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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90일 휴전’ 미·중 무역 전쟁의 향방은? 

장기전 新냉전 경제력 앞선 美 ‘우위’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화웨이, 푸젠진화 등 제재로 전방위 압박 나선 트럼프
기술 패권 놓고 창과 방패 싸움 점입가경, 마윈 “20년 갈 것”


▎2018년 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및 양국 관계자들이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미국은 향후 90일 동안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고 이 기간 양국은 통상마찰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중국의 대표기업인 화웨이(華爲)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다. 인민해방군 정보 통신 장교로 오랜 기간 복무하면서 총참모부 정보공학부 국장을 역임한 런정페이(任正非)가 1987년 광둥성 선전에서 5명의 동업자와 함께 설립한 기업이다. 주요 사업 분야는 네트워크와 통신장비, 스마트폰 등이다. 회사 명칭인 ‘화웨이’는 ‘중화민족을 위하여 노력한다’는 뜻이다. 특히 화웨이는 인민해방군의 프로젝트를 독점 수주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화웨이는 2004년 글로벌 시장 진출 당시 중국 국가개발은행으로부터 100억 달러(한화 약 11조3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받기도 했다.

화웨이는 2012년 이후 매년 30%의 이익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170개국에 통신장비를 판매하는 등 통신장비 분야에서 22%의 시장 점유율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2분기에는 스마트폰 판매에서 미국의 애플사를 제치고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화웨이는 2017년 기준 925억 달러(약 104조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글로벌 기업 72위를 차지했다. 2018년 매출은 1022억 달러(약 115조원)로 예상된다. 종업원 수는 18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규모가 엄청난데도 화웨이는 비상장 기업이다. 기업의 지배구조 또한 남다르다. 창업주인 런정페이는 1.4%의 지분만을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98.6%는 직원 노조의 소유다. 이사회는 공개되지 않고 주주정보도 베일에 싸여 있다.

특히 화웨이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핵심 인프라기술인 5세대(5G) 통신 분야에서 선두주자다.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의 자국 내 통신장비 제품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제품에 일명 ‘백도어(backdoor)’가 심어져 있다고 지적해 왔다. 백도어는 인증되지 않은 사용자가 무단으로 시스템에 접근해 메시지, 연락처, 통화기록, 위치정보 등을 알아내는 ‘뒷문’ 통로를 말한다. 실제로 2016년 미국에서 화웨이의 스마트폰에서 백도어가 발견된 적이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가 화웨이 장비를 통해 불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통신을 불능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화웨이가 중국정부와 공산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의심해 왔다. 미국 정부가 5G 통신 기술개발에 앞장서 온 화웨이의 장비 등에 대해 사용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 정부는 또 안보 동맹국들에게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호주 정부는 2018년 8월 안보 우려를 이유로 화웨이 제품 사용금지를 결정했고 뉴질랜드도 3달 뒤 11월 같은 조치를 내렸다. 영국도 화웨이의 사용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는 ‘다섯 개의 눈(Five Eyes)’으로 불리는 동맹국들로 각종 정보를 공유해 왔다. 미국 정부는 자국군이 주둔한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에도 화웨이의 사용 금지를 설득해 왔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도 2018년 12월 7일 정부 부처와 자위대 등이 사용하는 통신기기에서 화웨이 사용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국내·외 군사기지들은 특별한 군사기밀 정보를 주고받을 때에는 자체 위성통신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대부분 민간의 상업 네트워크를 통해 통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제품을 사용할 경우 보안 유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反) 화웨이 동맹’은 中 기술굴기 저지 목적


▎1. 공격적인 R&D 투자와 특유의 기업문화를 토대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화웨이. 사진은 화웨이 선전 본사 전경. / 2. 2018년 12월 1일 캐나다 공항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된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의 딸인 멍 부회장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와 90일간 무역 전쟁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런정페이의 장녀이자 화웨이의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孟晩舟)가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된 것도 화웨이에 대한 압박 공세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고 이란에 통신장비를 공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이 ‘반(反) 화웨이 동맹’을 구축하려는 이유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저지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첨단산업 육성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 계획의 핵심 기업이다. 때문에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제1 타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 정부는 2020년으로 다가온 5G 기술 상용화를 앞두고 중국 정부와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정부의 목표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가 5G 기술 표준이 되는 걸 막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중국 간의 5G 경쟁은 양국 무역전쟁의 또 다른 전선”이라면서 “미국 정부의 의도는 관세 폭탄보다 더 치명적인 기술억제를 통해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8년 12월 1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폐막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별도로 가진 만찬 겸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무역 전쟁을 3개월간 임시 중단하고, 그 기간 중 협상을 통해 해결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앞으로 90일 동안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기존의 관세율도 상향 조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2019년 1월 1월부터 중국산 제품 2000억 달러(약 224조원)어치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높이고, 나머지 2670억 달러(약 299조원)어치에 대해서도 추가로 관세를 부과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국제사회는 대부분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승자는 미국이라고 평가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은 중국산 물품에 당초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90일 유예하는 것 외에 양보한 것이 전혀 없다”면서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은 상당한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공세에 시 주석이 맞받아칠 카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경제는 이미 경기 둔화 현상이 나타나는 등 어려움에 직면한 상태다.

