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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포커스] ‘휴전모드’ 미·중 무역전쟁 2라운드 

“미국과 트럼프를 너무 몰랐다” 연구 부실 반성, 혁신 나선 중국 

최형규 중국 런민대(人民大) 국제관계학원 박사과정, 전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외통수 전략 실패 자인 자력갱생, 후회, 달래기, 우군 확보 전술 등 새 전략 짜기 부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만나 휴전에 합의하면서 미·중 무역 전쟁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 사진:연합뉴스
새해 지구촌 최대 화두는 지난해 불붙은 미·중 무역전쟁이다. 누가 이기든 그 결과는 세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연초 전황(戰況)을 보면 정중동(靜中動). 미국의 일방적 공세도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 3개월간의 휴전에 합의한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잠잠하다고 해서 태풍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태풍 전야의 ‘고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월 7∼9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미·중 차관급 무역협상은 원론적 수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쳤다. 중국 상무부는 회담 후 “쌍방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서로 관심을 둔 문제 해결을 위한 기초를 쌓았다”고 했다. 상투적이고 외교적인 수사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역시 “농산물과 에너지, 공산품 등 상당한 양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중국 측의 약속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미국이 원하는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와 중국 상품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 등 핵심 현안은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은 무엇일까. 미국의 공세에 중국은 어떻게 대응하려는 걸까.

무역전쟁의 본질은 ‘제로섬 게임’


우선 중국이 무역전쟁의 본질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살펴보자.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1904~80)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국제 정치를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정의된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고 정의했다. 모겐소는 국제정치게임의 속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이익을 개별적으로 추구하는 합리적 플레이어 간에 상호 협력이 발생하는 포지티브섬 게임이 아니라 승자독식의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미·중 무역 전쟁이 어느 한 편의 항복으로 끝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이다. 공교롭게도 중국 대다수 국제정치 전문가는 모겐소의 통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작금의 무역전쟁을 경제가 아닌 국제정치의 국익 게임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페이텅(鍾飛騰) 중국 사회과학원 아·태 및 지구전략연구원 연구원(硏究員)은 지난해 [외교평론(外交評論)]에 발표한 ‘패권경쟁을 넘어: 중·미 무역전쟁의 정치경제학 논리’라는 논문에서 무역전쟁의 원인을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 이익에 대한 정의(定義)의 변화에서 찾았다. 즉 국익을 전체 미국을 기준으로 설정했던 이전 정부와 달리 트럼프는 자신을 지지해준 서민 계층의 시각에서 재설계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민 이익 수호의 명분 아래 미국과의 무역에서 천문학적인 흑자를 내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택했다는 논리다.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인 전략가 중 한 명인 가오쭈구이(高祖貴)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원 부원장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미·중 무역전쟁을 경제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패권 구조와 그 운용 수단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미시적이고 협의적(狹意的) 분석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무역전쟁은 미국의 대중 전략의 새로운 변화를 반영하며, 그 배경에는 중국의 굴기와 함께 시작된 미국의 패권적 국제 지위에 대한 위협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톈이완(田一萬) 랑팡(廊坊)사범학원 교수 역시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 전이(轉移)에서 무역전쟁의 단초를 찾는다. 그는 2009년 발행된 영국의 [국제연구평론(Review of International Studies)] 논문을 근거로 중국의 굴기는 21세기 국제질서의 가장 핫 이슈이고 국제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화두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비록 아직은 중국의 종합 국력이 미국에 미치지 못하지만 최소한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패권은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의 불안과 맞물리며 무역전쟁의 동력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가치 사슬론’의 광신(狂信)이 빚은 참사


