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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2017~2018 KLPGA 평정… LPGA 무대 도전장 내민 이정은6 

“신인왕 욕심이요? 미국 생활 적응부터 해야죠”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2년 연속 국내 골프무대 상금왕 차지해 탄탄한 실력 입증… “박인비의 묵직함, 유소연·안선주·신지애의 열정 닮고 싶어”

▎이정은6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새해 목표와 LPGA 무대 도전 각오를 공개하고 있다.
중국 여자 쇼트트랙 ‘전설’ 중 양양 A, 양양 B가 있다. 동명이인이 국가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두 사람을 A·B로 구분한 것이다. 국제대회에도 둘은 양양 A, 양양 B란 이름으로 출전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에도 그들은 꽤 위협적인 존재였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는 이름 뒤에 숫자가 붙는 선수가 있다. 그것도 2·3이 아닌 6이다. KLPGA에 등록된 동명이인이 무려 6명이라는 얘기다.

팬들은 그런 이정은6(22·대방건설)을 핫 식스(hot six)라고 부른다. 글자 그대로 ‘핫’하다고 할 만하다. 이정은6은 2017년 역대 최초로 6관왕(상금·대상·평균타수·다승·인기상·베스트플레이어)에 오르면서 KLPGA를 쥐락펴락했다.

2018년 이정은6은 상금왕(9억5764만원)과 평균타수(69.8705타) 1위를 차지했다. 얼핏 보면 6관왕이었던 2017년보다 못한 것 같지만, 아니다. 2018년 이정은6은 미국·일본 투어를 병행하느라 KLPGA 대회에 10개나 출전하지 못했다.

“상금왕 비결? 제가 복이 많은 사람이죠”


▎연습 중이던 이정은6이 카메라를 돌아보며 미소짓고 있다.
월간중앙이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2019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에 도전장을 낸 이정은6을 만났다. 11월에 모든 일정을 마친 이정은6은 12월 들어 휴식과 개인훈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선수들에게 12월과 1월은 꿀맛 같은 휴식기다.

잠시 짬을 내 기자와 마주한 이정은 6은 “LPGA 신인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언어가 필수라고 들었다. 당장 영어부터 배울 생각”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2년 연속 상금왕의 비결이 뭐라고 보나요?

“비결이라기보다 운이 많이 따랐던 것 같아요. (2년 연속 상금왕이란 게)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요. 굳이 (비결을) 꼽자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체력 훈련 덕분인 것 같아요. 지치기 쉬운 하반기를 잘 넘기고 좋은 성적을 냈으니까요.”

전문가들은 이정은6의 골프 경쟁력이 단단한 하체에서 나온다고 분석한다. 이정은6도 이에 공감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는데 운동을 하면 하체 근육이 남들보다 잘 붙는 편이다. 허벅지가 두꺼워 맞는 바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이정은6은 허벅지에 맞는 바지를 고른 뒤 허리 부분을 줄여서 입는다.

상금은 주로 어디에 쓰세요?

“부모님이 돈 관리를 하셔서 자세한 건 잘 몰라요(웃음). 상금 이외의 보너스를 용돈으로 사용합니다. 옷이랑 신발을 좋아해서 (용돈을) 주로 쇼핑에 쓰는 편이에요. 보통 운동선수들은 캐주얼을 선호하는데 저는 다양한 종류의 옷을 좋아합니다.”

지난 2년 동안 가장 큰 고비를 꼽으라면?

“작년(2017년)은 완벽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모든 게) 잘됐어요. 올해(2018년)는 전지훈련장에서 감도 좋아서 괜찮을 걸로 생각했는데 미국 대회를 병행하느라 몸이 지쳤던 것 같아요. 때문에 스윙이 조금 변하는 등 샷이 흔들려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었고요. 그걸 다시 잡아가려 노력했고, (시즌) 후반에 조금씩 샷이 잡히면서 성적이 잘 나왔던 것 같습니다.”

슬럼프 탈출 노하우가 있나요?

“사실 (2018년) 초반에도 성적이 아주 안 나왔던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작년(2017년)에 워낙 좋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부진하다 생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목도 2017년에 잘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른 선수들은 느끼지 못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습니다.”

그린에서 징크스나 습관이 있다면?

“특별한 징크스는 없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술을 자주 물어뜯는 습관이 있죠.”

언제, 어떤 계기로 골프에 입문했나요?

