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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알(면)쓸(모있는)신(기한)재(테크)’(10)] 모르고 들어가면 코 베이는 파생상품 

ELS(주가연계증권) 투자 전 알아야 할 8계명 

원금 손실 위험성 감추고 고수익·안전성 미끼로 투자 유혹
저금리 시대 금융사 새 수입원… 작년 말 70조원 돌파

파생상품 때문에 위기가 파생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파생상품이 투자은행까지 삼켰다. 벼락 맞을 확률로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는데 원금 까먹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파생상품은 고급 사기일까. 사기에 안 넘어갈 방법은 없을까.


▎주가연계 파생상품은 저금리 시대에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수단이다. 하지만 자칫 원금까지 까먹을 위험이 크다.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은 월스트리트에 적대적이다. 미국 정치인들 가운데서는 드문 경우다(그래서 2016년 미국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는지 모른다). 자기 편이라고 생각되면 막대한 후원금을 안기는 월스트리트를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이들과 친하게 지낼수록 후원금 계좌는 두둑해진다.

하지만 샌더스가 보기에 지금도 진행 중인 미국 중산층 붕괴의 주범은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회사다. 월스트리트는 악의 축이고 뿌리다. 샌더스는 “월스트리트의 사업 비법은 바로 사기”라고 단언한다. 그는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다지만 월가엔 그런 것이 안 통한다. 사기가 바로 월가의 예외 없는 규칙”이라고까지 냉소한다.

샌더스가 사기라고 단정한 대표적인 월스트리트의 사업 비법 가운데 하나가 파생상품(혹은 파생금융상품)이다. 주가지수선물·옵션, 선물환, 신용부도스와프(CDS: 기업이 부도나면 대신 채무를 갚아주는 보증상품) 등 각종 파생상품은 본래 주식·채권·외환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투자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개발됐다.

하지만 자본의 탐욕은 끝이 없다. 투자 은행들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파생상품에 재투자하는 2차, 3차 파생상품을 쏟아냈다. ‘금융공학’이라는 외피를 씌워 안전한 투자처로 둔갑한 파생상품은 기초자산의 몇 배, 몇십 배 규모로 불어났다. 서로 물고 물리는 파생상품의 특성상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위기가 확산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자산담보부증권(CDO)이나 CDS 등이 대표적이다.

“집이라는 실물이 있으면 주인은 집에 대한 보험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파생상품으로 넘어오면 모두가 그 집을 가지고 보험을 든다. 주인인 나뿐만이 아니라 당신도 들고, 옆 사람도 들고, 모두가 드는 것이다. 만약 집에 불이 나면 실물을 가진 주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파산한다. 여기에 실체로서의 상품은 없다.”

찰스 퍼거슨 감독의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에 나오는 파생상품에 대한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파생상품으로 운용한 헤지펀드를 ‘시한폭탄’이라고 불렀다.

금융자본이 국경을 넘어 움직이면서 파생상품에 ‘당한’ 투자자들은 국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키코(KIKO·Knock-in Knock-out)’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름부터 낯선 키코는, 통화옵션 파생상품이다. 2006년 1월부터 20개월 동안 6개 시중은행 임원들은 중소기업 2453 곳을 상대로 1만800번이나 방문해 키코 계약을 권유했다(2008년 열렸던 공청회에서 나온 얘기다). 업체당 평균 4.4회 방문해 가입을 유도한 셈이다.

“선진 금융기법을 가장한 사기”


▎2007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으로 국내 증시는 사상 최악의 폭락을 맞았다.
은행들은 키코를 “안전한 환헤지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1년 전만 해도 1달러당 1000원대던 원-달러 환율은 당시 950원 안팎까지 내려와 있었다. 해외 업체로부터 대금을 달러로 받는 수출기업들은 급격한 환율 하락(달러 약세)으로, 두 눈 뜨고도 막대한 손실(환차손)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에도 중소기업들은 단순한 선물환거래로 환헤지를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라는 은행 측이 “선진 금융기업을 적용한 최첨단 환헤지 상품”이라고 설명을 늘어놓자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솔깃했다(사실 키코를 판매한 국내 은행들도 정확한 위험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은행은 미래에 환율이 떨어지더라도 중소기업이 그보다 높은 가격에 달러를 팔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고 했다(풋옵션). 게다가 수수료는 없단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환율이 일정 구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 낮아지면(녹아웃 구간) 계약이 자동 해지된다. 환헤지를 하려고 키코에 들었는데 계약이 해지돼 환헤지를 할 수 없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질(녹인 구간) 때다. 이 경우 기업은 시중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달러를 사서 은행에 싸게 팔아야 한다(콜옵션). 환헤지를 하기는커녕 기업이 엄청난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은행은 이런 위험에 대해선 대충 얼버무렸다. 환율이 급격히 오를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런 위험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설명이 복잡해 말해줘도 모를 거라며, 은행을 믿고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권유했다.