▎중국의 통신업체 중싱(ZTE)에 대한 보복성 제재 조치 완화를 시사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 사진:트위터 캡처
중국 정부도 미국이 중국의 굴기를 억제하기 위해 무역전쟁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에 많은 갈등이 존재했지만, 유일하게 중국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중국은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개인기술을 도용하며, 기술의 이전을 압박하는 등 타국(他國)의 자원을 침탈하는 국가”라고 규정했는데, 중국은 이를 미국의 대중(對中) ‘선전포고’로 보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폼페이오 장관 발언 이면에 숨은 미국의 전술에 주목한다. 즉 무역전쟁이 중국의 국제질서 교란행위 때문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인식시켜 중국 억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게 중국의 분석이다.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중국은 미국의 제어를 충분히 예상하고 나름의 대응책도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지난해 중국 제품에 미국의 관세 폭탄이 쏟아지자 ‘전혀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심지어 당황하기까지 했다. 경제적 시각에서 보면 ‘가치 사슬론’에 대한 광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은 2002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미국과 달러 주도의 국제경제질서에 편입됐다. 이후 17년 가까이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했고,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비상했다. 그 결과에 만족한 중국은 중화민족의 자부심을 섞어 이런 판단을 했다고 한다. “글로벌 가치 사슬(value chain)의 형성과 발전에 따라 국가 간 제조업 분업화, 즉 생산 공정의 전문화가 이뤄졌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자본주의가 구축해 놓은 가치 사슬 시스템에 편승해 세계의 공장이 됐다. 글로벌 가치 사슬이 형성되고 발전함에 따라 국가 간의 분업은 이미 산업 내부의 분업에서 상품 내부의 분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 제조업 중심으로 얽힌 산업과 그 가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특히 중국의 최대 수출국인 미국의 경우 이 가치 사슬을 끊을 경우 자국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고,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 재앙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중국의 상상은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중국은 이 전쟁을 이길 수 있을까? 최소한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중국은 미국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게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선, 관세 포격전을 보니 포탄의 양에 차이가 너무 크다. 미국은 현재 중국산 제품 2500억 달러에 대해 10~25%의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미국은 나머지 중국 제품 2570억 달러어치에 대해서도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중국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인데, 중국 경제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반해 중국은 1000억 달러 안팎의 미국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을 뿐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입액은 1539억 달러에 불과한데 수출액은 5055억 달러에 달한다. 관세 포탄의 양만 놓고 보면 미국이 3배 이상 많다는 얘기다. 중과부적(衆寡不適)이다.

세계공장의 아킬레스 건은 ‘첨단기술’


▎1. 관세폭탄이 쏟아지기 전까지도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자국의 제조산업에 대한 미국의 보복 가능성을 일축했다. / 2. 2011년 3월 화교 출신인 게리 로케(사진)가 주중 미국 대사로 임명되자 중국은 미국이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한 것으로 착각했다.
포탄의 양에만 차이가 나는 게 아니다. 중국 제조업의 대미 첨단기술 의존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지난해 4월 발생한 중국의 2위 통신업체 중싱(中興, ZTE)의 치욕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 상무부는 중싱을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조치를 위반한 혐의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를 못하도록 했다. 놀란 ZTE는 제재를 풀기 위해 미 정부에 벌금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납부하고, 추가로 4억 달러를 보증금으로 예치했다. 그뿐인가. ZTE 경영진과 이 사회를 모두 교체하고 미 정부가 구성한 경영 감시팀을 사내에 배치해야 했다. 미국이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두 나라의 농업 경쟁력은 어떨까? 중국은 미국 농산물 의존도가 생각보다 크다. 대표적인 게 바로 대두(大斗)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자 지난해 5월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하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이 조치를 취한 중국 정부가 세계 대두 시장의 현황을 파악한 후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 의심스럽다.

중국 농업부에 따르면 2017년 중국의 대두 생산량은 1400만t, 수입량은 9554만t이다. 대두 자급자족을 위해서는 7억6000만 무(畝, 약667㎡, 15무=1㏊)의 농지가 필요한데 이는 중국 전체 농경지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평균 1t의 대두를 생산하려면 토지 8무(약667㎡)가 필요하다. 대두는 중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작물이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사정이 나아지면서 중국인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 여파로 식물성 단백질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찌꺼기는 돼지·소 등의 사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목축업 유지와 발전에도 대두는 필수 곡물이다. 세계 대두 생산과 운영·판매는 대부분 유대인이 지배하는 미국 회사의 통제 아래 있다. 미국 정부의 말 한마디면 대두가 중국으로 들어갈 채널이 모두 막힌다는 얘기다.

