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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슈] ‘퀸 신드롬’ 청년들까지 왜? 

좌절 경험한 2030들, “프레디가 바로 나야 나” 

양성희 중앙일보 논설위원
4050이 불 붙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2018년 초강력 문화상품으로… 역사상 가장 저평가된 밴드, 하지만 퀸의 생명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그룹 퀸은 뭐니뭐니해도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상징이다. /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 열풍의 끝은 어디일까.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퀸(Queen)에 대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관객 700만 명을 돌파했다(12월 10일 현재). 1973년 퀸이 첫 정규앨범을 발표한 때부터 1985년 영국 윔블던에서 열린 전설적인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까지의 궤적을 그린 영화다.

이미 국내 음악영화 흥행 1위에 올랐고, 올 개봉작 중 [신과함께-인과 연](1227만 명),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1121만 명)에 이어 셋째로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12월 10일 기준). 기존 음악영화 1위는 2012년 592만 명을 모은 [레미제라블]이었다.

이 영화의 흥행과 그로 인한 퀸의 재조명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유난히도 흥행한 나라로 꼽힌다. 퀸의 고향 영국, 팝의 본고장 미국에 이어 흥행 수익이 높았다. 30년 만에 퀸 음원(音源)이 역주행하고 음반이 팔려 나갔다.

창고에 처박혀 있던 퀸 서적이 30~40배 팔리기도 했다. TV 다큐멘터리마저 인기였다. MBC가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실황을 재편집해 방송한 것은 심야시간대임에도 5.4%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가히 폭발적인 퀸 신드롬이다.

이 같은 인기 열풍에, 퀸 멤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주연배우 라미 말렉(프레디 머큐리 역)은 배급사 20세기폭스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사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퀸 돌풍의 중심에는 퀸 세대라 할 수 있는 4050세대, 586이 있다. 평소 음악과는 담쌓고 살던 50대 관객들이 싱얼롱(singalong) 상영관을 찾아 떼창을 부르고, 마니아 문화의 전유물인 ‘N차관람(반복관람)’에 도전했다.

여기에 이 영화를 통해 퀸을 발견한 젊은 관객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4050이 불 붙이고 2030이 호응한, 2018년 가장 강력한 문화상품, 가장 뜨거운 문화현상이 퀸인 것이다. 4050과 2030은 퀸을 매개로 극장에서 만나 함께 퀸을 부르며 세대공감을 이뤘다. 도대체 퀸의 무엇이 한국 관객을 그토록 사로잡은 것일까. 이 열풍에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음악의 힘, 극장을 콘서트장으로 바꾸다


▎스위스 몽트뢰에 있는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
애초 영화는 70~80년대 퀸을 들으며 성장한 4050의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상품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상황은 달랐다. 우선 ‘퀸포에버’ ‘퀸사모’ 등 팬클럽을 중심으로 줄곧 ‘덕질’을 해온 골수팬들이 열광했고, 오랫동안 퀸을 잊고 살았던 평범한 50대들마저 ‘퀸 앓이’를 했다.

유튜브로 퀸을 찾아 듣고 퍼 날랐다. “한 번 본 것으로 성이 안 찬다. 싱얼롱 버전으로 또 보겠다”는 글들이 이어졌다. 여기에 ‘위 아 더 챔피언’ ‘위 윌 록 유’ 등 그간 광고나 스포츠 응원가로 익숙한 노래들이 퀸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2030이 가세했다(퀸은 원곡 그대로 영화나 광고 삽입을 불허한 비틀스와 달리 곡 사용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4050의 추억 소비와 2030의 재발견이 절묘하게 결합한 것이다. 실제 멀티플렉스 CGV 자료에 따르면 2030이 전체 관객의 58%였다. 일반 영화로 보고 스크린X(3면 상영)이나 음악특별관 등에서 보고 또 보는 N차 관람, 떼창하며 보는 싱얼롱 관람 등 새로운 극장 문화도 한몫했다.

팬들은 프레디 머큐리 분장을 하고 영화를 즐기기도 했다. 단순히 영화만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매개로 한 일종의 놀이문화로 소비된 것이다.

사실 개봉 전 영화 평은 좋지 않았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같은 외신들도 “걸작을 기대했다면 반드시 실망할 것”이라며 별점 두세 개를 줬다. 페르시아계 인도인이란 복잡한 혈통의 이민자, 소수자, 양성애자인 프레디 머큐리의 내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빈약한 전기영화란 평이 주류였다(페르시아계 인도인인 프레디는 어려서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자랐다. 조로아스터교 집안 출신이며, 18세에 영국 국적을 얻었다).

실제 영화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석세스(success) 스토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평이하게 흘러간다. 군데군데 상투적이고 작위적인 설정도 많다.

