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단독 인터뷰] ‘정중동(靜中動)’ 이완구 전 총리의 작심토로 

“文 정권, 이전 정권과 뭐가 다른가… 정권핵심들 이념편향, 전문성 결여로 민심 외면” 

글 최경호·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abcd2877@naver.com
■ 여당, 말로만 협치하지 말고 야당과 가슴 터놓고 대화에 나서라
■ 사법부 개편, 부패 척결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 파괴 말아야
■ 잇단 선거 참패가 한국당 변화의 긍정적 계기 됐다는 점에선 유의미
■ 돈 받은 사실 전혀 없기 때문에 문무일 등 상대로 소 제기할 수 있어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018년 12월 10일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진행된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온 소회와 각오를 밝히고 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다시 만났다. 6·13 지방선거 다음 날인 6월 14일 이후 반년 만이다. 당시 이 전 총리는 “남북 문제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국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생·개혁·규제완화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신경 쓰지 않으면 연말이나 내년에는 대단히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냉엄한 심판이 여권을 옥죌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전 총리는 월간중앙과 다시 만난 자리에서 작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그는 소속 정당·정파를 떠나 전직 총리로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끝내 염려를 감추지 못했다.

“40년 이상 국정에 참여한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최근 민심 이반은 정권 핵심 그룹의 이념 편향성과 정책적 전문성 결여로 인한 국정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다. 하루빨리 문 대통령은 현 상황을 제대로 돌아보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

이 전 총리와의 인터뷰는 12월 2일과 10일 두 차례 6시간 가까이 서울 도곡동 이 전 총리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긴 시간이었지만 이 전 총리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이 전 총리는 “2012년 1월 (암) 판정을 받고 10개월 투병생활을 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아주 건강하다. 아픈 사람이 언론과 만나 몇 시간씩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느냐”며 웃었다.

1. 벗어 던진 ‘성완종 족쇄’ | “사법정의 살아 있는지 묻고 싶다”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이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함으로써 이완구 전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의 족쇄를 벗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문무일 당시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장(현 검찰총장)을 비롯해 수사 검사들과 성완종 측 관련자 등 19명에 대해 2018년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개 정치인은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사건에 대해 다시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이미지가 생명인 정치인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 총리는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 왜 다시 소송에 들어갔나?

“나는 기본적으로 이 땅에 사법정의가 정립되고, 다시는 정치검찰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일념이다. 국민은 물론, 전 법조인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검찰이 얼마나 무리한 수사를 했으며, 얼마나 불법적인 수사를 했는지가 핵심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적힌 8명 가운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 두 명만 기소됐다. 관련자들을 제대로 소환했나, 조사했나. 이건 말이 안 된다. 절차상 중대한 정치적 요소가 개입됐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지 않나. 또 당시 수사팀은 재판 도중에 증거를 조작하고 폐기했다. 막판에 증거가 되는 것을 검찰은 막았다. 재판장의 명령으로 증거가 나와 무죄가 된 것이다. 현직 국회의원이자 전직 국무총리조차 이런 상황을 겪는데 일반인은 어떨까 싶다. 이 나라의 사법정의에 대해 묻고 싶다.”

극단적인 경우,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 뒤집힐 수 있진 않을까?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일은 전혀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법정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 향후 이 사건은 국정감사나 청문회에서 분명히 다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차 밝혔듯이 손해배상 금액은 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할 것이고, 모든 재판 과정과 기록은 법이 허락하는 선에서 법조인·법학대학원생·언론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이 땅에서 정치검찰은 사라져야 한다.”

이 전 총리는 충남지사 재직 시절 몇 가지 ‘감춘’ 사실이 있다. 그를 수행하는 비서들조차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첫 번째가 장남 결혼이다. 이 전 총리는 비서에게 “나 잠시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장남 결혼식에 참석했다. 청첩장을 돌리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가 장인·장모 그리고 부친 별세 때다. 장인·장모가 돌아가셨을 때 큰처남에게 ‘신문 부고란에서 내 이름은 빼달라’고 부탁했다.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는 조의금을 일절 받지 않았다. 세 번째는 땅이다. 이 전 총리는 일제강점기이던 1934년 증조부가 매입했던 땅(예산군 삽교읍)이 조부와 부친을 거쳐 자신에게 상속된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이 전 총리는 충남도청 예정지에 편입된 토지 221㎡에 대한 토지보상금 2371만원을 국고에 귀속시켰다.

