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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비타민 함유한 ‘장수나물’, 비름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지혈과 배앓이 약으로 쓰이고, 뿌리는 해열, 해독, 소종에 효과...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막걸리의 안주로 비름나물 즐겨

▎최근 들어 비름은 시금치 대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비름(edible amaranth)은 비름과(科)에 속하는 일년생 초본 식물로 열대에서 온대까지 60여 종이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5종이 있다. 비름은 인도 원산 식물이고, 밭가에 자라는 잡초로 키가 1m 넘게 자란다. 비름(Amaranthus mangostanus)을 참비름이라고도 하고, 이와 비슷한 털비름·개비름·청비름·눈비름 등과 구별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통틀어 비름이라 한다.

잎은 마름모꼴로 매끄러운 줄기에 어긋나게 달리고, 긴 잎자루가 있다. 어린 순을 데쳐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먹거나, 들기름에 볶아 나물로 먹기도 한다. 예전엔 일부러 심기도 했는데, 원순을 톡 자르면 옆에 새순이 또 자라나서 오래오래 따먹을 수 있다.

한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농촌을 시찰하면서 막걸리를 즐겨 마셨고, 안주로 비름나물을 좋아하였으니 그것이 기삿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에 비름나물을 많이 먹었던 탓에 그게 생각났고, 즐기게 되었던 것이다. 데쳐 무친 비름잎줄기는 약간 흙내가 나지만 맛들이면 그 맛에 비름을 먹는다. 아무튼 비름은 각종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어 ‘장수나물’로도 불리고 주로 무침, 국 등으로 요리해 먹으며, 최근에는 시금치 대용으로도 많이 쓰고 있다고 한다.

꽃은 7월 경 피기 시작하는데 잎겨드랑이에 둥글게 모여 달리지만 가지 끝이나 원줄기 끝자락에서도 핀다. 꽃은 한 꽃 속에 수술과 암술이 모두 있는 양성화로 수술은 3개이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타원형이고, 중앙에서 옆으로 갈라져서 뚜껑같이 벌어지는 개과(蓋果)이다. 개과란 채송화처럼 열매가 완전히 익은 뒤 껍질이 저절로 벌어져 위쪽이 뚜껑처럼 생긴 열매를 말한다.

요새도 필자는 늦봄 한철이면 밭에 절로 나는 참비름을 따다가 집사람과 즐긴다. 집사람 말로는 골목시장에도 나긴 하는데 의외로 무척 비싸다고 한다. 아직도 일부러 비름을 재배하여 내다 파는 곳이 있다. 양평군 개군면이 전국 비름 생산량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비름 주산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몇 번에 걸쳐 새순을 따먹고 나서 시쁘게 여겨 녀석들을 뽑아버리지 않고 내팽개쳐뒀다가는 큰코다친다. 방금 반찬거리였던 비름이 어느새 옥신각신 싸워야 하는 끈덕진 잡초 본색(본새)을 부린다. 그 인자가 어딜 갈라고. 굵은 뿌리를 깊게 내려 여간해서 잘 뽑아지지 않아 쩔쩔 맨다. 맨손으로는 절대 뽑을 수 없다.

예부터 지혈과 배앓이 등에 효능이 있어 약으로 쓰였고, 뿌리는 해열, 해독, 최유(젖이 나게 함), 소종(부은 종기나 상처를 치료함) 등에 쓴다. 타이완·중국·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여름철 채소로 비름을 가꾼다고 하는데, 외국 문헌에서는 한국에서 매우 애용하는 식물로 소개되었으니 ‘한국비름나물(Korean Bireumnamul)’을 특별히 알려주고 있을 정도다.

수은으로 살충효과 내는 식물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비름이 나는 곳에는 따라서 쇠비름이 난다. 쇠비름(Portulaca oleracea)은 쇠비름 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돼지풀이라고도 한다. 비름(A. mangostanus)과 쇠비름(P. oleracea)의 학명을 비교하면 속명이 완전히 다를뿐더러 비름은 비름과, 쇠비름은 쇠비름 과로 둘은 우리이름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과(科)가 다른 별개의 식물이다.

삶터가 꽤 유사하고, 우리이름(국명)이 비슷한 탓에 여기서 같이 쇠비름을 비교하여 다룬다. 쇠비름은 전 세계에 퍼진 외래 잡초(exotic weed)로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밭이나 언저리에서 자란다. 꽃은 가지 끝에 달리고, 6~10월에 개화하며, 꽃은 노랗다. 종자로 번식하고, 밭이나 길가에서 흔하게 자라며, 생명력이 강해서 뿌리째 뽑혀도 오랫동안 살 수 있고, 그만큼 번식이 왕성해서 농사에 큰 해를 끼치는 잡초다.

쇠비름은 잎이 말의 이를 닮았다하여 마치채(馬齒菜) 또는 말비름이라 하고, 먹으면 장수한다고 해서 장명채(長命菜), 음양오행설을 말하는 다섯 가지 기운 즉, 초록빛 잎과 붉은 줄기, 노란 꽃, 흰 뿌리, 까만 씨들이 다섯 가지 색을 다 갖췄다 해서 오행초(五行草)라고도 불린다.

줄기는 땅바닥에 짝 달라붙어 기면서 15~30㎝가량 퍼진다. 잎줄기에 물을 듬뿍 갖는 다육식물(多肉植物)로 여간해서 가뭄을 타지 않고, 뽑아서 밭둑에 던져놓아도, 줄기가 동강나도 헛뿌리를 내는 지독한 잡초이다. 잎은 타원형으로 마주 나고, 잎자루가 없으며, 다육질이다. 5~8월경에 꽃이 가지 끝에 2~5개씩 피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한낮이 되면 금세 오므라든다. 새까만 종자는 민간 약의 원료로 쓰인다.

잎을 나물이나 샐러드로 만들어 먹고, 전초(全草)를 생약으로는 쓰며, 피부영양제를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해독·이뇨제로 쓰고, 서양에서는 건위·천식·방광염에 쓰며, 간에게 왕성한 생명력을 주는 억세게 좋은 최고의 잡초로 친다. 화학성분에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이나 도파민(dopamine) 등 신경전달물질이 들었고, 베타시아닌(betacyanin)은 뇌 활동을 원활하게 하여 치매를 예방하고, 인지능력을 촉진한다. 당뇨병에 좋고, 콜레스테롤을 줄여 동맥경화를 예방하며, 호모이소플라비노이드(homoisoflavonoid)는 항암작용을 한다. 쇠비름을 끓인 물에 발을 담그면 습진이나 무좀 치료에 도움이 된다. 근래 쇠비름에 필수 지방산인 오메가3가 많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쇠비름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쇠비름과 비름의 잎에는 수은(mercury)이 소량 들어 있어 살충효과가 있다. 이들에 들어 있는 수은은 중독의 위험성이 있지만 수은은 휘발성이 강하므로 데쳐 먹으면 그 잔류 양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어쨌거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잡초는 하나도 없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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