가령 “한 남자를 죽였다(Mama, just killed a man)”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동성애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기존의 남성성을 떠나보내는 은근한 커밍아웃이라는 해석,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세상의 챔피언이 될 것”이라는 ‘위 아 더 챔피언’이 게이들에게 바치는 송가(頌歌)라는 해석 등도 영화에선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전기영화로는 치명적이라 할 만한 사실관계의 오류도 적지 않다. 잘 알려진 대로 프레디가 에이즈 발병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영화와 달리 라이브 에이드 공연 2년 뒤다. 영화는 멤버들에게 에이즈 사실을 털어놓은 프레디가 죽음을 예감한 듯 무대에 오르는 설정으로 드라마틱함을 더했다. 극적 효과를 위한 의도적인 짜깁기와 왜곡이다.

원년 멤버인 브라이언 메이(기타)와 로저 테일러(드럼)는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했는데, 동성애 성향 등으로 팀을 위험에 빠뜨린 문제아 프레디에 비해 그들은 상대적으로 별 문제없는 캐릭터로 그려져 ‘편파’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문제에도 관객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영화를 철저히 ‘전기영화’ 아닌 ‘음악영화’로 받아들였다. 엔딩의 15분 내외 라이브 에이드 장면에 열광했고, “그것만으로도 모든 흠이 가려진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공연 전경을 잡아내는 전형적인 3인칭 카메라 대신 인물과 무대, 관중석에 밀착한 카메라가 주효했다. 피아노 위의 콜라 컵, 아티스트의 표정 하나하나까지를 면밀하게 포착하며 관객을 85년 공연 현장으로 되돌려놨다.

관객은 음악 다큐멘터리를 보듯 거리감을 갖고 과거 공연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실제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극장을 콘서트장으로 바꿔,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공연을 체험하게 한 영화다. 관객이 떼창으로 응수하는 게 너무도 당연해 보일 정도였다.

만약 실제 퀸이 살아나 공연을 한다고 해도 관객들이 이처럼 무대 위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실제 공연장에서 무대 위 아티스트는 점만큼 작게 보이고, 무대 옆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나 보일 뿐이다. 동방신기 공연장에 가면 실제 가수는 면봉만 하게 보인다는 뜻의 ‘면봉신기’란 말도 있다. 음악영화의 최대치를 살린 영화다.

길티 플레저… 80년대에 바치는 586의 집단의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리드보컬의 콧수염이나 체형이 프레디 머큐리가 환생한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수적으로는 2030 관객 비중이 높지만 4050, 586을 빼놓고 [보헤미안 랩소디]와 퀸 현상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극장에서 벅찬 감정으로 영화를 보는 586은 영화를 통해 퀸을 넘어, 퀸을 듣던 자신의 청춘을 돌아봤다. 음악의 강력한 추억 소환 효과다(음악은 늘 우리에게 그 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을 가져다 준다. 음악이 불러오는 것은 바로 그 시절의 나다!).

사실 586에게 퀸은 양가(兩價)감정이 엇갈리는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다. 그것도 이중의 길티 플레저다. 당시 퀸은 음악깨나 듣는 사람들에게는 레드 제플린이나 핑크 플로이드에 못미치는 하수 밴드 취급을 받았다. 멜로디와 보컬 중심으로 대중성은 높았지만, 음악적 평가는 박했다.

또 라디오에선 퀸이 흘러나오고 청년 대중은 열광했지만, 80년대 대학과 청년 문화의 중심에 서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빽판(해적판)을 사 모으고, [월간팝송]을 읽고, AFKN(미군방송)이나 라디오를 찾아 듣다가도 대학에 가면 더는 팝을 듣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정치적으로 엄혹했고, 운동가요 아닌 다른 ‘취향’이나 ‘문화’는 죄악시하던 시대였다. 586의 ‘떼창’은 ‘광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상록수’였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는 더 이상 팝은 물론이고 음악 자체를 듣지 않게 됐다.

때마침 90년대가 도래하면서,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중심은 팝이 아닌 가요(그것도 10대 중심의 댄스음악)로 넘어갔다. 팝이나 록을 듣는 사람은 예외적인 마니아 소수로 남았다. 586은 그렇게 음악의 즐거움, 음악적 취향과 거리가 먼 세대가 됐다. 그들에게 음악이란 그저 업무의 연장으로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거나 친목을 도모하는 수단쯤으로 자리 잡았다.

길티 플레저여서일까. 퀸을 들었으나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대부분 가사 내용도 잘 몰랐고, 숨은 뜻은 더더욱 몰랐다. 음악적 지식도 정보도 없었다. 지금에야 프레디의 성 정체성, 소수자성이 어떻게 그의 음악과 연계되는지 공감하며 울컥해 하지만 그땐 달랐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던 90년대, 그의 사망 소식을 ‘성적(性的) 방종에 대한 당연한 대가’로 여긴 이들도 많았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프레디가 누구였는지, 퀸 음악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됐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우리는 부적응자를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라는 극중 프레디의 대사에 빗대면서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상상조차 해보지도 못한 퀸 떼창을 30년 세월을 흘려 보낸 후 하고 있는 586의 모습이, 정의로웠지만 문화적으로는 불우했던 한 시절에 대해 뒤늦게 스스로 보상하는 집단의례 같았다면 과장일까. 2030과 함께 야광봉을 흔들어대는 그들에게서, 젊어서는 시대의 대의에 복무하느라 제대로 못 놀았지만 이제서라도 떼창도 하고, 덕질도, 팬질도 하며 놀아보자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레트로 아닌 뉴트로, 소수자의 대변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 상영회 모습. /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586에게 이 영화가 복고 레트로(Retro)라면, 퀸을 잘 몰랐던 2030에게는 ‘뉴트로(New+ Retro)’다. ‘돌아온 복고’ 레트로가 아니라, ‘새로운 복고’ 뉴트로다. 트렌드 전문가 김난도 서울대 교수도 최근 내년 주요 트렌드의 하나로, 1020이 옛 것에서 신선함을 찾는 뉴트로를 꼽기도 했다. 뉴트로의 핵심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과거의 재해석이다.