2. 자유한국당과 보수의 살길 | “과거는 그만… 미래 보고 나가야”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018년 4월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성완종 리스트’ 관련 자신의 의혹을 보도한 신문 복사본을 공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완구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가 국정 운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던 집권 2~3년차에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인 그해 5월 여당의 원내 사령탑인 원내대표를 맡았고, 이듬해인 2015년 2월에는 국무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2015년 1월 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29.7%였다.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30%가 깨지면서 ‘레임덕’ 징후가 비쳤을 무렵, 박 전 대통령이 꺼낸 카드는 친박계가 아닌 이 전 총리였다. 그만큼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로 이 전 총리는 취임 70일 만에 사퇴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 게이트’ 등 일련의 사건에 휘말린 끝에 대통령 탄핵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국회와 정부를 넘나들었던 이 전 총리가 박근혜 정부와 자유한국당의 몰락을 지켜본 심경은 어땠을까. 또 그가 바라보는 한국당의 미래는 무엇일까.

“김병준, 현실의 벽 넘을 수 있을지 걱정”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에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성완종 리스트’로 사임한 이후 활동이 잦아들었는데, 그 기간 공교롭게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박근혜 정권의 붕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지금도 박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린다. 왜 인간적인 연민이 없겠나. 내가 좀 더 오래 총리직을 수행했더라면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도록 진력(盡力)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전 총리는 지난 6·13 지방선거 국면에서 김문수·남경필·유정복·김기현·서병수 후보와 충청권 3곳 등 9개 광역단체장 후보, 50여 개 기초단체 후보의 지원 유세를 다녔다. 그중에 눈에 띄는 곳은 여수였다.

지난 지방선거 때 혈혈단신 지원 유세를 다녔다고 들었다.

“호남에서 단체장 후보 중 유일하게 공천된 심정우 여수시장 후보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심 후보를 전혀 모른다. 그럼에도 지원 유세를 하러 여수까지 갔다.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수권(受權)정당을 지향하는 공당(公黨)이 어떻게 호남에 공천을 안 할 수가 있나. 또 어떻게 지원 유세를 안 할 수 있나. 2년 뒤 총선 때 호남에 무슨 낯으로 가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당직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당이 호남을 놓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생면부지의 심 후보 지원 유세를 한 것이다. 전국을 돌면서 한국당이 처한 현실을 목도하게 됐고 바뀌어야 할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더라.”

박근혜 정권 붕괴 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의 패배, 이어 올해 지방선거 대패 등이 있었다. 일련의 정치적 흐름을 어떻게 봤는가?

“정상적인 정권교체가 아니라 탄핵 이후 갑작스럽게 실시된 대선과 이어진 지방선거 아닌가? 참패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두 번 선거 참패의 의미는 역설적으로 한국당의 개혁·성찰·변혁이라는 긍정적 계기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왔다는 데 있다. 그런 충격파가 없었으면 처절한 자기 변신의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잇단 참패를 당한 자유한국당이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소방수로 영입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 위원장이 주장하는 개혁의 방향과 철학은 일리가 있다 생각하고, 또 이해한다.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당에 들어가서 개혁을 하려면 당과 국회의원 행태 등 여의도의 모세혈관까지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 정치의 미묘한 벽을 얼마나 넘을지 걱정이 된다.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지방선거 패배 후 일시 퇴장했던 홍준표 전 대표가 다시 등장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잦은 구설에 오르기는 했지만 자유한국당이 힘들 때 나름대로 야당의 존립을 위해 몸부림친 것으로 이해한다. 현 상황에서 홍 전 대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국민들과 당원들이 평가하지 않겠나. 대선과 지방선거 등 힘든 여건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2019년 2월 혹은 3월로 예정돼 있는 전당대회를 어떻게 전망하나?

“당위적으로 볼 때 당의 화합을 위한 축제의 장이 돼야 한다. 과도한 경쟁은 결코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갈등과 분열의 장으로 변질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합의 정신을 갖고 계파 간 갈등으로 다투는 모습이 재현되지 않도록 소명의식을 갖춘 당대표가 선출돼야 한다.”

전당대회에는 출마하는가?

“당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전당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일조할 생각뿐이다.”

“반문(反文)연대는 명분 약한 감정적 접근, 그러나…”


▎2015년 4월 27일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완구 국무총리가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이 전 총리가 생각하는 차기 당대표의 조건과 역할은 무엇인가?

