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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財테크 | 고란의 ‘알(면)쓸(모있는)신(기한)재(테크)’(9)] 기지개 펴는 ‘주주행동주의’ ‘돼지우리 속 진주’ 제값 받아낼까 

‘강성부펀드’ 한진칼 지분 매입 ‘행동주의’ 본격화… 현금 많고 배당 적은 숨은 보석 찾기 눈여겨봐야 

행동주의 펀드의 다른 이름은 ‘먹튀’다. 2003년 SK, 2006년 KT&G 등의 기억 탓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행동주의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일 뿐이다. 애플 등은 행동주의 펀드의 관여로 기업가치가 제고됐다. 지난 11월 ‘강성부 펀드’가 한진칼 지분을 9% 매수했다.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의 시작이다.

▎2018년 7월 6일에 열린 금호타이어 임시주주총회에서 김종호 금호타이어 회장이 소액주주의 의사진행발언을 듣고 있다. 금호타이어 주주들은 채권단(산업은행)이 추천한 최홍엽 교수를 노동이사로 임명했다. 민간기업에서 주주들의 요구로 노동이사가 선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사진:연합뉴스
아래는 2011년 11월 28일자로 발간된 증권사 보고서 서문의 일부다.

“어렵게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3세대에 이르면 선대처럼 높은 지분율을 보유하고 전횡을 유지할 수 없다. 3대 이상이 되면 창업정신이 흐려지고 전문경영인의 도전도 만만치 않게 된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그룹에서 자녀들의 경영 업적을 만들어 주기 위한 계열사 간 인적, 물적 자원의 이동도 활발하다.”

보고서의 분량은 100쪽에 달한다. 증권사 보고서 치고는 드물게 두껍다. 몇몇 기관 투자자에게는 개별 그룹의 지분구조 등이 담긴 552쪽짜리 원문이 공개됐단다.

2018년 11월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공시가 올라왔다.

‘주식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일반서식: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47조에 의한 보고 중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의 경우)’

공시에 따르면, 전날 그레이스홀딩스라는 투자목적회사가 한진칼 지분 9%를 매수했다. 이로 인해 그레이스홀딩스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지분 28.95%)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그레이스홀딩스의 뿌리는 사모펀드 운용사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다. KCGI는 지난 7월 설립된, 이름처럼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전략을 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다.

두 사안의 공통분모는 ‘강성부’다. 그는 동양종금(현 유안타증권)에서 채권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기업지배구조라는 화두에 천착했다. 2005년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라는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시장의 조명을 받았다. 2015년엔 LK투자파트너스에 대표로 합류했다. 지난 7월엔 자신의 장기를 살린 펀드를 차려 독립했다. ‘강성부’ 이름 석 자만으로 KCGI는 1400억원을 모았다.

Too Big To Sell… 행동에 나선 ‘행동주의’


▎국내에서 처음 행동주의 펀드를 선보였던 강성부 KCGI 대표(사진)는 투자목적회사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 9%를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른바 ‘강성부 펀드’는 행동주의 펀드다.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를 투자전략으로 삼는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株主)다. 하지만, 기업의 덩치가 커지고 고도화하면서 주인이라는 주주의 행동반경은 극히 좁아졌다. 많아야 1년에 두 번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 말고는 없다. 주인이라는데 회사가 일방적으로 책정한 배당만 받는 게 전부다. 주인(주주)보다 주인이 집안 단속 잘하라고 고용한 대리인(경영자)이 주인 행세를 한다. 대리인이 되레 ‘마음에 안 들면 팔고 떠나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건 아니다 싶은 주인들이 들고 일어난 게 주주행동주의다. 그간의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자는 움직임이다. 직접 경영에 개입한다. 배당을 늘려달라는 것에서 시작해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M&A)이나 재무구조 개선, 지배구조 개편 등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각자의 셈법이 다른 다수의 소액주주가 뭉치기는 어렵다. 주주행동주의 투자전략을 주로 하는 이들은 덩치가 제법 되는 펀드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펀드는 ‘월스트리트룰(Wallstreet Rule)’을 지켰다. 펀드는 투자자이고, 기업 경영은 경영자의 몫이라고 선을 그었다. 투자자로서 기업 경영이 마음에 안들면 주식을 팔고 손을 떼면 된다. 가끔 지나치게 경영에 간섭하거나 기업을 상장폐지시키고 구조조정을 통해 차익을 얻는 수단으로 M&A를 활용하기도 하는 이들은 ‘기업 사냥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03년 SK를 상대로 경영권 위협을 벌인 영국계 소버린자산운용은 7559억원의 차익을 챙기고 국내 시장을 떠났다. 미국계 칼 아이컨 펀드는 2006년 KT&G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1500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국내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먹튀’의 다른 말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무리한 경영에 정작 주인인 펀드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위기를 키웠다는 문제의식이 싹텄다.

