 요지를 흐리게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고 쓰여 있다. 더 이상의 질문을 사전에 차단하는 설명 기술이다.

영문판 백서도 있다. 하지만, 다른 프로젝트가 글로벌을 지향하면서 영어 버전을 먼저 만들고 이를 번역한 것과는 달리 이 프로젝트는 국내 투자자가 우선이다. 영어 백서이지만 그래픽은 한글로 표시돼 있다(대부분의 프로젝트는 그 반대다. 한글 백서에 들어간 그래픽 글자가 영어인 경우가 많다).

아직 상장이 안 됐기 때문인지(첫 상장은 11월 30일 이뤄진단다) ‘국제 거래소’ 항목은 작동하지 않는다. ‘트레져SL’ 항목 역시 활성화가 안 됐다.

‘전자지갑’ 항목을 클릭하면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을 수 있는 구글플레이 스토어로 연결된다. 11월 13일 현재 363명이 앱에 대해 평가했다. 평가 내용을 보니 사이비 종교 집단 수준의 찬양이 넘쳐난다.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회원 가입을 시도했다. 분명 ‘간단한 정보 입력으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고 나와 있다. 그렇지만, 이름·주소 및 비밀번호를 넣고 가입하려 해도 가입이 거부됐다. ‘에러: 이 사용자명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사용자명을 입력해 주십시오’라는 안내가 뜬다. 추천인 아이디를 넣지 않아 벌어진 일로 짐작된다.

백서 내용 허술… 추천인 없이 회원 가입 불가


▎신일그룹은 사명을 ‘SL블록체인그룹’으로 바꿨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광산그룹(PT. Koin Industri)과 금광물 공동개발 협약을 맺었다고 밝혔지만 이 업체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 사진캡처·SL블록체인그룹 블로그
회원 가입을 포기하고 SNS를 뒤져봤다. ‘트레져SL’ 코인을 검색하니 한 블로그가 나왔다. 대강 훑어봐도 상위 사업자 냄새가 폴폴 난다. 낯 뜨거운 찬양이 넘쳐난다. 10월 15일에 올라온 글인데, 광신도 집단의 자기 확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12만 SL블록체인그룹 전체 회원님들께 알려드립니다. Treasure SL 코인의 가치는 우리가 상승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자, 금수저가 되는 날이 D-36일 남았습니다. 한 달 동안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부자·금수저가 될 자신에게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미쳐봅시다. (…) 우리 코인의 가격은 상장 후 수백 배, 수천 배 상승할지, 그 이상 얼마나 상승할지 모릅니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수천만 원까지 상승할 거라 예견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강남 테헤란로 인근을 평정했던 코인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먼저 비트코인 그래프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비트코인에 투자하기엔 늦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실망하는 고객들에게,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여지를 던진다. “대신 OO코인이 있다”고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비트코인을 능가하는 대박이 가능하고, 그 기회는 지금 옆에 있다고 유혹한다.

‘우리 코인은 가지고 계시면 금화로 교환 지급되는 세계 최초의 실물 이익 교환 암호화폐이며, 금수저가 되는 열쇠입니다.’

백서와는 상관 없는 내용이다. 백서에는 트레져SL 코인이 결제 코인이며, 보안성이 뛰어나고 송금 속도가 빠르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블로그에는 코인을 금화로 바꿔 준다고 광고한다. 백서에는 없는 내용이다.

검색해 보니 관련 내용이 등장하기는 했다. 인도네시아 광산그룹과 금광물 공동개발 협약을 맺었다는 10월 말 기사다. 아마 금광 개발을 통해 나온 금을 트레져SL 코인과 교환해주겠다는 의미 같다. 그런데 기사에 나온 인도네시아 기업의 이름이 ‘갓(God)구글’ 시대에 좀처럼 검색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위법 사실이 발견됐다. 참여방법이다. ‘이더리움, 현금, 부동산(아파트·빌라·토지 등), 동산(자동차 등) 모두 가능하다. 다만, 이더리움은 5이더(약 120만원) 이상, 현금은 100만원 이상 가능하다. 현행법 상 수신(受信) 행위, 곧 일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으려면 정부로부터 인가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은행이나 저축은행은 인·허가를 받은 금융기관이다. 그렇지 않은 곳이 일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으면 유사수신행위다. 법적 처벌 대상이다.