“당의 통합과 보수의 통합을 생각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 정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은 물론 여의도 메커니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보수 가치 재정립을 위해 경륜과 정책적 식견을 갖춘 사람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희생과 헌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차기 당대표는 21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당권을 쥐지 못한 쪽에서 정치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를 얼마나, 어떻게 잘 다루느냐에 리더십이 달려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취임하더라도 계파 갈등이 지속될 우려가 있다. 전당대회가 화합과 통합의 무대가 돼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산적한 과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은 여전히 친박 대 비박으로 나뉜 채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탄핵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감정을 자제하고 냉철하게 토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 관용과 포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과거에 대해서만 얘기할 것인가. 지금은 보수의 가치·이념·정책 등 미래지향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보수 대통합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언제가 적기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가까운 선거인 2020년 21대 총선을 이기기 위해서는 보수 대통합은 필수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9곳의 광역단체 지역과 50여 곳의 기초단체 지역의 지원 유세를 다니면서 야당이 처한 현실을 목도했다. 민주당 지지율이 내려간다 해도 분열된 야당의 모습으로는 선거 공학적으로 여당을 이기기 힘들다. 야권이 통합되지 않으면 백전 필패(必敗)다. 그러나 정치는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종합예술이다. 보수 대통합을 이뤄내야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2019년 찬바람이 불 때쯤이면 움직임이 있지 않겠나.”

어떤 방식으로 보수 대통합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범야권 통합의 형태가 될 수 있고 독일의 기독민주당(CDU)와 기독사회당(CSU)처럼 야권 연합 형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일단 야권 분열은 필패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가장 바람직한 건 빅텐트라는 큰 우산 아래 모이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보수 대통합의 매개로 반문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반문연대는 명분이 약한 감정적 접근이다. 보수의 가치를 살리고 구현하는 데 정치인이 뭉쳐야지, 기껏 대통령 하는 일에 반대하면서 모이자고 하는 것은 모양새가 좀 그렇지 않나. 국민에게 희망을 준다는 차원에서 가치를 중심으로 보수 대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반문 연대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 반문연대가 빅텐트의 길을 열어주는 큰 공을 세울지 누가 알겠나.(웃음)”

태극기부대도 보수 대통합에 포함되는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극기집회에 나오는 분들의 애국심도 평가해 줘야 한다. 정치는 포용이다. 다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당에서 포용이라는 틀 속에 애국심도 녹여줘야 한다.”

한국당의 살길은 무엇일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파괴하겠다는 변화의 각오가 없으면 국민들로부터 평가받기 어렵다. 스스로 버리고 파괴해야 할 것을 찾아 개혁과 혁신을 해야 한다. 담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보수, 틀은 지키되 진보도 놀랄 청사진 제시해야”


▎2014년 8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국회 귀빈식당에서 주례회동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보수는 안보와 성장이라는 큰 두 갈래의 틀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속에서 지지를 받아왔다. 우리는 이 틀 안에서 국가 발전을 이뤄왔다. 그러나 국제 환경의 변화 등 시대적 흐름과 젊은 층 유입 등 시대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보수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직면해 있다. 그렇게 재정립된 보수 이념 아래서 구체적으로 경제·안보·노동·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진보진영조차 놀랄 만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해야 보수정당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단순히 개혁하는 척해서는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외국 사례에서 보면, 영국의 대처 수상은 노조와 맞서 영국병을 치유했고, 독일 슈뢰더 총리는 타협을 통해 하르츠 개혁을 해냈다. 토니 블레어, 빌 클린턴 등 성공을 거둔 정치인들도 모두 보수와 진보를 상충적·대립적 개념이 아닌 보완적 개념으로 승화시켜서 정책적으로 인정받았다.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보수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3.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 | “먹고사는 문제 이길 정권 있나”

이완구 전 총리는 1974년 행정고시 합격 후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LA 총영사관, UCLA 교환교수, 경찰청 등 20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이후 3선 국회의원, 충남지사, 국무총리 등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이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는 성공해야 한다. 대통령이 성공하지 못하면 국가와 국민이 실패한다”면서 “총리를 해보니까 정파를 떠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냈다. 그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국정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야당의 고언과 우려를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여론조사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등 민심이반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저자세로 서두른다는 인상을 주는 남북관계 및 과도한 노조 친화적인 정책, 검증되지 않은 정책적 오류와 실책, 적폐청산의 피로감 등 다양한 요인이 국민의 실망감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생긴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감이 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이기는 정권은 없었다. 40년 이상 국정에 참여한 내 입장에 봤을 때 정권 핵심 그룹의 이념 편향성, 정책적 전문성 결여로 인한 국정 이해 부족으로 생겨난 결과다. 지속되면 큰일난다. 지지율이 무서울 정도로 빠져나갈 것이다. 하루빨리 문 대통령은 현 상황을 제대로 돌아보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공무원 증원을 계획하고 있다.