특히 시 주석은 미국으로부터 에너지와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농산물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중서부의 이른바 ‘팜 벨트(farm belt, 농업지대)’가 적잖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또 중국 정부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하, 퀄컴의 NXP 인수안 승인,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규제 등을 약속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로부터 얻어낸 양보 조치를 제대로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관영 언론 매체들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 성과를 긍정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국이 판정패 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양국 정상 중 한쪽이 양보를 하거나 우세를 점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중국이 굴욕스러운 강화조약을 맺은 것이 아니다”라고 애써 강조했다.

강경 보호무역주의자로 협상 대표 바꾼 트럼프


▎2018년 9월, 미국 뉴욕 롯데 뉴욕팰리스 호텔에서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 본부장(왼쪽)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무역대표(오른쪽)가 한-미 FTA 개정협상 결과문서에 서명 후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협상 대표로 강경파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를 내세웠다. / 사진:연합뉴스
가장 중요한 점은 중국 정부가 그동안 미국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강제 기술이전, 지식재산권 보호, 환경법 등 각종 비관세장벽, 해킹을 비롯한 사이버 침입과 절도, 서비스업 및 농업 개방 등 5개 분야를 놓고 미국 정부와 협상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미·중 양국의 5개 분야에 대한 입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향후 협상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강조하며 추진하고 있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폐기하기 원하고 있다. 반면 시 주석은 중국의 미래를 위해 ‘중국제조 2025’ 계획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내년 건국 70년을 앞둔 시 주석은 국내 여론과 리더십 손상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양보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FT는 “중국이 미국의 요구 사항을 모두 수용할 경우 체제의 근본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면서 “시 주석이 이런 광범위한 변화를 감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2019년 2월 말 무역전쟁이 재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성과에 고무된 듯 중국 정부를 더욱 밀어붙일 기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2월 4일 트위터에 “나는 관세맨”(Tariff Man)”이라는 글을 올리고 협상이 결렬될 경우 중국산 제품에 ‘관세 폭탄’을 부과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파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앞으로 있을 중국 정부와의 협상을 맡겼다. 중국 정부와의 협상은 그동안 스티븐 무느신 재무장관이 주도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만찬 정상회담에서 이런 결정을 통보하자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은 상당히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함께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강경파 3인방으로 불려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협상 대표를 무느신 장관에서 라이트하이저 대표로 교체한 것은 앞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라이트하이저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3년, 무역대표부 부대표로서 일본과의 무역협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당시 라이트하이저는 일본 정부의 협상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협상안이 적힌 문서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려 버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사일 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1985년부터 2017년까지 30여 년간 미국의 최대 로펌 가운데 하나인 스캐든 압스(Skadden Arps)에서 미국 기업들과 외국 기업들과의 법적 다툼을 담당하는 국제통상변호사로 일해 온 라이트하이저는 철저한 보호무역주의자라는 말을 들어 왔다. 그동안 라이트하이저는 중국이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무역 관행을 고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기술을 훔쳐 왔다고 주장해왔다.

미·중 무역전쟁 최대 격전지는 ‘반도체’


▎중국 선전에 있는 중국 유명 IT 기업 텐센트 본사 신사옥 로비에서 안내 로봇 ‘샤오T’가 지난 23일 텐센트를 방문한 방문객을 안내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를 협상에서 굴복시키기 위해 화웨이 경우처럼 ‘중국제조 2025’ 계획과 관련된 중국 개별 기업과 산업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상무부가 중국 국영 반도체 제조업체인 푸젠진화(福建晋華)에 대한 미국 기업의 장비·부품·기술 수출을 전면 제한하는 조치를 들 수 있다. 푸젠진화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투자펀드와 푸젠성 등이 56억 달러(약 6조3000억원)를 투자해 2016년 2월 설립한 국영 기업이다. 대만 반도체 기업 UMC의 기술지원으로 32나노미터급 D램 공정을 개발한 푸젠진화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D램을 양산할 계획이었다. 푸젠진화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의 핵심 기업이다.