소수자·마이너리티 정서, 다원적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물이 주는 메시지의 힘도 컸다. 복잡한 혈통만큼 이국적 외모의 프레디는 그 자신이 문화다원주의의 상징이다.

생전의 프레디는 성 정체성을 밝히라는 추궁과 따가운 시선에 시달렸지만, 이 시대의 젊은 관객들은 좀 달랐다. 순혈주의보다는 다원주의에 이끌리고, 다양한 성적 취향을 편견 없이 인정하는 자세를 취했다.

극 중 프레디는 퀸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부적응자를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이다.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 어디엔가 속하지 못하고 마음 쉴 곳 없는 사람들, 그들을 위한 밴드”라고 말한다.

또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멤버들에게 밝히면서 자신은 끝까지 오직 뮤지션이고 싶다며 “내가 누군지는 내가 결정한다”고도 했다. 이처럼 세상과 불화하는 소수자이면서 자신에게 당당한 자유인의 면모가 시대를 훌쩍 넘어 21세기 젊은 관객과 공명하는 이유가 아닐까.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2030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좌절감에 주목했다. “자기만의 석세스 스토리와 카타르시스가 필요한 이들이 이 영화에 급격하게 자신을 동일화하는 것이 흥행의 이유다.” 높은 사회적 좌절을 경험하는 한국의 2030이 소수자의 아이콘인 프레디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가 인종적으로 모멸당하거나 비극적 운명을 맞는 것에 함께 슬퍼하고, 그의 성공담에 대리만족 한다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저평가된 밴드… 오직 그들만의 음악


▎생전의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 4옥타브를 넘나드는 그의 가창력은 감히 흉내 낼 수 없었다.
퀸이 한국 관객들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로, 퀸 음악이 멜로디가 강하다는 점이 꼽히기도 한다. 퀸 특유의 오페라틱한 보컬 편곡과 코러스 중심의 사운드 디자인이 감정의 진폭이 큰 멜로디라인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다는 것이다.

퀸은 록의 황금기(70년대)에서 팝의 르네상스(80년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멜로디를 앞세운 보컬지향적 록밴드로 인기를 끌었다. 앞서 말했듯 평론가들의 평가는 인색했다. 확고한 고유 스타일 없이 이것저것 짜깁기에 능한 밴드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의 말이다. “역사상 가장 저평가된 록밴드로도 꼽힌다. (…) 60년대 후반 결성된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보다 음악적 영향력에서 밀렸고, 마이클 잭슨과 U2로 대변되는 80년대의 음악 사조(思潮)를 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발라드부터 디스코까지 건드린 장르가 너무 많아 어떤 계보로도 묶기 힘들고, 앨범보다 싱글로 많이 회자된 점도 저평가의 원인이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하는 배우 라미 말렉. /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러나 재즈평론가 남우성은 “록음악을 그만큼 유니크(unique)하게 미장센(연극과 영화 등에서 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을 한 밴드는 없다. 퀸의 음악은 오직 퀸만의 것”이라고 했다.

그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퀸 음악의 독창성과 생명력의 증거가 바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열풍이다. 프레디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7년이지만, 퀸은 현재 진행형 밴드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퀸 듀오(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에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객원보컬 아담 램버트가 합류해 왕성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2017~18 세계 투어를 마무리한 퀸 듀오와 아담 램버트는 최근 ‘2019 북미 투어-랩소디’ 일정도 발표했다. 퀸은 2014년 서울 잠실에서 열린 수퍼소닉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라, 오랜 팬들을 감격시킨 바 있다.

“난 록스타가 되지 않을 거야, 전설이 될 거야.” 생전의 프레디가 남긴 말은 현실이 됐고, 영화의 절묘한 엔딩 곡 ‘더 쇼머스트 고 온’ 처럼 퀸의 신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프레디의 절창이 돋보여 관객의 누선(淚腺)을 건드리는 ‘더 쇼 머스트 고 온’은 퀸의 사실상 마지막 정규앨범의 마지막 트랙이자, 말년의 프레디가 보드카를 마시고 혼신의 힘으로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더 쇼 머스트 고 온!

- 양성희 중앙일보 논설위원 yang.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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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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