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인물 초대석] ‘공공보건의료 컨트롤타워’ 이끄는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의 비전 

“시골의사여서 안 된다고요? 시골의사라서 더 잘 보입니다”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학생운동 도피처로 의과대 선택, 국내 의료계 구조적 모순에 고민해 와… 낙후된 지방 의료현실 체험한 뒤 문재인 정부 공공의료정책 설계와 실행 맡아

적당히 쓸어 넘긴 머리에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하기도 하고, 무언가 자기만의 사고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사에 대해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좀처럼 떼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엔 눈빛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관심사에 천착하는 몰입형 전문가 스타일. 정기현(62) 국립중앙의료원장의 첫인상이다. 국립의료원장에게 올해처럼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할 말도 많을 정 원장을 지난 12월 5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국립의료원에서 만났다.


※ 정기현 원장은 ■ 1956년 서울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중퇴 ■ 전북대 의대 졸업 ■ 소아과 의사 ■ 서울대 의료관리학 석사 ■ 고려대 의료관리학 박사 ■ 충북 옥천군 보건소장 ■ 삼성서울병원 외래교수 ■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연구소 연구교수 ■ 전남 순천 현대여성아동병원장(내일의료재단 이사장) ■ 2017년 ‘더불어포럼’ 공동대표 ■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의료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터뷰까지….”

기자와 만난 정 원장의 첫마디였다. 틀린 말도 아니다. 지금까지 국립의료원장이 여론의 관심사가 된 적은 없었다. 정 원장의 이력이 남들의 시선을 끌 만큼 화려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지난 가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 원장과 국립의료원은 뜨거운 감자였다.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집중됐다. 그의 소회가 궁금했다.

취임 후 처음 치른 국정감사였는데, 신고식 치곤 꽤 호된 자리였던 것 같다.

“사실 제가 잘 알려진 인물도 아니고,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게 없어서 궁금하기도 할 거다. 저게 뭔가, 하고 말이다. (낯선 시선과 견제가) 지극히 당연하다. 국립의료원에 와보니 무시당하고 방치됐던 조직의 모든 문제가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차분하게 하나하나 해보려고 했더니 사건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지난 10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장은 국립의료원에 대한 법정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거웠다.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에 참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의원들의 추궁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립의료원에서 2016년부터 2년 동안 의료기기 회사 직원에 의한 대리수술이 40여 차례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 원장이 이에 사과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사퇴를 요구했다.

이 밖에도 2017년 말에는 의료원 직원이 자신의 차량에 마약류 의약품을 보관했다가 자진신고했고, 지난해 4월에는 병원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 간호사의 신체에서 마약성 약물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 또 직원 103명이 독감 백신 550개를 구매해 의사 처방전 없이 23명에게 불법 투약한 사실이 내부 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국감장에서 드러난 사건들은 총체적인 관리 부실을 보여줬다.

“이미 간직해 왔던 문제들이었다. 개인의 일탈인지 구조적 문제인지를 가려서 개인 일탈이면 인식을 바꾸면 되지만, 오랫동안 이어져오면서 (일탈과 구조적 문제가) 뒤섞여 있었다. 국감에선 제가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그런 문제가 터졌다고 지적을 당했지만, 취임 전부터 있던 일이라고 변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서운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책임자로서 비판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국감 끝난 다음날에는 다시 취임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낙하산 인사’ 비판 보도가 의지 일깨워


▎지난 10월 24일 정기현 국립의료원장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료기기 영업사원 대리수술 의혹에 대한 질타를 받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뒤에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왼쪽)가 앉아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립의료원에서마저 대리수술을 관행적으로 해온 게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다시 한 번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대리수술을 하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우선 의사들 스스로 각성해야 한다. 대리수술을 하는 건 의사가 스스로 면허제도를 부정하는 셈이다. 대리수술을 묵인하면 의사 면허가 왜 필요하겠나. 의사에게 면허를 주는 건 그만한 수련과 노력을 다한 다음에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필드(수술방)에 들어가라는 의미다. 의사들이 좀 더 면허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이런 관행을 고칠 방편으로 수술실 CCTV 설치 요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기도의료원의 경우 이재명 경기지사 지시로 수술실 CCTV를 설치했다. 찬성 여론이 높지만 경기도의사회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우리도 설치했다. 다만 필드에는 안 했다. 수술실 내부는 여러 필드로 갈라지는데 요소마다 CCTV를 설치해 필드에 들어가지 않아도 사각지대 없이 모두 보일 수 있게 했다. 옛날에는 수술방 안에도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선배 의사들이 후배들을 모니터링하고 지도하는 용도였다. 그러다 환자 인권침해란 지적 때문에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는 환자가 선택 가능한 권리 문제다. 경기도의사회가 국민적 신뢰를 받으려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상한 논리로 반대해봤자 철없어 보일 뿐이다.”