달러 기축통화는 중국 경제의 염라대왕


▎1. 핵무기와 미사일, 인공위성을 뜻하는 ‘량탄이싱’ 기술개발에 관한 중국의 기록영화. / 사진:유튜브 캡처 / 2. 상하이 스타벅스 매장 전경. 무역전쟁의 여파로 스타벅스 차이나의 지난해 4분기 매출 증가율은 1%에 그쳤다.
미국이 아직 건들지도 않은 금융계는 어떨까? 중국은 2002년 WTO에 가입하면서 미국 중심의 무역 질서와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에 합류했다. 16년 넘게 그 시스템의 혜택을 받아 고도성장을 이뤘다. 물론 중국은 이 같은 성장은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단행한 개혁·개방의 열매라는 데 더 무게를 둔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본질을 통찰하는 전문가들은 중국이 서방의 자본주의 시스템 덕에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됐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저명한 금융전문가인 지린(吉林)대 금융학원 리샤오(李曉) 원장은 지난해 졸업식 강연에서 “중국은 달러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달러 시스템은 단시간 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달러가 중국 경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근거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현재의 세계 무역 결제(決濟)가 대부분 달러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중국·일본·독일 등의 무역 대국이 수출대금으로 달러를 벌어들인 후, 그중 상당부분을 (미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방법 등으로) 미국에 빌려준다. 만약 미국이 달러를 빌리지 않고 자신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정도의 기본적인 달러만 발행한다면 그 영향력이 줄어들어 평가절하될 게 뻔하다. 이는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 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달러의 평가절하는 위안화 평가절상으로 이어져 중국의 대외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물리게 된다. 따라서 중국은 어떤 경우에도 달러 환율의 안정에 기여해야 하며 특히 달러 가치의 하락을 막아야 하는 제도적 운명에 처해 있다. 2018년 말 현재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3조500억 달러이며 미 국채 보유액은 1조1900억 달러에 달한다.

둘째는 석유의 달러 결제 시스템이다. 1971년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석유의 달러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달러 없이 석유를 구매할 수 없도록 강제해 달러의 세계 경제 패권을 유지한 것이다. 중국은 2017년 30억 배럴의 석유를 수입해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에 등극했는데 그 금액만 2000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의 석유 자급률이 45% 정도에 불과하니 달러 없는 중국 경제는 석유 없는 경제를 의미하고 하루아침에 붕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셋째는 미국 대외 채무를 달러로 결제하는 체제다. 이는 미국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달러를 발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사실상 미국은 이미 4차례 양적완화를 통해 시장에 대규모의 유동성(流動性)을 공급한 전력이 있다. 급하면 달러를 찍어 금융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미국과, 달러에 연동해 환율을 관리하고 안정을 유지해야 하는 중국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게임 상대가 아니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미국은 중국의 달러 보유고가 크게 줄어들면 위안화를 발행할 신용 기반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뿐인가. 세계 각국의 대중 투자도 급감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달러체제는 중국 경제의 염라대왕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외에도 중국을 옥죄는 또 다른 비수가 있으니 바로 ‘인터넷’이다. 2018년 6월 11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제정한 인터넷네트워크중립법안을 폐지했다. 인터넷 원천 기술과 서비스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인터넷 운영 업체들 간의 공정 경쟁을 위해, 그리고 세계 각국이 미국의 기술을 안심하고 사용해 글로벌 시장이 커지도록 하기 위해 네트워크 중립 정책을 채택했었다. 인터넷을 국제사회 공공재로 제공했던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누구에게든 인터넷 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미국이 중국의 인터넷 접속을 막는다면 중국 경제는 물론 모든 사회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마비될 게 뻔하다.

현재 전 세계 13대 루트 서버 중 10대가 미국에 있다. 나머지 3개는 스웨덴·네덜란드·일본에 각각 1개씩 있다. 루트 서버는 인터넷 DNS(domain name system) 계층의 최상위 서버다. 세계 어디서나 웹사이트를 이동하려면 13개 루트 서버 중 하나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이렇게 명백한 힘의 격차에도 중국은 왜 무역전쟁에서 물러서지 않으려는 걸까. 여기에는 중국 특유의 세계 전략이 숨어 있다.