정부가 ICO를 금지한다고 했지만, 암암리에 ICO가 이뤄지는 건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투자금을 이더리움으로 받는다면 이를 이더리움과 그에 상응하는 토큰을 교환하는, 일종의 물물교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사회통념상 이더리움이 금전적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사수신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

트레져SL 코인의 경우엔 명백한 유사수신이다. 암호화폐(이더리움)는 물론이고 동산·부동산, 심지어 현금으로 투자해도 된다.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난 프로젝트라도 이런 식으로 자금을 모집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코인 사기 판별법… 5가지 얘기하면 사기


인간의 탐욕은 힘이 세다. 탐욕 탓에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어떻게 그런 보물선 사기에 속아넘어 갔느냐고 손가락질 받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번엔 금광 사기에 열광한다. 어떻게 하면, 코인 사기 당하지 않을까. 판매자가 다섯 가지 종류의 얘기를 한다면 사기를 의심해 봐야 한다. 트레져SL 코인의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①현금으로 투자해라?

=유사수신행위다. 정상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라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혹은 다른 플랫폼 알트코인으로 투자금을 모집한다. 현금으로 투자금을 모은다면 그 재단은 유사수신 혐의를 받기 쉽다. 정상적인 재단이라면 절대 현금으로 투자 받지 않는다.

②다단계 방식으로 판매?

=‘특별 인센티브 지급: 추천자는 참여자가 지급받는 코인의 50%를 인센티브 코인으로 지급 받으며, 직계 상급자 한 사람만 직위(지사장·본부장·팀장·센터장·자문위원)에 관계 없이 10%의 인센티브 코인을 지급합니다. 산하 회원님들이 많으시고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수록 직계 상급자 한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많은 코인을 인센티브로 지급받게 됩니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다단계 판매원에게 지급하는 후원수당 총액은 매출액의 35% 이내로 제한된다.

③인생역전의 수익을 약속?

=‘금화와 금괴가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 상장 후 가격이 어디까지 치솟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 우리는 상장 후 6개월 안에 세계 시총 1위로 올라설 것입니다.’ 비트코인의 시가 총액이 1110억 달러(약 125조원, 11월 13일 현재) 정도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려면 선채굴량이 약 33억 개이니, 6개월 후에는 개당 코인 가격이 약 34달러, 곧 3만8000원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첫 번째 프리세일 가격이 100원, 마지막 5차 가격이 500원이다. 시가총액 1위가 되겠다는 건 투자자들에게 많으면 380배, 적어도 76배의 수익이 가능하다고 약속하는 셈이다. 리스크가 없는데 이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금융상품은 장담하건대, 인류 역사 이래 전무했다.

④문의는 비공개로?

=‘자세한 참여안내: 상급자, 전문위원에게 문의 및 접수, 고객센터는 일절 문의 및 접수받지 않습니다.’ 고객센터의 존재 이유가 의문이다. 궁금한 게 있어도 고객센터가 아니라 상위 사업자에게 연락하란다. 회원 가입도 추천인 아이디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문제될 게 없다면 오히려 적극 알릴 일일 텐데, 뒤에서 쉬쉬하며 아는 사람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한다. 뭔가 켕기는 게 있다는 의미다.

⑤베일에 쌓인 창업자?

=‘신비’ 콘셉트는 신곡에나 어울린다. 오픈 소스 정신에 입각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공유가 기본 정신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선 유명인만한 ‘미끼’도 없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자면, 모든 프로젝트가 개발진 이력을 부풀리거나 유명인을 어드바이저로 영입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그런데 트레져SL 코인은 홈페이지나 백서에 개발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송명호’라는 사람이 프로젝트 리더라고만 명시됐을 뿐이다. 신원이 드러날 경우엔 수사기관의 표적이 될 우려가 있어서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 고란 - 2003년 중앙일보에 입사, 주로 경제 분야를 담당했다. 대학 졸업 후 6개월 은행에 몸담은 걸 빌미삼아 ‘반 금융인’이라고 주장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열어갈 ‘토큰 이코노미’에 관심이 많다. ‘암호화폐의 정석’에 해당하는 [넥스트 머니]를 지난 6월 출간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재테크 및 암호화폐 시장과 관련한 ‘고란의 어쩌다 투자’ 코너를 연재 중이다.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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