게다가 월스트리트 룰을 지키는 데 따르는 현실적인 한계에도 봉착했다. 퇴직연금 등으로 덩치가 커진 펀드가 월스트리트 룰에 따라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의 보유 주식을 파는 순간, 쏟아지는 매물에 주가가 폭락한다. 자기가 수익률을 잡아 끌어내리는 모양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포스코의 대규모 투자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향후 재무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단지 팔고 나가면 괜찮을까. 국민연금은 최근일 기준으로 포스코 지분을 10% 넘게 보유한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이 포스코 주식을 파는 순간 주가는 하락하기 시작한다. 낌새를 맡은 개인투자자들이 국민연금을 따라 던지면서 낙폭이 커진다. 미래의 기업가치를 우려해 주식을 팔려고 하면, 현재의 주가하락으로 이어진다.

곧, 경영진의 의사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손을 떼는 게 아니라, 되레 적극적으로 개입해 의사 결정을 바로 잡아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주주행동주의가 일부 기업 사냥꾼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장 일반 참여자들의 주요한 투자 전략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옳고 그름’보다는 수익률의 ‘높고 낮음’이 우선한다. 월스트리트룰에 비해 주주행동주의의 역사는 짧다. 기업을 가장 잘 아는(혹은 알 것으로 추정되는) 경영진의 의사 결정에 펀드가 딴지를 거는 것이 미래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인지 확신할 수 없다.

해외선 유효, 국내선 낯선 투자전략


▎국내 최대 연기금 투자자인 국민연금공단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경영권 감시를 강화하고 주주 권리를 보호하려는 취지다. 2018년 7월 17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단 최근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보면 주주행동주의는 유효한 투자전략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닌텐도 등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대표적으로 주주환원 정책에 보수적인 기업이었다. 회사가 계속 커 나가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회사의 인색한 배당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장성과 수익성 둔화가 가시화되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싹텄다. 특별한 투자처도 없으면서 회사 안에 천문학적인 현금을 쌓아두는 게 ‘주인’을 위한 일이냐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2013년 칼 아이칸은 애플의 기업가치가 극히 저평가됐다며 적극적인 배당을 요구했다. 애플은 170억 달러를 빌려와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화답했다. 이후에도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폈다. 아이칸이 애플 주식을 샀을 때 주가는 60달러 수준이었다. 2016년 팔고 나갈 때에는 100달러를 웃돌았다. 지난 8월에는 233달러까지 뛰었다.

MS는 경영활동과 주주환원 정책에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그 결과 MS는 쇠락해 가는 IT 명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로 재탄생했다.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2011년 MS 주가는 30달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달러를 웃돈다. 닌텐도는 주주환원과 모바일 게임업체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주의 투자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2016년 ‘포켓몬고’라는 대박 게임을 세상에 선보였다.

위 사례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대체로 주주행동주의 전략은 유효하다. 매튜 데니스 카네기 멜론대 교수는 2015년 ‘30년간의 주주 행동’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에서 행동주의 투자가 처음으로 부상했던 1986년 이후 67개의 케이스를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그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먼저, 투자자가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는 행동주의 투자전략이 주가와의 상관관계가 가장 높았다. 경영진과 한판 대결을 하려면, 혹은 이들이 제안하는 의사 결정을 경영진이 따르도록 하려면,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지분이 부족하다면 다른 소액주주들을 규합할 수 있는 명분이라도 분명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주주행동주의 투자 전략이 단기적인 투기보다는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됐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주주행동주의가 낯선 투자전략이다. 서구에 비해서는 20년이나 지난 뒤인 2006년에서야 유의미한 행동주의 투자 사례가 나왔다. 일명 ‘장하성 펀드’다. 당시 소액주주 운동에 앞장섰던 장하성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미국계 헤지펀드인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가 운용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의 투자고문을 맡아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거나 돈을 많이 쌓아두고도 배당에 인색한 기업에 투자했다.