몇 달 뒤 일이 터졌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환율이 치솟으면서 은행이 콜옵션을 행사했다. 계약서에 사인한 중소기업은 수십억~수백억 원까지 손실을 입었다. 금융감독원의 집계에 따르면, 2010년 6월 기준으로 적어도 734개 기업이 총 3조2000억원가량의 피해를 봤다. 그중 110개사가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가 폐업하거나 법정관리·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이 기업들은 “애초에 불공정한 행위로 맺어진 키코 계약은 무효이며, 그러한 불법행위로 끼친 손해를 배상하라”며 은행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하지만 5년 뒤인 2013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전원의 일치 의견으로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개인투자자들이 당한 사례도 있다. 우리CS자산운용(당시 명칭)이 운용하고 우리투자증권·우리은행·경남은행 등이 2005년 11월 판매한 ‘우리파워인컴펀드’의 경우다. 판매사 측은 대한민국 국가신용등급인 ‘A3’ 등급 수준의 미국 금융회사의 장외 파생상품에 투자한다고 홍보했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에 1.2%의 가산금리를 적용해 6년 동안 매 분기마다 고정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안정적이면서 수익성도 양호한 펀드라는 계산에 투자자만 2300여 명, 투자금액이 1700억원을 웃돌았다.

역시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 터졌다. 이 펀드가 투자한 미국 금융회사들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규모 손실을 봤다. 이로 인해 2008년 원금의 80%가 사라졌다. 결국, 만기에 투자자들이 찾은 돈은 원금 대비 각각 3%(1호), 9%(2호)에 불과했다.

투자자들은 금융당국에 민원을 내고, 일부는 소송을 제기했다. 금융감독원은 2008년 11월, “우리은행은 손실 금액의 50%를 고객에게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 경우엔 펀드 가입 경험이 없는 고객에게 파생상품을 판매하면서 투자설명서를 제공하지 않았고, 판매상품이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설명해 투자자에게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으로 오해하도록 했다는 이유였다.

반면 법원은 투자자 보호에 더 인색했다. 대법원은 2014년 2월, 판매사의 손해배상 범위를 20~40%만 인정했다.

안전한데 고수익인 상품은 없다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키코 피해자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34개 기업이 총 3조2000억원가량의 피해를 봤다.
파생상품에 당하는 건 어찌 보면 저금리가 부른 참사다. 저금리 시대 투자자들은 어떻게든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안전하면서도 예금보다는 수익률이 높은 상품을 찾는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원금을 절대 까먹을 리 없다고 유혹하는 금융상품에 혹한다. 극히 낮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낮은 확률의 주인공이 설마 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주식시장이 뚜렷한 방향성 없이 오르락내리락할 때에는 ‘안전하면서도 이자를 더 쳐주는’ 파생상품에 눈길이 간다. 최근 글로벌 증시는 미·중 무역분쟁, 미국 금리인상 등으로 악재에 시달리면서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다. 그래서 각 투자 전문가가 올해의 금융상품으로 추천하는 것 중 하나가 파생상품의 일종인 주가연계증권(ELS)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ELS 등 파생상품 수수료는 포기할 수 없는 새로운 수익 원천이다.

실제로 ELS의 발행 잔액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주식형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은 70조 562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55조2537억원 대비 27.7% 증가했다.

ELS는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나 개별 주식의 가격에 따라 원래 목표로 제시한 수익률을 실현하는 상품이다. ELS 인기의 핵심은 ‘하락 방어선’이다.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까지 떨어지지만 않으면, 주가가 떨어졌는데도 약속한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코스피200지수를 기초로 하는 ELS의 녹인배리어(원금 손실 구간) 60%, 연 5%의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 있다고 치자. 이 상품은 코스피200지수가 현재의 60%, 즉 40%가 하락하더라도 1년 뒤 연 5%의 수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 하락 리스크를 방어할 수 있다. 분명 원금손실 위험이 존재하지만, 설마 지금보다 지수가 40% 이상 떨어질까 싶다. 판매사 직원도 극히 적은 확률의 원금손실 위험보다는 대체로 일어나는 수익률에 집중해 설명한다. 투자자들이 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원금손실 위험이 있는 파생상품인데도 불구하고 노년층이 대거 ELS 등 파생결합증권에 가입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증권사와 은행권에서 판매되는 ELS 등 파생결합증권 개인투자자를 전수조사 한 결과, 60대 이상 투자자가 전체 10명 가운데 3명 꼴이었다. 투자금액으로 따지면 60대 이상의 투자금액이 전체 잔액의 41.7%(19조7000억원)를 차지했다.

