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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리포트] 남쪽 뺨치는 북한의 대학입시 요지경 

‘금수저’는 대학 합격증을 문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김일성종합대·김책공대 등 북한 명문대 입학 경쟁 치열…
학업성적보다 출신성분 중시, 군대 10년 다녀와야 응시 자격
잦은 노력동원으로 학구열 침체, 캠퍼스 안에서 금주·연애도 제한돼


▎북한의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정문. 김일성은 1946년 9월 과거 숭실대학 자리에 이 학교를 세웠다.
남이나 북이나 고3 수험생을 둔 가정의 연말연시 풍경은 비슷하다. 어느 대학으로 갈 것인지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남한에선 수능점수와 내신을 가지고 본격적인 눈치작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북한 대학입시에서 눈치작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은 3월부터 시작된 다단계 입시 과정을 거쳐 12월 들어 최종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 수험생들은 4월에 예비고사인 국가 자격고사를 치렀다. 6월 25일까지 각 지역행정위원회 대학 모집처에 원서를 접수했고, 7~8월에 대학 본고사를 봤다.

북한에서 대학 입학은 평생 안정적인 직업과 삶이 보장되는 프리패스 입장권인 만큼 고위층들은 자녀들을 속칭 명문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인다. 요즘 남한의 한 종편 케이블 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특별 입시 프로젝트만큼이나 북한 고위층들도 자녀의 명문대 진학에 총력전을 펼친다. 남한에서 대학 입학은 수험생의 학업 성적에 전적으로 좌우되지만 북한에서는 부모의 사회적 위치와 자녀의 학업 성적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김책공대) 등 10대 명문대학에 합격하면 탄탄대로의 인생이 확보되는 것이다. 필자가 2005년 평양 방문 시 접촉한 민족경제연합회의 배웅(가명) 참사는 항상 단둘이 되면 아들의 공부 방법에 대해 교수인 필자에게 묻곤 했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는 부모 마음은 남북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수령체제 학습이 교육의 목적


▎북한의 고등중학교 졸업증과 학업성적표. 북한 중학교는 학생들의 시험 성적 순위를 공개하고 사진까지 붙여놓는다.
북한 사회의 토대는 교육에 있다. 북한에서 대학 교육을 마치거나 20세가 넘어 남한에 온 탈북자들의 사회 적응이 어려운 이유는 교육적 토대가 몸에 배어 행동이 바뀌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23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배려로 김책공대 교육자들이 새 아파트를 받아 집들이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에서 교육자들이 받은 최상의 특혜’라는 기사를 게재하고 3면에 관련 사진을 함께 소개했다. 신문은 ‘김정은이 대학 교직원, 연구사들에게 직접 살림집 입주허가증(입사증)을 수여했다’고 밝힌 데 이어 ‘김정은이 2013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연구사들의 살림집을 지어주시더니 올해에는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직원, 연구사들에게 멋쟁이 살림집을 마련해 주었다’며 김정은의 ‘인민애’를 선전했다. 최태복 당 비서는 입주기념사를 통해 “인재강국을 만드는 길에서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교수, 연구사들이 앞장서 달리는 것이 김정은의 믿음과 기대”라며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김일성은 1946년 9월 과거 숭실대학이 있던 평양시 용남산 자락에 김일성종합대학을 건립하면서 대학 설립의 취지로 “진보적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인민경제와 문화를 건설할 지도력이 있는 고등기술인들을 발달시키는 것”을 [북조선 법령집]서문에서 밝혔다. 북한의 학문은 이념과 실용으로 구분돼 있고 그 이념은 주체사상이다. 북한의 교육정책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 교육정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회주의 노선 고수와 김일성, 김정일 등 수뇌부에 충성을 유도하는 수령체제를 학습하는 것이 교육의 일차적 목적이다. 이를 통해 공산주의에 충실한 인간 개조가 최종 목표다. 북한은 1977년 9월 5일 김일성의 연설과 교시 등을 종합해 북한의 교육 전반에 관한 지침인 ‘사회주의교육에 관한 테제’를 발표했다.