일각에선 ‘코드 인사’라는 낙인 때문에 야당의 비판이 더 거셌던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국립의료원장을 지원한 건 개인의 의지였나?

“솔직히 자리가 필요하고 탐이 났다면 올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지, 윤택하게 만드는 게 아니지 않나. 중앙의료원장이 되겠단 생각은 0.01%도 없었다. 오히려 시·군의 보건소와 같은 하부 인프라를 제대로 만들어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건강증진개발원과 같은 다른 기관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그런데 원장 공모에 지원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고민하던 중에 낙하산 논란 기사가 나왔다. 그때 원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발을 빼면 오히려 모양새도 이상하고, 억측이 기정사실화하겠다 싶어서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인연인가?

“2012년에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에게 여성·어린이 부문의 공공의료 정책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낙선한 뒤에도 이따금 왕래를 하곤 했다. 하지만 정치 얘기는 그분도 안 하시고, 나도 일절 안 했다. (김정숙) 여사께서 야생화를 좋아하셔서 꽃 얘기나 좀 했을까. 그러다 지난해 대선에서 지인이 더불어포럼(당시 문 후보의 외곽 지원조직)을 만드는 데 도와 달라고 했다. 당시엔 광주·전남에서 문 후보가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면서 2012년에 만들었던 공약을 다듬는 일에도 참여하게 됐다.”

문 정부 의료정책 설계… “공공의료 발전의 비전 있다”


▎정 원장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의 외곽 지지조직인 더불어포럼의 창립 멤버였다. 그는 2012년과 2017년 두 차례 대선에서 문 후보의 공공의료정책 공약 설계에 참여했다.
지난해 1월에 취임한 정 원장은 3개월 전인 2017년 11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의료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공공의료발전위는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는 종합대책을 만들기 위해 한시적으로 출범했다. 민간 의료 인프라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일과 국·공립병원들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두 가지 방향이 핵심 골자다. 그는 위원회 활동이 끝난 뒤 중앙의료원장 공모에 지원했다. 공공의료의 컨트롤타워에 공직 경험이 거의 없는 ‘시골의사’가 앉은 것이 코드인사, 낙하산 인사 논란이 벌어지게 된 배경이다.

정 원장은 “공모에 형식적으로 지원한 게 아니라 내 나름대로 국립의료원의 비전도 그려보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공모 때 제출했던 자료를 건넸다. ‘공공의료 발전과 국립중앙의료원 역할’이란 제목의 64쪽에 달하는 프리젠테이션용 자료다.

‘소멸 위기에 있는 지자체, 그 속에서 민간 (의료)시장조차 무너지는 일부(비수도권) 군 지역, 국가가 치매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는 고령의 농민, 건강보험료를 체납해 의원에도 가지 못하는 빈곤층, 지역 병원을 믿지 못해 4~5시간 이상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의 소위 ‘빅5’ 병원을 찾는 수술 환자… 이들에게 공공보건의료는, 그리고 의료의 공공성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자료의 첫 장에 적혀있는 물음은 공공의료에 대한 정 원장의 현실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던진 화두는 지방에서 오랫동안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던 고민의 산물이다. 정 원장은 전북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충북 옥천군으로 내려가 보건소장을 지냈다. 이어 전남 순천에서 중소 여성아동 전문병원을 운영했다.

의사 자격을 얻고 나서 시골 보건소장을 선택하기란 흔치 않은 일일 텐데.

“의사가 되고서 의료 현장의 여러 구조적 모순을 보고 보건 의료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시 유일했던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에서 공공의료정책을 공부했다. 은사님인 신영수 교수(현재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장)께서 ‘공직에 가려면 바닥부터 보라’며 보건소장을 권하셨다. 아마 당시 의사 자격 보건소장은 내가 처음이었을 거다.”

관료조직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나.