두 개의 100년 계획으로 지구전(持久戰) 유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말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하면서 중국몽, 즉 중화부흥을 부르짖으며 ‘두 개의 100년 계획’을 제시했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온 국민이 배불리 먹는 소강(小康)사회를, 공산 정권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미국을 따라잡는 현대 선진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최종 목적지는 미국을 제치고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강한성당(强漢盛唐) 시대 재현이다.

중국은 작금의 무역전쟁을 중화부흥이라는 장기 국가 전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미국과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이라고 여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새롭게 부상하는 강대국은 기존 강대국과 반드시 전쟁을 치른다는 이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2049년까지의 지구전으로 응전하려는 게 중국의 속셈이고 결기다.

리샤오 원장은 정치학의 셈법으로 중국의 결기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학은 적 1만 명을 희생시키고 자신은 손해가 8000명이냐 6000명이냐의 문제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묘안을 찾는 학문이다. 반면 정치 논리는 승리를 위해 어떤 희생도 무릅쓰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미·중 무역전쟁이 경제적 동기에서 발생했다면 둘은 서로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데서 접점을 찾겠지만 정치적 논리, 즉 국제 질서 주도권을 둘러싼 패권의 전쟁이라면 둘은 자국의 손해 정도와 관계없이 대립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치학 셈법에서 중국의 선택은 딱 하나, 기나긴 ‘저항’일 수밖에 없다. 이미 장정(長征)을 통해 골리앗 국민당을 이겨본 경험이 있는 중국 공산당이다.

그럼 중국의 외통수 전략, 즉 대미(對美) 저항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저항 전술은 5000년 역사에서 축적된 책략에 뿌리를 대고 있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명언이 자리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이렇게 과격하게 벌어질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트럼프의 무자비한 관세 공격을 받고서야 사방에서 “미국과 트럼프를 너무 몰랐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중국 경제에 탑재된 수많은 약점을 다시 돌아보고 있다. 철저한 자기반성이다.

리샤오 원장은 중국이 고도 성장의 풍요에 취해있을 때 미국은 고도의 금융국가로 변신했고, 국가 경제이익의 무게가 제조업보다 금융산업으로 급격하게 이동했는데 중국이 이를 간과한 사실을 미국부지(美國不知)의 대표적인 예로 든다. 따라서 경제적 측면에서 보는 미국의 무역전쟁 최종 목표는 ‘중국제조(中國製造) 2025(2025년까지 중국 제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프로젝트)’ 억제와 함께 중국 금융시장 개방에 있다는 게 리 원장의 주장이다. 미·중 무역전쟁 2라운드는 중국 금융산업 개방을 둘러싼 창과 방패 싸움이 될 것이라는 강력한 시사다.

미국에 대한 연구 부실이 낳은 후과(後果)


▎지난 1월 10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 주석이 건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에 대한 연구에 소홀했다는 반성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중국의 주요 대학교와 연구기관에 일고 있는 미국 연구 붐이 그 예다. 런민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 관련 연구 프로젝트가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다”고 했다. 그동안 중국 사회에서는 감정이 이성(理性)을 앞서는 사고가 만연했다. 이는 지나친 중화주의와 주변국에 대한 거친 외교로 발현됐다. 시진핑 시대 들어 덩 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실력을 연마함) 전략을 버리고 주변국을 억압하고 겁박하는 돌돌핍인(咄咄逼人) 전략을 채택한 결과였다. 일부 학자는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 발전은 이뤘지만 농경민족으로서의 근성이 남아 여전히 세계를 이성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화교 출신인 게리 로케(駱家輝) 전 주중 미국 대사에 대한 착각이다. 중국인들은 미국이 2011년 3월 그를 미국 대사로 임명하자 미국이 드디어 중국을 알아보고 중시해 ‘중국인’을 파견했고, 향후 미·중 협력 관계가 더 강화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로케 대사는 그해 12월 홍콩의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중국 정부가 자국 국유기업과 산업을 보호하는 등 경제 개입을 점점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에 미국은 우려하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 마찰은 중국 정부의 무역왜곡 조치들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라며 맹공했다. 지난해에도 그는 “미국이 관세 조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동맹국들과 연합해 특정 산업부문에 있어 중국의 해외 투자를 제한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 더 현명하다”며 대중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개인에 대한 연구 소홀도 반성하고 있다. 트럼프 취임 당시 중국은 그의 통치 스타일을 집중 연구했다고 한다. 2016년 4월 상하이에서 트럼프의 책 [절대 포기하지 마라(永不放棄, Never give up)]가 출간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된 트럼프의 불가측(不可測) 행보에 중국 정부는 순발력 있는 대미 대응전술 연구에 주력했다. 그의 돈키호테식 행보 이면에 중국을 제어하려는 치밀한 전략이 배양되고 있을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당시 트럼프의 저서를 읽은 중국인들은 두 가지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트럼프가 너무 경박하다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그를 무시한 태도가 첫 번째 오해였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가 출신이다. 사업가들은 우선 기초 논리를 세운 다음에 생각하고, 모든 일을 세밀하게 설계하는 경향이 강하다.