“부모님은 전혀 못 치시는데 골프 레슨을 하시는 아버지 지인의 추천으로 아홉 살에 시작하게 됐어요. 어려서부터 체격조건이 좋았거든요, 힘도 셌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63㎝였어요(현재 이정은6의 키는 171㎝다). 그러다 보니 유도·태권도·투포환 등 여러 종목에서 운동을 해보라는 권유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운동을 할 바엔 골프가 어떻겠느냐고 하셔서 시작하게 된 거죠. 골프가 아니었더라도 운동을 했을 거 같아요.”

한때 골프채를 놓았던 적도 있었죠?

“사실 초등학생 때는 골프를 억지로 한 측면도 있었어요. 5학년 때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아버지께 그만두겠다고 했고 아버지도 흔쾌히 동의하셨어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시작했죠.”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이정은6은 5학년 때 골프를 포기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니 진로가 고민되더라고요. 그래도 잘할 수 있는 게 골프니까 ‘나중에 레슨프로가 돼서 돈을 벌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골프채를 잡았어요. 그렇게 골프를 다시 하니까 전에 없던 절실함이 생기더라고요. 그 절실함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나를 세운 건 간절함… 힘들 땐 엄마·아빠 떠올려


▎2018년 5월 11일 수원CC에서 열린 NH 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의 1라운드 6번홀에서 이정은6이 벙커샷을 하고 있다.
이정은6이 골프를 그만뒀던 것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자신의 뒷바라지에 많은 돈을 써야 하는 부모에게 죄송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골프채를 잡은 이정은6은 부모를 생각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퍼트 연습에만 하루에 12시간씩 매달렸다. 그러는 사이 이정은6은 실력이 일취월장해 고교 시절 대표팀에 선발됐고, 목표도 투어프로로 바뀌었다.

효녀 골퍼로 유명한 거 같아요. 부모님은 경기할 때 자주 오시는 편이나요?

“두 분 다 자주 보세요. 저 같으면 자식이 골프를 한다 해도 그렇게까지 열성적으로 따라다니지는 못할 것 같아요.(웃음)”

KLPGA 투어 대회장에는 휠체어를 탄 한 남성이 이따금 보인다. 이정은6의 아버지 이정호(54)씨다. 덤프트럭 기사로 일하던 이씨는 이정은이 네 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차량이 30m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고 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정은6은 “골프가 잘 안될 때는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휠체어를 탄 아버지 생각만 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골프에 집중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게 효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동안 장애인용 승합차를 운전하면서 외동딸을 뒷바라지했다. 골프를 시키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고향인 전남 순천에는 이씨 부녀를 아끼는 이웃이 꽤 많다고 한다. 이들은 십시일반으로 이정은6의 선수생활을 도왔고, 이정은6은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2관왕에 오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정은6은 받은 상금을 모아 순천에 살던 부모를 경기도 용인으로 모셔 오는 데 보탰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새로운 전동 휠체어도 선물했다.

혹시 선수들 중에 롤모델이 있다면요?

“특정 인물이 롤모델이라기보다 우리나라 골프 선배들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1등 하면 미국 가서도 1등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언니들이 워낙 잘했잖아요? 다들 잘하니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많은 노력을 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선배 언니들을 존경하고 또 본받고 싶습니다.”

친한 동료는 누구예요?

“김아림 프로, 장슬기 프로 등이 있긴 하지만, 저는 최대한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정은6은 어떤 성격인가요?

“사실 낯을 많이 가립니다. 언니들을 어려워하는 편이고요. 촌에서 운동을 했던 터라 그런(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선배 언니들을 보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언니들 대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웃음)”

2018년 LPGA Q스쿨에 수석 합격했고, 2019년에는 LPGA에 도전장을 냈죠?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요?

“많은 분이 목표가 신인상이라고 생각하실 텐데 아닙니다. 사실 KLPGA 신인상 경쟁이 너무 힘들었거든요(이정은6은 2016년 수상했다). 그 압박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아요. 신인상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주안점을 둘 예정입니다. 언어 등 환경이 다르니까 1년은 적응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적에 집착하지 않을 거예요. 곧 영어선생님을 모셔서 영어도 배울 계획입니다.”

