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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의 쿠바탐험 | 부에나 비스타, 아바나(마지막회)] 고립을 이겨내는 쿠바의 3가지 저력 

카리브 혁명은 그들의 삶 속에 살아숨쉰다 

김해완 작가
최악의 경제봉쇄 극복 위한 변화와 개방 시도 이어져…혁명의 명분 사라졌지만 ‘쿠바식 사회주의’ 실험은 여전

▎말레꼰의 석양. 매일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고 있지만, 지극히 쿠바다운 이 아름다운 카리브해의 풍경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2014년, 세계인들은 격세지감을 느낀다. 미국의 오랜 원수,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북한과 더불어 ‘악의 축’으로 불렸던 쿠바가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서 해제됐다. ‘국교 정상화’라는 선언과 함께 이 카리브해의 섬에도 끝내 오지 않을 것 같던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첫 삽을 뜬 것은 당시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였다. 그는 몸소 쿠바를 방문해 이제 낡은 시대는 갔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봄바람이 되어 쿠바인들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정말, 봄이 온 걸까?

다음 화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가 바로 세상사다. 오바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연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었고, ‘돈이 최고’라는 기치 아래 전통적인 정치 노선을 싹 무시하고 있는 트럼프는 쿠바가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쿠바에 대한 호의적인 외교 정책을 하나씩 철회하더니, 작년에는 아바나에 있는 대사관까지 문을 닫았다. 경제 봉쇄 역시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쿠바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시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다. 드라마에는 주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바마는 ‘낡은 시대가 갔다’고 말했지만, 시대의 변화가 미국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다는 법은 없다. 시대의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파도다. 물론 그 파도 앞에서 강대국은 튼튼한 선박으로, 약소국은 빈약한 뗏목으로 맞선다는 부정할 수 없는 차이가 있긴 하다. 그런데 쿠바는 낡디 낡은 뗏목으로 풍파를 피하는 내공을 지금까지 보여왔다. 쿠바는 세상사라는 드라마 속에서 조연 중의 조연이다. 그러나 이 조연은 관객으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미친 존재감’을 내뿜는다. 각 스텝마다 남들이 예상하는 시나리오대로 가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등, 어떤 이름표로도 이 나라의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를 정의할 수는 없으리라.

가난하지만 남다른 가능성을 가진 쿠바


▎만인의 평등을 추구하는 쿠바에서도 빈부격차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얼굴을 드러낸다. 아바나의 베다도 지역에 있는 공동묘지. 돈이 있는 사람들은 가족 묘지를 이렇게 화려하게 장식한다.
변화의 파도는 쿠바로 밀려오고 있다. 트럼프가 제 아무리 ‘반(反) 쿠바’를 선언한다고 해도 소용 없다. 이것은 오바마도 트럼프도 컨트롤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흐름이다. 쿠바는 ‘외국 자본 유입’과 ‘쿠바 고유의 철학’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시스템 자체에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쿠바인들은 불평하는 와중에도 자국에 대한 자긍심을 버리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중이다. 그 강인한 모습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조연에게 주연의 법칙을 따르라 요구하지 말고, 조연이 주연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라고. 조연이든 주연이든, 다들 자기만의 드라마 속에서 자기만의 싸움을 한다고.

쿠바는 가난하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쿠바의 현실에 산적한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경우 그 원인은 자금 부족이다. 사회 시스템은 쿠바 혁명의 철학대로 건설해 놨는데 이를 운용할 돈이 부족하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부정, 무책임, 권력 남용과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 자급자족이 안 되는 경제구조 상 외국 자본의 유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의 원칙을 따르는 외국 투자자의 입맛에는, 시장 가격을 무시하고 무조건 자국민부터 보호하는 쿠바의 시스템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쿠바인에게는 1억짜리 집이 외국인에게는 10억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투자하려는 이는 적으리라) 결론은 돈을 벌려면 시스템을 바꾸고 자유 시장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건데, 이 경우에는 쿠바 혁명의 숙원이었던 빈부격차 해소가 불가능하게 된다. 실제로 빈부격차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그 속도를 조절해 보려고 쿠바 정부가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쿠바의 고난은 과거 식민지였고 현재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사는 약소국들의 공통 운명이다. 카리브해의 또 다른 섬나라,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현재 프랑스령으로 남아 있는 마르티니크의 지성인 에메 세제르는 한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르티니크인에게는 ‘자기가 주인공을 맡아야 할 드라마에서 한갓 조연에 불과하다는 감정을 가진 주민의 초조함’([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으로 남을 것이다], 그린비)이 있다. 마르티니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프랑스의 삶의 양식을 쫓아간다면 이 불안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에 관한 모든 것과 단절하고 하루아침에 독립하는 시나리오 역시 사상누각이다. 아이티를 보라. 이 나라는 화려하게 혁명에 성공했지만, 혁명을 지탱할 능력이 없어서 곧바로 부패하고 수많은 국민을 절망에 몰아넣었다.” 한마디로, 그는 약소국이라면 피할 수 없는 정체성의 독립과 경제적 독립 사이의 딜레마를 지적하고 있다.