외부에 비친 모습과 내면은 전혀 다르다는 거다. 논리도 매우 뚜렷하다. 비즈니스맨으로서 트럼프의 특징은 상대가 강한 신뢰감을 보일 때 약점을 잘 파악해 마지노선을 세워놓고 위협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상대가 전력(全力)으로 공격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도 한다. 트럼프가 시 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찬양과 비난을 반복하는 이유다.

미국이 세계를 통제하는 수단에 대한 연구도 부족했다고 반성한다. 지금까지 중국은 공업화 국가의 시각으로 포스트 공업화 국가인 금융의 미국을 바라보고 대하고 있었다. 특히 제조업에서 이뤄낸 성취에 취해 일종의 환상을 갖게 됐다. 중국 굴기는 ‘달러 시스템 안에서의 지위 상승’에 불과한 것인데 그걸 모르고 우쭐했다는 자아비판이다.

이런 반성의 기초 위에서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에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대략 다섯 가지 주요 전술이 눈에 띈다.

첫째, 자력갱생 전술이다. 서방국가 핵심기술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첨단기술을 장악해야 한다는 거국적 결의다. 시진핑 주석이 주도하고 있는 중화부흥 전략의 핵심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7월 13일 당중앙국가재경위원회(國家財經委員會)에서 핵심기술을 ‘국보’라고 정의하고 미국을 따라잡는 첨단기술 개발을 지시했다. 경제학자 궁궈쥔(龔國軍)은 시 주석의 발언을 량탄이싱(兩彈一星) 정신의 복원으로 해석한다. 량탄이싱이란 미사일과 핵폭탄, 인공위성 등 첨단 군사기술을 상징하는 말로 중국은 1960년 미사일 발사, 1964년 핵실험, 1970년 인공위성 발사에 각각 성공했다.

중국의 새로운 혁신 물결과 대미 전술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사설. 이 매체는 “중국을 저평가하지도, 의지하지도 말라”며 강경대응을 주장하고 있다. / 사진:환구시보 캡처
샤셴량(夏先良) 중국 사회과학원 재경전략연구원 연구원(硏究員)은 팡관푸(放管服)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한다. 팡관푸 개혁은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며, 공정경쟁을 촉진해 서비스 품질을 제고한다는 뜻이다. 리샤오 원장은 “국가적 차원에서 혁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체제와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흡사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는 삼성의 전면적 혁신주의를 닮았다.

둘째는 중국 전통의 우회 전술이다. 간접적으로 대미 공세를 이어가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이뤄지는 미국 기업 손보기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그들만의 전가의 보도인 ‘중화주의’를 활용한다. 애플과 스타벅스가 최근 피해자다.

지난달 중국 인터넷 매체 펑파이(澎湃)에 따르면 중국 2위 전자상거래업체인 징둥닷컴은 구형 모델인 아이폰8과 아이폰8플러스 64G 제품을 기존보다 10% 이상 저렴한 각각 3999위안(65만9000원)과 4799위안(79만원)에 팔고 있다. 애플 제품의 이런 대폭 할인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무역전쟁 발발 이후 아이폰 판매량이 급락해 어쩔 수 없다는 게 징둥의 설명이다. 애플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15년 12.5%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1~3분기에 7.8%로 줄었고 이런 하락 추세는 더 빨라지고 있다.