투자 리스트에 오른 대표적인 기업이 태광산업 계열사인 대한화섬이다. 태광그룹의 오너인 이호진 전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외부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시장의 관심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대한화섬은 자체 보유한 자산에 비해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었다. 장하성 펀드가 조명을 비추면서 진가가 드러났고, 이는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공시 엿새 만에 주가가 75% 뛰었다. 그밖에 크라운제과·화성산업·동원개발 등 장하성 펀드가 지분 공시를 하는 기업마다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돌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출시 후 2년 만인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시장 전체가 무너진 상황에서 그 어떤 투자전략도 무의미했다. 단기 수익을 중시하는 소액주주들을 규합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장하성 펀드는 출시 후 6년 만인 2012년 청산됐다.

2016년 라임자산운용이 행동주의를 주요 전략으로 내세운 국내 첫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라임-서스틴데모크라시펀드’를 내놓았다. 설정액이 50억원에도 못 미쳐 파급력이 미미했다. KB자산운용이 지난 3월 주주행동주의를 지향하며 내놓은 ‘KB주주가치포커스’ 펀드 또한 설정액이 수십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앞서 데니스 교수의 연구에서 보듯, 행동주의 투자전략이 효과를 보려면 유의미한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최소 5~10% 지분은 있어야 하는데, 수십억 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곳간 넘치는데 배당 짠 기업 찾아라

강성부 펀드는 진정한 의미에서 토종 행동주의 펀드라고 할 수 있다. 펀드 운용진이 한국인이며, 기업의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분도 확보했다. 일단 출발은 좋다. 강성부 펀드가 한진칼 지분매입을 공시한 뒤 기대감에 주가가 급등, 11월 30일 장중 3만3350원을 찍었다. 2015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주가 수준이다.

게다가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펀드가 뿌리를 내릴 만한 토양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그렇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지침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 투자가는 단순히 주식 보유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보유 주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야 한다. 행동주의 펀드의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정책 제고 움직임에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가세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 자본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도 행동주의 펀드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10%룰’이다.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전문투자형) 사모펀드라면 지분 10%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가 제한됐다.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경영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지 말라는 의미다. 경영에 참여하고 싶다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로 조성하면 되는데, 이 경우엔 10% 이상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해외 행동주의 펀드와 비교해 토종 펀드가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금융위원회는 10%룰 폐지가 포함된 사모펀드 제도개편안에 대한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에서 개인은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행동주의 펀드에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강성부 펀드를 포함해 유의미한 펀드는 대체로 사모펀드다. 소액으로 투자가 어렵다. 소액 투자도 가능한 공모펀드가 있기는 하지만, 사모펀드에 비해 행동주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지는 않는다.

행동주의 펀드가 투자한 종목을 따라 사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강성부 펀드가 산 한진칼을 따라 사는 식이다. 문제는 펀드보다 매수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투자했다는 공시가 나가는 순간 주가가 뛰기 때문이다. 단기 매매차익을 노린다면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아예 행동주의 펀드가 투자할 법한 종목을 먼저 사는 방법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 FCF)에 비해 배당이 짠 기업이나, 대주주 지분율이 낮으면서 자산은 많은데 배당이 박한 기업을 추천했다. 네이버·현대그린푸드·조광피혁·서희건설 등이다. 지배구조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주회사들 가운데서는 SK가 NH투자·미래에셋대우·메리츠종금증권 등의 추천을 동시에 받았다.

※ 고란 - 2003년 중앙일보에 입사, 주로 경제 분야를 담당했다. 대학 졸업 후 6개월 은행에 몸담은 걸 빌미삼아 ‘반 금융인’이라고 주장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열어갈 ‘토큰 이코노미’에 관심이 많다. ‘암호화폐의 정석’에 해당하는 [넥스트 머니]를 지난 6월 출간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재테크 및 암호화폐 시장과 관련한 ‘고란의 어쩌다 투자’ 코너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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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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