생활 속에 자리 잡은 혁명의 정신


▎현장 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의 해맑은 모습. 사교육도 없고 경쟁도 없는 쿠바에서 ‘학생’이란 친구들과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자격을 뜻한다.
우리가 쿠바의 저력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이 작은 섬나라는 세제르가 제시한 두 가지 문제를 푸는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완전히 실패하지도 않았다. 스페인의 식민지로서 세계사에 등장한 쿠바는 독립 후 미국과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생존했고, 지금은 중국 자본과 마이애미 송금액에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쿠바’라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완전히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는 변화의 질곡을 맞이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쿠바인들은 자유 시장경제의 도입에 대해 불안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고 있지만, 외국에 지배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나 주눅듦은 없다. 시장 경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쿠바의 시스템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독립성은 반세기 넘게 자기 식대로 사회 실험을 해본 경험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설사 그 실험 중 많은 것이 실패로 끝났을지라도 말이다.

혁명은 끝났다. 그렇지만 뭔가가 남았다. 쿠바인들도 쉽사리 정의하지 못하는 그 ‘뭔가’를 알기 위해서, 여러 외국인이 생활의 불편함도 감수하고 이 나라로 오고 있다. 남한 출신의 학생으로서 쿠바에서 1년 넘게 살고 있는 필자도 이런 외국인 대열에 끼어 있다. 내가 쿠바에 오기로 계획을 세운 것은 2014년이었다. 누구는 쿠바가 완전히 개방될 때까지 기다렸다 가라고 내게 충고했고, 또 누구는 쿠바가 미국처럼 변하기 전에 얼른 가라고 했다. 그러나 변화를 기대하든 저지하든, 이는 쿠바를 대하는 옳은 태도는 아니다. 양쪽 모두 필연적으로 실망을 하게 돼 있는데, 각자가 전제한 변화의 상(想)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변화는 영역을 막론하고 정신 없이, 방향 없이, 이념과 상관 없이 벌어진다. 긍정적인 영향만큼 부정적인 영향도 일어난다. 그리고 이 양쪽을 연속된 삶으로 끌어안는 과정 속에서 ‘쿠바’의 진짜 얼굴이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발생하는 불협화음의 지점들은 올해 한 해 동안 진행돼 온 ‘부에나 비스타, 아바나’ 연재의 주제가 됐다. 관광객도 아니요 현지인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나는 아바나에 숨어 있는 여러 문제를 들여다보며 쿠바가 쿠바일 수밖에 없는 그 대체 불가능한 개성을 확인했다. 이 여정이 독자들에게도 즐거웠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 쿠바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다. 이들의 드라마는 이들의 몫이므로. 그렇지만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때로는 변치 않는 진정성으로, 또 때로는 창의적인 재-활용으로 이어질 ‘지난 혁명’의 저력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혁명은 끝났으나,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삶, 다른 가능성’의 문을 두드릴 혁명적 영감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에는 쿠바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변화도 포함된다. 60년 동안 갖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명맥을 이어온 쿠바의 저력은 어떻게 지금 여기, 한국의 삶과 만날까?

말도 많고 탈도 많긴 하지만, 쿠바의 첫째 저력은 역시 의료 부문이다. 쿠바 의료 체계의 장점이라고 하면 대부분 ‘병원비 무료’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공짜라서 혁명적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가난한 상상력일 뿐이다! 그보다 더 혁명적인 것이 바로 쿠바 의사의 파격적인 캐릭터다. 쿠바 의사의 캐릭터는 다음의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소박함, 오지랖, 멀티태스킹. 이들이 흰 가운 속에 입는 옷은 공원에서 시간을 죽이는 동네 아저씨, 아줌마의 옷과 다르지 않고, 환자들과 같은 동네에서 이웃사촌으로 살아오면서 각 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꿰고 있다. 게다가 상담사, 사회복지사, 행정가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한다.