“당시는 의약분업 직전이었다. 보건소장으로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선 약값 리베이트 관행을 손보기로 했다. 당시 공중보건의 월급은 40만원 정도였다. 가족 몇 명 있으면 생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생활하는 게 관행으로 굳어져 있었다. 요즘 같으면 난리 날 일이었다. 그래서 18명의 보건의를 모아 놓고 건강증진사업에 참여하면 예산을 확보해서 수당을 올려줄 테니 리베이트를 받지 말자고 설득했다. 보건의들이 합의해줘서 관행을 깰 수 있었다. 당시로선 첫 시도여서 꽤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의대 졸업 후 시골 보건소장으로 자원


보건소장은 얼마나 했나.

“3년쯤 했다. 당시 백신 유통구조가 굉장히 불합리했는데 구입방식을 바꿔서 단가를 절감하려 했더니 조직적인 방해가 들어왔다. 알고 보니 도의회 의장이 백신 도매사업을 하는 분이더라. 아무튼 교과서로만 알고 있던 것과 현실이 달랐다. 이 동네에서 그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편히 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실은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아내에게 그때까지 변변하게 돈을 벌어다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내는 병원 약사였는데 남들은 의사 약사 부부니까 돈을 꽤 버는 줄 알겠지만 저희는 너무 가난하게 살았다. 현실적인 생활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사직서를 냈다.”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대형 병원이나 학교로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사직하고서 한동안 고민하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원진레이온 사태의 피해자들(진폐증 환자)이 국가배상을 받아서 ‘원진녹색병원’을 세웠다. 하지만 병원 설립사업에 참여했다가 개인 희생을 너무 강요하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어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순천으로 가게 됐다. 서울은 ‘의료계 운동권’이 좀 있어서 거길 벗어나려면 서울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순천에서 여성병원을 하던 후배가 도와 달라기에 2년만 봐주기로 한 게 20년을 눌러앉고 말았다.”

정 원장이 지방을 떠도는 의사가 되게끔 만든 건 젊은 시절 그의 남다른 이력과 기질 때문이었던 듯하다. 그는 늦깎이로 의과대에 진학했다. 본래 그의 꿈은 경영학도였다. 꿈을 좇아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게 문제가 돼 더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1979년에 반강제로 학교를 그만뒀다. 그 뒤에 의대 진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생의 항로를 바꿀 만큼 큰 고민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지만 그는 젊은 시절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했다. 몇 차례 깊은 생각에 잠겼던 그는 “아직도 남아 있는 ‘부채의식’ 때문”이라며 겨우 운을 뗐다.

“성대 경영학과 시절 새문안교회 대학부에서 활동했다.(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에 있는 새문안교회 대학생회는 1970~80년대 한국교회에서 대표적인 ‘민주투사’의 산실이었다.) 당시 나는 민중신학을 처음 접했던 세대다.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인명진 목사님이 조직하신 도시산업선교회에서 활동을 했었다. (NL 계열의) 주류 학생운동과는 조금 달랐다. 도시 빈민 선교와 노동자 인권 보장 운동을 펼쳤다. 구로공단에서 야학을 하고, 위장취업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사회구조에 대해 더 갈등하고 더 번민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나 개인의 삶을 누리고 싶었다. 그 방편을 찾다 보니 의학을 선택하게 됐다.”

학생운동 부담 느껴 도피… 시골의사 선택은 ‘부채의식’ 때문


▎정 원장은 성균관대 경영학과 재학 중 새문안교회 청년회 활동을 통해 도시빈민선교와 노동운동에 눈을 뜨게 됐다. 새문안교회는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다. 1988년 6월 새문안교회 청년들이 경찰의 교회 진입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왜 의사가 된 이후에도 윤택한 삶을 살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았나.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 이미 경험하고 고민했던 게 있으니 의사가 된 뒤에도 여러 가지 구조적 모순이 보였다. 공공의료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옥천군보건소장을 자원한 것도 어쩌면 젊은 날의 부채의식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정말 떠나고 싶어서 내려간 순천에서도 너무나 취약한 지방의 의료 인프라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의료관리학을 전공한 덕분에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평가라든지, 정책 자문 등 여러 역할을 맡게 됐다. 신영수 선생님이나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소장을 지내신 김용익 선생님(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 은사들과 교류도 하게 되고 저출산의료포럼을 통해서 국회나 정치권에 의견을 제시할 기회도 있었다. 누굴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순천에 있으면서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현재 무소속)에게도 국립공공의대 설립과 관련해 도움을 줬다. 가 보니 보이고, 보이기 시작하니 괴롭고, 괴로우니 고쳐야겠고… 이게 반복돼 왔던 거다.”