북한의 학교교육 체계는 인민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 대학 4~6년으로 초·중등과정의 기초교육이 10년으로 편성돼 있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온 인민의 인텔리화’라는 구호 아래 고등교육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0여 개 대학을 ‘중앙급대학’으로 지정하고 ‘수재교육’ 차원에서 이들 대학에 집중 투자했다. 또한 산업부문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단과대학이나 일하면서 공부하는 공장대학을 증설했고, TV 방송대학을 신설하는 등 통신교육을 강화했다. 또한 고등전문학교를 단과대학으로 개편했다. 전자, 기계 및 자동화 등 공업부문 단과대학이 신설됐다. 예를 들어 1968년 석탄부문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평안남도 평성시에 평성석탄공업대학을 설립했다. 평성시는 2014년 11월 초 김정은 위원장이 다리 부상으로 인한 40일간의 은둔생활을 마치고 전격 방문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시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대학 수가 급증했다. 고등교육기관은 대학과 군사대학, 고등전문학교 등 3종류다. 2015년 기준으로 4년제 대학은 280개교, 고등전문학교는 600개교다. 남한이 인구 5000만 명을 기준으로 전문대학을 포함해 380개의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2500만 명인 북한의 대학 수는 매우 많다. 남한은 고등학교 졸업자의 68%가 대학에 진학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대학진학률 1위다. 북한은 당국이 교육을 통해 주민들의 삶을 통제하는 정책 때문에 대학 진학 역시 철저하게 관리한다.

북한에서도 대학교육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대학입시 제도는 학생의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출신성분과 조직생활을 통해 사상성과 충성심을 검증받아야 하기 때문에 부모의 족보가 우선 중요하다. 서울에 있는 김일성종합대학 동창회에 가입돼 있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광진 연구위원은 당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본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성원이 결정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낙방하면 재수(再修) 없이 군 입대


▎평양시내를 활보하는 북한의 젊은 연인들. 대학생 연애는 처음에 금지됐지만 지금은 노골적 애정 행위만 하지 않으면 허락된다.
북한의 대학입시 제도는 ‘전민복무제(의무병역제)’가 발표된 2002년에 변화가 있었다. 모든 젊은이가 군대에 복무하는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는 대학 진학 희망자들은 예비시험인 국가졸업시험과 대학입학시험(본고사)를 치러야 했다. 우리의 수능에 해당하는 정무원 교육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예비고사는 학교 내 순위를 정하기 위한 시험이다. 각 시·도·군에서 결과를 발표하며 대학 진학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북한의 예비고사는 남한의 수능과 달리 전국 단위 학생 순위를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험문제는 평양의 학습관리부서에서 낸다. 남한처럼 수능 문제 오류 논란은 일체 발생하지 않는다. 정답도 공개하지 않으니 학생들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남한과 달리 학교나 담임선생님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만 응시할 수 있다. 중학교 6년 동안 점수가 저조해 추천을 못 받으면 응시 자체가 원천 차단된다. 시험은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 수학, 물리, 화학, 국어문학, 외국어(영어·러시아어) 등의 과목을 주관식으로 치른다. 정무원 주관 시험에 응시하고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졸업증, 학력증명서와 함께 소속기관 및 사회주의청년동맹의 공동추천서가 필수다. 추천서가 들어갈 때 부모의 끗발이나 직업 등이 작용한다. 입학기준은 출신성분, 정치조직생활 및 입학시험 성적을 반영한다.

서류를 종합 평가한 후 대학추천위원회에 회부한다. 응시자는 각 시·도 대학에 할당된 일명 ‘폰트(T.O, 대학 입학 추천권)’에 의거해 희망 대학에 지원한다. 대학 본고사는 교육성이 출제하는 공통과목인 혁명역사와 문학, 수학, 화학, 물리 영어 등 6개 과목을 사흘에 걸쳐 본다. 대학 본고사는 예비고사 응시생 중 상위 20%만 치른다. 본고사뿐만 아니라 내신, 추천서, 신체검사, 체력장, 면접고사 등 다단계 전형을 거쳐 최종적으로 전체 응시자의 약 10%가 대학 합격증을 받는다. 김일성종합대학 입학의 경우 남한 기준으로 환산하면 대략 내신 1등급 내에 수능은 상위 0.4% 이내, 학교장 및 시 군 교육위원회의 추천과 국가에 기여도가 높은 집안 자제 등의 자격이 요구된다.