대중을 위한 예술, 대중에 의한 의술


▎낡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센트로 아바나. 고풍스런 건물 양식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천국 같겠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동안 쿠바가 겪어온 고충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의사라는 직업에 특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의학이라는 지식 또한 특권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의학은 지식의 성역(聖域)이다.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쿠바인들은 다르다. 쿠바인들은 의대생들이 졸업하기까지 감내한 고생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지, 이들 자체가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째서인가? 보통의 지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쿠바에서 의대는 다른 전공에 비해서 입학시험 커트라인이 낮다. 철학과에 입학하려면 최소한 80점 후반의 점수를 맞아야 하지만, 의과 대학은 60점 중반이면 충분하다. 이는 의료계의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쿠바 정부의 궁여지책이었다. 덕분에 의대는 아무나 갈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쿠바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최고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이것이 쿠바 의사 혁명의 핵심이다. 쿠바는 평범한 아이를 의사로 변신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무조건 시킨다’이다. 2년 동안 쪽지시험으로 꽉 찬 커리큘럼을 통해 단련시키고, 그 다음 4년은 병원에 투입해서 의사와 똑같은 스케줄로 일하고 또 공부하게 한다. (쿠바에서는 모든 의사가 교육자다. 바쁘다는 이유로 학생의 질문을 거부하는 의사는 없다.) 그렇게 훈련받는 군인의 마음으로 6년을 보낸 쿠바의 의대생들은 졸업하자마자 세계 곳곳으로 미션을 떠난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선진국 출신의 의사들보다 훨씬 탁월하게 일을 해낸다.

한마디로, 의학 공부의 핵심은 지력이 아니라 의지력이다. 그리고 그 의지력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회다. 쿠바의 상황은 거꾸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의대와 의사가 어마어마하게 대단하다고 생각할까? 이 또한 시스템 때문이다. 한국에서 의료 영역은 특권이 세고, 의대는 비싸며, 의대 입학을 위한 경쟁은 과열됐다. 이로써 경쟁을 위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상류층 자제들이 의사가 되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다. 그러나 쿠바처럼 병원 전체가 배움의 장이 된다면 다양한 출신의 학생은 물론이고 환자에게도 의학이 오픈된다. 실제로 쿠바 환자들은 자기 병에 관한 지식만큼은 의사나 다를 바 없다. 의사에게 직접 새로운 처방전을 제안하고, 1학년 학생들에게 즉석에서 미니 강의를 해줄 정도다.

의사, 의학, 의료에 씌워진 성역의 오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의학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인이라고 해서 의학을 공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의사의 특권을 당연하다고 여길 필요도 없다. 이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쿠바 의사들은 ‘지금 여기’에서도 충분히 혁명적이다.

둘째는 극장 혁명이다. 쿠바에서 공연비는 정말로 저렴하다. 10쿱(CUP)에서 30쿱(CUP), 즉 500원에서 1500원 사이다. 그러나 쿠바인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돈보다 더 귀한 대가를 치른다. 그것은 바로 기다림이다. 주말 공연의 티켓 박스는 언제나 그 주 화요일에 열린다. 누구도 화요일 전에는 티켓을 살 수 없다. 그래서 화요일 극장 앞에는 표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표를 사기 위해서는 돈뿐만 아니라 신분증도 필요하다. 각 신분증마다 표는 딱 두 장씩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표를 암표로 판매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다른 방법이 없다. 두세 시간의 기다림을 감내할 만큼 공연을 원하는 사람이 좋은 표를 손에 쥐게 된다.

즉,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값싼 가격이 아니다. 예술 소비자와 예술 생산자의 새로운 관계다. 예술에 목마른 관객과 관객에 목마른 예술가가 만난다. 그 순간은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 연재에서 구구절절 설명했듯이, 쿠바 예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그 예술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두 발로 기다리는 관객이 있기에 가능하다. 여기에는 ‘취미 생활’ 혹은 ‘소비 생활’이라는 쉬운 단어로 환원되지 않는 태도가 깔려 있다.

가족 해체돼도 흔들림 없는 ‘공동 육아 시스템’