미국 상무부는 푸젠진화에 대한 제재 조치에 대해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라 자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할 중대한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수출관리규정(EAR, 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s)은 국가안보 또는 대외 정책과 배치되는 활동에 관련되거나 그럴 위험이 큰 외국 기업에 대해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말한다. 푸젠진화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 회사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램리서치, KLA-텐코 등의 장비와 부품 공급 없이는 반도체를 양산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푸젠진화가 자국의 최대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반도체 설계 기술을 훔쳐 갔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법무부는 푸젠진화와 대만의 UMC에 산업스파이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미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들 가운데 유일하게 D램을 제작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소비량의 5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이지만 소비량의 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수입액이 석유 수입액보다 훨씬 많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이런 ‘반도체 종속’을 벗어나기 위해 2025년까지 반도체 수요의 70%를 자급한다는 목표를 추진해 왔다. 시 주석은 “아무리 사람이 체구가 크더라도 튼튼한 심장이 없으면 강해질 수 없다”며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과 절박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2014년 무려 1400억 위안(한화 약 22조8000억원)에 달하는 반도체 펀드를 조성한 데 이어, 올해 1500억 위안(약 24조4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추가로 조성해 반도체 업계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세계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다. ‘중국제조 2025’ 계획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 드론, 인공지능, 5G 통신 등은 모두 방대한 데이터를 더 빠르게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푸젠진화에 대한 제재조치로 중국의 반도체 양산 계획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은 분명하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8년 12월 1일자 커버스토리 ‘반도체 전쟁: 중국, 미국 그리고 실리콘 패권’에서 미국 산업의 선도적 입지와 슈퍼파워를 향한 중국의 야심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지점이 반도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선은 기술을 둘러싼 21세기 싸움”이라면서 “기술 패권경쟁의 핵심 전쟁터는 반도체 분야”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기술은 미·중 양국이 무역전쟁에서 첨예하게 충돌하고 지식재산권 문제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기술력을 따라잡으려는 중국의 노력을 미국의 미래 경제에 대한 ‘실존적인 위협(existential threat)’으로 간주한다. 사실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도 이 분야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관세를 부과한 것도 첨단기술 절도 같은 비정상적인 산업정책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중국 정부로서도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경제발전 정책의 핵심이다. 물론 중국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부당하게 기술을 훔친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 개념을 확대 적용해 중국 기업들에 대해 제재 조치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중국 정부와 기업들의 지식재산권과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해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CFIUS는 재무부장관을 의장으로 법무부, 국토안보부, 국방부 등 11개 주요 정부부처가 참여하는 정부 심의기관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 이동통신, 항공기 제작, 바이오 기술 등 27개 산업의 주요 기술 설계, 실험, 개발과 관련된 대상 기업들은 CFIUS의 투자 심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또 외국 기업이 투자를 통해 미국 기업이 보유한 주요 비공개 기술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거나 중요한 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게 될 때도 CFIUS 심의를 거쳐야 한다. CFIUS는 외국인 자본이 미국 기업의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더라도 거래 내용을 더욱 광범위하게 심의할 수 있다. CFIUS는 자국 기술이 외국에 넘어가 국가안보와 기술적 우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투자를 거부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사이버 해킹 등을 통한 중국 정부의 산업스파이 활동을 막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경제주간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BBW)]는 2018년 10월 4일 아마존, 애플 등 미국 주요 30개 기업과 정부기관의 정보기술(IT) 데이터 서버에 스파이 목적의 중국산 특수 반도체(칩)가 심겨 있어 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중국 정부가 10년 이상 ‘사이버 무단 침입’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연간 1800억~5400억 달러(약 200조~600조원) 규모의 기밀이 새고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 정부는 사이버보안을 강화하고자 예산과 인원을 대폭 늘리고 민간 사이버보안 업체들과 협력도 확대할 방침이다.