수험생의 대학 선택권은 상당히 제한된다. 지원자는 하나의 대학만 선택할 수 있다. 재수는 불가능하며 대학 입시에 낙방하면 남학생들은 공장이나 군대에 가야 한다. 당국과 수험생 간 사전협의가 이뤄져 당국에서 전공 등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뇌물 수수 및 권력층의 청탁 등 입시 부정이 발생한다. 하지만 권력층의 입시 부정을 제기할 기관이나 파워는 김정은 위원장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에서 학교별로 할당한 ‘대학 폰트’는 예비고사 순위에 따라 학생들에게 주어진다. 추천권을 받은 학생들은 자신이 배정받은 대학에 가서 본고사를 치른다. 학교마다 다르게 대학 입학 추천 인원이 배당되다 보니 학생 성적과 관계없이 배정되는 부정이 발생하기도 한다. 고등중학교별로 중앙과 지방간의 차이가 심하다. 따라서 성분 좋은 학생이 대학에 낙방하는 사례는 별로 없다. 지방에서 평양 소재 대학에 진학하기는 상대적으로 매우 어렵다. 북한의 최고 명문인 김일성종합대학은 3월께 입학시험을 시행한다. 모든 대학은 3~4월에 입학시험을 본다. 본고사 경쟁률은 평균 2대 1 수준이다. 한국의 고3에 해당하는 중학교 6학년 1년 동안 학생들은 학교에서 하루 3~4시간씩 자고 공부한다.

공부 잘해도 명문대 못 간다?


▎2018년 9월 김책공업종합대학 개교 70주년 기념 보고회가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렸다. 북한에서 김책공대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필자는 2006년 평양의 수재들이 공부한다는 평양 제1중학교를 시찰했다. 복도 칠판에 3학년 학생 153명의 월말고사 순위를 공개하고 그 옆에 사진까지 붙여 놓았다. 남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담당 안내교사에게 “매달 이렇게 공개하는가?”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해야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행한 전교조 출신 교육자는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철저한 실력 위주의 경쟁원리가 사회주의 성지인 평양시내 영재학교에서 작동되고 있었다. 이들이 북한의 핵심인력으로 체제를 수호한다고 생각하니 북한이 갑자기 붕괴한다는 논리는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물론 실력이 애매한 학생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2002년 이후 일반 고등중학생들은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도록 제도가 변경됐다. 의무병역제도가 시행되면서 특수한 사례를 제외한 남자 졸업생 대부분이 군대에 입대한다. 과거 대학에 입학하면 군 입대가 연기되고 일부 군대 입대자는 2년 정도 근무한 뒤 대학 입학시험을 보던 특혜 제도가 폐지됐다. 일부 고위층 자제가 병역을 기피하거나 단축하던 기회로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하자 보위부가 단속에 나섰고, 김정일의 결정으로 전격 폐지됐다.

최근 한국의 수능에서 공군 취사병이 일과 전후에 틈틈이 공부해 수능 만점을 받았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북한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다. 24시간 통제 생활에서 책을 본다는 자체도 어렵거니와 군대에서는 아예 수능 응시 자격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만점 스토리는 탄생할 수 없다. 군 면제자인 장애인과 여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2년제 전문학교뿐이다. 그러나 과학영재교인 평양 제1중학교, 외국어 전문인 외국어학원, 예술계 학교인 예술학원 졸업생들은 예외다. 졸업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자신이 희망하는 4년제 대학에 바로 진학할 수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학업 능력이 뛰어나도 출신성분이 나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다고 한다. 특히 1960∼80년대 초에 대학 진학 시 출신성분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현재 50대 및 60대에서 학사와 박사 비율이 낮다고 한다. 이는 결국 북한의 고급 인력 양성체계를 붕괴시켰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출신성분과 관계없이 우수한 학생들을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당국은 교육 잡지 등을 통해 학습제일주의, 실력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월남자 가족이나 재일동포 출신 등 출신성분이 불량한 적대 및 동요계층에서도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각종 정치대학 및 군사대학 입학자가 나오고 있다. 인재 양성만이 북한의 활로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나 여전히 바늘구멍 수준이다.