“공무원 증원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공무원이 늘어나면 조직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해야 할 일거리를 만들어낸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규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실업 차원에서 공무원 증원을 다뤄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일본은 기업의 일손 부족으로 향후 5년간 최대 34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공공기관은 절대 만들 수 없다. (공무원 증원 계획은) 국정 경험 미숙에서 나온 정책으로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높은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올바른 모습인가. 이렇게 가다간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 있다.”

“전임(前任)이라고 무조건 적폐로 몰아서야 되겠나”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 때 국회 대표로 방북한 이완구 자민련 의원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2년차 들어서도 적폐청산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얘기는 꼭 문재인 정부에서 참고했으면 한다. 13년 동안 충남을 이끈 심대평 전임 지사에 이어 2006년 충남지사에 취임했다. 그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사람은 아니었지만 심 전 지사를 13년 동안 모신 비서실장을 비롯해 7명의 비서 등 단 한 사람도 바꾸지 않은 것이다.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가 하면 법무부에 연락해 도지사 특별 보좌역으로 검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그를 법무 특보로 근무하게 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든 도지사든 당시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있기에 그 나름대로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었겠나. 그래서 시대와 기준에 따라 전임을 모두 적폐로 몰아가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국정운영을 해보면 공과(功過)가 있고 그건 지도자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떤 정권과 정부가 고민을 하지 않았겠는가. 과거 정권들의 사명과 고충, 정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화해와 포용, 협치(協治)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한마디 더 보태고 싶다. 어떤 사유(思維)·사상·이념도 태동(胎動) 단계에서부터 모순(矛盾)이 내재돼 있다. 이를 깊이 인식하고 경계해야 한다. 하물며 정책은 어떻겠는가.”

협치 없이도 문재인 정부가 역대 어떤 정권의 2년차보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 않나?

“2000년 DJP 공조(公助) 시절 자민련(자유민주연합) 원내 대표를 맡았다. 나는 협치의 정치적 성과를 누구보다 잘 안다. 2014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에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했다. 카운터 파트너였던 박영선 당시 원내대표 방에서 짜장면을 대여섯 번이나 먹었다. 지금 여당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방에서 식사하는 걸 봤는가. 지금은 주러대사인 우윤근 당시 원내대표는 내가 총리에 지명되자 나를 붙들고 울기까지 했다. 이 일로 당에서 오해받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당시 야당 원내대표와 관계 때문에 난항을 겪긴 했지만 세월호 특별법이라든지 예산안 등을 차질 없이 통과시켰다. 현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당을 지지하는 보수층의 마음까지도 사지 않으면 국정을 이끌어갈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말로만 협치하지 말고 빨리 야당과 가슴 터놓고 진정 어린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언급하는 포용에 반드시 정치적 포용의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4. 남북문제 | “해빙 무드는 대환영… 北 환대 의미는 곱씹어 봐야”


▎2009년 12월 이완구 충남지사의 퇴임 기자회견. 이 지사가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이완구 전 총리는 보수 인사로는 드물게 북한을 공식 방문한 인물이다. 그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2018년은 남북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해다. 보수 인사로서 대북 문제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2018년은 남북 해빙 무드의 해라고 할 만하다. 어떻게 평가하나?

“전쟁의 위협에서 국민과 국가를 지켜내기 위한 대통령의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남북 화해 협력 및 교류도 적극 동의한다. 지금 북한을 도와주지 않으면 통일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민족 번영 차원에서도 북한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다만 짚고 넘어 가야 할 것은 있다.”