Q시리즈는 2017년까지 열린 퀄리파잉 토너먼트(QT)를 대신한 LPGA의 새로운 입문 방식이다. 108명이 2주일 동안 총 8라운드 경기를 치러 상위 45위까지만 다음 시즌 시드권을 받는다. LPGA 상금랭킹 101~150위로 다음 시즌 시드가 필요한 선수들, 2부 투어인 시메트라 투어 상금랭킹 11~30위 선수들, 여자 골프 세계랭킹 75위 이내 선수들, Q시리즈 1~2차전을 통과한 선수들이 참가한다. 이정은6은 여자 골프 세계랭킹 19위로 파이널에 직행해 1위에 올랐다.

본인의 장단점을 꼽으라면?

“장점을 꼽자면 크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점은 완벽주의 경향이 있어 다소 예민한 편이에요. 그래서 때로는 저 스스로도 피곤하고 주변에서도 피곤해 합니다.(웃음)”

어떤 면에 특히 예민한가요?

“계획해 놓은 것은 시간 안에 반드시 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중간에 틀어지면 견디지 못하고 스트레스 받아요.”

“레슨보다는 연습… 힘 빼면 실력 는다”


▎2018년 8월 30일 춘천 제이드팰리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화 클래식의 1라운드 11번홀에서 이정은6이 그린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KLPGA
LPGA에 진출한 선배들의 어떤 점을 본받고 싶나요?

“박인비(30) 프로님의 경우 표정 변화가 없는, 돌부처 같은 묵직한 플레이를 본받고 싶어요. 유소연(28)·안선주(31)·신지애(30) 프로님의 경우는 나이도 있고 지금까지 해놓은 것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열정을 갖고 도전해서 다시 우승하고 전성기를 보내시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이정은6에게 골프는 뭐라고 생각해요?

“골프는 물음표예요.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그게 골프인 것 같습니다. 알아가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아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골프 잘 치는 법을 몇 가지 조언해 주신다면?

“골프를 시작한 지 13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팔에 힘을 빼는 느낌을 알 것 같아요. 팔에 힘을 빼고 공을 치니까 확실히 임팩트나 콘택트도 좋아지고 바람 불 때도 일정하게 칠 수 있게 됐어요. 최대한 힘을 빼는 방법을 빨리 터득하는 것이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을 거예요. 저는 골프만 했는데도 10년이 넘게 걸린 일이니까요. 결국 연습량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골프는 자신만의 감과 스윙이 있기 때문에 연습을 통해 자신만의 것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레슨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레슨만으로는 실력이 나아질 수는 없어요. 연습을 통해 힘을 빼고 부드럽게 치는 느낌을 아는 순간, 실력이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2017년 11월 27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2017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이정은6이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 사진:KLPGA
책을 많이 읽는 골퍼로도 잘 알려졌던데, 혹시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나요?

“김수현 작가님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가 기억에 남아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 책에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 글귀가 많더라고요. (스트레스 받으면) 책에 나오는 글귀를 자주 되새기는 편입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다른 방법도 있나요?


▎이정은6이 월간중앙 독자들에게 전한 새해 인사.
“성적에 비례해서 저 자신에게 선물을 하곤 해요. 옷이나 신발, 사고 싶은 것을 산다는 말이죠(웃음).”

애장품은 무엇인가요?

“옷이랑 신발을 무척 아껴요. 특별히 아끼는 품목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옷이나 신발은 전부 좋아해요.”

선수생활 하는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딱히 없어요.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도 벅차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미래의 목표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거죠.”

좌우명이나 신조가 궁금합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내 운명을 사랑하자.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해왔는데, 항상 머릿속에 그 문구를 넣고 삽니다.”

선수생활은 언제까지 하고 싶나요?

“오랫동안 할 생각은 없는데…, 언니들 얘기 들어보면 아무리 길어도 30대 초반 정도까지?(웃음)”

결혼이나 미래 계획은요?

“결혼은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30대 초반에는 하고 싶어요. 제가 외동딸이라 형제자매에 대한 아쉬움이 많거든요. 가족을 빨리 꾸리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직업상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웃음)”

은퇴 후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셨나요?

“일단은 현재에 집중하려고 해요.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혹시 의류사업을 할지도 모르겠어요. 옷을 워낙 좋아하니까 가능성이 낮지는 않을 것 같아요.”

월간중앙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 부탁드립니다.

“작년(2017년)에 너무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올해(2018년) 초반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후반에 잘돼서 다행이었고요. 힘들 때 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돼요. 미국 가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월간중앙 독자 여러분도 2018년을 행복하게 마무리하시고, 즐거운 2019년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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