노력동원 탓에 공부할 여력 없어


▎가뭄, 홍수 등 재해가 닥치면 군인뿐 아니라 학생들까지 구호 현장에 동원된다. 이는 북한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없는 폐해를 낳기도 한다. / 사진:연합뉴스
대학생 90%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 북한에서는 남한의 학생들이 갖는 수업 선택권이 없다. 북한에서는 학생들의 수강 신청 자율권이 전혀 없고 대학 교무 행정과에서 결정한다. 전 대학의 수강 신청표는 학교 당국이 정한다. 학기 중 50~60일간의 농촌동원 기간이 의무적으로 확보된다. 의대, 약대는 약초 채취에 동원된다. 정치과목의 비중은 모든 학과 공통으로 30% 수준이다. 모든 학과는 학교에서 과목을 정하기 때문에 남한에서처럼 수강과목에 따른 교실 이동이 불필요하다. 다만 기술을 습득하는 의대와 공대 일부 학과 학생은 실험실 사용 등을 위해 교실을 옮겨다닌다. 탈북 학생들이 국내 대학에서 수업시간마다 교실을 이동하는 것에 당황하기도 한다. 북한 대학에선 고등학교 수업처럼 하나의 교실에서 강의가 하루 종일 이뤄진다. 보통 대학생들은 김일성, 김정일의 부자혁명 전통을 학습하는 전적지 답사를 졸업여행 형식으로 다녀온다. 주로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등 명산을 항일투쟁 체험 형식으로 다녀오고 있다.

당국은 학생들에게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인식시키기 위해 현장실습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교육과 생산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데 중요한 의의를 두고 있다. 1959년 내각 결정에 의해 법제화된 ‘학생 사회의무노동제’에 의하면 인민학생은 연 2주, 고등중학생은 8주, 대학생은 12~14주간 농촌지원 활동, 경제건설 지원, 꼬마계획(폐품수집 활동), 좋은 일하기 운동(각종 성금 및 물품 헌납) 등 다양한 사회의무노동에 참가해야 한다. 고등중학교 5~6학년은 준 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에 편입돼 연간 288시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6년제 대학생의 경우 농촌지원, 교도대 및 각종 공공기관 건설공사에 평균 2년 정도는 참가해야 한다. 이러한 과중한 노력동원과 군사교육이 학생의 학습시간 확보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 있다. 집중적으로 공부해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과도한 노력동원에 참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북한의 교육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2011년 6월 평양에 있는 대학들에 휴교령을 내리고 학생들을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에 동원했다. 2014년에는 평양 소재 대학들이 장기간 건설 현장에 동원돼 졸업학점을 이수하지 못한 재학생들 때문에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는다고 발표해 혼란을 일으켰다. 대규모 건설공사에 대학생들을 동원한 후유증의 하나로 추정된다. 당국은 각 고등중학교 졸업반 학생들에게 이런 방침을 통보함으로써 대학 진학을 꿈꾸던 많은 학생이 크게 낙담하고 군 입대를 우선 고려했다. 일부는 지방대학 진학을 추진했다.

평양뿐만 아니라 원산, 함흥 등지에서도 대학생들이 최소 3개월 이상 건설공사에 투입되고 있다. 김정은은 2013년 원산 인근 마식령 스키장 건설에 3개 사단 병력 1만여 명을 투입했다. 20대 젊은이들은 건설공사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평양의과대학 출신 탈북자는 공사장 동원으로 인해 졸업을 제때 못하고 1년을 더 다녀야 했다고 고백했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駐英) 북한 공사. 평양외국어대학 출신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고등중학교 졸업 후 대부분의 남학생은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0년간의 장기 군복무 후에 대학에 입학한다. 상당수 학생이 20대 후반에 대학교육을 받기 시작함에 따라 학업의 연계성과 효율성이 미흡하다. 공부할 수 있는 최적기에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없는 북한의 대학교육 체계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장기간 군복무 후에 제대 군인들이 학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자 예비학교를 개설해 6개 월간 기초교육을 실시한 뒤 본 학과에서 교육받도록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군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고등중학교-군대-대학교육의 체계는 바뀌기 어렵다. 남한의 대학생들이 독서나 당구를 치거나 농구를 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쉬는 시간을 보내는 데 반해 북한 대학생들은 카드놀이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공개적으로 대학생들이 카드놀이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을 무릅쓰고 고위층 자제들이 몰래 한다. 노래방 시설이 없기 때문에 악기 연주에 능숙한 대학생들은 짝을 지어 연주를 하는 취미생활을 하기도 한다.

북한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과거 김일성은 대학생들에게 군인처럼 생활하며 절대로 음주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술을 마시다가 교원 당위원회나 대학생 규찰대 성원들에게 적발되면 퇴학을 당한다. 따라서 대학생들은 기숙사나 캠퍼스에선 물론이고 학교 밖에서도 거의 음주를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학생활의 꽃은 이성교제다. 이와 달리 북한에서는 재학기간에 공개적으로 애정관계를 가질 수 없다. 다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1990년대 말 경제난이 심화된 이후에는 대학 안에서 커플은 인정하되 노골적인 애정 행위는 단속해 처벌하겠다는 완화된 지침을 내놓기도 하였다. 동아리 활동은 반종파주의 분파 행태이며 부르주아 날라리 근성의 표본으로 엄격히 금지된다.