연령이 높을수록 투자금액은 커졌다. 80대 이상은 1억7230만원, 70대 1억230만원, 60대 7530만원 등을 평균 투자했다. 특히 70대 이상의 투자금은 근로소득이 아니라 노후자금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런데도 평균 1억원 이상을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에 투자한다는 사실을 과연 제대로 알고 투자했는지 의문이다.

노년층일수록 투자금액이 큰 또 다른 이유는 파생결합증권 대부분이 은행 창구에서 팔렸기 때문이다. 은행신탁이 전체 투자금액의 75.8%를 차지했다. 은행신탁에서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은 6400만원으로 증권사(5300만원)보다 1100만원 더 많다. 특히 70대 이상 고령투자자 수는 은행신탁(5만3000명)이 증권사(9000명)보다 6배 가까이 많았다.

하지만 은행이 파생결합증권의 위험성에 대해서 투자자들에게 잘 알리고 팔았는지는 의문이다. 금감원은 은행 창구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투자를 권유해 불완전판매 가능성도 꽤 높다고 봤다. 지난해 금감원이 시행한 파생결합증권 미스터리쇼핑 결과에서도 은행이 증권에 비해 불완전판매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ELS=파생상품=사기?’… 그래도 투자하겠다면?


하락 방어선이 있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고도의 사기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ELS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겠다면 이것만은 가슴에 새겨두는 게 좋겠다.

①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예금이 아니다. 판매 직원이 ‘사실상’ 원금이 보장된다는 말로 꼬여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사실상’은 적은 확률이기는 하지만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는 단어다.

② 예금자 보호대상 아니다= ELS 등 파생결합증권은 예금이 아니다. 발행회사가 파산해 채권자(ELS 투자자)에게 돌려줄 돈이 부족하면 투자원금과 수익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③ ELT·ELF도 예금 아니다= 은행에서는 ELS가 아니라 주가연계신탁(ELT)이나 주가연계펀드(ELF) 등을 취급한다. 은행에서 판다고 이들 상품이 예금은 아니다. ELT나 ELF 등도 ELS에 투자하는 것처럼 똑같이 위험하다.

④ 기초자산의 수가 많을수록 더 위험하다= 기초자산의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달성해야 할 조건이 까다로워진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기초자산 1개의 가격이 5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이 보장된다고 해보자. 이 경우 원금 보장 확률은 50%다. 기초자산이 2개라면, 원금보장 확률은 25%(0.5×0.5)다. 기초자산이 3개라면 원금보장 확률은 12.5%(0.5×0.5×0.5)다.

⑤ 목표 수익률이 높을수록 더 위험하다= 수익률이 높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의미다. 수익률에는 반드시 리스크가 따른다. 목표로 제시한 수익률만 보고 덥석 가입해선 안 된다.

⑥ 일단 발생하면 손실이 매우 크다= 파생결합증권은 수익이 날 확률이 높도록 설계돼 있다. 원금을 까먹을 확률은 낮다. 하지만 손실이 발생할 경우에는 손실 규모가 커지는 꼬리 위험(Tail Risk)이 있는 상품이다.

⑦ 중도상환시 원금 까먹는다= 만기가 안 돼 돈을 찾겠다면 중도상환 가격에 따라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수수료나 위약금까지 감안하면 원금의 일부밖에 못 찾을 수 있다.

⑧ 원금 회복 때까지 묻어두지 못한다= 파생결합증권은 만기가 정해진 상품이다. 기초자산 가격이 손실발생 조건 수준으로 하락하고 기간 내 기초자산 가격이 회복되지 못하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박스기사] ELS 투자 시 유의할 점

■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 예금자 보호대상이 아니다
■ 은행이 파는 ELT·ELF도 똑같이 위험하다
■ 기초자산 수가 많을수록 더 위험하다
■ 목표 수익률이 높을수록 더 위험하다
■ 손실이 발생할 경우 손해 규모가 커진다
■ 중도상환 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
■ 원금이 회복될 때까지 묻어둘 수 없다

※ 고란 - 2003년 중앙일보에 입사, 주로 경제 분야를 담당했다. 대학 졸업 후 6개월 은행에 몸담은 걸 빌미삼아 ‘반 금융인’이라고 주장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열어갈 ‘토큰 이코노미’에 관심이 많다. ‘암호화폐의 정석’에 해당하는 [넥스트머니]를 지난 6월 출간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재테크 및 암호화폐 시장과 관련한 ‘고란의 어쩌다 투자’ 코너를 연재 중이다.

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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