이유야 어쨌든 지금은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중추, 컨트롤타워의 수장이다.

“컨트롤타워라고 인정해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국립의료원은 외형적으로 중심인 것은 맞지만, 관료적 속성 또는 정치적 방치 때문에 내부는 엉망진창이 돼 있다. 이곳에 온 뒤 의료원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2019년은 의료원 설립 61주년이 되는 해다. 마침 우리에게 두 가지 기회가 있어서 의료원이 새로워질 좋은 계기가 다가오고 있다.”

두 가지 기회란 게 무엇인가.

“의료원 신축 이전과 공공의대 설립이다. 이것이 내가 바꿔야 할 외부 조건들이다. 내부의 문제는 직원들이 잘 알 테니 문제의식을 정리하도록 역할을 나눴다. 내 고민은 5평짜리 병원을 10평으로 넓혀서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곳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역할에 대한 문제다. ‘새병원 건립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본부’란 조직을 통해 밑그림을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국립의료원 신축 이전 문제는 정 원장에게 기회인 동시에 암초다. 2001년부터 추진돼 왔지만 지금껏 지지부진했다. 계획대로라면 2023년까지 후보지인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병원이 건립돼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설 중앙감염병병원이 기피시설이란 이유로 서초구가 반대하면서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국립의료원은 12월 중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최종 이전 대상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국립의료원의 지방 이전에 대해서도 정 원장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그 자신이 서울과 지방의 의료인프라 격차를 현장에서 체감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공공의료 분야의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지방의 눈’으로 보고 해결해야 하는 분야가 많다”고 강조했다. “‘중앙의 눈’으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 해결책 중에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의 현장과 괴리되는 결론이 적지 않다”는 게 정 원장의 진단이다.

“국립의료원이 서울에 있으란 법 있나”


▎전남 순천의 현대여성아동병원장 시절의 정 원장(가운데). / 사진:국립중앙의료원
이미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서울에 굳이 국립의료원이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서초구 외에 네 가지 정도 대안을 생각 중이다. 만일 통일이 되면 검역소가 생길 테고 그럼 배후병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파주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땅이 마땅치 않으니 과천 정부청사의 빈 땅을 활용하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세 번째로는 현재 위치에 잔류하는 거다. 이곳은 용산기지 이전사업과 관련해 미 공병단이 나간 빈 땅이 있다. 지금 의료원의 1.8배쯤 되는데 중구와 동대문구 전체에서 마지막 남아있는 허파 기능을 할 수 있는 땅이다. 현 병원 부지와 더해 잘 디자인한다면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는 아예 지방으로 이전해 가는 거다. 세종시도 후보지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 동네로 와 달라고 연락하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 아이디어는 많은데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공공의대가 개원하는 2023년 2학기 이전까지는 모든 게 마무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립의료원이나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대해 국민은 민간 병원보다 수준이 낮다는 인식이 큰 것 같다.

“서비스경쟁에서 공공부문이 좀 취약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무한경쟁 시스템이 의료기관이나 국민 입장에서 결코 좋은 건 아니다.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은 의료비 구조를 건강하게 만드는 거다. 병상수를 늘려 민간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안전망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본다. 희귀난치병이나 응급외상, 모자보건 등 민간에서 투자하기 부담스러운 분야들을 우리가 맡아야 한다. 그러면 민간과 공공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국립의료원은 의료정책이든 진료든 모든 영역에서 스탠더드(표준)를 제시해야 한다. 권위 있는 표준을 만드는 게 민간으로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최후의 안전망으로서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표준을 만드는 게 의료원의 역할이라고 본다.”

공공의대·교육병원 통해 표준화된 의료인력 양성


▎현대여성아동병원 재직 시절 정 원장이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신생아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국립중앙의료원
표준을 만들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있나.