AI·로봇 분야 中 투자 규모, 이미 美 앞서


▎2017년 8월, 중국 기술기업 아이플라이테크와 칭화대 연구팀이 공동 개발한 AI 로봇 ‘샤오이’는 의사 자격시험을 치렀다. 그 결과 합격선인 360점을 훌쩍 넘은 456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제3 목표인 인공 지능(AI), 제4 목표인 로봇 분야에서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AI 분야의 경우 중국은 미국보다 유리한 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는 AI 관련 회사에 재정적·정책적으로 광범위하게 지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국의 스타트업은 지난해 컴퓨터 비전 시장에서 점유율 30%대를 기록해 미국을 앞섰다. 컴퓨터 비전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포착한 정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업무를 말한다. 또 중국 정부와 AI 기업들은 중국 내 취약한 사생활 보호 법규 때문에 많은 양의 데이터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AI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중국 소비자들은 편리함을 대가로 프라이버시를 포기했다. 이에 따라 중국 IT 기업들은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과 같은 미국 IT 기업과는 달리 더욱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또 중국의 AI 산업 발전에 가장 중요한 몇몇 작업은 베이징이나 선전 등 IT 중심 도시와는 거리가 먼 농촌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중국 지방 소도시에 있는 수많은 스타트업이 중국의 방대한 동영상이나 감시 영상에 ‘데이터 라벨’(AI의 사물인식을 돕기 위해 동영상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데이터 라벨 회사들은 대도시가 아닌 인건비와 공장 임차료가 싼 농촌 지역에서 주로 창업된다. 데이터 라벨 공장의 노동자들도 과거 대도시 제조업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농민공(農民工) 출신들이다. [NYT]는 “데이터 라벨 능력은 미국이 따라올 수 없는 중국의 AI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또 AI 특허출원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경제 언론매체 [디이차이징(第壹財經)]에 따르면 핵심 알고리즘과 계산능력의 신속한 발전과 빅데이터 지원에 힘입어 중국의 AI 기술 특허 출원이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AI 분야에서 중국 특허 출원 건수는 7만6876건으로 1위를, 미국은 6만7276건으로 2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기준 700억 위안(약 11조4000억원) 규모의 중국 데이터 시장 규모를 2020년까지 두 배가 넘는 1500억 위안(약 24조원), 2030년까지 1조 위안(약 163조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또 자율주행차, 로봇산업, 의료산업 등 AI 관련 산업을 2030년까지 10조 위안(약 1630조원)까지 늘릴 방침이다. 중국 정부의 이런 전폭적인 지원에 따라 중국 IT 대기업의 AI 투자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기업을 크게 따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금융 데이터 기업 피치북(Pitchbook)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주요 4개 인터넷 IT 대기업(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앤트파이낸셜)은 AI에 128억 달러(약 14조4000억원)를 투자했지만 미국의 4대 IT 대기업인 알파벳,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의 AI 투자는 17억 달러(약 1조9000억원)에 불과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산업용 로봇 시장이자 생산국이다. 2013년부터 5년 연속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 1위를 차지했다. 2014년부터는 산업용 로봇 생산량으로도 세계 1위에 올랐다. 중국로봇산업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298억 달러(약 33조45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산업용 로봇은 168억 달러(약 19조원), 서비스 로봇은 92억 달러(약 10조3000억원), 특수 로봇은 37억 달러(약 4조2000억원) 등을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중국 로봇 시장 규모는 87.4억 달러(약 9조9000억원)이고, 산업용 로봇은 62.3억 달러(약 7조원)다. 중국의 로봇산업은 앞으로 미국을 추월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핵심 미래기술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설 방침이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미래 기술 수출 규제를 골자로 한 규정 개설 방침을 검토 중이며, 2018년 12월 19일까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새로운 수출 통제 목록(CCL)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BIS가 수출 통제를 검토하는 대상은 AI, 로봇, 생명공학, 위치 추적과 분석, 마이크로프로세서, 고급 컴퓨팅, 데이터분석, 양자정보 처리, 로지스틱,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 극초음속, 고급재료공학, 고급 감시기술 등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미국이 현재 전략 기술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있지만 중국이 점점 따라잡고 있다”면서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막을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윈 “미·중 무역전쟁 20년 갈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3월 중국을 겨냥해 보호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후 서명을 한 보호관세 행정명령을 들어 보이고 있다. 향후 중국과의 90일 협상 결과가 흡족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장면을 재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 사진:연합뉴스
미·중 무역전쟁은 일단 임시적으로 봉합됐지만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90일간의 미·중 무역협상이 2017년 4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첫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정상회담 때 발표한 양국 무역 불균형 해소 ‘100일 계획’의 데자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시 양국은 100일 내에 무역 갈등을 단번에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현저한 시각차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다. 특히 미·중 양국은 ‘관세폭탄’으로 벌이는 전통적인 전쟁에서 기술 패권 다툼으로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는 만큼 장기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전문가인 케빈 루드 전 호주 총리도 “2018년은 다른 형태의 전쟁 시작을 알리고 있다”면서 “이것은 21세기 두 최 강대국 간의 신경제냉전”이라고 지적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도 “양국의 무역전쟁은 20년은 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경제 냉전의 시작 단계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도 “미중 무역 전쟁은 두 정상의 집권기보다 오래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양국의 신경제냉전은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며 누가 승리할지는 결국 경제력에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미국이 중국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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