어떤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까?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나는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이해찬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함께 국회 대표로 방북한 유일한 보수 인사였다. 당시 장성택을 비롯해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현철해 대장,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의 이너서클(Inner Circle)을 만나 수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거나하게 취하자 ‘이완구 국회의원 선생 동무, 우리는 돈이 필요해요. (…) 선군정치 하지, 개혁·개방 안 합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게 북한의 본질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왜 그렇게 열렬히 환대를 받았는지 우리는 곱씹어 봐야 한다. 북한 이너서클의 생각을 직접 들어 본 내가 봤을 때는 분명한 이유와 사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청와대가 냉철한 시각과 고민 속에서 대북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걱정되는 이유다. 김정은 위원장이 무엇을 노리는지 제대로 고민해 봤는지 우려된다. 비핵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여론을 몰아가서는 안 된다. 안보와 국방 문제는 냉철하게 ‘보수적으로(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

대북 문제에 관해 문재인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한반도 문제는 국제적인 사안이다. 미·중·일·러처럼 자국의 의지로 정책적 방향을 끌고 갈 상황이 아니다. 슬픈 현실이다. 그렇다면 국내적으로는 지지를 받아야 한다. 보수 세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유연하게 중지를 모아서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말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특히 국가의 존폐와 국민의 생명·재산이 달린 대북 문제에서 정책적 실패는 되돌릴 수 없다. 물론 대북 문제에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더욱 기본적인 큰 틀을 지키되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너무 저자세로 북한과 협상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해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는가. 회담할 때도 강단 있게 대하고 당당하고 느긋하게 북한과 마주해라.”

5. 이완구 역할론 | “보수 가치 재정립에 일신(一身) 바친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아픈 사람이 어떻게 언론과 만나 몇 시간씩 인터뷰를 하겠느냐”며 건강을 과시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완구 전 총리를 충청에 지역적 기반을 두고 있지만 계파색이 뚜렷하지 않는 인물로 분류한다. 이 전 총리 역시 “나는 특정 계파에서 자유롭다”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은 한나라당 시절부터 이어져온 계파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존재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계파를 넘나들 수 있는 이 전 총리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향후 그의 정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 전 총리는 행정·정치·국정 등 경험이 풍부하다. 향후 행보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정치는 귀신도 내일을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나. 40여 년 동안 국회의원 3선, 민선도지사, 원내대표에 총리까지 한 입장에서 한 번도 내 입으로 대권 도전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대권후보로 거론하면서 여론조사 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나라의 대권 후보 문제를 언론에서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 같아 때로는 안타까울 때도 있었다. 내 앞날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향후 정치 일정과 상황을 지켜보면서 진중하게 생각을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보수 가치 재정립을 위해 일신을 바치겠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이 전 총리가 마음만 먹으면 인간적·정치적으로 가까운 재선급 의원 20~30명과 언제든 식사자리를 함께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그런 말이 있나? 글쎄….(웃음)”

충청 대망론은 꺼진 불씨일까?

“정치적으로 충청권은 항상 소외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소속 정당을 떠나 2018년 불미스러운 일로 낙마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비롯해 충청의 거목이었던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서거로 충청인의 마음이 헛헛해진 것은 사실이다. 충청인들의 절망감을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안타까웠다. 연장선상에서 볼 때 (충청 대망론이란 말은) 실망감을 갖고 있는 충청인들의 희망과 기대가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국민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면?

“먼저 보수 지지자들에게 한 말씀을 드리고 싶다. 너무 위축돼 있지 마시라. 돌이켜보면 국가의 발전과 개혁을 이끌어온 것은 보수 정권이었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공직자 재산공개, 노동법 개정, 연금개혁, 공공기관 개혁 등 쉽게 손댈 수 없는 부분을 어떤 정권에서 했나. 보수 정권에서 국가 개혁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데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보수가 가치 재정립을 통해 앞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도록 일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인터뷰가 마무리돼 갈 무렵 이 전 총리에게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주저없이 “2018년 10월에 나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고 답했다. “요 근래 계속 몇몇 구절이 머릿속에 맴돈다. 마음이 무겁다”는 이 전 총리는 해당 구절을 읊어주며 두 차례, 6시간의 만남을 매조졌다.

“민주주의는 쿠데타 같은 폭력적 방법으로만 붕괴하는 게 아니다. 파시즘·공산주의·군부통치 같은 노골적 형태의 독재는 종적을 감추고 있다. 이제 민주주의는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선출된 독재자는 국민의 지지라는 이름으로,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한다는 명분으로, 부패 척결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201901호 (2018.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