▎올드카의 천국인 아바나의 거리에도 비교적 최신식 자동차들이 점점 늘고 있다. 쿠바에 변화가 밀려오고 있다는 신호 중 하나다. 반세기 전의 시공간이 겹친 듯한 올드카 행렬도 서서히 자취를 감춰 갈 것이다.
이런 뜨거운 만남이 쿠바 밖에서는 귀해지고 있다. 오늘날 예술은 디지털 콘텐트를 1초 만에 지구 끝까지 보내는 4차 산업과 만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그렇게 예술의 색, 음, 몸짓, 글자를 따라 돈이 돌수록, 그 회로 안에서 창조적인 만남의 순간은 더 희귀해진다. 물론 예술이 돈과 무관하게 무조건 순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예술가도 먹고 살아야 하고, 쿠바의 경우처럼 정부가 모든 예술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까닭은 삶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는 순간들 때문이 아닌가? 돈의 논리에 갇혀 버린 일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감성을 일깨우는 것, 그것이 예술의 힘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예술적 순간을 구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가령, 각 공연마다 의무적으로 일정 부분의 좌석을 저렴한 값으로 분배하는 법을 도입하면 어떨까? 분배는 연령, 직업, 지역 별로 형평성 있게 이루어지고, 그 차액은 국가가 지불하며, 대신 타인에게 표를 양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혹은 수준 높은 관객으로서 무대에 목마른 무명의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관객이 꼭 소비만 하라는 법은 없다. 여하튼, 예술가와 대중의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쿠바는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다. 몇십 년째 돈으로 살 수 없는 예술의 감동을 주말마다 재현하고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살펴볼 쿠바의 저력은 바로 가족 혁명이다. 이혼률이 60~70%에 육박하는 쿠바에서는 한 가정에 어머니 아버지가 두세 명씩 얽혀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런 파격적인(?) 가족 형태가 쿠바 혁명의 원래 목표는 아니었다. 쿠바 혁명이 목표로 삼은 것은 양성 평등을 이룩하는 것과 종교의 보수적인 생활관을 타파하는 것이었는데, 이게 열정적인 카리브해의 연애 문화와 만나면서 ‘쉬운 결혼, 쉬운 이혼’이라는 현상으로 귀결됐다.

그러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상처받은 아이들, 혹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간직한 어른들이 넘쳐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가족 형태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쿠바 가족 혁명의 힘이다.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이 ‘친엄마’인지 ‘새엄마’인지, 혹은 ‘아빠’인지 ‘엄마의 남자친구’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개인 대 개인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친아빠인 ‘호세’보다 엄마의 남자친구인 ‘까를로스’가 나와 성격이 잘 맞아 더 가깝게 지낸다는 식이다.

이런 자유로운 관계 형성이 가능한 까닭은 쿠바인들이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핏줄과 상관 없이 말이다. 사회적으로 ‘아이들은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깔려 있다. 이 태도는 버스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아바나의 버스는 지옥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미어터진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임산부나 아이를 안은 엄마들에게는 어김없이 자리가 양보된다. 이런 점에서 쿠바는 핏줄주의에 얽힌 한국보다 한참 더 앞서 있다. 호적관계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한 생명에게 사랑을 쏟는 것이라는 태도. 이는 ‘아빠-엄마-아이’라는 가족의 삼각형에 갇힌 한국 사회보다 더 인간적이다.

소소한 혁명을 지향하는 소시민의 태도

혁명은 끝났다. 끝나야만 한다. 끝나기를 거부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고인 물처럼 썩고 만다. 그렇게 수많았던 혁명이 반동이 되고, 영웅은 독재자가 된 까닭이다.

허나 한편으로 혁명을 꿈꾸는 마음은 계속돼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은 멈출 수 없으므로. 그 옛날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그랬던 것처럼 시스템을 뒤엎을 수는 없겠지만, 물질적 풍요 속에서 무감각하게 질식되는 우리들의 삶에 샛길을 낼 수는 있지 않을까? 체 게바라를 흠모하지만 그처럼 철인 정신으로 살 자신은 없는 우리 소시민들도 삶 속에서 소소한 혁명을 꿈꿀 수 있으리라. 의대 밖에서 자발적으로 의학을 공부하는 소모임, 청년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또 전시회를 여는 커뮤니티 활동, 혹은 모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가짐처럼 말이다. 세상사의 드라마는 다음 순간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상황에서든 삶은 계속되고, 살아가는 한 언제나 새로운 삶을 상상할 여지는 있다. 이것이 쿠바가 지난 60년의 항해를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혁명’이라는 무거운 명분은 내려놓되, 혁명적으로 살아가는 영감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이것이 쿠바가 앞으로 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나는 쿠바에 계속 머무르며 앞으로의 드라마를 지켜볼 예정이다. 언젠가 다시 지면을 통해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그때까지, 아디오스!

※ 김해완 - 1993년 생. 십대에 중졸백수를 자처했으나 지금은 평범한 이십대 청년백수다.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후 남산강학원에서 5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읽고, 쓰고, 같이 사는 법을 익혔다. 2017년 9월부터는 쿠바 아바나에 정착해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른 10대의 탄생],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 [뉴욕과 지성-뉴욕에서 그린 나와 타인과 세상 사이의 지도]가 있다.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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