“민간병원의 전문의 배출 과정은 모순과 문제점이 많다. 우선 병원을 만들고 진료 기능이 자리잡으면 의과대학을 만들어 병원에서 실습을 시킨다. 대부분의 대형 병원과 의대가 이런 구조로 돼 있다. 우리는 공공의대를 만들고 교육병원을 통해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모델로 가려 한다. 두 가지가 동시에 추진돼야 본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의료계 여론은 부정적인 거 같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추진하다 보니 학계와 의료계에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길게 보면 기존 의료계에 보탬이 됐지, 반대할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드러난 대리수술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 대리수술 논란은 새로운 의료장비가 도입됐을 때 의사들이 충분히 실습할 기회가 부족해서 생긴 면도 없지 않다. 의사들이 새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병동과 병실, 시뮬레이션센터 등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걸 갖추겠다는 거다. 민간에서 하기엔 비용도 그렇고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국립의료원을 새로 지을 때 교육병원 기능을 넣으면 의료계도 분명 반길 거다.”

공공의대 설립과 관련해 다양한 논란이 있다. 그중 하나가 졸업생의 공공의료분야 복무기간이다. 현재 계획으로는 의무복무기간이 10년이다. 군복무 기간은 별개다. 국가특수교육기관인 사관학교나 경찰대학 졸업생의 의무복무기간보다 길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그게 문제라면 약간 조정이 가능할 수 있다. 공공의대 재학생은 상당한 혜택을 받는다. 학비를 전액 국비로 지원받고 용돈도 받는다. 1학년은 월 45만원, 4학년은 63만원 정도 예상하고 있다. 대학 목표나 커리큘럼을 다 거치면 개원하라고 해도 안 할 거다.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지원자들 입장에서 단지 국비 지원만으로 일반 의대보다 매력적이라고 여길지도 미지수다.

“공공의대는 성적으로 뽑지 않을 계획이다.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은 인성(人性)이다. 한 50명 정도 뽑는 데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다. 공공의대는 첨단 의료기술을 연구하거나 교육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스탠더드를 만드는 게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임상진료에만 투입하는 의사를 배출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여타 국립대 의대와 병원들과도 역할이 다르다.”

이국종 교수(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의 분노가 국감에서 화제가 됐다. 중증외상센터를 비롯한 응급의료 지원체계가 8년 동안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 국립의료원의 중증외상 센터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 의료원의 중증외상센터에는 외상전문의가 5명 있었는데 4명이 순차적으로 나가고 1명 남았다. 지금 2명은 선발했고, 1월에 2명을 추가로 선발할 예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의사들 사이에 놓인 칸막이다. 외상전문의와 다른 외과 의사들이 협력체계를 갖춰야 하는데 동기 부여가 부족하다. 민간병원으로 옮긴 외상전문의와 얘기를 해보니 이곳에서 받던 연봉의 두세 배를 더 받는다고 한다. 사명감만으로 붙잡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립의료원이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서 복지부에 줘야 한다. 표준화된 진료와 응급의료체계를 만들어 민간을 선도해야 하는 역할이다. 욕심을 내본다면 외상센터 인력들의 적당한 표준임금까지 나올 수 있는 테스트 베드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이곳에 사람이 산다’


▎정 원장은 시골 보건소장과 중소 병원장을 지내며 지역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직접 체험했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국립의료원 이전과 공공의대 설립을 계기로 공공의료시스템을 혁신하겠다는 구상을 펼치고 있다.
정기현 원장의 인터뷰에 앞두고 중앙의료원이 제공한 참고 자료에서 서울과 지방의 의료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눈길에 띄었다.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한 사망자가 서울 강남은 29.6명, 경북 영양군은 107.8명’.

‘산모가 분만실에 도달하는 평균시간 서울은 3.1분, 전남은 42.4분’.

정 원장이 지방 의료계에서 몸담으면서 강조해 온 “취약 지역 주민들의 열악한 의료 혜택 상황을 보면서,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말과 맥락이 닿는 통계들이다.

자주 언급하시는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말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순천과 인접한 남해군에는 병원이 하나 있는데 운영이 어렵다. 군민들은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빅5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내려간다. 남해군민이 한 해에 쓰는 건강보험료 지출액이 900억원인데 그중 300억 원을 서울의 빅5에 쓴다. 남해에 있는 병원에선 과잉진료를 하지 않으면 운영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남해군수에게 한 번 얘기한 적이 있다. 그래도 여기 계신 분들은 살아야 할 거 아니냐고. 지방소멸을 걱정하면서도 주거와 의료 등 진짜 필요한 문제들을 연관시킨 대책은 나오질 않는다. 지금은 나 혼자만의 자조 섞인 목소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대로 방치한다면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지방민들의 절규가 될 수도 있다.”

201901호 (2018.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