대졸 완전고용의 ‘진실’


▎평양의 학생들이 컴퓨터를 활용해 시험을 보고 있다. 북한은 교육에 실용주의적 색깔을 강화해 가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TV
북한 입시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교는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2013년 김일성종합대학으로 통합), 김책공업대학, 평양외국어대학, 김형직사범대학, 평양상업대학, 평양경공업대학 등이 있다. 이 외에 정치전문대학인 금성정치대학 등도 상위권 대학이다. 북한도 한국처럼 대학의 서열화가 부분적으로 정착됐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도 평양외국어대학에 다니면서 명문대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의 고위층 간부 자녀들은 간부 양성기지인 김일성종합대학을 선호한다. 중간 계층들은 의사를 배출하는 평양의학대학, 기술을 배우는 김책공대 등을 선호한다. 외교관처럼 해외 근무를 선호하는 학생들은 평양외국어대학, 무역일꾼 자제들은 평양상업대학을 지원한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경제학부, 정치학부가 최고 인기다. 다음으로 법률대학, 철학부, 문학대학, 컴퓨터과학대학도 인기다. 지원 희망 전공은 졸업 후 직장 배치와 직결된다.

북한은 1990년대 말 이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정치사상교육을 강화하면서도 과학기술, 컴퓨터, 영어 및 수재교육 등 실용주의적 요소를 강화했다. 북한은 아일랜드, 인도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IT 산업 육성을 강조했다. 김일성은 1930년대 이후 만주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이해했다. 김일성은 1978년 “외국어를 알아야 다른 나라의 과학기술 서적들을 마음대로 읽고 우리에게 필요한 선진과학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대학생들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같은 외국어 중 한 가지 이상에 정통하도록 지도할 것을 지시했다.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주당 3~4시간, 일본어·중국어·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는 선택과목으로 주당 2시간을 배정했다.

북한 당국은 교육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지만 경기 침체로 교육 여건은 대단히 열악한 실정이다. 학교에 필요한 물자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지역이 다수다. 평양의 대학을 제외하곤 실험실습 장비 등 교육기자재는 물론이고 교과서, 학습장, 필기도구 등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수업의 수준이 낮다. 교원들은 학교에 필요한 물자를 자체 조달하기 위해 지역 유력 인사의 학부모들에게 청탁을 하고 강요하기도 한다. 학교 인근의 지방자치 기관, 공장, 농장, 사업소 등과 연계해 학교에 필요한 물자를 지원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학생들의 ‘제2의 담임교원’, 사회는 ‘제3의 담임교원’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대학 졸업 후 당에서 졸업생들의 직장을 배치한다. 직장 배치 과정은 전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당성을 포함한 개인 평가와 교내 단체생활에서의 평점, 학업 성적이 우선 고려된다. 따라서 한국처럼 취업난이 외형적으로 존재하진 않는다. 상위 10%만이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졸업생들의 수요·공급에 별 문제가 없다. 외형적으로는 완전고용 수준이다. 대학 졸업생들이 최우선적으로 선호하는 직장은 당 간부, 보위부 일꾼 등 정부기관이다. 다음은 일부 국영기업과 사회근로단체 등에 배치되기도 한다. 특수대학 졸업생들은 해당 공장이나 기업소 등에 임용된다. 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이 북한에서 공기업과 같은 ‘신의 직장’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실력보다 당성과 성분 등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대학은 젊은이들에게 꿈의 무대다. 누구나 원한다고 갈수 있는 곳이 아니다.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성분과 실력이 겸비돼야 가능하다 보니 북한의 신흥 귀족층이 형성되고 있다. 어느새 사회주의 평등이란 구호와 달리 새로운 상위 계층이 사회의 노른자 직책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미 최상위 계층 10%의 자녀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공부를 하는 셈이다. 교육 기회의 평등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생들은 북한정치 체제를 뒷받침하는 사회주의 원리와 과학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이마저도 1년의 절반에 불과하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대학생들을 군대와 건설 현장으로 내몰아선 북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북한의 대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 본연의 기관으로 변할 때, 북한체제의 정상화도 시작될 것이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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