스타벅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1월 11일(현지시간) 공개한 보고서에서 “중국에서 애플 다음 차례는 스타벅스”라고 경고했다. 스타벅스는 2017년 향후 4년 내 중국 시장 점포를 6000개로 확대하고 매출도 두 배로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는 중국 141개 도시에 3600여 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매출 증가율은 고작 1%였다. 위기감을 느낀 스타벅스 차이나는 알리바바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커피 배달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그러나 배달업체 어러머(餓了麽) 앱 데이터에 따르면 베이징 지점의 월간 커피 배달 판매는 많아야 100~400건이 고작이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소비자들의 반응이 차가운 데다 중국 로컬 브랜드 루이씽(瑞幸)과의 경쟁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소리 없는 대미 공격에는 관변 연구기관들이 동원된다. 중국 최대 관영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산하 세계경제정치연구소는 최근 ‘2019년 중국의 해외투자국 위험등급 평가’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미국의 투자환경 순위를 투자 대상 57개 국가 중 14위로 평가했다. 지난해 4위에서 무려 10계단이 추락한 것인데 사실상 중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금지하는 신호라 할 수 있다.

승산 없는 전쟁? 국제사회 신뢰확보 우선해야

셋째는 미국을 달래는 화해전술이다.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부주석은 1월 10일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 등 300여 명의 양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중 수교 40주년 기념행사에서 “미·중 쌍방은 수교 때의 초심을 기억하면서 협력을 견지해야 한다. 상호 존중과 구동존이(求同存異)를 바탕으로 서로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존중하고 대화와 협상으로 분쟁을 적절하게 처리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싸우지 말고 화해하자는 메시지다.

넷째는 우군 확보 전술이다. 국제 정세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수법이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개최한 게 대표적인 예다. 북핵 문제를 대미 무역전쟁과 연계해 미국의 행동 반경에 제약을 가하려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이다. 숙적 일본과의 밀착을 보면 중국의 책략과 모략의 극한이 읽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해 10월 25일 기업인 500여 명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해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는 이날 “양국 관계를 새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손을 내밀었다. 기다렸다는 듯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중국은 일본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에 참여하길 바라며 교류를 강화하자”고 화답했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로 험악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러시아와는 미국의 무역 공세에 대비한 경제 협력이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러시아와 중국 간 연간 교역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었다.

다섯째, 미국과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돌격’전술이다. 대표적인 좌파 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 발도 물러나서는 안 되며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구체적인 전술도 제시했다. 중국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무기, 즉 지구촌 생산의 90% 이상을 점하고 있는 희토류의 대미 수출을 끊고, 위안화 평가절하를 통해 미국의 관세폭탄을 제거하며,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1조1400억 달러(2018년 말 현재)어치의 미국 국채를 처분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자는 주장이다. 물론 이에 대해 저명한 경제학자 마광위안(馬光遠)은 매우 어리석은 발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가 밝힌 이유는 다음과 같다.

“희토류 수출 금지는 명백히 WTO 규정에 어긋난다. 더구나 미국의 보복 수단이 너무 많다. 반도체 수출만 금지해도 그날로 중국 경제는 끝이다. 인위적 인민폐 평가절하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자’는 어리석은 전술이다. 미국 국채 매각 역시 중국 경제의 대외 신뢰성과 인민폐의 추락을 가져와 자멸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다양한 항전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가 빠졌다고 지적하는 학자가 있다. 샤셴량(夏先良) 중국 사회과학원 재경전략연구원 연구원(硏究員)이다. 그는 지난해 8월 발표한 ‘중미무역게임: 성질과 목적, 그리고 책략’이라는 논문에서 “미국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 세계국가, 특히 주변국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향후 중국 외교 행보와 전략에 대한 가장 묵직한 제언이자 충고라 할 수 있겠다.

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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